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세 명의 암살자는 빛 속에 숨어들었다.
그런데도 그림자가 생기지 않았다. 상엽이 있는 빈 사무실의 벽에 거미처럼 달라붙은 그들은 10분이 넘게 그 자리에 머물기만 했다.
빈 사무실의 옆방.
15층 창틀의 아래, 복도로 나가는 문 옆.
그리고 평범한 경비 한 명이 상엽이 있는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암살자들은 뱀을 만난 살쾡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상엽이 경비에게 신경을 쓰는 순간, 그들의 암살이 시작된다.
그들에게 암살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굳이 어둠을 이용하지 않아도 방법은 많다.
한 명이 다가가고, 이에 시선이 끌리면 두 명이 동시에 공격이 들어간다.
두 명의 공격이 먹히면 끝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처음 접근했던 자의 마지막 공격이 남는다.
세 번의 연속된 공격을 피한 자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
이는 그들의 특기와 유산 때문이었다.
처음 공격을 시도하는 자가 핵심으로, 그는 1초간 몸이 투명해지는 유산을 가지고 있었다.
첫 공격이 실패하면 곧바로 투명화를 진행해서 마지막 공격은 보이지 않는 채로 시도하게 된다.
두 명의 기습도 각각의 특기가 있어서 사라진 첫 번째 암살자는 막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당신, 누구요?”
경비가 드디어 불청객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경비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고 구두 소리가 공허한 사무실을 울렸다.
또각. 또각.
빠르게 다가가는 구두 소리에 암살자들은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불청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다가오면 다쳐요.”
상엽의 목소리였다. 이는 암살자들의 공격 시작을 의미했다.
암살의 핵심인 첫 번째 공격은 벽 뒤에 숨은 자였다.
‘다크필의 어두운 걸음.’
1미터의 거리를 순간이동하는 기술. 이 기술이 있기에 그는 벽 뒤에 자리를 잡았다.
‘시작한다.’
그가 결정을 내렸을 때였다.
그런데 찰나의 순간에 예상치 못한 소리가 끼어들었다.
쾅!
그가 귀를 대고 있던 벽이 폭발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 충격은 벽을 넘어 암살자까지 찢어 버렸다.
“그래, 이게 너희들 답이라 이거지?”
무너진 벽 뒤에서 상엽이 나타났다. 그리고 하얀빛이 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잘했어.”
유령 추종자는 칭찬을 받자 기분이 좋은지 커다란 날개를 펼쳤다.
암살자들이 예상치 못한 하나가 바로 유령 추종자였다.
벽과 사물을 마음대로 통과하는 유령 추종자는 암살자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
그리고 상엽은 경비에게 말을 하는 순간을 이용해 스트라이크로 벽을 때렸다.
그 충격은 암살자를 흩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상엽의 위험이 끝난 건 아니었다.
다른 두 명의 암살자는 동료가 죽었음에도 암살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쾅!
문 옆에서 폭음이 들리며 또 한 명의 암살자를 방해했다.
이로 인해 창문 밖에서 대기 중이던 암살자는 홀로 공격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공격은 빠르고 매서웠다. 다만 그를 맞이하는 건 상엽보다 유령 추종자가 먼저였다.
유령 추종자가 화살로 변신하더니 암살자를 향해 날아갔다.
암살자는 몸을 비틀어 화살이 자신의 왼쪽 어깨를 관통하도록 했다.
피해를 감안하고 상엽을 노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유령 추종자가 관통한 어깨에서는 아주 작은 통증만 남았다.
유령 추종자에게 큰 피해를 줄 능력은 아직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상대를 위협하는 수단이었고, 이걸로 상엽에게 기회를 주기는 충분했다.
푹.
암살자의 칼이 상엽의 배에 꽂혔다. 하지만 칼끝이 겨우 피부를 뚫은 정도였다.
그의 손은 상엽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우둑!
암살자의 팔을 비틀어 버린 상엽은 해머를 휘두르려 했다. 그런데 암살자는 몸을 낮추며 왼손으로 상엽의 발목을 노렸다.
‘이런!’
상엽은 예상치 못한 반격에 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우둑!
상엽은 더욱 강하게 상대의 팔을 잡아당겼다.
드디어 상대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지자 상엽은 계속해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최대한 멀리 뛰며 상대의 팔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그렇게 다섯 번.
상대가 반동을 이용해 상엽에게 접근하려 했다.
