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상엽이 가진 유물 조각은 총 23개였고 유산 조각은 17개였다.
“많이 모았네요.”
“몰라서 그냥 모아 둔 거야.”
송연지는 천천히 모든 걸 분석한 다음 결과를 말해 주었다.
“일단 결과부터 말하자면 23개 유물 중에 같은 유물 조각은 하나도 없어요.”
“그건 나도 알아.”
“이제부터 진짜 고급 정보예요.”
상엽과 동희는 송연지의 입을 주목했다.
“오빠가 가진 조각 중에 신전 조각은 세 개밖에 없어요.”
“뭐? 그럼 나머지는?”
“던전 조각이에요. 괴수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죠.”
신전과 던전.
유물은 두 곳을 여는 열쇠였다.
“함정이라는 거네.”
“그렇지는 않아요. 던전도 가치는 있으니까.”
“무슨 가치?”
“던전에는 특별한 변종이 많아요. 나오는 유물은 전부 신전의 유물 조각이에요. 그리고 특이한 재료와 유산을 얻을 수 있죠. 그리고 괴수가 많다는 건 코인이 많다는 거예요.”
송연지는 던전의 진짜 의미를 말했다.
“단지 신이 아닐 뿐이에요. 하지만 던전 괴수 중에는 신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녀석도 있다고 했어요.”
상엽과 동희는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던전과 신전의 숫자는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어요. 다만 한국에서는 강한 변종이 많지 않아서 신전 조각을 구하기 쉽지 않아요.”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말했잖아요. 정보를 아낌없이 산다고. 그리고 정보를 교환하고, 갓코인 역사에 대해서도 수집하고 있어요. 역사가 알고 보면 되게 재미있거든요.”
그녀는 신이 나서 계속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상엽과 동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치 싫은 수업을 앞둔 학생들 같은 표정이었다.
“싫어요?”
“미안. 굳이 하겠다면 듣긴 할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상엽은 시선을 피했다.
“알았어요. 역사 수업은 여기서 끝. 어차피 저도 수집 중이니까. 다음에 해요.”
“역사를 수집해?”
“그게 다 정보예요.”
“알았어. 너만 믿어.”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거죠?”
“넌 역시 똑똑해. 우리랑은 달라.”
송연지는 역사를 제외하고 필요한 부분만 설명했다.
“유산은 종류가 더 많아요. 한 명의 신이 다양한 유산을 남기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
“오빠가 가진 유산 중에 두 조각 이상 모인 것도 없어요.”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송연지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사랑한다고 말해 봐요.”
“사랑해!”
“이유도 묻지 않네요.”
“그냥 사랑해!”
송연지는 상엽의 외침에 만족하며 자신이 보유한 유산 조각 하나를 꺼냈다.
“파이어스의 망치. 대장장이였던 신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 유산은 워해머예요.”
상엽의 귀가 번쩍 뜨였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유산이었다.
“저도 하나 구했어요. 오빠 주려고 가지고 있었죠.”
“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상엽은 메아리가 칠 정도로 크게 외쳤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던 동희가 뜻밖의 말을 했다.
“그거 나도 하나 구할 수 있을 거 같아.”
“뭐?”
“전에 말한 다크 마켓 있잖아. 브로커가 하나를 찾았다고 했어. 해머는 쉽게 살 수 있을 거래서 협상하라고 했어.”
“고맙다! 친구!”
상엽은 동희를 한참 동안 끌어안더니 송연지를 보았다.
“간절한 눈빛이네요.”
“진심이야.”
“이걸 완성하고 싶다는 거죠?”
상엽은 혹시라도 늦을까 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법만 말해 주면 내가 어떻게든 완성해 볼게.”
“안 돼요.”
의외로 송연지는 단박에 거절했다. 상엽이 자신도 모르게 울먹이는 표정을 하자 송연지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처럼 말했다.
“제가 구해 줄게요. 그게 더 빨라요.”
“뭐?”
“대신 타르테크의 달, 그건 저 주세요.”
“이미 줬어. 네 거야.”
“어휴. 완성된 유물의 가치를 그렇게 쉽게 보지 말아요.”
“쉽게 안 봐. 너라서 주는 거야.”
마음을 기습당한 송연지는 더 이상 훈계를 할 수가 없었다.
“제가 어떻게든 완성해 줄 테니까 기다려요.”
송연지는 나름대로 생각해 둔 방법이 있었다.
