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청량리 돌란은 웨스턴 바였다.
청량리역 뒤쪽 골목에 있는 낡은 건물로 손님이 찾아올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입구에는 내부 공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오랫동안 장사를 하지 않은 듯했다.
“공사는 안 하는데.”
2층 상가 건물이라 계단을 통해 갈 수 있는 곳은 돌란과 옥상뿐이었다.
그런데 뽀얗게 쌓인 먼지에는 아무런 발자국이 없었다.
오랫동안 이곳을 지나간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상엽은 이를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
‘저 자식은 뭐지?’
자신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일단 한 명. 더 있을 수도 있어.’
30미터 떨어진 건물의 옥상이었다. 5층 건물에서 겨우 머리만 내민 수준이지만 상엽은 이를 명확히 느꼈다.
그래서 목적지를 그냥 지나쳤다.
‘뭐야?’
조금 더 이동했을 때, 헌터 아이가 반응했다.
헌터 아이 4단계 최대 거리인 500미터에 갓코인 유저가 잡힌 것이다.
‘8800블랙 코인.’
상엽은 일부러 그에게 접근했다. 그러자 또 한 명이 잡혔다.
‘2만 블랙 코인.’
헌터 아이에 잡히지 않는 인원까지 합치면 몇 명이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경찰 누나를 노리는 건가?’
확실하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상엽은 가까운 커피숍으로 들어가서 전화기를 꺼냈다.
“누나, 주변에 사냥꾼이 있어요. 최소 블랙 유저 2명이에요.”
-또 들킨 건가? 아무래도 우린 안 만나는 게 좋을 거 같아.
“전 상관없어요.”
-일단 네가 부탁한 거 정리 좀 해야 하니까, 30분만 기다려.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해 줄 테니까.
상엽이 대답할 틈도 없이 강차연은 전화를 끊었다.
상엽에게 대신 설명해 줄 사람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상엽은 뜨거운 커피를 물처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그냥 이대로 있어야 하나? 끼어들어도 되는 걸까?’
복잡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20분이 지났을 때, 문자가 도착했다.
-서초 지구대의 장민주를 찾아. 네가 원하는 걸 알려 줄 거야.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
상엽은 이를 보고도 카페를 떠나지 않았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20분이 지났을 때, 헌터 아이에 걸린 두 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폭음이 이어졌다.
쾅!
폭음을 시작으로 비명이 뒤따랐고 좁은 골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상엽은 골목으로 나가서 상황을 확인했다.
세 명의 갓코인 유저가 강차연이 있던 2층 건물을 습격했고 창문과 벽이 무너져 내렸다.
“망할 새끼들, 결국 움직이네.”
강차연은 그들의 첫 습격을 피해 다른 건물로 뛰어올랐다.
갓코인 유저의 싸움에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바빴다.
시민들이 어깨를 스치며 뛰어가는 데에도 상엽은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누나 혼자선 아무래도 위험하겠어.”
세 명의 갓코인 유저는 꽤나 실력자였다. 게다가 강차연은 도주에 능한 스타일이 아니다.
결국 두 번째 건물 옥상에서 따라잡혔고 싸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5층 건물 옥상에서 뭔가가 아래로 떨어졌다.
물탱크!
블랙 유저 한 명이 물탱크를 들어 강차연에게 던진 것이다. 강차연이 이를 피하면서 물탱크가 아래로 떨어졌다.
시민들이 많은 곳이었다.
“아, 새끼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쾅!
상엽은 화이트 해머를 뽑으며 떨어지는 물탱크를 향해 뛰어올랐다.
콰쾅!
물탱크는 공중에서 폭발과 함께 분해되며 사방으로 물을 뿜어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상엽은 예상치 못한 장면을 보았다.
‘저격수?’
건물 곳곳에 긴 총을 든 저격수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골목에는 중무장한 군인까지 보였다.
‘골치 아프네.’
물탱크를 처리하고 바닥에 내려섰을 때, 상엽은 피부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본능이 위험을 감지한 것이다.
‘왼쪽.’
왼쪽 저격수의 총구가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거리는 200미터.
상엽은 이를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상세히 볼 수 있었다. 상엽은 저격수를 노려봤다.
조준경을 통해 이를 지켜보던 저격수는 순간 심장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야수.’
저격수의 손가락이 떨렸다.
“목표 확인. 명령 대기 중입니다.”
노련한 저격수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할 일을 잊지 않았다.
-대기하라.
그 명령에 저격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죽일 수 있을까?’
그는 조금 전 상엽의 움직임을 분명히 보았다. 하지만 확실히 본 것은 물탱크를 터트리던 그 순간뿐이었다. 상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저격은 불가능하다.
목표를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 정상엽. 데이터에 등록된 변종 사냥꾼이다. 어느 편인지 확인될 때까지 대기한다.
‘정상엽.’
저격수는 조준경 너머로 맹수 같은 사내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같은 시간.
