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43화 (43/300)

# 43

변종과 인간.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상엽은 다수와의 싸움에 익숙했다. 그렇지만 인간 집단과의 싸움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세 명이 최고였지만 이처럼 열다섯 명을 상대한 적은 없었다.

‘쉬워.’

상엽은 그렇게 느꼈다.

두려움에 대한 반응 때문이었다.

변종도 두려움을 느끼지만 인간처럼 모든 행동을 지배하진 않는다.

다섯 명을 처리하자 적극적으로 나서는 자가 없었다.

상엽의 압도적인 힘에 몸을 사리기 시작했고, 포위망은 엉성해졌다. 상엽을 죽이기보다 본인이 죽지 않는 것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당연한 본능이었다.

그리고 상엽은 이런 싸움에 익숙했지만, 상대는 아니었다.

-위험한 동물이 있으면 피해라.

상엽은 그들에게 맹수로 보였다.

-이길 수 없다.

그들의 머릿속엔 이 말이 가득했다. 자연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주하는 자가 말했다.

상엽은 이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쾅!

가장 먼저 달려들었던 덩치가 상엽의 해머에 가슴이 터져 버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열다섯 명의 길드원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알맹이는 어디가고 이런 잔챙이만 남겨 둔 거야?”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처리한 열다섯 명 중에 가장 약한 자가 2단계 중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처리한 덩치는 3단계에 막 들어선 자였다.

결코 약한 자가 아니었다.

“코인도 별로 없네.”

상엽은 바닥에 떨어진 전리품들을 챙기며 투덜거렸다.

전투를 준비했던 그들은 모든 코인을 소모한 상태에서 상엽을 맞이했다.

큰 싸움을 앞둔 자들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로 인해 열다섯 명을 죽이고 얻은 코인은 겨우 3천 코인이었다.

그래도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산과 유물은 꽤 되는데.”

유물 조각 11개에 유산 조각 18개였다.

상엽은 이를 챙기고 6층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광신이 형, 다섯 명이 없어. 좀 알아봐 줄래?”

-나머지는 어떻게 됐습니까?

“전부 처리했어.”

박광신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상엽은 그와 전화를 끊고 다른 번호를 눌렀다.

“상식이 형, 물건이 좀 더 생겼어요. 서울에서 봐요.”

그 말을 끝냈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공사 끝, 퇴근.”

그는 들어올 때와 같은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 *

사라진 다섯 명은 흑점이 추적하기로 했다.

그동안 상엽은 오상식을 만났다.

“어떻게 하루 만에…….”

전화를 받은 시점은 24시간이 되기도 전이었다.

“일단 유물 감정부터 해 주세요. 웬만하면 흡수할 거니까 감안해서 구분해 주세요.”

상엽은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오상식을 완전히 믿기로 했다.

오상식은 냉정하게 분석을 시작했고 유물 중에 세 개를 골랐다.

“코인 대비 금액이 높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현재 상엽 씨에게 도움이 될 유물은 아닙니다.”

오상식은 상엽이 알아들을 수 있게 유물 조각들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세 가지 조각의 코인 가격을 합치면 3500코인입니다. 코인으로 판매했을 경우, 3억 5천만 원의 값어치가 있습니다.”

“1코인당 5만 원 아니었나요?”

“그건 첫 거래를 하는 초보 갓코인 유저의 경우입니다. 제가 반을 먹으니 코인당 5만 원이었습니다. 현재 시세는 코인당 10만 원이 조금 넘습니다.”

코인은 주식처럼 시세가 변동되고 있었다. 다만 거래소가 있는 건 아니어서 시시각각 변하진 않았다.

“어쨌든 이 세 개의 유물을 팔면 최소 10억은 받을 수 있습니다. 협상할 곳이 꽤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제가 1억을 가지고 상엽 씨가 9억을 가지게 됩니다.”

“10퍼센트밖에 안 가져가요?”

“금액이 크니 괜찮습니다. 앞으로 직접 자산 관리까지 하면 제가 먹는 돈도 커질 테니까요.”

실제로 유산 조각까지 판매하면 오상식이 먹는 돈은 결코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오상식은 정상엽을 독점하고 싶어 했다.

‘어떤 고객을 독점하느냐가 브로커의 힘이다.’

오상식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포기하진 않았다.

“유산 조각 중에 이건 상엽 씨에게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상식은 유산 조각 중의 두 개를 상엽에게 내밀었다.

“이리스의 장갑. 힘을 대폭 증가시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스킬도 있을 걸로 예상되지만 확실하진 않습니다.”

