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45화 (45/300)

# 45

타나카가 곧바로 움직이지 않자 상엽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우린 같은 편도 아니야. 그냥 죽게 내버려 두려다 살려 준 거야. 내 손에 죽기 전에 빨리 치료하라니까.”

-같은 편이 아니지만 널 살려 주었다. 빨리 치료해.

이번에도 이렇게만 들렸다.

“감사합니다.”

타나카는 진심으로 감동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 돌아서는 그의 움직임은 상처로 인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안 도와줄 거야. 살고 싶으면 그 정도는 혼자 해야지.”

-살고자 한다면, 그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어야 한다.

타나카는 굳은 결심을 보이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결국 혼자서 철문으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상엽은 일부러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기다렸다.

“뭐, 일단 서로 인사로는 충분하겠지?”

상엽은 당장 사쿠라와 전면전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 싸움을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을 주면 위험하겠어.’

상엽은 원숭이가 도망간 지역을 보았다.

“저런 변종들을 계속 사냥하면 곧 차이가 벌어질 거 아냐.”

한국에서 안주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더 강한 사냥터로 가야 돼.”

상엽은 홀린 듯이 원숭이들이 상주하는 지역으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그저 몸을 좀 풀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미 상엽의 본능은 지속적인 전투를 원하고 있었다.

‘사냥 중독.’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상엽의 입은 웃고 있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지면 어김없이 폭발음이 들렸다.

그 폭발음은 상엽의 몸 전체에 전율을 일으켰다.

‘재밌어.’

스킬들을 완성하고 상엽은 사냥에 제대로 재미를 붙였다.

‘그만해야지. 이럴 때가 아니잖아.’

상엽은 20마리 원숭이를 처리한 뒤에야 사냥터를 빠져나왔다.

20마리를 처리하고 그가 획득한 코인은 1400코인이었다.

“효율 끝내주는데.”

채 30분도 되지 않아 획득한 코인이었다. 물론 사쿠라 길드원 누구도 상엽처럼 이렇게 사냥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는 상엽뿐이었다.

“슬슬 반응이 있을 텐데.”

해변 도로로 나온 상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괜히 고생해서 넘어왔잖아.”

그는 타나카와 원숭이 사냥터를 보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여기도 공략 못하는 녀석들한테 긴장했다니.”

원숭이들의 건물은 전혀 공략이 되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이 지나치게 안전한 사냥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상엽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 자식들, 별거 아니야.”

숨어서 지켜보려던 상엽이 그냥 모습을 드러낸 이유였다.

전투 능력에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협상부터 해 볼까?”

여유가 생긴 상엽은 전쟁에 앞서 대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타나카 정도라면 충분히 처리하고 탈출할 자신감이 있었다.

“손님 대우가 영 형편없어. 빨리빨리 와야지.”

전용 사냥터에 외부인이 출입했다는 사실을 사쿠라에서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변 도로의 난간에서 상엽은 그들을 기다렸다.

세 명의 사내는 10미터 앞까지 접근하더니 걸음을 멈추고 상엽을 불렀다.

무기는 꺼내지 않은 상태였다.

“길드원을 구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두에서 고개를 숙이는 자는 40대 중반에 푸덕한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동네에서 흔히 보는 아저씨 같은 인상을 가진 사내의 뒤로는 30대 후반과 중반 사내가 함께 있었다.

한 명은 호리호리한 체격에 키가 작고 날카로운 눈을 가졌고, 다른 한 명은 단단한 체구의 근육질이었다.

“정상엽, 제 이름이에요.”

상엽은 굳이 어설픈 인사로 시간을 끌지 않았다.

“전 미야다라고 합니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미야다도 숨기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김판종이라는 녀석을 잡으러 왔어요. 사쿠라 길드에 들어가기 전에 생긴 원한이니 끼어들지 마세요.”

상엽은 자신의 목적을 정확히 말했다. 이에 미야다의 편안하던 인상이 구겨졌다.

“그가 우리 길드원이 된 이상, 관여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잘 들으세요.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상엽은 미야다를 보며 똑바로 말했다.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 김판종 그 새끼가 날 죽이려고 했습니다. 한 번도 만나 본 적도 없고, 서로 관련된 적도 없었던 놈이 말이죠.”

