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신의 소통
1단계-말의 의미를 알아듣게 된다.
2단계-의미를 전달할 수 있게 된다.
3단계-모든 언어를 정확히 듣게 된다.
4단계-모든 언어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게 된다.
5단계-통용되는 대부분의 글자들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상엽이 오래전에 봐 두었던 스킬이었다.
1단계 1만 코인으로 5단계가 최고였다.
‘2단계면 3만 코인.’
상엽은 유물을 흡수한 코인으로 2단계를 구입했다.
‘4단계까지는 하고 싶었는데.’
코인이 부족해서 2단계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상엽은 만약을 위해서 두 가지 스킬을 추가로 구입했다.
-헤리오스의 바다의 숨결: 수중 호흡
1단계-물속에서 5분 동안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2단계-물속에서 10분 동안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헤리오스의 바다의 자유: 수영
1단계-수영을 할 수 있게 된다.
2단계-수영 속도가 빨라진다.
3단계-바다에서 체온이 느리게 변한다.
수중 호흡 2단계와 수영 3단계는 각각 시작이 200코인, 300코인.
상엽은 신의 소통을 사고 남은 코인을 모두 소진해서 두 가지 스킬을 구입했다.
-겁쟁이.
레나에게 이런 비난을 들었지만 상엽은 무시하고 이를 구입했다.
“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아!”
그는 배를 타기 위해 기차를 타고 부산 항구로 가는 중이었다.
“코인만 많으면 모든 게 가능하겠구나.”
전투에 관련되지 않은 스킬을 구입한 것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우와, 들려.’
상엽은 인터넷을 통해 번역이 없는 외국 영화를 보며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예전에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던 말들이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자막 없이도 영화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비꼬는 말이나 유머에 대해서는 명확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직설적인 의미만 이해하는 것이다.
“5단계까지 사고 싶다.”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서 상엽은 책을 읽는 중년을 보았다. 중년은 한국 사람이었지만 영어로 된 책을 읽고 있었다.
신의 소통 5단계면 상엽도 중년처럼 책을 읽는 게 가능하다.
영어뿐만 아니라 현대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를 마스터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고대 언어 정도였다.
‘기회가 되면 전부 마스터하자. 일단 지금은 만족해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기차는 부산역에 도착했고 상엽은 계획대로 항구로 이동했다.
“형, 고마워.”
-조심하세요, 상엽 동생.
그의 이동 수단은 전부 박광신이 준비했다.
-공식적인 이동은 발각될 수 있으니 은밀히 준비했습니다.
이미 해안 경비대에도 연락을 해 놓아서 상엽의 이동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는 40대 중반의 선장을 만나 어선에 올랐다.
“첫 해외여행이 밀항이라니.”
상엽을 실은 배가 일본을 향했다.
* * *
일본 규슈 지방.
일본을 이루는 4개의 대형 섬 중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오이타, 구마모토, 미야자키, 가고시마. 이렇게 7개 현을 포함하고 있었다.
가장 번화한 도시는 후쿠오카로 화이트 길드 사쿠라의 근거지가 이곳에 있었다.
사쿠라는 규슈 지방에 있는 갓코인 유저들의 단합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이곳 출신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상엽은 그 지역 한가운데에 홀로 있는 것이다.
오도독.
그는 달빛 캔디를 씹으며 도로를 걸었다.
항구는 새벽이 되면서 시끌벅적해졌지만 도로는 아직 한산했다.
“바닷가 지역인데 용케도 살아남았네.”
일본이 4순위로 분류되었다는 것은 변종에 대한 피해가 한국보다 크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후쿠요시는 의외로 안전했다.
상엽이 도로로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도로에 변종을 방어하는 군대는 보이지 않았다.
상엽은 자료에서 보았던 일본의 상태를 떠올렸다.
규슈는 남쪽에 비해 북쪽의 피해가 적었다.
변종의 대대적인 습격이 있을 당시, 자위대가 북쪽에 포진해서 남쪽으로 진격했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규슈는 대부분 이런 상태였다.
“후쿠시마 섬이라고 했지?”
그는 일본에 도착할 때부터 첫 번째로 갈 곳을 정해 놓았다.
“택시!”
상엽은 자신 있게 택시를 잡았다.
* * *
후쿠시마 섬.
이 지역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지역 후쿠오카가 아닌 규슈에 있는 섬으로 한국의 거제도처럼 육지와 가까워 다리로 연결이 된 곳이었다.