강차연은 세 명의 협공을 몸으로 견뎌 내고 있었다.
무기와 주먹, 스킬까지 맞았지만 아직 강철 피부는 건재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맞질 않아.’
세 명 중에 누구도 강차연의 손에 걸리지 않았다.
워낙 움직임이 빠르고 협공에 익숙해서 기회도 많지 않았다.
‘특수 부대까지 와 버렸어.’
지난 8개월 동안 그녀는 도망자 신세였다.
본격적으로 추격이 시작된 건 석 달 전이었고, 결국 은신처가 걸리고 말았다.
‘이 방법은 안 쓰려고 했는데.’
그녀는 옥상 아래를 보았다.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있었고, 누군가는 핸드폰으로 상황을 찍으려 했다.
‘저 아래로 뛰어들면 가능성이 있어.’
멀리서 군인들이 빠르게 포위망을 만들며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시민들 틈에 섞인다면 기회가 있는 것이다.
“쳇.”
그런데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왜? 그냥 뛰어내리지?”
세 명의 사내는 강차연을 보며 비웃고 있었다. 그 중에 키가 작은 사내가 강차연을 보며 물었다.
“너희들이 시민들을 신경 쓸 놈들은 아닌 거 같아서.”
“크크. 잘 봤어.”
키 작은 사내 곁에 있는 두 명은 음흉한 눈빛으로 강차연을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중국어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저 여자 그냥 죽이긴 아까운데?”
“데리고 가서 죽을 때까지 괴롭혀 주자고.”
“크크, 좋지. 오랜만에 좋은 장난감을 발견했어.”
강차연은 그제야 상대방이 중국인인 걸 알았다.
한국인 갓코인 유저가 자신의 인맥으로 추격조를 구성한 것이다.
‘늦었어.’
상황은 최악으로 흘렀다.
그때, 뭔가가 사내들 뒤에서 솟구쳤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5층 높이를 뛰어넘은 이는 하얀색 해머를 쥐고 있었다.
‘정상엽…….’
강차연은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하려 했다. 그런데 상엽의 말이 빨랐다.
“야! 물탱크 던진 새끼 누구야?”
그의 외침에 사내들이 한쪽으로 물러나며 진형을 잡았다. 앞뒤로 적을 두지 않기 위해서였다.
“물탱크 던진 새끼 누구냐고!”
상엽은 제일 먼저 강차연을 가리켰다.
“너야?”
강차연은 상엽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나 아냐.”
상엽의 해머가 다른 이를 가리켰다. 키가 작은 사내였다.
“너야?”
“어디서 미친 새끼가 나타나서.”
“그래서 너냐고!”
“그래, 내가 던졌다. 왜?”
상엽은 웃으며 사내에게 다가갔다.
“너 때문에 내 친구가 죽을 뻔했잖아.”
“뭐?”
상엽은 사내와 2미터 거리를 두고 걸음을 멈췄다.
“저 밑에 내 친구 보이지?”
골목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 한 대가 지나고 있었다.
“일반인 따위 내가 알 바 아닌데.”
“그럴 줄 알았어.”
상엽은 뒤에 있는 두 명의 중국인을 보며 말했다.
“개인적인 원한이야. 끼어들지 마. 끼어들면 너희들도 죽어.”
상엽이 무슨 말을 하든 중국인 두 명은 키 작은 사내 옆에 섰다.
“덤벼, 개새끼들.”
상엽은 두 명의 중국인을 위해 특별히 가운뎃손가락을 세워 주었다.
* * *
작전 지휘관 김종태는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사령관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100명이 출동한 대규모 작전이었다.
‘변종 사냥꾼 사살 작전.’
제거 대상은 한때 경찰이었던 강차연이었다. 그런데 작전 성공을 눈앞에 두고 묘한 상황이 발생했다.
-변종 사냥꾼끼리의 다툼에는 끼어들지 않는다.
이게 정부의 원칙이었다.
그런데 작전 중에 이런 상황이 발생해 버렸다.
“강차연과 정상엽의 관계에 대해 알아낸 것이 있나?”
“접점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예전 강차연의 배신 사건에도 직접 관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상엽은 나름대로 갑자기 끼어든 것처럼 연기를 했지만 정부는 강차연과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김종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정상엽에 대한 정보는?”
“2단계 후반에서 3단계 초반 사냥꾼으로 파악됩니다.”
“어차피 저들이 처리해 주겠군. 일단 지켜본다.”
결국 그는 사냥꾼들에게 상엽을 맡겼다.
3분 후.
“사령관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김종태는 할 말을 잃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저런 괴물이 있었나?’
3단계 유저 3명이었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3단계 유저와 중국의 3단계 유저 2명이 추가로 합류했다.
그런데 단 한 명에 의해 모두 소멸했다.
게다가 마지막 일격에는 5층 건물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렸다.
