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47화 (47/300)

# 47

“이거 진화한 거 맞아?”

우웅!

상엽의 머리 위에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이목구비가 일렁이는 물결처럼 희미해서 정확한 인상은 없었다.

게다가 크기도 주먹만큼 작아서 언뜻 보면 투명한 횃불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 진화시킨다고 24만 코인 썼어.”

4단계가 8만 코인, 5단계가 16만 코인이었다.

그 결과로 유령 추종자는 독수리에서 작은 얼굴 모양으로 변했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어?”

이젠 유령 추종자가 완벽한 문장을 구사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상엽의 몸을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거리가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이는 스킬과의 시너지로 인해 모든 능력이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귀여운 맛은 없어졌지만 좋아.”

상엽은 유령 추종자의 성장을 확인하며 숲속에서 걸어 나갔다.

“신의 소통도 이제 3단계고.”

28만 코인 중에 남은 4만 코인으로 상엽은 신의 소통 3단계를 구입했다.

-신의 소통

3단계-모든 언어를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

이제 그는 대부분의 외국어를 완벽히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조용해지면 똑똑해지는 스킬만 잔뜩 사자.”

그는 이런 꿈을 꾸면서 숲을 벗어났다.

이마리 시의 경계선은 군대가 주둔하지 않았다.

레이더 기술이 발달한 일본은 이를 적극 활용해서 군대가 적재적소에 출동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일본은 변종 관련 연구가 가장 활발히 진행되는 국가 중의 하나였고, 레이더 기술도 그중의 하나였다.

상엽도 이 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성능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군대와도 관련이 되어 있겠지?’

국가에서 사쿠라에게 지원하는 규모를 생각하면 이런 예상은 어렵지 않았다.

아직 레이더 기술이 변종이나 갓코인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움직이는 물체나 생물을 워낙 정밀하게 잡아내서 도시 외곽에 있는 것은 위험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도시 시스템에 걸릴 테고, 밖에 있으면 레이더에 걸리고.”

그래도 확률로 보자면 도시 안이 숨을 곳이 많았다.

“미야다, 그 자식부터 처리해야겠어.”

상엽은 철책으로 만들어진 경계선을 넘어갔다.

* * *

미야다는 방금 들은 보고를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제거됐단 말이냐?”

“네, CCTV를 분석했습니다. 후반부는 카메라가 망가졌지만 두 명의 죽음은 확인했습니다.”

미야다는 한 시간 전에 이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믿을 수가 없어서 확실한 조사를 지시했다.

“그들이 당하다니…….”

“그런데 타나카가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타나카?”

“그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급히 나오는 장면이 잡혔습니다. 연막탄이 터졌는데 타나카의 짓으로 추정됩니다.”

쾅!

미야다는 먹색의 고급 책상을 내려쳤다.

감정이 실린 주먹에 책상이 박살 나며 그 잔해가 튀어 올랐다.

“본부에 보고하고 당장 그자를 찾아내라.”

“알겠습니다.”

30대 초반의 사내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미야다의 집무실을 나섰다.

미야다는 검은 가죽의 중역 의자에 몸을 기댔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마음 같아서는 시원한 경치라도 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사쿠라의 이마리 지부는 지하였기 때문이다.

쇼핑몰 건물로 지상 10층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고, 지하 2층을 전부 사쿠라 길드가 쓰고 있었다.

외부에는 창고로만 알려져 있었고 전용 비상구에 엘리베이터까지 있었다.

“후우.”

미야다는 눈을 감고 상엽을 떠올렸다. 하지만 24시간이 지나서 그의 능력은 발동되지 않았다.

“분명히 다시 온다.”

그는 이번 사건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같은 시간.

상엽은 주유소를 찾아갔다. 친절한 아르바이트생이 상엽을 보고 달려왔다.

“어서 오세요.”

“기름 채워 주세요.”

“네?”

아르바이트생은 당황했다.

상엽은 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는 어디에 있으신가요?”

아르바이트생은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여대생이었다. 당황한 마음을 숨기고 친절하게 물었다.

이에 상엽도 웃으며 대답했다.

“저 차로 할게요.”

상엽은 주유소 한쪽에 세워진 정유 트럭을 가리켰다.

원뿔 기둥 모양의 대형 정유 통이 설치된 트럭이었다.

“가득요.”

