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38화 (38/300)

# 38

파이어스의 망치.

상엽은 잠이 오질 않았다.

“아, 꼭 안고 자고 싶다.”

“그거 나한테 하는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상엽은 이미 레나를 꼭 안고 있었다.

“지금 내가 누구를 대신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데.”

칼날처럼 날카로운 말투에 상엽은 정신을 차렸다.

“신의 오함마.”

“무슨 소리야?”

“파이어스의 망치.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네.”

“내가 지금 그깟 망치에 밀린 거야?”

“그깟 망치라니. 나 지금 화낼 뻔했어.”

“그럼 망치나 찾으러 가지, 내 집에는 왜 온 거야?”

상엽은 한발 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나 갑자기 졸린데.”

“내 옆에 있을 때는 나한테 집중해.”

“알았어.”

“확실히 해.”

“얼마나 확실한지 보여 줄 수 있는데.”

“실망시키면 쫓겨날지도 모르는데, 도전할 거야?”

“도전이 내가 제일 잘하는 거야.”

상엽은 거칠게 레나의 입술을 훔쳤다.

* * *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

“나도 욕심이 있는 인간이었어.”

이른 아침에 무작정 레나의 오피스텔을 나선 상엽은 자신의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가져야겠어!”

지금까지 상엽은 어떤 물건에 대해 집착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아파한 적은 있지만, 물건에는 정을 주지 않았다.

전 재산을 털어 샀던 자동차를 포기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파이어스의 망치는 아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한정판에 환장하는구나.”

단 하나만 존재하기에 그 집착은 더욱 커졌다.

“왕수라고 했지…….”

상엽은 진지하게 중국으로 넘어갈 것을 고민했다.

-사고 치지 말아요.

송연지의 경고가 선명히 떠올랐다.

“무슨 정신 스킬이라도 있는 걸까? 이상하게 연지 말은 듣게 된단 말이야.”

결국 상엽은 그녀가 남긴 쪽지를 꺼냈다.

쪽지에는 세 가지 물품이 적혀 있었다.

가버문트의 신발 조각.

오로라의 정수 조각.

라루스의 신전 조각.

왕수라는 자가 찾고 있다는 유물과 유산이었다.

‘오로라의 정수 조각은 뭐지?’

가버문트의 신발은 유산이 분명했고, 라루스의 신전 조각은 유물이었다.

그런데 오로라의 정수는 마치 잡화처럼 느껴졌다.

‘잡화인데 조각이라…….’

이를 알아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레나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씨. 코인이 없어.”

스트라이크 10단계를 사느라 코인을 모두 소모해서 가장 저렴한 잡화를 살 돈조차 없었다.

“아, 이 느낌. 왠지 익숙하다.”

돈이 없어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 있었다. 상엽은 그때가 떠올랐다.

“없으면 벌어야지.”

다행히 상엽은 가난을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을 알고 있었다.

“몸을 쓰면 돈이 생기지.”

그는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사냥터를 떠올렸다.

‘설악산까지는 너무 머니까.’

상엽은 결정을 내리고 도롯가에 있는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택시를 타려던 그는 한 가지를 떠올렸다.

“아, 죄송해요.”

그는 택시를 그냥 보냈다. 그리고 자신의 청바지 뒷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꺼냈다.

‘천 원…….’

어제 택시를 타고 그에게 남은 전 재산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아씨.”

그는 코인만 없는 게 아니었다. 현실의 돈도 바닥이 나고 말았다.

“이거라도 팔까?”

상엽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투명하게 변해서 보이지 않던 반지가 떠올랐다.

이름 없는 신의 반지로 그의 민첩성을 올려 주는 기능이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전당포에 가는구나.”

다행히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

“에이, 몰라. 그냥 뛰자.”

상엽은 결정을 내리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방향을 잡고 실제로 뛰어갈 생각이었다.

“잠깐, 통장에 전화 요금 낼 돈은 남았던가?”

불안해진 그는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잔액을 조회했다.

“망할…….”

하마터면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부술 뻔했다.

“780원.”

상엽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으려 눈을 질끈 감았다.

* * *

“내가 없어서 그래!”

양평의 강가에서 상엽은 분노에 찬 해머를 휘둘렀다.

그때마다 들개가 핏물로 흩어지며 상엽의 코인으로 흡수됐다.

서울 근교 양평은 변종이 나타나기 전만 해도 전원주택지로 각광을 받던 곳이었다.