‘어딜.’
이미 예상을 했던 상엽이 암살자의 팔을 놓아 버렸다.
중심을 잃은 자전거처럼 상대의 몸이 흔들리며 상엽을 지나쳐 갔고 그걸로 끝이었다.
쾅!
상엽은 스트라이크로 뒤따르며 암살자의 뒤통수에 해머를 꽂았다.
“하나 남았어.”
상엽은 곧장 복도로 달려 나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장면을 보았다.
복도는 붉은 연막탄으로 인해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누가 이런 거야?’
상엽은 우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여전히 범위를 넓히는 연막탄에서 물러났다.
-주인. 적.
유령 추종자가 연막 안으로 들어가서 적이 있음을 알렸다.
‘너 오늘따라 열심히 일하는데?’
상엽은 마지막 암살자가 연막탄 안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처리하고 가자.’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위치 잡아.’
상엽의 명령에 따라 유령 추종자가 상대의 곁에 머물렀다.
‘지금.’
유령 추종자가 빛을 뿌렸다.
‘스트라이크.’
상엽은 희미하게 보이는 빛을 향해 스트라이크를 시도했다.
쾅!
연막 안에서 기회를 노리던 암살자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다급히 물러났다.
하지만 폭발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그리고 폭발에 이어 날카로운 파편들이 그의 몸을 덮쳤다.
상엽이 일부러 고스트 실드를 깨트린 것이다.
결국 암살자는 연막의 범위를 벗어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상엽은 다시 한번 스트라이크로 따라붙었다.
암살자는 거미처럼 천장에 붙으며 이를 피했고 곧장 낙하하며 상엽의 등을 노렸다.
츳!
상엽의 옷자락이 날카로운 단검에 갈라졌다. 하지만 피부까지 닿지는 못했다.
상엽은 몸을 돌리면 늦는다고 판단하며 해머로 바닥을 찍었다.
복도가 산산조각이 나며 무너져 내렸다.
암살자와 상엽은 동시에 옆쪽 벽면을 밟았다.
‘잡았다.’
암살자는 공중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이를 본 상엽이 도착 지점을 향해 스트라이크를 펼쳤다.
공중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암살자는 해머를 몸으로 받아 내야 했다.
양손을 교차하자 그의 몸에서 강철 가시가 돋았다.
쩌엉!
귀를 찢는 쇳소리가 건물 전체로 퍼져 나갔다.
외벽을 이루던 강화 유리가 모두 깨졌고 지진이 난 것처럼 건물이 흔들렸다.
쿵.
상엽은 뚫린 바닥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하얀빛이 상엽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죄송합니다, 일들 하세요.”
상엽은 대충 인사를 하고는 건물을 빠져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상엽의 앞으로 차 한 대가 도착했다.
“어서 타십시오!”
상엽이 목숨을 구해 주었던 타나카였다.
“연막탄 던진 게 너였어?”
“네!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암살자들을 따돌리려면 서둘러야 해요!”
“뭔 소리야? 전부 처리했는데.”
상엽의 대답에 타나카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설마…….”
“나 탈출시키려고 그런 거야?”
“그들을 죽였단 말입니까?”
타나카는 단순히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상엽은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
‘탈출만 시키려고 했던 거군.’
그런데 결과적으로 암살자 세 명을 죽이는 데 도움을 준 꼴이 되어 버렸다.
상엽은 멍해 있는 타나카의 차에 올랐다.
“출발해.”
“네?”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출발하라고. 가족들이랑 마을 사람만 생각해.”
상엽의 재촉에 타나카는 멍한 상태에서 차를 몰기 시작했다.
타나카가 정신을 차린 것은 후쿠시마 대교가 있는 이마리 시를 벗어난 때였다.
그는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국도로 들어서서 차를 도롯가에 멈췄다.
시원한 바람이 필요했던 그는 차에서 내려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함께 있던 상엽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딴생각을 했다.
‘코인이 꽤 모였는데.’
세 명의 암살자를 죽이고 획득한 코인만 10만에 달했다. 거기다 유물 6개와 유산 4개를 얻었다.
‘분명히 비싼 걸 거야.’
상대의 실력을 감안했을 때, 평범한 물건 같지는 않았다.
‘감정부터 받자.’
그는 무릎 위에 유산과 유물을 올리고 사진을 찍어 오상식에게 보냈다.