그러면서 상엽은 들고 있는 가방을 던졌다.

“남는 돈은 팁이에요.”

아르바이트생은 지퍼가 열린 가방 안에 가득 채워져 있는 돈을 보았다.

그날 밤.

상엽은 쇼핑몰이 문을 닫은 늦은 시간에 정유 트럭을 몰았다.

“트럭은 쉽지 않네.”

안전 운전이라 하기에도 지나치게 느린 속도로 도착한 곳은 쇼핑몰의 지하 주차장이었다.

주차장 가운데 차를 세우고 위치를 가늠한 상엽은 해머를 꺼내 들었다.

“자, 공사 시작.”

쾅!

상엽은 바닥에 구멍을 뚫고 정유 트럭의 호스를 그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레버를 내려 기름을 쏟아부은 후에 미리 준비한 횃불을 던졌다.

“너구리 잡을 시간이다.”

화르르!

지하실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쏟아지는 석유로 인해 금세 바닥을 타고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갓코인 유저도 숨을 쉬어야 한다.

스킬로 이를 극복할 수 있지만 영원히 숨을 쉬지 않을 수는 없었다.

유독 가스와 불길.

지하실에 갇힌 이들에게 이는 사형 선고와 같았다. 하지만 그들에겐 뛰어난 신체가 있었다.

내부에 있던 15명의 사쿠라 길드원들은 출구를 찾아 빠르게 이동했다.

그렇지만 이는 죽음으로 가는 문턱이었다.

가스와 화염을 뚫고 도착한 비상구의 끝에는 상엽이 사신처럼 서 있었다.

쾅! 쾅! 쾅!

소음이 울릴 때마다 길드원들은 하나씩 빛으로 흩어졌다.

벌써 10명.

그들은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또 다른 비상구가 있었고, 작동을 멈췄지만 엘리베이터가 오가는 공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희망은 없었다.

불을 지른 상엽이 그곳을 차례로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모두 천장을 뚫는다!”

미야다는 남은 인원을 진정시키며 가장 현명한 방법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들의 근처에 투명한 얼굴이 돌아다녔다.

미야다는 칼을 들어 얼굴을 그었지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오히려 화가 난 유령 추종자는 괴성을 질렀다.

끼아아!

고막을 찢을 것 같은 비명은 본연의 공포를 자극하고 심장 박동을 빠르게 만들었다.

유령 추종자는 태풍을 만난 낙엽처럼 어지럽게 공중을 돌며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불길의 소음 속에서도 그 소리만큼은 전혀 묻히지 않았고 미야다의 마음도 급해졌다.

“시작하라!”

미야다가 먼저 천장을 뚫으며 위로 솟구쳤다.

그 뒤를 남은 길드원들이 일제히 뒤따랐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결과는 없었다.

쾅!

천장을 통과한 바로 그 순간, 상엽의 망치가 두더지를 잡듯 아래로 떨어졌다.

쾅! 쾅! 쾅!

다른 길드원들 역시 같은 신세였다.

“보너스 게임 안 주냐?”

유령 추종자의 괴성은 벽을 넘어서 상엽에게 전달되었고 정확한 위치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까지 엿들을 수 있었다.

유령 추종자는 정보 전달이 아니라 상엽의 직접적인 눈과 귀가 된 것이다.

결국 내부에 있던 열다섯 명은 모두 상엽의 손에 쓰러졌다.

“남은 놈 있는지 살펴봐.”

유령 추종자에게 정찰을 맡긴 상엽은 전리품을 챙겼다.

“역시 사람 잡는 게 최고야.”

그레이 코인만 23만, 화이트 코인에서 블랙 코인으로 전환된 것은 7만이었다.

30만 코인을 단 10분 만에 획득한 것이다.

-없습니다.

유령 추종자가 결과를 알렸고 상엽은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를 뒤로하며 주차장을 벗어났다.

20분 후.

세 명의 사쿠라 길드원이 사건 현장을 찾았다.

이미 십여 대의 소방차들이 도착해서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여전히 불길이 치솟고 있어서 그들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세 명의 사내 중의 한 명이 전화기를 이용해 다급한 목소리로 뭔가를 전달했다.

한창 통화를 하던 사내는 자신의 뒤에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급히 몸을 돌린 그는 공중에 떠 있는 묘한 얼굴 형태의 안개를 보았다.

“뭐지?”