특히 강가는 부동산 투기꾼들의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 될 만큼 많은 수요가 있었다.

“내가! 코인도 없고! 돈도 없고! 가족도 없거든!”

쾅!

이빨을 드러내던 대형 들쥐가 상엽의 해머에 피떡이 되었다.

“다 덤벼! 덤비라고! 스트라이크!”

10단계 스트라이크가 펼쳐졌다.

30미터 밖에서 상황을 살피던 들고양이는 상엽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자 다급히 몸을 돌렸다.

쾅!

잠시 투명해졌던 상엽이 들고양이 앞에서 다시 나타났고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지나온 길에는 불길이 치솟았다.

스트라이크 10단계는 들고양이에게 과분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상엽은 아낌없이 힘을 쏟아 냈다.

“전부 튀어나와!”

그는 일부러 불길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었다. 변종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였다.

양평은 위험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변종 밀집도가 가장 낮은 지역에 속했다.

서울의 근교에다 가장 먼저 군사 작전이 펼쳐져서 변종들이 번식하는 시기를 막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것은 하이더들 때문이었다.

애완동물을 숨긴 사람들.

하이더들이 애완동물을 가장 많이 버리는 곳이 양평이었다.

때문에 매번 군사 작전을 펼쳐도 끝도 없이 변종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에이, 여기는 안 되겠어.”

불까지 질러서 유인을 했지만 만족할 만큼 변종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양평의 산들은 군사 작전을 통해 이미 민둥산이 되어 있었다.

상엽이 원하는 만큼 사냥할 곳이 없다는 뜻이었다.

“겨우 100코인이라니.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뛰어왔는데.”

두 시간을 사냥했지만 겨우 10마리의 변종을 잡았고 각각 10코인밖에 되지 않았다.

“강원도까지 뛰어가야 하나?”

상엽은 끝이 보이지 않는 강변도로를 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멀리 지평선을 보고 있던 상엽은 한참 동안 그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470블랙 코인.’

헌터 아이가 발동한 것이다.

상대는 엄청난 속도로 상엽을 향해 다가왔다.

상엽은 화이트 해머를 집어넣고 무기가 없는 상태에서 상대를 기다렸다.

잠시 후, 헌터 아이에 걸렸던 블랙 유저가 상엽 앞에 나타났다.

상대는 굳이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20대 중반의 호리호리한 체격의 사내는 키가 작지만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가진 자였다.

“안녕하세요, 정상엽 씨.”

이가 드러날 정도로 환한 웃음에 눈웃음까지 더해진 사내였다. 그런데 그의 밝은 인사에 상엽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2만 4천 그레이 코인. 난 가진 게 없는데 넌 부자네.”

“저, 저기. 정상엽 씨. 왜 이러세요? 같은 블랙 유저끼리.”

사내의 말에 상엽의 표정이 변했다.

“내가 왜 블랙 유저라고 생각해?”

“싸우는 영상 봤어요. 우린 동작만 봐도 알잖아요.”

상엽은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 맞춰 주기로 했다.

“쳇, 들켰네.”

그는 보란 듯이 블랙 해머를 꺼냈다. 그러자 사내의 표정이 다시 환해졌다.

“역시.”

“나한테 볼일 있어?”

“정상엽 씨를 도와주려고 왔어요.”

“날 도와줘?”

“백섬 녀석들이 오고 있거든요. 당연히 목표는 정상엽 씨고요.”

백섬과 흑점.

상엽도 들어 본 적은 있었다. 한국에 존재하는 두 개의 거대 길드였다.

하지만 상엽이 아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

“설마 백섬이 왜 오는지 몰라요?”

눈치가 빠른 사내였다.

“일단 여길 피하고 이야기해요.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널 어떻게 믿지?”

“그럼 하얀 벌레들을 믿을 거예요?”

하얀 벌레는 화이트 유저를 의미했다.

“널 믿을 이유도 없잖아.”

상엽의 의심에 사내는 명함을 내밀었다.

“그럼 서로 빨리 믿음을 만들기로 하죠.”

명함에는 그의 직책과 이름이 적혀 있었다.

흑점 부길드장 박광신.

“저도 해머를 확인하고 싶은데.”

상엽은 명함을 보고 일단 블랙 해머를 넘겨주었다.

박광신은 해머를 직접 살피더니 특유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역시 블랙 유저가 맞았군요. 영상을 보고 이미 파악하긴 했지만.”