“자! 다 정리됐으면 슬슬 사냥이나 가 볼까?”
“가만히 있느라 몸이 근질근질했죠?”
“미치는 줄 알았어. 날 죽이는 가장 빠른 방법을 너희들은 알게 된 거야.”
상엽이 해머를 꺼내자 다른 이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사냥 갈 거지?”
“저도 여기서 새로 얻은 스킬이랑 무기에 적응 좀 하려고요. 코인도 모으고.”
“나도 좋아.”
두 친구들은 상엽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자! 그럼 설악산 먹으러 가자!”
상엽을 선두로 그들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그들은 만족할 때까지 설악산에서 사냥을 했다.
처음에는 사흘 정도로 생각했지만, 코인 획득 효율이 좋아서 굳이 떠날 이유가 사라졌다.
‘이 기회에 코인을 좀 모으자.’
송연지와 동희는 동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
상엽과 함께 움직이면 어느새 본래 자신의 계획보다 훨씬 많은 코인이 모여 있었다.
‘뭐든지 즐겁게 만드는 힘이 있어.’
결국 그들은 설악산을 떠나려는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변종들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그들은 늑대들을 열흘 만에 전멸시켰고 전리품으로 던전 유물 조각을 얻었다.
그런데 전투를 하고 잠시 쉬는 사이, 상엽은 추종자를 불러내며 의문을 던졌다.
“야, 너 왜 그 꼴이 된 거야?”
추종자는 다시 나비로 돌아갔다.
“왜 퇴화한 거지?”
상엽의 말을 듣고 송연지가 나섰다.
“오빠, 무슨 일이에요?”
상엽은 유령 추종자와 아오나라는 신의 스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음, 알 것 같아요.”
“뭔데?”
“유물 조각요.”
송연지는 자신이 보관하던 유물 조각 중의 하나를 꺼냈다.
“이거 오빠 거예요.”
상엽의 유물은 전부 송연지가 보관하고 있었다. 상엽이 파이어스의 망치를 부탁하면서 전부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제가 맞춰 줄게요.
송연지도 이런 생각이 있기에 그냥 받아들였다.
“아오나의 신전 조각. 오빠가 가진 신전 조각 중의 하나였어요.”
“아…….”
상엽은 그제야 레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
추종자의 성장은 단순히 스킬 레벨이 아니라 유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이것도 완성이라는 거지?”
“그럴 거예요. 이 부분은 저도 몰랐어요.”
“정보 공유가 이래서 중요하구나.”
상엽은 아오나의 유물 조각을 다시 보관함에 넣었다. 그러자 추종자는 다시 새 모양으로 변했다.
“귀여운 놈.”
-아오나의 영혼에 충성을!
“귀엽진 않네.”
추종자의 빛이 화가 난 듯 잠시 커졌다.
* * *
어느덧 11월이 되었다.
그들의 설악산 사냥은 2개월 동안 계속되었고 세 개의 영역을 정리하면서 설악산 중턱에 도달했다.
“산책 좀 다녀올게요.”
사냥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송연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멀리 안 가요.”
송연지는 잠시 자리를 벗어났다. 친구들과 멀어진 그녀는 하늘이 보이는 숲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오후의 햇빛이 선물처럼 그녀의 몸을 비춰 주었다.
“이제 갈 때가 됐어.”
그녀는 시선을 내리며 아공간에 있는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이름과 전화번호만 간단히 적힌 금색 명함이었다.
명함을 보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받았던 제안이 떠올랐다.
-길드 콜렉터에서 정식으로 당신을 원합니다.
콜렉터 길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트레저 헌터 길드였다.
전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트레저 헌터들이 정보와 수집품을 이용해 자신들을 보호한다.
갓코인 유저에게 유물과 유산은 워낙 중요한 부분이라 길드의 힘 역시 상당히 막강하다. 다만 개인 전투력이 떨어지니 길드로서의 힘은 인정받지만 개인으로서는 조금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긴 하다.
-두 달만 시간을 주세요.
송연지는 그렇게 말했다. 상엽과 함께 있기 위해서였다.
“하아. 사냥만 했는데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지?”
그녀는 트레저 헌터를 결심했을 때부터 콜렉터에 들어가기를 바랐다.
하린의 신전을 통과한 후에 다시 가입 신청을 했고 허락을 받아 낸 것이다.
그녀가 받은 명함은 합격 통지서와 같은 의미였다.
“산적 오빠 망치도 꼭 구해 줘야지.”