그 말을 하는 순간, 어디선가 강한 바람이 불었다.

쾅!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찢어졌고 폭발의 여파로 중심을 잃은 자의 머리에는 해머가 떨어졌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은 배에 강한 충격을 느끼며 그대로 꼬꾸라졌다.

“누군가 올 거라 생각했어. 나 점점 더 똑똑해지는 거 같지 않아?”

-주인님은 지혜롭습니다.

“고급스러운 단어 선택이네. 좋아.”

상엽은 기절한 사내를 어깨에 걸쳤다.

“일들 보세요. 이 일은 죄송하게 됐어요.”

상엽은 소방관들에게 사과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 * *

상엽이 알고 싶은 것은 사쿠라의 상세 정보였다.

그리고 그를 알아내는 것은 상엽이 아니라 유령 추종자의 몫이었다.

“너 뻥카 아니지?”

-아닙니다.

“그러니까 1단계만 더 상승하면 저 자식한테 전부 알아낼 수 있다고?”

-그렇습니다. 다만 신체의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여야 합니다. 그 후에 정신은 제가 제압할 수 있습니다.

“너 강해지고 싶어서 뻥카 치는 거면 가만 안 둔다.”

유령 추종자 6단계에 들어가는 코인은 32만 코인이다. 상엽이 18명을 처리하고 얻은 코인의 전부를 투자해야 했다.

‘엄청 도움이 되고 있잖아. 아까워하지 말자.’

32만 코인이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유령 추종자의 능력이 그 가치를 충분히 하는 중이었다.

“좋아. 까짓것 내 사람한테 돈 아끼면 안 된다고 했어.”

-주인님께 충성을!

“잠깐 기다려. 아직 감정 결과가 안 나왔어.”

상엽은 붙잡아 놓은 사쿠라 길드원을 지켜보며 오상식의 연락을 기다렸다.

“오늘은 좀 늦네.”

“음…….”

상엽의 말에 기절했던 사쿠라 길드원이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뜨려 했다.

빡!

“더 자.”

뒤통수를 맞은 길드원은 다시 정신을 잃었다.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평소보다 연락이 늦었지만 상엽은 인내심을 발휘하며 기다렸다.

‘이유가 있겠지.’

재촉한다고 빨리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상엽의 일을 최우선으로 처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왔다.”

평소보다 늦었지만 이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오상식은 문자가 아니라 직접 전화를 걸었다.

-한 가지 유산에 대해 알아보느라 좀 늦었습니다.

“괜찮아, 형.”

오상식과 친해진 상엽은 어느새 편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상식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본래의 말투를 사용했다.

-그래도 원하시는 물건의 실마리를 풀었습니다.

“뭐? 설마 오함마에 대해서 알아냈어?”

-기뻐하실 단계는 아닙니다. 그저 제로 확률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빨리 설명해 줘. 어떻게 하면 돼?”

상엽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빨라졌다.

파이어스의 망치.

그 실마리가 풀린 것이다.

-보내 주신 사진 중에 드바란의 투구 조각이 있습니다. 일본 쪽에서 구입을 원하는 물건 중의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매물이 없었는데 상엽 씨가 두 개나 습득한 겁니다.

상엽은 자신이 가진 유산 중에 중복되는 물품이 있다는 걸 알았다.

-드바란의 투구는 위험을 막는 데 좋은 유산이라 찾으려는 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매물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함마랑 무슨 상관이야?”

-매입을 원하는 브로커가 가버문트의 신발 조각의 행방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 확인하느라 연락이 늦었습니다.

“형, 사랑해도 돼?”

가버문트의 신발 조각이 있으면 중국에 가서 파이어스의 마지막 조각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말씀드렸다시피 겨우 확률이 생겼을 뿐입니다. 알아보니 그 브로커의 평판이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안 좋은데?”

-브로커 자체가 갓코인 사냥꾼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고객을 여러 명 죽였다는 소문도 있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상엽의 질문에 처음으로 오상식이 말을 멈췄다. 고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오상식은 솔직히 대답했다.

-위험한 자로 판단됩니다.

이번에는 상엽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만 그 역시 고민이 길지는 않았다.

“움직이는 건 내가 할게. 협상은 형이 맡아 줘.”

-준비하겠습니다.

오상식은 상엽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신의 오함마, 내가 간다.”

상엽의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