미야다는 상엽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자, 이제 아저씨가 말해 봐요. 아저씨 같으면 어떻게 할래요?”

미야다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상엽과 김판종의 이야기는 사쿠라 길드에서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사쿠라 길드 안에서도 김판종을 싫어하는 자가 많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그는 꼭 필요한 존재다.

한국에 대한 정보와 사쿠라 길드장이 원하는 유물과 유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그들이 안고 가야 할 위협은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의외로 정상엽이 나타난 것이다.

“대답 안 해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할게요.”

상엽은 감정이 사라진 무표정한 얼굴로 미야다에게 말했다.

“결정해요. 김판종의 일에 관여하면 제가 똑같이 해 줄게요.”

“똑같이라면…….”

“전 사쿠라 길드에 아무런 원한이 없어요. 오히려 한 명을 살려 주기까지 했네요.”

“그 부분은 감사…….”

“그런데 이젠 죽일 거예요.”

상엽은 미야다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말했다. 그 단어가 워낙 강렬해서 미야다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원한도 없고, 관련도 없지만 눈에 보이는 사쿠라 길드원은 모두 죽일 겁니다. 김판종을 내놓지 않는다는 건, 그의 뜻에 동조한다는 거니까.”

상엽은 말문이 막힌 미야다에게 다시 말했다.

“사쿠라 길드를 위해서 제가 김판종이 되어 줄게요. 당신들은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감이 되는 거예요. 그럼 제 입장을 절실히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미야다는 상엽의 마지막 경고가 절대 거짓말이 아님을 직감했다.

“재밌겠다. 그죠?”

상엽은 웃었지만 미야다는 결코 웃을 수 없었다.

미야다와의 만남 이후로 상엽은 사라졌다.

적어도 사쿠라 길드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실체가 그렇게 신비롭진 않았다.

“아우, 힘들어.”

상엽은 섬에 들어올 때처럼 다리 밑을 수영하고 있었다.

‘안녕, 물고기들.’

잠수 능력까지 활용해 최대한 몸을 숨긴 그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뭍으로 올라왔다.

‘자, 이제 반응을 지켜볼까?’

그는 미리 봐 둔 건물에 몸을 숨겼다.

다리가 내려다보이는 건물이었고, 빈 사무실이었다.

옥상을 통해 사무실로 들어간 상엽은 얼굴만 내밀어 밖을 살피다가 한 가지 실수를 깨달았다.

“아씨. 먹을 거 좀 사 올걸.”

결국 그는 달빛 캔디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딱 하루만 기다려 준다.”

상엽은 미야다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루가 지나서도 김판종이 사쿠라 길드에 있으면 협상 결렬이야.

일방적인 통보였지만 상엽의 진심이기도 했다.

‘광신이 형 말대로라면 사쿠라 길드가 한국을 노리고 있다던데.’

상엽은 이 협상의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 기회를 이용할 수도 있어. 그들에게도 명분은 있으니까.’

상엽은 사쿠라 길드원 두 명을 죽였다. 그걸 물고 늘어지면 명분은 충분했다.

“까짓것, 덤비라 그래. 원숭이도 못 잡는 것들이.”

상엽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빨리 처리하고 사냥 가자. 저기 변종들이 날 부르잖아.”

그는 가만히 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수영도 해 보니까 꽤 재밌던데. 마스터해 버릴까?”

상엽은 잠시 바다를 횡단하는 상상을 했다.

“수영을 마스터하면 어떻게 될까?”

그는 돌고래를 상상했다. 그러다 상어가 떠올랐다.

“진짜 신나겠는데.”

전투를 벗어나도 갓코인은 할 것이 무궁무진했다.

“하늘을 나는 것도 괜찮을 테고.”

상엽이 상상을 하며 고개를 들자 투명한 뭔가가 솟아올랐다.

“쳇, 놀리냐?”

유령 추종자가 천장 아래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들어와. 들킬지도 모르잖아.”

유령 추종자를 다시 회수한 상엽은 헌터 아이를 통해 다리 근처를 보았다.