상엽은 힘이라는 말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사마드의 셔츠. 가벼운 셔츠로 많은 유저들이 탐내는 유물입니다. 웬만한 갑옷보다 내구력이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수집 난이도는 높지만 구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은 유물입니다.”

“가격도 비싸겠네요?”

“이리스의 장갑은 조각 하나당 3억, 사마드의 셔츠는 20억 이상입니다. 그런데 이건 일반적인 예상일 뿐, 사마드의 셔츠는 100억 이상도 가능합니다.”

“100억요?”

“사마드의 셔츠는 6조각 유산입니다. 누군가 4조각 이상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아…….”

당연히 완성하기 위해서 큰돈을 지불할 것이다.

“그래서 유산과 유물 모두 시간을 들여서 판매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유산 거래를 하는 유저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건 어째서죠?”

“갓코인이 등장한 지 이제 4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본인의 욕심이 우선이었지만, 앞으로는 남들이 강해지는 것을 꺼려 하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 유산을 완성하면 그만큼 강해진다.

이는 당연한 원리다.

“이미 대형 길드와 최고 수준 유저들은 현금 판매를 중단하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조각끼리의 교환만 하는 거지요.”

“상대가 강해지는 만큼 나도 강해지는 거래만 한다는 거죠?”

“정확합니다. 앞으로는 더 그렇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걸 이용하면 더 큰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현금을 받고 팔려는 사람이 없으니 현금의 가치는 떨어지고, 당연히 가격이 올라갈 것입니다.”

오상식은 다양한 방면으로 분석을 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일단 두 개는 제가 보관할게요. 나머지는 처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데요?”

“무조건 현금을 원하십니까? 상엽 씨께서 맡긴 조각과 유산이 꽤 되는 터라, 상황에 따라 다른 유물과 유산으로 교환할 수도 있습니다. 눈치를 봐야겠지만 타이밍에 따라 완성할 수도 있지요.”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단번에 사들인다는 뜻이었다.

이는 브로커들이 가장 흔히 쓰는 방법이지만 그만큼 견제가 심하고 어렵기도 했다.

하나만 없어도 완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냥 맡길게요. 전부 알아서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활동비는 한 번 더 입금하겠습니다.”

오상식은 상엽이 원하는 걸 알고 있었다.

‘너무 편한데?’

상엽이 오상식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었다.

‘자산 관리사.’

이젠 더 이상 브로커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 * *

“참 일본스러운 이름이네.”

사쿠라.

백섬이 접촉하던 일본 길드의 이름이었다. 상엽은 이 이름을 박광신에게 듣고 있었다.

“백섬은 이제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김판종은 사쿠라의 일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상엽이 백섬을 습격한 지 하루 만에 사라진 다섯 명의 행방이 밝혀졌다.

이는 한 가지 사건에 의해서였다.

해안 경비정이 수상한 선박을 조사하다가 습격을 당한 것이다.

그 범인이 김판종이었고 일본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백섬의 잔당이 사쿠라에 합류했고, 아마도 한국을 계속 노릴 것입니다.”

“음.”

상엽은 눈을 감았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백섬이라는 길드는 사라졌지만 김판종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내가 죽인 녀석들은 사쿠라에서 어느 정도 위치였어?”

“전투 능력으로 따지면 꽤 상위권으로 판단됩니다.”

상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며 복잡한 생각을 정리했다.

“날 그냥 두진 않겠네.”

박광신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광신이 형.”

“네, 상엽 씨.”

“에이, 형. 우리 사이에 무슨 존댓말이야?”

상엽이 박광신의 팔뚝을 가볍게 쳤다. 이에 박광신이 웃었다.

“알겠습니다, 상엽 동생. 이렇게 부르지요.”

“뭐 마음대로 해. 언제든 편해지면 더 쉽게 불러도 돼.”

“명심하지요, 상엽 동생.”

상엽은 웃으며 자신이 하려던 말을 했다.

“사쿠라에 대한 정보 좀 줄 수 있어?”

“알겠습니다. 가지고 있는 정보는 모두 드리지요.”

“아, 그리고 준장 아저씨가 고맙다고 하던데 그건 무슨 말이야?”

“대한민국 정부와 협력 관계를 체결할 생각입니다. 본래 백섬이 하던 것이지요.”

“잘됐네.”

“모두 상엽 동생 덕분입니다. 그리고 김대진 준장을 책임자로 임명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주도권을 우리가 쥐었으니 무조건 들어줄 것입니다.”

결국 상엽이 김대진의 목표를 이뤄 준 셈이었다.

‘나쁘지 않아.’

박광신은 상엽이 굳이 요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런 문제를 처리하고 있었다.

“내 주위에는 똑똑한 사람이 많아.”

