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36화 (36/300)

# 36

-빨리 처리해.

단 한 마디였다.

박문석은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누가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는 관심도 없었다.

-부탁드립니다.

그 한 마디에 대충 사건을 살폈고 그냥 넘어가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나서야 문제가 생겼다.

“기회는 한 번뿐이야.”

박문석 앞에는 그 당시의 사건 기록이 놓여 있었다.

“방금 일어난 일처럼 자세히 말해.”

“전 정말 아무것도 모…….”

“그럼 그냥 죽어. 내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어.”

상엽은 해머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빛을 본 박문석은 저승사자를 만난 것처럼 빌기 시작했다.

“말, 말하겠습니다!”

상엽은 들어 올린 해머를 내리지 않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는 해머를 보며 헐떡거리면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처, 처음 찾아온 것은…… 오명진 대표였습니다. 시끄러워지기 전에 사건을 끝냈으면 좋겠다고……. 저희 입장에서도 별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제가 아니라 반장 선에서…… 빨리 끝내라고 지시가 내려간 것으로 압니다.”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는 알지?”

“죄송합니다!”

사건이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고, 이미 모든 증거도 사라진 상태였다.

수사로는 더 이상 진실을 밝힐 수가 없었다.

“아저씨, 정말 죄송하지?”

“네! 정말 죄송합니다.”

경찰서장 박문석은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 깨달았다.

권력을 가졌다지만 변종 사냥꾼 앞에서는 파리 목숨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신경을 거스르면 죽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권력자라도 목숨이 하나뿐인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죄송하면 이제 어떻게 할래?”

상엽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한쪽에 있는 진열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각종 감사패와 트로피가 있었다.

상엽은 그중에 쇠로 된 쟁반 형태의 감사패를 잡았다.

“모범 경찰 감사패?”

상엽은 이를 양손으로 잡아 구겼다. 철제 쟁반은 금세 아이 손에 쥐어진 찰흙처럼 형태를 잃었다.

“으뜸 공무원 상?”

트로피는 상엽의 손에 가루로 부서졌다. 그저 움켜쥐는 걸로 충분했다.

“아씨. 이게 다 세금으로 만들었을 거 아냐? 또 열 받네.”

상엽은 대뜸 몸을 돌려 박문석에게 성큼 다가섰다.

“으아아! 살려 주십시오!”

박문석은 무릎을 꿇고 양손을 비볐다. 이미 그에게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저씨는 죽는 게 우리나라에 보탬이 될 것 같은데?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지.”

“그건 아니야. 죽으면 연금 나오거든.”

가만히 있던 강차연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 말에 상엽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오! 그냥 확!”

상엽은 결국 해머를 휘둘렀다.

엄청난 기세가 몰아쳤고 박문석은 멍하니 다가오는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휘이잉!

박문석의 머리카락이 태풍을 만난 것처럼 한쪽으로 넘어갔다.

“내가 딱 한 번만 참는다.”

해머는 박문석의 눈앞에 멈춰 있었다.

그의 뒤로 바람에 뜯긴 머리카락이 흩날리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박문석은 직접 타격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목이 꺾인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그때 있었던 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써. 이걸 뭐라도 하더라?”

“조서.”

“그래, 조서. 반성문 같은 조서. 알았어?”

상엽은 그에게 종이와 펜을 던졌다.

“5분 준다.”

박문석은 살기 위해 글을 적기 시작했다.

상엽은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 장면을 모두 지켜봤다. 그렇게 스스로 쓴 조서가 완성되었고 상엽은 이를 낚아챘다.

“아저씨, 경찰 자격 없는 거 알지?”

“네? 네…….”

“경찰 그만둬. 그리고 그동안 공무원으로 받은 월급도 전부 사회에 기부해. 연금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상엽은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이민 가. 이 나라에서 꺼지라고.”

“그건…….”

“네가 억울하게 보낸 그 여고생 말이야…….”

상엽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내 누나야.”

박문석은 그제야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명확히 이해했다.

‘복수.’

실제로 그는 몇 번이나 죽을 위기가 있었다. 상엽이 감정을 조절하지 않았다면 머리가 터졌을 것이다.

“한 달 준다. 단 하나라도 안 지키면 날 다시 보게 될 거야. 그때는 이렇게 안 넘어가.”

상엽은 그 말을 하며 박문석의 오른쪽 팔뚝을 잡았다.

“아, 정말…… 짜증 난다.”

으득!

상엽은 그의 입을 막고 그의 팔뚝을 완전히 으스러트렸다.

“이제 골프도 더 이상 치지 마.”

고통에 눈물을 흘리는 박문석을 뒤로하고 상엽은 서장실 문 앞에 섰다.

“혼자서 넘어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 말을 남기고 상엽은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 * *

강차연은 차 안에서 박문석의 진술서를 살폈다.

