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35화 (35/300)

# 35

국방부 회의실.

회의실 전면의 스크린에 한 사내의 전투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이를 보는 사내들의 심각한 표정은 견고한 조각상처럼 풀리지 않았다.

재생이 끝났지만 침묵은 길었다.

다섯 명 중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입을 연 사람은 스크린을 조정하던 사내였다.

“이상 정상엽의 전투 영상입니다.”

그들을 침묵에 빠트린 영상은 정상엽이 세 명의 추격자를 처리하는 장면이었다.

“이것이 사실인가?”

국방부 장관 장철진.

사각 턱에 짙은 눈썹을 가진 그는 곁에 있는 사내를 향해 물었다.

“사실입니다.”

대답을 하는 이는 김대진 준장이었다. 국방부에서는 상엽과 가장 많이 만난 인물이기도 했다.

“1년 6개월 만에 이렇게 성장하는 게 가능한가?”

“혼자서 태백산 변종을 소탕한 자입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상엽에 대한 보고서 대부분은 김대진이 작성한 것이다. 그는 상엽 덕분에 다섯 명만 모이는 최고 간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군. 3단계 유저 세 명이 저렇게 간단히 처리되다니.”

장철진은 자신이 본 영상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소름이 끼치는 움직임이었다. 이는 현재 유지되고 있는 치안 체계를 단숨에 무너트릴 정도의 힘이다.

“성향은 어떤가?”

“거칠긴 하지만 범죄자가 될 성격은 아닙니다. 적절히 구슬리면 협력도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대진은 자신감을 보였다.

이에 장철진은 한참을 고민하다 회의실 가장 끝에 있는 자를 불렀다.

“김판종 길드장님, 어떻게 보셨소?”

다른 네 명과 달리 김판종은 군복이 아닌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에 얇은 입술을 가진 그가 정장을 입고 있는 것은 국방부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기밀 회의에 초청을 받았다.

‘길드 백섬.’

한국의 화이트 유저들이 모인 최고의 길드. 김판종은 그 백섬의 길드장이었다.

외부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미 국방부와 협력 관계였고 변종에 관한 많은 의뢰와 보상을 주고받았다.

“4단계 유저이거나 3단계 마스터로 보입니다.”

4단계 유저는 4단계 상점을 이용한다는 뜻이었고, 3단계 마스터는 3단계 상점의 신체 강화를 전부 완료했다는 뜻이었다.

“저 정도…… 백섬에서 막을 수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 아직 길드장님도 3단계 마스터는 못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은근히 무시하는 발언에 김판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실력은 단순히 신체 강화로 판단되는 것이 아닙니다. 놀랍긴 하지만 처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요.”

“그렇다면 차라리 그를 길드에 영입하는 것은 어떻소? 백섬에 큰 도움이 될 텐데.”

“그건 안 될 거 같습니다.”

단박에 거절을 당하자 이번에는 장철진의 표정이 구겨졌다.

“안 되는 이유를 말해 주겠소?”

“그는 화이트 유저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무기는 분명히 저희 계열이긴 한데…… 움직임이 저희 쪽과는 확연히 다르군요. 분명히 블랙 유저입니다. 무기는 뭔가 속임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반인에겐 보이지 않지만 김판종의 눈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상엽은 숙련된 블랙 유저의 움직임을 보였다.

“그렇다면 더 큰일 난 거 아니오? 흑점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위험할 텐데.”

흑점.

한국에서 인정받는 두 개의 길드 중의 또 하나의 이름이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그들은 블랙 유저의 집단이었다.

백섬과는 태생적으로 라이벌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군요.”

흑점을 언급하자 김판종의 말투가 변했다.

정중하던 느낌은 사라지고 독사의 혀처럼 표독스러운 느낌이 묻어났다.

동시에 그의 정장 안에서 수백 개의 붉은 선들이 튀어나오더니 커다란 회의실 탁자를 넝쿨처럼 잠식하기 시작했다.

넝쿨의 끝은 곧 촉수처럼 날카로운 혀를 세우더니 네 명의 군인에게 접근했다.

“이게 무슨 짓이요!”

“제 의지가 아닙니다. 제 분노를 느끼면 그 상대를 자동으로 처리하지요. 전 지금 이를 막고 있는 겁니다.”

“그만두시오!”