상엽은 현재 상황에 대해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일단 무슨 일인지 알아야 돼.’

부길드장이 직접 만나러 왔다면 분명 평범한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백섬에서 날 노린다고?’

이 부분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디로 가면 돼?”

“따라오세요.”

박광신은 먼저 방향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상엽은 일단 그의 뒤를 따랐다.

상엽은 특이한 경험을 했다.

“헬리콥터라…….”

박광신과 함께 도착한 곳에는 헬리콥터가 있었다.

그들을 태운 헬리콥터는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다.

“흑점 길드가 이렇게 부자야?”

“길드 재산 아닌데요.”

“그럼 설마…….”

“제 개인 헬리콥터예요.”

상엽은 믿을 수가 없었다.

“있는 집 자식이었구나.”

“우리 부모님 농사지으셨는데요.”

박광신의 대답에 상엽은 다시 한번 놀랐다.

“전부 제가 번 돈으로 샀어요. 상엽 씨도 한 대 사 드릴까요?”

자동차도 아니고 헬리콥터를 사 준다는 말에 상엽은 할 말을 잃었다.

“일단 조용한 곳에 도착하면 말씀드릴게요.”

박광신의 웃음에 상엽은 어설프게 따라 웃었다. 놀란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웃음은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서울의 15층 고층 빌딩 옥상에 도착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급 빌딩이었다.

헬기의 엔진 소리가 잠잠해지고 조종사가 옥상에서 내려가자 박광신은 상엽이 궁금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백섬에서 상엽 씨가 블랙 유저인 걸 알았어요. 갑자기 등장한 실력파 블랙 유저. 그들이 움직일 이유는 충분하죠.”

“날 제거하겠다는 건가?”

“여긴 한국이에요. 아주 좁은 곳이죠. 백섬이나 흑점이나 길드원이라고 해 봐야 30명 수준이에요. 한 명의 실력자가 아쉬운데 상대방에 실력자가 늘어나는 게 달가울 리 없죠.”

상엽은 이런 부분을 예상하지 못했다.

‘유명해지지 말라더니.’

결국 상엽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유명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없어요.”

“뭐?”

“일단 살리는 게 우선이었어요. 길드에 영입하는 게 최종 목표인 건 맞지만 상황을 이용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오는 건 싫거든요.”

그는 달변가였다. 대화가 계속될수록 상엽은 그에 대한 경계를 풀고 있었다.

“들어오고 싶어지면 언제든 들어와요.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당장은 죽지 마세요.”

“듣기 좋은 말이네.”

“그래요? 그럼 저한테 기회를 한 번 줄래요?”

“기회라니?”

“상엽 씨 마음을 움직일 기회요.”

박광신은 특유의 눈웃음을 보이며 자리를 옮겼다. 옥상에서 건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그가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우리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뭐?”

“여기가 우리 집 옥상이에요.”

“설마…….”

“이 건물이 제 집이죠.”

상엽은 다시 한번 할 말을 잃었다.

‘난 780원 있는데.’

그는 멍한 표정으로 박광신을 따라갔다.

같은 세상을 살지만 삶의 방식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도 상엽은 이처럼 극단적인 삶이 있는지는 몰랐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건물의 14층에 넓은 수영장이 있었다.

통유리를 통해 외부의 모습이 모두 보여서 하늘에 떠 있는 수영장 같았다.

한쪽에는 간단한 와인과 다과가 차려져 있고,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입은 미녀들이 매혹적으로 웃으며 상엽에게 눈짓을 했다.

“수영 좋아하세요?”

“해 본 적이 없어.”

“그럼 배워 보세요. 실망하지 않으실 테니까.”

“만족은 이미 하고 있어.”

수영장 안에 두 명의 금발 미녀가 있었고, 발만 담그고 물장구를 치는 세 명의 동양 미녀는 상엽에게 손을 흔들었다.

상엽은 자신이 미인 대회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모델을 능가하는 완벽한 몸매에 개성 있는 매력을 뽐내는 여인들이었다.

“누구는 컴퓨터에 모으는데…….”

“네?”

“아, 아니야.”

상엽은 과장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에 박광신은 웃으며 상엽을 재촉했다.

“즐기세요. 상엽 씨를 위한 자리니까.”

상엽은 잠시 고민을 했다.

‘형이라고 부를까?’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