공포에 질려 써 내려간 진술서는 반성문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강차연은 만족하지 못했다.

“다 말하진 않았네.”

“무슨 뜻이야?”

조수석에 앉은 상엽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알맹이가 빠졌어. 이 진술서에 언급된 이름은 오명진밖에 없어.”

미담 엔터테인먼트 대표 오명진.

누나가 연습생으로 있던 기획사의 대표다.

“그게 아니라는 거야?”

“내가 좀 알아봤거든. 그 사건이 있기 전에 오명진과 박문석은 아무런 연결점이 없었어. 오히려 그 사건 이후에 만남이 지속됐지.”

“중간에 다른 누군가 있었다는 거야?”

“간단한 이야기야. 사건이 일어나고 오명진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서 박문석에게 청탁을 한 거지. 박문석이 거절할 수 없는 인물이었을 거야.”

“그런데 진술서에 쓰지 않았다? 그 꼴이 되고도?”

“쓸 수 없었겠지. 그만큼 언급하기 힘든 인물이었을 테고.”

“죽을 수도 있는데 거짓말을 했다?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네.”

“그게 권력을 가진 자들의 방식이야. 지킬 게 있으면 목숨을 버리기도 해. 아마 지금도 이민 준비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있을 거야.”

상엽은 자신이 얼마나 단순하게 생각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안 말렸어?”

“일부러 놔둔 거야. 그래야 조금이라도 움직일 거 아냐. 숨어 있으면 찾기 힘드니까.”

상엽은 강차연이 말하지 않은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넌 이 사건에서 제일 의심스러운 게 뭐야?”

강차연은 뜻밖의 질문을 했다. 상엽은 이에 대해 솔직히 대답했다.

“누나는 자살할 사람이 아니야.”

“나는 그 부분은 전혀 의심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럼 뭐가 의심스러운데?”

“장소.”

상엽은 그제야 둘의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미모의 소녀가 국도 변에서 자살을 했어. 기획사도 아니고, 기숙사도 아니고, 집도 아니지. 연결점이 전혀 없는 곳에서 자살을 했다는 거야.”

상엽도 의문을 가졌던 부분이었다. 다만 우선순위가 달랐다.

“모든 사건에는 이유가 있어. 이번 사건의 핵심은 자살이 아니라 그 장소야. 그 소녀가 왜 거기서 죽었냐는 거지. 자살이든 타살이든 중요한 게 아니야. 왜 하필 거기서 그런 모습으로 발견되었는지를 알아야 돼.”

상엽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아낸 게 있어?”

“확실하진 않아.”

“의심스러운 점은 있다는 거지?”

“별장.”

“별장?”

“강가의 한적한 국도 변. 별장이 많은 지역이잖아. 거기서 벌어지는 은밀한 파티라면 어때?”

상엽은 누나가 그런 일에 관련되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강차연은 냉정하게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쫓는 사건은 이미 모든 증거가 사라졌어. 그래서 그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살펴봤지.”

“그랬더니?”

“자살 두 건, 실종 세 건. 10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니까 그럴 수 있는 수치이긴 해. 그런데 이상한 게 있지.”

“뭔데?”

“피해자가 모두 여자라는 점. 그리고 전부 단순 자살, 단순 실종으로 빠르게 종결되었다는 점.”

상엽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절실히 깨달았다.

“그중의 한 사건에서 은밀한 파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 17살 여고생이 자살을 했는데,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발견했지.”

“이제 뭘 하면 돼?”

“결정을 해야지.”

강차연이 지금까지 모든 걸 숨기고 시기를 기다린 이유가 지금을 위해서였다.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누나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아는 거야? 누나의 복수를 하는 거야? 그걸 결정하는 게 먼저야. 누나 사건은 아주 작은 꼬리일 수도 있거든.”

“그걸 타고 들어가면 거대한 몸통이 나온다는 거지?”

“말했잖아. 의심일 뿐이야. 확신은 아니야.”

상엽은 고민할 필요 없이 결정을 내렸다.

“진실을 알고 싶어. 그다음에 관련된 놈은 전부 복수할 거야.”

“그럼 진실을 알게 될 때까지 신중하게 움직여야 돼.”

강차연이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상엽 스스로가 함부로 움직이지 않겠다고 판단하는 것.

그녀는 이를 위해 적절한 순간을 기다려 왔다.

“자, 그럼 좀 더 흔들어 주러 가 볼까?”

“알았어.”

강차연은 차를 몰기 시작했다.

* * *

먼지가 가득한 SUV가 고급 주택가로 들어섰다.

“잠깐만, 누가 올 거야.”

상엽이 뭔가 물어보기도 전에 갑자기 뒷좌석의 문이 열렸다.

“안녕, 언니.”