김판종은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촉수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군인들을 집어삼키려 했다.

군인들이 숨을 들이켜며 놀란 그때, 김판종은 촉수들을 회수했다.

“분명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훈계를 하듯 말했다.

“전 여러분들께 협력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힘을 주어 다음 말을 이었다.

“협력해 주는 겁니다. 잊지 마시길.”

김판종은 멀쩡한 옷매무새를 다시 고치고는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 * *

상엽은 레나의 오피스텔에서 눈을 떴다.

잠시 말싸움이 있었지만 결국 상엽의 저돌적인 사과로 분위기가 풀렸다. 그리고 상엽은 스킬을 구입한 후에 레나와 함께 오피스텔로 왔다.

여전히 나체로 잠들어 있는 레나를 보며 상엽은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

“편의점.”

“거긴 왜?”

“너 커피라도 사 주려고. 곧 가야 되거든.”

“커피는 됐고 조금 더 있어. 따뜻해서 좋아.”

상엽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낸 뒤에야 오피스텔을 나섰다.

‘스트라이크를 시험해 보고 싶은데.’

그는 강차연을 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코인을 스킬에 투자했다.

긴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스킬은 스트라이크였다.

‘완성시켜야 돼.’

설악산에서 사냥을 하면서 스트라이크 6단계에 아쉬움을 느꼈다. 다른 스킬을 익힐 수도 있겠지만, 해머를 사용하는 상엽이 당장 스트라이크 이상의 스킬을 생각하기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벌써 9단계는 찍었으니까.”

하나만 올리면 마스터다.

-헬카누스의 습격: 스트라이크

7단계-10미터를 전진하며 시전자의 몸이 회색 안개에 덮인다. 전진 속도가 크게 상승한다.

8단계-15미터를 전진하며 시전자의 몸이 검은 안개에 덮인다.

9단계-20미터를 전진하며 시전자의 몸이 흐릿한 안개로 바뀐다.

신체 강화를 계속 고집해 왔지만, 결국 스킬의 중요함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현재 가진 스킬은 최대한 강화해야 돼.”

설악산이라는 지역에서 그가 깨달은 것이다. 강한 스킬이 사냥을 더욱 빠르게 만들어 준다.

“일단 스트라이크 10단계까지만 가자.”

강차연을 기다리는 동안, 상엽은 자신이 할 일을 정했다.

* * *

상엽은 17일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두 번째 완성이네.”

그는 레나를 통해 목표했던 바를 이뤘다.

-헬카누스의 습격: 스트라이크

10단계-30미터를 돌진하며 시전자의 몸이 잠시 투명해진다. 지나온 자리에 불길이 치솟는다.

스트라이크를 완성한 상엽은 감격하기보다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17일 동안 잠도 안 자고 사냥만 했거든.”

“그래서?”

“겨우 이거 한 단계 올리려고 그 고생을 했나 싶어서.”

“겨우라니? 헬카누스가 들으면 서운하겠는데.”

상엽은 뭔가 억울함을 말하고 싶었지만 레나는 그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갈게.”

“어디 가는데?”

“경찰 누나 만나기로 했어.”

상엽은 축 처진 어깨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17일 동안 강차연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정부와 협상에 성공한 것이다. 다만 강차연은 닷새 동안 충실히 조사를 받았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변종 사냥꾼끼리의 싸움으로 결론이 났다.

이미 경찰서에 갈 때부터 짜여 있던 각본이었다.

정부에서는 상엽의 움직임을 찍은 영상을 보며 강차연의 처우를 결정했다.

-적이 되어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이 정도면 국내에서는 최상급 중 하나고, 전 세계적으로 봐서도 상당한 수준에 속합니다.

회의에서 김판종이 깽판을 부리는 바람에 결정이 애매해진 그들에게 강차연은 완벽한 분위기 전환 카드였다.

김대진이 적극적으로 나섰고, 결국 강차연까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다.

“너한테 도움을 많이 받네.”

그들이 만난 곳은 허름한 카페였다.

다른 손님이 없어서 대화를 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이제 내가 받을 차례잖아. 선금이라 치지 뭐.”

“선금을 비싸게 받았으니 일은 확실히 해야겠지?”

“그러면 나야 좋지.”

상엽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강차연은 노란색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열어 봐.”

서류 봉투 안에는 한 명의 신상 명세가 있었다.