섬이라고 해도 워낙 넓은 지역이라 오랫동안 부자들의 도시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변종에게 완전히 점령을 당한 출입 통제 지역이었다.
다리를 건널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사쿠라 길드원뿐이었고, 다리 끝에는 필요 이상으로 거대한 철문이 세워져 있었다.
사쿠라 길드의 전용 사냥터.
규슈에서 사쿠라 길드는 그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늦은 밤.
상엽은 후쿠시마 섬으로 이어진 다리 밑을 지나고 있었다.
‘빨라!’
그는 수영으로 바다를 건너는 중이었다.
다리 밑으로 뻗은 기둥들을 기점으로 삼으며 감시의 눈을 피하고 체력도 회복했다.
‘화이트 녀석들은 분명한 약점이 있지.’
블랙과 화이트.
상엽은 당연히 두 유저의 특징을 알고 있었다.
‘밤에 약하다는 거야.’
블랙 유저들은 강화 수치가 높아지면 자연적으로 어둠에 대한 면역이 생겨 제약이 덜해진다. 반면 화이트 유저는 따로 스킬을 구입하지 않은 이상, 일반인처럼 시야에 제약을 받았다.
다만 감각과 경험으로 극복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시야가 다르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꼭 해 보고 싶었어.”
상엽은 자신이 꿈꾸던 상황을 떠올렸다.
“오함마 암살자.”
그는 어둠이 지배한 바다를 계속해서 가로질렀다.
* * *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었다.
20대 후반의 청년 타나카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준비 운동에 들어갔다.
벌써 1년째 반복되는 생활.
다른 이들은 강해진 힘을 과시하거나 이를 이용해 재산을 모으기도 했지만, 타나카는 아니었다.
‘아직 멀었어.’
그는 1년 전에 갓코인을 알았고, 그때부터 오로지 사냥에만 집중했다.
-사쿠라의 미래.
겨우 1년 만에 그는 사쿠라의 중견으로 성장했다. 특유의 성실함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조금 일찍 나가 볼까?’
보통 그는 해가 뜨고 나면 해가 질 때까지 사냥에 나섰다.
‘조금 일찍 시작하자.’
그는 평소보다 일찍 철문을 넘었다.
최근에 스킬 하나를 완성하면서 사냥에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하루에 수집하는 코인의 양도 대폭 증가했다.
“후우.”
타나카는 다리 끝에 있는 거대한 철벽 앞에 섰다.
사쿠라 길드원들은 이를 경계의 벽이라 불렀다. 경계의 벽을 넘어서면 전혀 다른 세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쿠라 길드는 6개월 전부터 이곳 공략을 시작했지만, 경계의 벽 근처를 처리하는 데 그쳤다.
후쿠시마 섬은 그만큼 난이도가 높은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코인 수집 효율은 뛰어나서 많은 길드원들이 이용했다.
홀로 경계의 벽을 넘은 타나카는 바다를 끼고 외곽을 돌았다. 여차하면 바다로 뛰어들 수 있었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어제 사냥하던 곳부터.”
후쿠시마 섬은 특이한 이력이 있다.
북쪽에서 시작된 일본 자위대 토벌에 강력한 변종들이 후쿠시마로 후퇴한 것이다.
그래서 후쿠시마는 도심에 가까운 것치고는 강한 변종들이 많았다.
그중 가장 많은 개체 수를 차지하는 것은 원숭이다.
무리 생활을 하는 원숭이들은 집단 공격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도구까지 사용하는 터라 까다로운 상대였다.
대신 기본 50코인부터 500코인까지 다양하게 있어서 코인 습득 효율은 아주 좋은 편이다.
‘오늘부터는 하루 천 코인을 목표로 하자.’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하루 800코인을 목표로 했고 거의 근사치를 이뤘다.
“6개월만 더 하면 고향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그가 이처럼 독하게 사냥에 매달리는 이유는 변종에 점령당한 고향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는 변종들이 습격할 당시, 마을 사람들을 지키며 북쪽으로 올라왔다.
천신만고 끝에 변종들에게서 벗어났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피난민들에게 관대할 만큼 경제 사정이 좋은 곳은 없었다.
결국 그들은 변종에게서 살아남았지만, 하루하루를 끼니 걱정하며 보내야 했었다.
“돌아가야 돼.”