그곳에는 한 명의 사내가 철문을 지키고 있었다.

‘본거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지?’

하지만 상엽은 다리와 멀지 않은 곳에 본부는 아니더라도 지부는 있을 거라 예상했다.

‘이상하게 헌터 아이에 안 걸리네.’

그가 건물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헌터 아이로 지부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범위 밖에 있나?’

상엽은 일단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약속 시간까지는 23시간이 남은 시점이었다.

16시간이 남았을 때였다.

“아우, 지루해. 절대 형사는 하지 말아야지. 잠복하다가 지루해 죽을 거야.”

상엽은 몸을 움직이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전화기가 울렸다.

“응?”

박광신에게 받은 핸드폰이었다.

“광신이 형이 아닌데?”

지금까지 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 사람은 박광신이 유일했다.

브로커 오상식과는 상엽의 본래 핸드폰으로 통화를 했기 때문이다.

상엽은 일단 전화를 받고 상대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일본 블랙 길드 데스문입니다.

“데스문?”

일본 최고의 블랙 길드.

그들의 이름이 데스문이었다.

“만화 길드?”

이름이 만화 같아서 상엽은 그렇게 외우고 있었다.

-네?

“아, 죄송해요. 속으로 말한다는 게 입 밖으로 나와 버렸네요.”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왜요?”

-사쿠라와 전쟁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결정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전화번호는 광신이 형한테 받았어요?”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제가 먼저 요청했습니다.

상대는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했다. 상엽은 그의 말을 잠시 생각하다가 간단히 대답했다.

“아직 약속 시간이 남았어요. 필요하면 연락드릴게요.”

-기다리겠습니다.

상대는 정중하게 상엽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일본 최고 길드라면 상엽을 무시할 수도 있지만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광신이 형이 뭔가 하고 있나?’

같은 블랙 길드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백섬이 사쿠라와 연합을 하려 했듯이 흑점이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뭐 생각이 있겠지. 그냥 잡아먹힐 형은 아니니까.’

상엽은 그렇게 생각하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런데 상대는 마지막 인사를 했음에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미야다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그를 따돌린 게 아닙니다.

상엽은 말을 멈췄고, 상대는 전화를 끊었다.

‘미야다? 아저씨처럼 생긴 일본인?’

상엽은 이미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따돌린 게 아니다? 특별한 스킬이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 말이 내내 찜찜함으로 남았다.

약속 시간 8시간 전.

미야다는 눈을 감고 있었다.

평범해 보이던 그의 뿔테 안경 위로 떠오른 붉은빛이 화려한 문양의 아지랑이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는 상엽이 잡혔다.

-팔란트의 흔적의 눈: 시야 공유

흔적을 남긴 상대의 시야를 볼 수 있게 된다.

유산 강화 7단계-24시간 내에 만났던 한 명의 시야를 볼 수 있게 된다.

사쿠라는 오랜 회의 끝에 상엽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제거하라.

이를 위해 세 명의 암살자가 도착했고, 미야다의 능력을 통해 상엽의 위치를 파악하는 중이었다.

‘근처에 있었군.’

미야다는 상엽이 후쿠시마 대교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했다.

“지도.”

시야를 공유하는 터라 정확한 위치를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도 익숙한 지역이라 20분이면 충분했다.

미야다의 이런 작업은 다섯 명의 사내가 지켜보고 있었다.

본부가 있는 후쿠오카에서 도착한 세 명의 암살자는 라이벌인 블랙 길드에서도 가장 두려워하는 자들이었다.

세 명이 팀으로 움직이는 암살팀으로 지금까지 일곱 번의 암살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그 외에 상엽을 처음 만난 타나카와 치료를 담당하는 50대 중반 노인이 함께 있었다.

‘그냥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걸까?’

타나카는 마음이 복잡했다.

‘그가 아무리 강해도 이들을 막을 수는 없다.’

세 명의 암살자.

이들은 사쿠라 길드의 핵심 전력이다. 그만큼 공을 들여서 성장시켰고, 지금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내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인데.’

그의 심장이 가시 돋친 사슬에 묶인 것처럼 답답하고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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