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부길드장 천석강.
3단계 중반 유저로 오직 전투에 몰두하던 뛰어난 전사.
그런 천석강이 소멸되었다는 것은 백섬에 큰 충격이었다. 그런데 충격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명선, 한두칠.
천석강의 죽음이 채 정리도 되기 전에, 백섬의 간부 두 명이 추가로 소멸했다.
둘 모두 전투에 특화된 자들이었다.
결국 백섬은 하룻밤이 지나는 동안, 전투 서열 2위부터 4위까지를 잃게 되었다.
이는 경쟁 구도에 있는 길드로서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정상엽뿐만 아니라 흑점의 습격에도 대비하라.
당장 흑점과의 균형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저씨, 소식 들었죠?”
이른 아침.
한두칠을 처리한 상엽은 서울 터미널 근처에서 전화를 걸었다.
-혼자서 전쟁이라도 하려는 건가?
전화를 받는 상대는 김대진이었다.
국방부는 지난밤에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긴급회의를 진행 중이었다.
“미리 준비해 두라고 전화한 거예요. 아직 위험하니까 너무 드러내진 마시고요. 뭐, 알아서 잘하실 거라 생각해요.”
상엽이 말하지 않아도 김대진은 모든 상황에 대비할 만큼 철저한 인물이었다.
“전화번호 하나 보낼게요. 필요하면 쓰세요.”
상엽은 누구 번호인지 말하지 않았고, 김대진도 묻지 않았다.
“좋은 형이에요.”
상엽은 그저 이렇게만 말했다.
전화를 끊은 상엽은 다시 스마트폰의 정보에 집중했다.
“좋은 형이긴 한데 좀 치사하기도 하네.”
스마트폰에 업데이트되는 정보는 마치 다음 목표를 알려 주는 듯했다.
지금까지 그가 세 명을 처리한 것도 이런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회의에 참석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백섬은 긴급회의를 열었고 모든 길드원이 한자리에 모이고 있었다.
흑점이 집중적으로 정보를 올리는 이는 제주도에서 막 도착한 인물이었다.
-김포 공항에서 대기 중이던 차량 탑승.
함진탁.
그는 특별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대외적인 정치를 담당하는 인물로 제주도에 내려간 것은 성산포를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성산포는 변종에게 점령을 당한 지역이었지만 중심부와 멀어서 버려진 곳이었다.
이곳을 백섬이 소탕하고 개인적으로 쓰기 위해 정부와 협상을 벌였고 이제 막 허가를 받아 냈다.
그가 성산포를 노리는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일본 길드와의 직접 교류.
오래전부터 일본 화이트 길드와 교류를 했던 그는 전초 기지를 성산포에 만들려고 했다.
이를 위한 사전 작업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소탕이 남은 상황에서 정상엽과의 마찰이 생긴 것이다.
‘잡기 딱 좋네.’
흑점의 정보망은 가장 훌륭한 목표를 찾아냈다.
상엽이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 * *
한강 강변 공원에 우뚝 선 박광신의 건물 7층에서는 심각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네 예상대로군.”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드장님.”
“둘이 있을 때는 형님이라고 해.”
40대 초반의 중년 남성은 박광신의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15살의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형님 동생으로 지내던 사이였다.
그들은 동시에 갓코인을 알았고, 함께 성장하면서 박광신은 형님 대신 길드장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이제 작은 집단이 아니지 않습니까? 호칭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차피 네가 키운 집단이야. 난 네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길드장님.”
“언제든 말해. 네가 원하면 당장 길드장 자리를 넘겨줄 테니.”
박광신은 그저 웃기만 했다.
흑점의 길드장 강청.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강청은 강해지는 것에 욕심은 있으나 집단이나 돈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물론 여자를 좋아하고 술을 즐기지만 지나친 수준은 아니었다.
박광신이 길드의 일을 도맡아서 처리했고 강청은 그저 상징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그의 전투 능력은 결코 허상이 아니었다.
백섬의 길드장과 호각을 이루는 흑점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흑점의 중심을 잡기에는 충분했다.
“정상엽이라는 자를 그렇게 놔둬도 될까?”
“뭐가 마음에 걸리십니까?”
“지나치게 강해질 수도 있어.”
정상엽은 이미 수준 높은 사냥꾼 3명을 처리했다.
한국 최고 수준의 능력자들인 만큼 코인과 유물, 유산 조각도 꽤 획득했을 것이다.
“함진탁까지 그의 손에 죽으면 따라갈 수 없게 될지도 몰라. 그가 무엇을 가졌는지 잊었어?”
함진탁은 특별한 유물 조각을 가지고 있었다.