타나카가 사쿠라 길드에게 받는 돈으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않는다.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피난민 중에는 부모님도 있었다.
“자, 힘내서 가자.”
그는 30명 마을 주민의 복귀를 위해 화이트 소드를 꺼내 들었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후쿠시마 섬은 외곽의 해변 도로 안쪽으로 건물들이 형성된 형태다.
건물들은 원숭이들과 고양이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해변 도로를 벗어나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타나카는 변종들의 함정에 빠졌다.
원숭이들은 단순한 변종이 아니다.
인간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한 학습 능력과 전략을 세울 지능이 있었다.
타나카가 해변 도로를 막 벗어났을 때, 원숭이 다섯 마리가 그의 뒤에 나타났다.
‘이런!’
그리고 건물의 유리창에서 일제히 붉은 눈들이 나타났다.
그 기괴한 모습에서 타나카는 위기를 느꼈다.
‘지금 나가야 돼!’
그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며 몸을 돌렸다.
후방을 뚫고 바다로 벗어나지 않으면 곧바로 포위될 것을 알았다.
평소처럼 해가 뜨고 왔다면 알아차렸을 함정이지만 오늘은 시간이 너무 빨랐다.
끼아아!
주변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가 달려가는 방향으로 원숭이뿐만 아니라 고양이까지 나타났다.
원숭이가 고양이를 지배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역시 타나카에겐 익숙한 장면이 아니었다.
‘너무 많다!’
그는 피해를 감안하며 변종들을 뛰어넘으려 했다.
쿵!
그가 힘차게 땅을 밟는 순간, 갑자기 사방에서 수십 개의 칼이 날아왔다.
단검부터 식칼, 송곳까지 끝이 뾰족한 물건들이었다.
변종 원숭이들의 힘이 더해진 무기들은 정확히 타나카의 몸을 향해 날아왔다.
‘당했다.’
공중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급소를 보호하는 것뿐이었다.
쿵!
그는 변종들의 벽을 넘었지만 곧장 바다로 뛰어들 수가 없었다.
“큭!”
그의 몸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몸에 열 개가 넘는 무기가 꽂혀 있었다.
“혼자는 안 죽는다!”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며 전투를 시작했다.
하지만 움직임이 평소 같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힘보다 고통이 먼저 느껴졌기 때문이다.
‘끝…….’
그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를 인지하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졌다.
그 순간 원숭이 한 마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칼을 세우며 그의 목을 향해 뛰었다.
그때였다.
쾅!
눈앞에서 펼쳐진 폭발이 타나카의 정신을 깨웠다.
“부담 갖지 마. 구해 주는 게 취미니까.”
타나카 앞에 수염을 잔뜩 기른 산적 같은 사내가 나타났다.
“살고 싶으면 뒤로 빠져.”
쾅! 쾅! 쾅!
마치 전쟁터와 같은 폭음이 이어졌다.
‘어떻게…….’
타나카는 홀로 삼십 마리에 달하는 원숭이들을 도륙하는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원숭이들이 무슨 무기를 쓰는지, 어떤 진형으로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빠르게 다가가서 정면에 있는 것은 모두 부쉈다.
그러다 포위망이 좁혀지면 투명한 방패를 깨트려 칼날을 사방으로 뿌렸다.
여기에 원숭이들이 주춤하면 어김없이 해머 끝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원숭이 삼십 마리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건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저렇게 강할 수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원숭이들은 후퇴를 시작했다.
“뭐야? 변종이 도망을 가?”
타나카를 구해 준 사내는 상엽이었다.
상엽은 원숭이들을 굳이 따라가지 않았다. 사냥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버릇이 무섭다니까.”
상엽은 원숭이보다 먼저 타나카를 발견했다.
일단 실력을 알고 싶어서 지켜보다가 결국 구출하게 된 것이다. 사냥 전에 마을 사람과 부모님을 언급하며 뭔가 다짐을 하는 모습이 그를 움직였다.
“이봐, 멍하니 서 있지 말고 돌아가서 치료라도 하지?”
상엽은 그냥 평소처럼 한국말을 했다.
그런데 완벽하진 않지만 타나카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신의 소통이 적용되는 방식이었다. 의지가 전달되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돌아가서 치료해.
타나카에게 상엽의 말은 이렇게만 들렸다.
말투나 감정은 전달되지 않고 담담하게 필요한 말만 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멋진 사내다.’
타나카는 멍하니 상엽을 보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