그 작업이 끝났을 때, 타나카는 하늘을 보며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왜 끼어들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든 거야?”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상엽은 자신이 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로 인해 암살자들은 팀플레이를 할 수가 없었다. 개인 전투가 가능했기에 상엽이 일방적으로 이길 수 있었다.
결국 상엽은 타나카의 고민을 덜어 주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일단 날 도와준 건 고마워.”
“죽일 줄은 몰랐습니다.”
타나카가 따지듯이 말했다. 상엽은 말투를 통해 그의 감정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녀석들을 살려 줄 의무는 없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지만…….”
“뭔가를 선택했으면 그 결과를 받아들여. 그 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고치려고 노력하면 돼.”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날 도와준 순간부터 배신자였어.”
“하지만 용서받지 못할 배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전에 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넌 죽었고.”
타나카는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죽은 녀석 살려 줬더니 겨우 연막탄 하나 던져 놓고 나한테 따지자는 거야? 그리고 이걸 명심해.”
타나카에게 다가간 상엽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배신자가 아니었으면 넌 지금 내 손에 죽었어.”
타나카는 맹수 같은 상엽의 눈빛을 보며 절대 거짓말이 아님을 알았다.
“사쿠라는 내 경고를 무시했어. 이제 어느 한쪽이 쓰러질 때까지 싸우는 거야.”
“당신 혼자 사쿠라를 무너트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넌 널 죽이려는 녀석들이 있으면 도망만 다닐 거야?”
타나카는 할 말을 잃었다.
“네가 말해 봐. 내가 어떻게 했어야 돼? 김판종 그 개새끼를 용서해야 돼? 그냥 잘 먹고 잘 살게 놔두면 날 또 죽이려고 할 텐데?”
“그건…….”
“난 정당한 요구를 했고, 사쿠라는 나 대신 김판종을 선택했어. 그리고 암살자를 보냈지. 자, 다시 물을게. 내가 어떻게 했어야 돼? 그냥 거기서 죽었어야 돼?”
타나카는 길게 한숨을 쉬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싸울 거야. 그게 내 방식이야.”
“당신은 이길 수 없습니다.”
“난 됐고, 네 걱정이나 해.”
상엽은 화제를 타나카로 옮겼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가족들을 지켜야지. 누군가 이기적이라고 하더라도 난 반드시 지킬 거야. 치졸하고 더러운 방법을 써서라도 지킬 거야. 세상에 가족 이상이 어디 있어?”
상엽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 말에 타나카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당신은 정신도 강하군요.”
“단순한 거야. 복잡할 이유가 없어.”
타나카는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결심을 한 듯이 눈을 떴다.
“전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당신은 어쩔 셈입니까?”
“나? 다시 싸우러 가야지.”
“정말 사쿠라 길드를 혼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지.”
상엽은 너무나 쉽게 대답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몸을 돌리던 그는 뭔가 생각난 듯 타나카에게 말했다.
“적당히 좀 살아. 마음이 시킨다고 그렇게 다 하고 다니면 지금처럼 골치 아파지니까.”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에이씨, 마지막 말은 하지 말걸.”
괜히 머쓱해진 상엽은 급히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 * *
‘24시간 지났지?’
상엽은 타나카와 이동하는 중에 미야다의 능력에 대해서 들었다.
이제 미야다는 자신을 추적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가 타나카를 통해 들은 정보는 모두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미야다의 능력.
두 번째는 이마리 시에 있는 사쿠라 길드의 규모.
세 번째는 이마리 시에 있는 지부의 위치였다.
상엽은 도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적한 숲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 때, 기다렸던 문자가 도착했다.
유물과 유산의 감정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아주 희귀한 물건들입니다. 흡수할 경우 총합 18만 코인이며, 판매 금액은 20억이 넘습니다.
그 뒤로 유물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있었지만 상엽은 흡수하기로 결정했다.
‘당장 살아야지.’
한 가지 유물이 욕심이 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상엽은 18만 코인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흡수.”
결국 상엽은 유물을 전부 흡수했다. 그리고 레나를 부르기 전에 먼저 유령 추종자를 불렀다.
“너 강해지고 싶냐?”
-아오나에 충성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강해지고 싶냐고.”
-강한 힘. 원해.
“좋아. 이번에는 열심히 일했으니까 보너스다. 일한 만큼 벌어 가야지.”
상엽은 유령 추종자 스킬을 업그레이드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