“탈란트의 신전 조각을 보관하는 자입니다. 백섬 길드의 재산이지요.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길드 소유의 중요한 유물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변에는 많은 호위가 따라붙었다.
“조각 하나당 25만 코인. 그걸 3개나 가지고 있지.”
이는 백섬 외에 흑점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탈란트의 신전 조각은 총 7조각으로 길드장 김판종이 가장 집착하는 유물이었고, 지금도 모든 힘을 동원해서 모으는 중이다.
“어차피 그냥 둬도 우리 소유는 아닙니다. 누가 가져가도 백섬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그자의 칼이 우리를 향하는 일은 없다는 건가?”
“그건 자신 있습니다. 오히려 친구에 가깝지요.”
강청은 박광신을 믿었다.
“정보는 얼마나 정확히 전달한 거지?”
“숨김없이 전했습니다.”
그 말을 하는 박광신은 웃고 있었다. 그가 계략을 꾸밀 때마다 짓는 표정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지금 함진탁을 호위하는 자들은 백섬이 아닙니다.”
“무슨 뜻이지?”
“일본의 화이트 길드입니다. 그들의 교류는 꽤 진행이 되었습니다.”
“음, 그래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백섬이 일본 길드와 정식으로 동맹이 되면 우리가 설 자리는 더욱 줄어듭니다. 그래서 정부도 백섬을 선택했지요.”
박광신은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었죠. 마지막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렇다고 전부를 걸 수도 없었습니다. 백섬을 친다 해도 피해가 크면 일본 길드에 먹힐 테니까요.”
“일본 길드가 한국에 들어온다는 말인가?”
“일본 길드가 백섬과 협력하는 진짜 이유는 한국 장악입니다.”
그 말에 강청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하지만 박광신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정상엽은 좋은 카드였습니다. 그는 강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강해진 만큼 많은 적을 만들겠지요. 지금 함진탁은 그 교차점입니다.”
강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엽이 함진탁을 습격하면 자연스레 일본 길드원을 건드리게 된다.
강해지는 이득보다 훨씬 큰 적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강해지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오히려 도와주기도 했지요.”
“이해가 되는군. 그를 어디까지 밀어줄 생각이지?”
“일단 이번 결과를 봐야지요. 그가 함진탁을 잡는다면 일본 길드의 계획에도 큰 차질이 생길 것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요.”
“그가 질 수도 있다는 건가?”
강청의 질문에 박광신이 웃으며 대답했다.
“호위가 만만치 않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흥미로운 싸움이 되겠군.”
“맥주에 치킨, 어떻습니까?”
그 말에 강청도 웃고 말았다.
* * *
쾅!
‘뭐야?’
상엽은 예상치 못한 일을 겪고 있었다.
상대의 몸이 크게 흔들리며 100미터를 밀려났다. 그런데 양팔을 교차하며 밀려난 그는 쓰러지지 않고 양발로 서 있었다.
공격을 버텨 낸 것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상엽이 한 명을 공격하는 순간, 또 다른 한 명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어느새 등 뒤에서 나타나 손을 뻗었다.
끼릿!
기괴한 쇳소리가 나며 상엽의 뒷덜미가 뜨거워졌다.
그나마 고스트 실드가 발동하고 유령 추종자가 대신 몸으로 막으면서 작은 상처에 그쳤다.
아오나의 신전 조각이 두 개가 되면서 생긴 변화였다. 유령 추종자가 잠깐이지만 물리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골치 아프네.’
상대는 맹수의 발톱처럼 칼날이 달린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츳!
한발 늦게 칼날을 피해 고개를 숙인 상엽은 곧장 앞으로 튀어 나갔다.
‘팀이다.’
그가 상대하는 두 명은 마치 준비나 한 것처럼 자신의 역할대로 움직였다.
방어에 특화된 자가 앞을 막고, 이를 타격하는 순간 다른 한 명이 암습을 노린 것이다.
‘한번 해봐.’
그는 본능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깨달았다.
‘비틀거리는 놈부터.’
그는 등 뒤에서 다가오는 위협을 무시했다. 그리고 처음 공격을 막은 사내를 향해 달렸다.
그의 움직임은 두 명의 예상을 깨는 것이었다.
누구도 지금까지 방어에 특화된 자를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
모든 이들이 당장 느껴지는 위협을 상대했고, 그것이 죽음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상엽은 오히려 방패를 깨트리기로 했다.
“감히 버텨?”
쾅!
충격으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던 사내에게 다시 해머가 닿았다.
모든 힘을 집중하자 사내의 몸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고 다시 100미터를 밀려났다.
그런데 조금 전과 달리 겨우 몸을 멈춘 그의 한쪽 무릎이 꺾였다.