꿈같은 휴가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낙엽이 흙을 모두 덮던 그날.
두 달간의 사냥이 끝났다.
친구들끼리 함께한 만큼 그들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코인을 모았다.
상엽이 60만 코인, 송연지는 40만 코인, 동희는 20만 코인 수준이었다.
이는 변종 처리 숫자에 비례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조심해.”
상엽은 목표가 있어서 설악산에 조금 더 있기로 했고, 송연지와 동희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유물과 유산은 제가 알아볼 테니까 괜히 코인 낭비하지 말아요.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메시지 확인하는 거 잊지 말고요.”
세 명의 친구들은 각자의 위치와 상황을 메신저에 남기기로 했다.
“상엽아, 이거 꼭 챙겨 먹어.”
산에 홀로 남는 상엽을 위해서 동희는 특별 도시락과 드링크를 남겼다.
“조심해서 내려가! 다들 또 보자!”
상엽의 외침은 이별의 아쉬움을 단박에 날려 버렸다.
친구들은 웃으며 헤어졌고 머지않은 훗날을 기약했다.
* * *
상엽이 산을 내려온 것은 보름 후였다.
‘70만 4천 코인. 좋아.’
그가 설악산에 홀로 남은 것은 목표로 했던 코인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근력 10단계 48만 코인, 근육 8단계, 유연성 8단계.’
이에 소모되는 코인은 총 70만 4천 코인이었다.
화이트 상점에서 근력을 6단계에서 10단계까지 올리는 데 드는 총액이 48만 코인이었고, 블랙 상점 근육과 유연성은 5단계에서 8단계까지 가는 데 각각 11만 2천 코인이었다.
-화이트 상점
근력 10단계
순발력 9단계
정신력 5단계
-블랙상점
근육 8단계
유연성 8단계
피부 5단계
상엽은 이 과정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
블랙 상점을 갔다가 화이트 상점에서 10단계 강화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급 상점 신체 강화 10단계.
그의 근육이 피부를 뚫을 듯이 팽창했다가 서서히 줄어들며 단단한 강철처럼 압축되는 느낌이 났다.
온몸의 모든 근육이 선명히 느껴졌을 때, 묵직했던 무게가 얼음이 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선명한 힘의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그의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변화의 시간이 끝났을 때, 상엽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을 받았다.
‘이건 대체 뭐지?’
힘의 정도가 다르다. 굉장히 응축된,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하급 상점 10단계 강화의 결과였다.
그리고 또 하나.
“중급 상점의 위치입니다.”
상엽은 조건을 충족하고 드디어 중급 화이트 상점의 위치를 받았다.
3단계 상점의 자격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남은 코인이 70코인이라 당장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
“고마워요.”
상엽은 명함을 받고 화이트 상점을 나섰다.
“경찰 누나를 만나야 하는데.”
상엽이 처음 설악산에 간 건 3월 중순이었다.
7개월이 넘도록 강차연과 연락을 하지 못한 것이다.
상엽은 일단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입니다.
전화번호가 완전히 사라졌다.
‘도망자가 됐겠지.’
무사한 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레나는 알겠지.’
상엽은 다시 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 죽은 줄 알았는데 전화를 다 하네?
“안 죽은 거 알잖아.”
레나는 상엽의 기억 구슬을 가지고 있었다. 구슬이 깨지지 않는다면 상엽이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먼저 연락하지 그랬어?”
-연락이 되긴 해?
“아, 그렇지.”
설악산 입구에서는 전화가 가능했지만 산으로 들어가서는 전파가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설사 된다고 해도 상엽은 사냥을 시작하면 전화기를 꺼 놓았다.
배터리를 관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용건이나 말해.
레나의 차가운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상엽은 흔들림이 없었다.
“강차연과 연락하고 싶어서.”
-흥, 알았어. 나 때문에 연락한 게 아니구나.
그녀는 용건을 듣자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문자가 도착했다.
강차연이 만약을 대비해 레나에게 남겨 놓은 전화번호였다.
상엽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전화를 받았다.
“누나, 살아 있어?”
-아직은.
여전히 당당한 목소리였다.
“만나고 싶은데.”
-청량리에 돌란이라는 바가 있어. 거기로 와. 얼마나 걸려?
“30분 안에 갈 수 있어.”
-늦지 마.
강차연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당당한 목소리와 달리 말투에는 여유가 없었다.
상엽은 일단 강차연이 말한 장소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