“저도 그중 한 명이겠지요?”

“형이 제일 똑똑해. 그 상상력이 나는 좋아.”

“아직 제 상상력의 반도 못 보셨습니다.”

“그래?”

“3층으로 가 보시지요. 전 그동안 사쿠라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있겠습니다.”

상엽은 박광신의 말대로 건물 3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작은 무대가 있었고, 서른 명의 각 나라 미녀들이 리허설을 펼치고 있었다.

‘미인 대회!’

관객석이 없는 무대 앞에는 단 하나의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사 위원께서 오셨습니다. 대회를 시작합니다.”

상엽은 미인 대회의 유일한 관객이자 심사 위원이었다. 그리고 서른 명의 미녀는 노골적으로 유혹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광신이 형, 사랑해.”

남자에게 처음 하는 고백이었다.

* * *

“책 빨리 읽는 스킬은 없나?”

상엽은 책상에 앉아 교과서 두께의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사쿠라 자식들. 왜 한국에 손을 뻗어서 이 고생을 시켜?”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사쿠라 길드의 정보였다.

-사쿠라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습니다. 일단 전부 드리겠습니다.

“이게 별로 없는 거야?”

상엽은 툴툴거리면서도 정보를 꼼꼼히 살폈다.

“100명이라.”

정확히는 107명이었다. 이것도 알려진 숫자고 지금도 늘어나는 추세라는 정보였다.

“그런데도 일본 화이트 길드 2위라니.”

일본과 한국의 갓코인 세력 차이는 꽤 컸다. 상엽은 여기서 또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나라별 갓코인 유저 능력 분류.

1순위부터 5순위까지 분류가 나뉘어 있었다.

이는 대략적으로 어느 나라 유저들이 강한지를 분류하는 지표였다.

물론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었다.

“한국은 5순위네.”

한국은 가장 안전한 만큼 갓코인 유저들은 제일 약하게 분류되었다.

“일본은 4순위.”

아이러니하게도 변종들에게 피해를 많이 입은 지역일수록 순위가 높았다.

변종과의 접촉이 많은 만큼 유저들도 많이 생겼고, 살아남은 유저들은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1순위는 미국, 호주, 멕시코, 인도네시아, 콩고.

2순위는 러시아, 중국, 브라질, 나이지리아, 독일.

이렇게 가장 강한 유저들이 있는 나라들이었고, 대부분의 나라가 3순위와 4순위였다.

5순위 나라는 겨우 15개뿐이었고 이는 안전한 15개 나라와 거의 일치했다.

“차이가 많이 나는데.”

겨우 4순위지만 5순위와의 차이는 컸다.

“음.”

상엽은 일단 흑점이 제공한 정보를 모두 읽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고민에 빠졌다.

“김판종이 도망간 이유를 알겠어.”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우리나라는 전부 잡아먹히겠군.”

아직은 갓코인 유저가 다른 나라로 건너와서 큰 말썽을 피우는 경우는 없었다.

그럴 만한 힘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힘의 차이가 극명해지면 분명히 그런 문제가 생길 것이다.

-갓코인 유저의 힘이 공권력을 넘어서는 순간이 온다.

이것이 갓코인을 아는 자들의 공통된 예상이었다.

“결국 나하고는 적대적이란 거고 말이야.”

더 큰 단체가 적이 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상엽의 편이 아니었다.

개인이 성장하는 것과 단체가 성장하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내가 먼저 가야 하나?”

상엽은 사쿠라의 정보를 달라고 할 때부터 이런 예상을 했다.

그럼에도 공을 들여 정보를 체크한 것은 시간을 미룰 수 있으면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이라…….”

일본이라는 단어가 상엽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때, 깊은 생각을 깨우는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오상식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네, 형.”

-상엽 씨, 전에 말씀하신 물품 중에 조각 하나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요?”

상엽은 합격 소식을 들은 취업 준비생처럼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가버문트의 신발. 이 유산이 의뢰 목록에 나왔던 적이 있어서 알아봤는데, 주인이 소멸돼서 다른 이에게 넘어간 것 같습니다.

오상식은 기본 설명을 끝내고 결론을 말했다.

-정확한 위치는 아직 파악 중입니다. 여기에 자산 소모가 있을 거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어떻게든 알아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략적인 위치는 알아냈나요?”

-네. 일본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요?”

상엽은 많은 것이 일본으로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파이어스의 망치, 김판종.’

두 가지 단어는 결국 한 가지 의미로 이어졌다.

“결국 가야 하는 건가?”

결정을 내린 상엽은 곧바로 계획을 세우려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이 떠올랐다.

“아씨. 일본어 못하는데.”

아마도 긴 여행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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