쾅!
상엽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다시 앞으로 뛰었다.
이번에는 피가 튀었다. 그리고 100미터 이상 바닥을 구르며 튕겨져 나갔다.
“마지막이다.”
상엽이 마무리를 위해 몸을 날리는 순간, 뭔가가 그의 옆구리로 접근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다른 한 명이 따라붙은 것이다.
푹.
상엽은 그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 냈다.
‘처리할 수 있을 때 끝낸다.’
그의 옆구리에서 피가 튀었다. 상엽은 그 상태에서 쓰러진 사내의 몸에 해머를 꽂았다.
쾅!
결국 방패는 깨졌고 빛으로 산화해 상엽에게 흡수되었다. 그리고 상엽은 옆구리에서 피가 쏟아지는 그 상태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혼자네.”
상엽은 아공간에서 지혈제를 꺼내 대충 상처에 뿌렸다. 그 모습을 보았음에도 상대는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자신 없어?”
상엽의 말대로였다.
상대는 개인 전투로 상엽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돌아설 수는 없었다.
상엽의 돌진 속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는 미끼를 던졌다.
키가 작고 눈이 찢어진 사내는 갑자기 몸을 돌려 달아났다. 자연스레 상엽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사내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를 넘었다.
그 순간, 상엽은 자동차 안에 있는 자를 보았다.
‘함진탁.’
선택의 순간이었다.
“쳇.”
상엽의 몸이 자동차를 향해 돌진했다.
쾅!
결국 상엽은 처음 목표였던 함진탁을 처리하기로 했다. 사내가 던진 미끼가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사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었다.
상엽의 핸드폰으로 사내의 정보가 끝도 없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를 본 상엽은 빠르게 함진탁을 처리했다.
“자, 잠깐 내 말…….”
뛰어난 정치가.
이는 상엽에게 의미가 없었다.
말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상엽은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해머를 휘둘렀다.
전리품을 챙긴 상엽은 곧장 정보를 확인하며 도주한 사내를 쫓기 시작했다.
사내는 꽤 먼 거리를 이동했지만 흑점의 정보망을 벗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사내도 이를 인지했다.
결국 그는 도주를 멈추고 전화기를 들었다. 그는 전화기 너머의 사람을 향해 일본어를 시작했고 상엽이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뭐야? 일본인이야?”
상엽의 등장에 사내는 전화를 끊고 정면으로 마주 섰다.
그의 표정에서 결연한 의지가 보이자 상엽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남의 나라에 왔으면 조용히 지내다 가야지.”
상엽은 성큼성큼 상대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움직임에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상처만 남기고 도망가면 안 되지.”
상엽은 여전히 옆구리에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독까지 발려 있어서 해독제까지 먹어야 했다.
고스트 실드와 자체적인 피부 강화까지 전부 뚫어 내는 위력이지만 상엽의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결국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힘과 속도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쿵!
상엽의 주먹이 사내의 얼굴을 때렸다.
“나도 꽤 빠르거든.”
사내의 속도는 분명히 상엽을 앞섰지만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상엽의 힘은 상대를 완벽히 압도했다.
결국 그 차이는 결과로 나타났다.
팀플레이가 전문인 사내가 동료를 잃었을 때, 이미 그의 능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과 같았다.
쾅!
상엽의 해머가 그의 등을 때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사내는 빛으로 흩어졌고 유물과 유산 조각을 남긴 채 소멸되었다.
“아우 씨. 아퍼.”
그의 옆구리에서는 다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상처가 꽤 깊어서 다시 터져 버린 것이다.
그는 다시 정령의 정수를 뿌리고는 유물 보관함과 유산 보관함을 꺼냈다.
“전부 흡수.”
그는 아오나의 조각을 제외한 유물 조각을 전부 흡수했다. 어떤 유물 조각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전쟁 중인데 내일이 어딨어?”
그가 처리한 인물은 모두 6명.
유물 조각은 총 15개, 유산 조각은 9개였다.
그들이 가진 조각들은 꽤 가치가 높아서 하나를 흡수할 때마다 코인의 수치가 눈에 띄게 올라갔다.
그러다가 상엽은 함진탁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세 개의 조각을 흡수했다.
“이거 뭐야?”
상엽은 놀란 눈으로 수치를 다시 확인했다.
75만 코인.
조각 하나당 25만짜리 유물이었다. 그걸 세 개나 흡수한 것이다.
상대를 죽이면서 차지한 코인까지 합치자 상엽도 예상 못 한 수치가 되었다.
‘100만 코인.’
상엽의 보유 코인이 100만 코인을 넘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