소설리스트

갓코인-48화 (48/300)

# 48

상엽은 규슈를 떠나고 있었다.

박광신의 도움을 받아 배를 구한 그는 오사카를 목적지로 잡았다.

-오사카 도톤보리에 식스헤븐이라는 캬바 클럽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무라카라는 자를 찾으라고 합니다.

상엽은 가능하다면 파이어스의 망치를 먼저 완성하고 싶었다.

‘사쿠라 길드에 강한 녀석들이 꽤 있어.’

원래부터 원하던 무기였지만 유령 추종자를 통해 사쿠라의 진짜 정보를 알아낸 이후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여겨졌다.

‘서열 5위까지는 쉽지 않겠어.’

사쿠라 길드의 다섯 전사들은 초창기 멤버고 여전히 힘의 중심에 있었다.

규모가 다른 길드에 비해 적음에도 화이트 길드 2위를 차지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길드장은 4단계 유저에 3단계 마스터도 있고 유산도 하나씩은 완성했고.’

상엽으로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정보였다.

이를 위해 상엽도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나마 유령 추종자를 6단계로 올리고도 유물을 흡수하면서 코인이 남아 있었다.

‘15만 코인.’

18명을 제거하고 습득한 유물치고는 많은 양이 아니었다.

‘일단 오사카에 가서 생각하자. 거기는 블랙 상점도 있을 테니까.’

상엽이 코인을 굳이 소모하지 않은 건 블랙 상점에 가기 위해서였다.

“중급 상점에 가자.”

그는 3단계 상점에 갈 시간이 왔다고 판단했다.

원래는 2단계를 마스터하고 갈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변했다.

‘낮은 가격으로 강화할 수 있을 거야.’

목표보다는 효율을 따질 순간이 왔다.

상엽은 박광신이 마련한 배를 통해 오사카 항구로 들어섰고 곧장 인파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레나를 통해 최하급 블랙 상점을 찾았고 상위 상점을 알아냈다.

같은 방식으로 중급의 위치까지 알아낸 상엽은 명함의 주소를 다시 보았다.

‘도톤보리의 라면집.’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인 도톤보리는 상엽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도심 가운데 작은 유람선이 다니는 강이 흐르고 이를 중심으로 엄청난 상권이 형성된 지역이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여행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상엽조차도 친숙한 이름이었다.

‘도톤보리에 가면 전부 해결되겠어.’

상엽은 우선 화이트 상점은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 감시를 당하고 있으면 비밀이 밝혀지기 때문이었다.

‘여기다.’

라면집은 도톤보리의 중심에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라면집 내부에는 발 디딜 톰도 없었다.

중앙 조리실을 기준으로 ‘ㄷ’ 자 형태로 테이블이 차려져 대부분이 혼자 식사를 하는 구조였다.

중앙 조리실에서는 하얀 주방장 모자를 쓴 여섯 명의 요리사들이 바쁘게 라면을 만들고 있었다.

상엽은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주문 대신 명함을 내밀었다.

이를 본 요리사는 명함을 누군가에게 전달했다.

요리사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중년 남성이었다. 얼굴에 잔주름이 자리를 잡았고, 희끗한 머리카락이 생겨나는 나이였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직요.”

“그럼 잠시 기다리시겠습니까?”

“네.”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인 주방장은 숙련된 솜씨로 조리를 하더니 상엽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맑은 국물에 하얀 면발이 담겨 있는 일본식 라면이었다.

상엽은 마다하지 않고 라면을 먹었다. 조금 짠맛이 났지만 거북할 정도는 아니었고,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터라 금세 그릇이 비었다.

주방장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 가게 안쪽의 문을 가리켰다.

“따라오시죠.”

바쁜 와중에도 그는 조리실을 떠나 상엽과 함께 문을 나섰다.

문 너머에 있는 것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여긴 아무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멋진 곳이네요.”

지하실은 직사각형의 시멘트 구조였다. 자칫 칙칙하게 보일 수 있는 지하실은 고풍스러운 책장과 가지런히 놓인 책으로 인해 제법 분위기 있는 서재가 되었다.

“일본인이 아니시군요.”

“한국인이에요.”

“한국인은 처음입니다. 반갑습니다, 노다라고 합니다.”

상엽은 사내의 푸근한 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첫 화이트 상점이었던 남수사를 보는 느낌이었다.

“중급 상점은 처음이에요. 바로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장사 방해한 건 죄송해요.”