모자를 눌러쓰고 회색 셔츠에 낡은 청바지를 입은 2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갸름한 얼굴에 연약해 보이는 체구였지만 여유로운 웃음에 깊은 눈이 인상적이었다.

동네의 골목대장 여자아이가 곱게 큰 느낌이었다.

“이 아저씨는 누구야?”

“이 사건 의뢰인.”

“언니, 경찰 그만두고 탐정 하는 거야?”

뒷좌석 중간에서 얼굴을 불쑥 내민 그녀는 상엽의 얼굴을 살폈다.

“아저씨, 우리 언니 노리지 마요. 제가 찜해 놨으니까.”

“찜을 하든 볶음을 하든 일단 누군지는 알았으면 좋겠는데.”

강차연은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뒤늦게 소개를 시작했다.

“이쪽은 가연수. 내 정보원이야.”

“안녕하세요, 가연수예요.”

가연수는 조금의 경계도 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상엽은 일단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저 레즈비언이에요. 차연 언니 사랑한 지는 3년쯤 됐어요.”

“갑자기 그런 말을 왜 하는 건데?”

“차연 언니 노리면 저랑 목숨 걸고 붙어야 하니까 미리 말해 두는 거예요.”

상엽은 굳이 말을 길게 해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정상은 아니야.’

그냥 그렇게만 이해했다. 강차연의 정보원이니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시킨 건 어떻게 됐어?”

“아직 집 안에 있어. 같이 있던 여자는 한 시간 전에 나갔고.”

“혼자 있다는 거지?”

“응. 내가 확실히 체크해 뒀지.”

“수고했어.”

강차연은 그렇게 말하며 가연수에게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

“언니, 정말 이럴 거야? 내가 언니가 원하는 건 뭐든지…….”

“일주일 전에 국회 의원 김정철 집에 갔었지?”

“어? 그걸 어떻게…….”

“사고 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경찰 그만뒀다고 그 정도도 모를 줄 알았어?”

“씨! 그냥 만년필 하나 가지고 나왔어!”

“사고 치지 마. 도둑질 계속하라고 너 살려 준 거 아니니까.”

“알았어! 알았다고!”

가연수는 뾰족한 목소리로 외치더니 차에서 내렸다.

쾅!

거칠게 문을 닫은 탓에 차가 크게 흔들렸다.

“성질하고는.”

“살려 주다니? 누군데?”

“갓코인 범죄자. 잡았다가 살려 줬어.”

“말이 좀 이상한데? 잡았다가 풀어 준 게 아니고 살려 줘?”

“갓코인 범죄자는 잡으면 무조건 소멸이야. 감옥에 보내 봤자 소용이 없으니까. 오히려 좋아하겠지.”

상엽은 내심 인정을 하면서도 처벌이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런 잡범들은 살려 주는 거야. 저 아이는 병적으로 도벽이 있을 뿐이라 크게 피해를 주진 않거든.”

“아…….”

“근데 스릴을 즐긴다고 꼭 높은 사람 집을 털거든. 그래서 우리가 나섰던 거고.”

“갓코인 유저였어?”

상엽의 헌터 아이에 그녀의 코인은 보이지 않았다.

“코인이 안 보일 거야. 그런 스킬을 가졌거든.”

“특이하네.”

상엽이 주변을 둘러봤지만 가연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자, 이제 우리 일을 다시 시작해 볼까?”

강차연은 상엽에게 박문석의 진술서를 내밀었다.

“저기가 오명진의 집이야.”

“뭘 하면 되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해. 대신 절대 죽이지는 마. 구타도 안 돼.”

상엽은 그 말을 잠시 생각했다.

“그 녀석만 안 건드리면 된다는 거지?”

“맞아. 나머지는 마음대로 해.”

상엽은 진술서를 받고 차에서 내렸다. 그러다 의문이 들어서 강차연에게 물었다.

“내 행동이 그렇게 예상하기 쉬워?”

강차연은 고민 없이 대답했다.

“절대 지능범은 하지 마.”

“쳇.”

상엽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오명진의 집으로 걸어갔다.

“얼마나 잘하는지 볼까?”

강차연은 의자에 기대서 고급 주택의 담을 단숨에 뛰어넘는 상엽을 지켜봤다.

“전직 경찰이었던 변종 사냥꾼, 한국 최고 수준의 변종 사냥꾼이 은밀한 사건을 파고든다. 당연히 관련자들은 대책을 마련할 테고, 모든 행동에는 흔적이 남게 되어 있지.”

그녀의 머릿속에서 모든 생각들이 서류철에 들어가듯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예전 증거는 사라졌으니,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게 하면 돼.”

쾅!

자신의 계획을 다시 한번 떠올리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소음에 급히 차에서 내렸다.

쿠르릉!

엄청난 소음과 함께 집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멀쩡하던 고급 주택이 폭격을 맞은 것처럼 내려앉은 것이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오명진의 저택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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