“이게 누군데?”

“그때,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지금 강서경찰서 지능수사대 반장이야. 고속 승진을 했더라고.”

그 말을 듣고 상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잡으러 가야지.”

“이미 내가 다녀왔어.”

상엽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더라고. 그냥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고, 그대로 했을 뿐이야. 그 뒤로 비리를 저지르긴 했지만 네 누나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돼?”

“간단해.”

강차연은 청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사진 한 장을 다시 상엽에게 주며 말했다.

“지시를 내린 자를 찾아가면 되잖아.”

그녀는 가장 빠른 방법을 제시했다. 상엽도 그 계획이 마음에 들었다.

“이 사람이 누군데?”

“강서경찰서 서장 박문석.”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어?”

강차연은 당연하다는 듯이 밖을 가리켰다. 아직 밝은 대낮이었다.

“근무 시간이잖아.”

“잘됐네.”

상엽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번에는 강차연도 함께 움직였다.

“경찰서장이 민원을 받아 주려나?”

그들은 곧장 강서경찰서를 향했다.

* * *

강서경찰서장 박문석.

그는 주말에 있을 골프 약속에 대비해 자세를 연습하고 있었다.

“이게 꼭 걸린단 말이야.”

아래로 내리는 손이 불뚝 튀어나온 배에 걸릴 때마다 그는 아쉬운 표정을 했다.

“김 회장, 그 여우한테 이기려면 좀 더 확실히, 윽!”

무리하게 자세를 잡던 그는 허리를 잡으며 소파에 앉았다. 작은 키에 욕심 많아 보이는 턱살이 한 차례 크게 출렁였다.

똑. 똑.

“누구야?”

그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으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이에 서장실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서장님, 변종 사냥꾼 두 명이 할 말이 있다며 찾아왔습니다.”

“뭐? 변종 사냥꾼이 나는 왜?”

“사건 제보를 할 게 있다고. 서장님을 직접 만나야 한답니다.”

“등록된 사냥꾼이야?”

“네, 그렇습니다.”

“알았어.”

박문석은 자세를 고쳐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증이 남았지만 어떻게든 당당하게 보이려 허리를 폈다.

잠시 후.

두 명의 남녀가 서장실로 들어왔다.

“안녕, 공무원 아저씨.”

상엽은 먼저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강차연은 문을 닫고 그 앞을 막았다.

박문석은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중요한 제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는 강차연과 상엽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폈다.

“아저씨, 일단 앉아.”

상엽은 친구를 대하듯 짧게 말했다.

박문석은 목구멍까지 욕설이 올라왔지만 목숨을 생각해서 꾹 참았다.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이런 족속들은 예의라는 걸 모르니까.’

그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며 상엽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저씨, 4년 전에 사건이 하나 있었어.”

“무슨 사건 말씀이십니까?”

“연예 기획사 연습생 자살 사건.”

박문석은 그 말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그의 기억 속에 그런 사건은 없었다.

“제가 모르는 사건입니다만, 그게 제보와 관련이 있습니까?”

“누나, 이 아저씨 정말 모르는 것 같은데?”

강차연은 상엽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럴 거야.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가는 작은 사건일 테니까 말이야.”

“그 말은 너무 열 받는데?”

“사실이야.”

상엽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며 박문석을 보았다.

“아저씨, 내가 노가다 하면서 그것도 소득이라고 세금을 꼬박꼬박 냈거든.”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아저씨는 내 세금으로 월급 받잖아.”

상엽은 영문을 몰라 입을 다문 박문석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일을 그렇게 하면 내가 낸 세금이 아깝잖아.”

그는 갑자기 화이트 해머를 꺼내며 테이블 위에 던졌다.

쿵!

박문석이 소음에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바로 그거야. 그렇게 빨리빨리 움직여야 세금이 안 아깝지.”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아저씨, 지금부터 살 수 있는 기회를 딱 한 번 줄 거야.”

상엽은 박문석을 보며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났다.

“기회를 못 잡으면 아저씨는 죽어. 내가 특별히 죄목까지 생각해 왔어.”

상엽은 감정을 지운 무심한 눈빛으로 말했다.

“세금 낭비죄.”

두려움에 몸을 떠는 박문석을 향해 상엽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형.”

상엽은 테이블 위에 있는 해머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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