“소중한 만남이니 괜찮습니다.”

노다는 손을 내밀었고 상엽이 이를 맞잡았다.

중급 블랙 상점을 처음으로 여는 순간이었다.

기본적으로 처음 나타나는 메뉴는 같았다.

-신체

-무구

-스킬

상엽은 익숙한 문구를 보며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제일 궁금한 것이 신체였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문구가 보였다.

-머리

-몸

-팔

-다리

“이건 뭐 곤충 채집도 아니고.”

“재미있는 표현이군요.”

“각 신체별로 따로 강화하는 건가요?”

“강화가 아니라 개조입니다. 표현이야 어떻든 뜻은 통하지만 말입니다.”

“좋은 인상은 속임수였군요. 은근히 깐깐하신 거 같은데요.”

상엽의 말에 노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고집스러운 요리사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기준이 있고 이에 벗어나는 걸 극히 싫어하는 성격.

“개조의 효과는요?”

“힘과 유연성이 동시에 올라갑니다.”

“혹시 머리를 개조하면 똑똑해지나요?”

“머리가 맑아지긴 합니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선명히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신 공격에 대한 저항도 올라가지요. 정신력을 사용해야 하는 스킬이 있다면 효율이 올라갈 것입니다.”

“몸통은요?”

“몸통이 아니라 몸입니다.”

“표현이야 어쨌든 뜻은 통하지 않나요?”

상엽은 이런 말싸움에 은근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물론 노다는 아니었다.

“몸을 강화하면 피부와 내장이 강해집니다.”

“내장요?”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들입니다.”

노다의 말투가 은근히 빨라졌다. 상엽은 그 변화를 알았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시작 코인이 1천 코인이라.’

10단계는 51만 2천 코인.

1단계부터 10단계까지 강화하기 위해서는 102만 3천 코인이 필요하다.

‘젠장, 4가지를 전부 개조하려면 4백만 코인이 넘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방식이다.

‘일단 다른 것들도 보자.’

살 수 있는 목록만 보이는 터라 상엽은 미리미리 다른 부분을 확인했다.

두 번째는 무구였다.

‘어? 많이 달라졌네.’

하급 상점까지는 대충 보고 지나갈 정도였다. 그런데 중급 상점에서는 아니었다.

거의 모든 신체 부위에 해당하는 방어구와 30종이 넘는 무기들이 있었다.

비싼 물품들은 견고함과 날카로움을 넘어서서 스킬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다만 이럴 경우 기본 10만 코인이 넘어갔고 강화까지 해야 했다.

‘아직은 아니야.’

상엽은 마지막으로 스킬을 확인했다.

이번에도 역시 블랙 유저만의 전용 스킬이 나타났다.

‘많아졌네.’

스킬은 총 10가지였다.

-페레타의 두 번째 속삭임

원하는 대상의 목소리를 훔쳐 들을 수 있다.

-폴란의 감정 증폭

상대가 현재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을 더욱 증폭시킨다.

-하마르타의 체온 유지

어떤 환경에서도 정상 체온을 유지시킨다.

-굴진의 기억 일기장

내 기억을 선명히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레카나르의 은하수 선율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

-칼라의 깊은 중절모

원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없게 만든다.

-가버드의 암흑 태양

빛을 흡수하는 구체를 만든다.

-밀레드의 도약의 길

공중에 작은 디딤돌을 만들 수 있다.

-데크리트의 일식의 손길

병균을 물체처럼 손에 쥘 수 있게 된다.

-기가트의 어둠의 안개

원하는 지역에 어둠을 생성한다.

상엽은 10가지의 스킬을 몇 번이나 다시 보았다.

‘기본 2만 코인.’

중급 스킬들은 1단계가 2만 코인이었다.

‘병균을 만지고, 디딤돌을 만든다.’

전투 외에도 눈이 가는 스킬이 있었지만 상엽은 금방 잊어버렸다.

‘어둠을 만드는 건 화이트 유저에게 유용하겠네.’

1단계의 효과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화이트 유저가 싫어할 스킬임에는 분명했다.

모든 목록을 확인한 상엽은 효율을 생각하며 결정을 내렸다.

“신체 목록 전부 5단계까지 개조해 주세요.”

“12만 4천 코인입니다.”

노다는 기다렸다는 듯이 개조를 시작했다.

“컥!”

상엽은 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엄청난 고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상엽은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으면서 웃고 있는 노다를 노려보았다.