그 먼지가 사라졌을 때, 정상엽과 강차연은 보이지 않았다.
‘최소 4단계 유저다.’
김종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베테랑 지휘관인 그조차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였다.
‘저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다고?’
해머 하나로 인간이 산산이 부서지고 건물은 가루가 되었다. 무엇이든 해머에 부딪히면 흔적도 남지 않았다.
전투를 시작하는 순간, 그는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그저…… 상급 실력자라고 했는데.’
그런 3명이 한 명을 단 3분도 버티지 못했다.
‘하긴 어떻게 싸우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는 다시 한번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들을 찾는 데 주력하되 절대로 먼저 발포하지 말라고 전해라.”
김종태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했다.
‘100명이 덤벼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그는 부하들을 지키기 위한 명령을 내렸다. 김종태의 구겨진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청량리역에서 10분 떨어진 5층 건물의 옥상이었다. 군부대의 포위망을 한참 넘어선 곳이었다.
“아우, 나 혼나겠지?”
상엽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연지가 유명해지지 말라고 했는데.”
그의 싸움은 기록에 남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공짜는 아니었으니까.”
그는 획득한 전리품을 확인했다.
13400화이트 코인.
12만 그레이 코인.
유물 조각 5개, 유산 조각 4개.
“역시 사람 잡는 게 최고야.”
상엽은 혹시나 워해머가 있는지 살폈지만 안타깝게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난 복권은 안 돼.”
그가 자신의 행운을 비하할 때, 누군가 다가왔다.
“어서 와, 경찰 누나.”
“너도 참 어지간하네. 그걸 끼어들다니.”
“살려 줘서 고맙다는 말이지?”
“그래. 또 빚을 졌네.”
“갚으면 되지.”
“뭘 원해?”
“이미 말했잖아. 난 누나가 그 사건을 제대로 알아봐 줬으면 좋겠거든.”
“좋아. 만족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는 걸 말해 줄게.”
상엽은 진지한 표정으로 강차연의 말을 기다렸다.
“일단 네가 말한 사건의 조서를 봤어. 네 누나 사건이지?”
“맞아.”
“아이돌 연습생 자살 사건. 일단 수사 기록만 확인했어. 그런데도 이상한 점이 많더라고.”
상엽의 표정이 매서워졌다.
“이상한 점이라니?”
“절차가 전부 생략됐어. 부검 의뢰도 없었고, 감식반 분석도 허술했어. 단순 자살 사건이라고 보기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는 데도 말이야.”
강차연은 뜸 들이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일단 장소가 이상해. 미성년자가 국도 변에서 목을 맨다니, 거기까지 어떻게 간 건지도 조사가 되지 않았어.”
그녀의 목소리는 감정이 없는 내레이션처럼 덤덤했다.
“더군다나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그런 의문점이 있는데도 단순 자살 사건으로 이틀 만에 종결됐다는 거야.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역시.”
“그리고 조서에는 네가 진술을 하지 못한다는, 심신 미약 상태로 되어 있었어.”
상엽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는 몇 번이나 경찰서에 찾아가서 조사를 해 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경찰들은 진술조차 듣지 않았다.
“이게 만약 청탁에 의한 묻어 두기였다면 관련자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아.”
“그게 누군데?”
“그때 기획사 사장. 사건 이후에 제일 먼저 경찰서에 와서 진술을 했거든. 그 사건의 유일한 진술자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던 친구들조차 조사하지 않았어.”
상엽은 눈을 감았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느라 움켜쥔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든 것이다.
“진정해. 아무리 유력하더라도 용의자일 뿐이야. 범인은 아니라는 거지.”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나한테 맡겨. 물론 네가 원한다면.”
상엽은 당장 뛰어가고 싶었지만 강차연이 전문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같이 하자. 누나 사건인데 무작정 맡겨 놓을 수는 없어.”
상엽은 이제 직접 나설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알았어. 그런데 내 도움을 받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움직일 수는 있는 거야?”
“그것 때문에 시간이 필요한 거야. 어쨌든 나에게도 기회가 생겼으니까.”
“기회?”
“네가 추격조를 처리해 줬잖아. 윗사람들이 골치가 좀 아플 거야. 협상할 타이밍이 된 거지.”
상엽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널 좀 팔아먹으면 가능한데. 괜찮겠어?”
“마음대로 해.”
“그럼 당분간은 직접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널 진실로 데려다줄 테니까.”
강차연의 자신감 있는 대답이 상엽의 분노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시간 나면 레나한테 가 봐. 너한테 불만이 많던데.”
“알았어.”
“그럼 갈게.”
강차연이 떠나고 상엽은 잠시 옥상에서 시간을 보냈다.
‘누나…….’
결국 그의 생각이 맞았다.
‘억울하게 죽은 거면 반드시 복수한다.’
상엽의 눈빛이 다시 매서워졌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항상 유쾌하던 그의 모습이 악귀처럼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