“아으!”

전투에서도 느끼지 못하는 극한의 고통이었다. 게다가 5단계에서는 상승 폭이 큰 만큼 더 강한 고통이 시작됐다.

‘조금씩 나눠서 할걸.’

후회해도 이미 소용이 없었다.

비명 외에는 입을 벌려도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몸이 뒤틀리고 내장이 뜯겨 나가는 고통 속에서 상엽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점차 고통이 사라지자 온몸이 1급수 개울에 뛰어든 것처럼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후우.”

상엽은 끝내 쓰러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텨 냈다. 식은땀으로 인해 그의 셔츠는 물에 빠진 것처럼 젖어 있었다.

“아저씨.”

“말씀하시지요.”

“제가 이 질문은 한 번도 안 해 봤는데요. 정말 궁금하니까 물어볼게요.”

“얼마든지요.”

상엽은 이젠 노골적으로 웃기 시작한 노다를 향해 물었다.

“상점을 때리면 어떻게 돼요?”

노다의 웃음이 사라졌다.

하지만 당황한 것이 아니라 분노한 눈빛이었다.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때리려던 상점에서 죽도록 맞아서 말입니다.”

“그래요?”

상엽은 노다에게 바짝 다가가서 말했다.

“언제 한번 남자답게 붙어요.”

“기다리지요.”

상엽은 노다와 매서운 눈빛을 교환하고 지하 서재를 떠났다.

* * *

“빨리 할걸. 이렇게 좋은걸.”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과는 상상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단숨에 모든 신체를 5단계나 개조시켰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 녀석 한 번 강화하는 데 32만 코인이나 들었는데.”

상엽의 머리 위로 유령 추종자가 떠올랐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고는 형체가 조금 선명해진 것뿐이었다.

다행히 추종자가 말했던 정신 지배는 확실히 해냈다. 그로 인해 상엽의 기억 속에는 사쿠라 길드에 대한 세심한 정보들이 있었다.

‘남은 건 모아서 화이트 상점에 가자. 기회가 있을 거야.’

본래부터 신체 강화를 선호했던 그의 본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건강이 최고니까.”

상엽은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며 도톤보리를 걸었다.

규슈와는 워낙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 긴장감이 조금 풀리기도 했다.

하지만 목표는 어느 때보다 분명했다.

“이제 신의 오함마를 찾으러 가 볼까?”

그는 오상식이 보내 준 지도를 보며 목적지를 찾았다. 하지만 캬바 클럽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제 겨우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은 것이다.

‘캬바 클럽.’

간판은 한국의 룸살롱과 흡사하다.

하지만 실질적인 운영 방식은 많이 다르다. 업소에 따라 성매매를 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싼 술을 마시며 업소 여성과 대화만 하는 곳이었다.

물론 그들의 대화나 목적이 건전하진 않았지만, 표면적으로는 아름다운 여성과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장소였다.

결국 건전과 퇴폐의 중간에서 묘한 줄타기를 하는 업소가 일본의 캬바 클럽이었다.

“밤에 다시 와야겠네.”

상엽은 어쩔 수 없이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관광할 때는 아니지만.’

상엽은 복잡한 거리를 걸어 보기로 했다. 지리를 파악해 두기 위해서였다.

일부러 큰길을 포함해 좁은 골목까지 들어선 상엽은 건물의 높이까지 꼼꼼히 살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헌터 아이에 뭔가가 잡혔다.

‘8900블랙 코인. 확인하자.’

그는 조심스럽게 수색을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골목을 지날 때였다.

그가 가야 할 길을 두 명의 덩치가 등을 보이며 막고 있었다.

상엽이 다가가자 덩치 중의 한 명이 험악한 인상을 드러내며 몸을 돌렸다.

“다른 길로 가라.”

불쾌한 명령에 상엽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건 또 뭐야?’

상엽은 덩치들이 막고 있는 반대쪽 골목에 한 여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젊은 여성은 이미 많은 구타를 당했는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 앞에서 칼을 만지작거리며 위협을 하는 사내는 얼굴에 깊고 선명한 칼자국이 교차한 30대 중반 남성이었다.

‘블랙 유저.’

헌터 아이에 걸린 사내가 여성을 위협하는 그자였다.

공포에 질린 여성을 상대로 계속해서 더러운 단어를 쏟아 내는 그를 보며 상엽은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니들 야쿠자야?”

그 말을 들은 덩치들이 상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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