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31화 (31/300)

# 31

“나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왜요? 겁나요?”

날카로운 단검이 상엽의 목에 닿았다.

단검은 아기를 만지는 엄마의 손길처럼 부드럽게 피부를 타고 턱으로 올라갔다.

칼날이 지날 때마다 상엽의 얼굴을 덮고 있던 수염이 아래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마요. 이거 되게 날카로운 칼이에요.”

송연지의 단검은 특이한 모양이었다.

초승달 모양의 손잡이에 파란빛을 머금은 직선의 칼날이 이어진 형태였다.

“신의 유산이거든요. 하린의 손톱이라고 해요.”

“지금 그걸로 면도를 하는 거지?”

“움직이지 말라니까요. 예민한 애니까.”

다행히 상처 없이 면도가 끝났다.

“신전에 들어간 거야?”

“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어머. 면도해 준 보람이 있네요. 그런 말은 기대 안 했는데.”

송연지는 마지막으로 상엽의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음.”

“무슨 뜻이야?”

“완전 잘생기지는 않았어요.”

“쳇. 뭘 기대한 거야?”

“산적 뒤에 엄청 미남이 있을 거라 상상했죠.”

“잘생겼잖아.”

“그렇게 생각해요?”

“당연하지. 나 정도면 훌륭해.”

상엽의 자신감에 송연지는 웃고 말았다.

“신의 유산을 가진 여자가 되다니. 멋있는데.”

“한 200번쯤 죽을 뻔했어요.”

“그렇게 위험해?”

“위험한 신전이었어요. 들어가자마자 후회했는데 운이 좋았어요.”

“동희랑 똑같이 말하네.”

송연지는 눈을 깜빡였다. 설명을 하라는 압박이었다.

“내 친구야. 특이한 요리사.”

“친구도 만들었어요?”

“내가 좀 매력적이잖아. 너도 소개시켜 줄게.”

“뭐, 좋아요.”

대답을 한 송연지는 바닥에 내려 둔 배낭에서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뭐 하려고?”

“라면 끓이려고요.”

“사랑해.”

“오빠 사랑은 여전히 저렴하네요.”

송연지는 웃으며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상엽은 버너 주변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됐다.

그림자의 신 하린.

암살자로 성장하는 유저들에겐 꿈과 같은 이름이었다.

당연히 노리는 유저가 많았고 그만큼 유물의 가치도 높았다.

송연지는 강해지기 위해 자신이 가진 다른 유물을 모두 넘겨주고 이를 완성했다.

본래부터 2개 조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불가능하진 않았다.

-알려진 도전자만 7명이야.

유물이 남아 있다는 것은 도전자가 실패했다는 뜻이다.

도전자가 신전에서 사망하게 되면 유물은 다시 세상에 흩어진다.

이는 유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산을 완성한 자가 사망하면 조각으로 나뉘어 세상에 흩어졌다.

송연지는 이를 알면서도 하린의 신전에 도전했다.

그동안 모은 정보로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웠지만 신전은 훨씬 더 위험했다.

변종이 아닌 괴수들이 끝도 없이 튀어나왔고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5개월을 그 안에서 버티고서야 기회가 생겼고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시도했다.

희박한 확률이지만 그녀는 해냈다.

짙은 어둠 속에서 다섯 명의 암살자를 단숨에 처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그녀는 두 발과 한쪽 손을 잃었다.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 바닥을 기어서 신전의 재단에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재단에서 그녀는 신의 힘을 얻었다.

단검 하린의 손톱.

귀걸이 감각의 영역.

스킬 그림자의 길.

스킬 검은 속삭임.

두 개의 유산과 두 개의 스킬을 얻은 그녀는 겨우 숨만 붙은 채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레이 상점 소환권으로 치료를 진행했다.

치료비만 100만 코인이었다.

다행히 코인이 부족하진 않았다.

-150만 그레이 코인.

신전에서 그녀가 얻은 코인이 150만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온전한 몸을 얻은 송연지는 김대진에게 정보를 얻어 상엽을 찾아왔다.

송연지의 무용담을 모두 들은 상엽은 신전이 어떤 곳인지 대충은 이해할 수 있었다.

“150만 코인?”

“뭐예요? 지금 그것만 들은 거예요?”

“아니. 듣는 내내 마음이 아파서 힘들었어. 그런데 150만 코인이라고?”

툭.

그녀는 갑자기 손을 움직였고 상엽의 젓가락을 빼앗았다. 상엽은 그 움직임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먹지 마요.”

단호하게 젓가락을 빼앗은 그녀였지만 곧 다시 돌려주고 말았다.

“그렇게 불쌍한 표정 하지 마요.”

상엽은 다시 돌려받은 젓가락을 열심히 움직였다.

“신전마다 다르지만 하린의 신전에는 가장 약한 괴수가 300코인이었어요.”

“우와, 300코인?”

상엽은 젓가락질까지 멈추고 되물었다.

“대신 유산이나 유물은 없어요.”

“그래도 300코인이면 10마리만 잡아도 3천, 하루 100마리씩 잡으면 3만 코인이네.”

“100마리를 잡으면 5만 코인은 될 거예요. 2천 코인짜리도 있으니까.”

상엽은 소리가 날 정도로 침을 삼켰다.

“오빠, 지금 표정 되게 이상해요. 변태 같아요.”

“맞아. 나 지금 흥분했어.”

“진정해요. 제가 지금 다시 들어가도 통과할 자신이 없는 곳이니까.”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상엽도 그 부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엽은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신전은 무조건 혼자 가야 돼?”

“네. 그게 규칙이에요.”

“쳇. 팀으로 갈 수 있나 했더니.”

“팀으로 가는 게 꼭 좋은 건 아니에요.”

“그래?”

“많은 문제가 있어요. 결국 신의 힘을 얻는 건 한 명이잖아요.”

“하긴.”

갓코인 유저는 누구나 신의 힘을 원한다.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일이다.

“배신하기 딱 좋은 장소잖아요.”

다행히 애초에 한 명만 가는 곳이라 그런 일은 벌어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빠는 산이 좋아요? 설악산이라니. 너무 무모하잖아요.”

“산에서 사냥하는 게 제일 빨라.”

“여전하네요. 위험은 상관없는 거죠?”

“내가 위험한 게 아니야.”

“무슨 뜻이에요?”

상엽은 마지막 한 방울의 국물까지 들이켜고 냄비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 때문에 변종들이 위험한 거지.”

상엽의 말은 언제나 송연지를 다시 웃게 했다.

“라면 더 끓여 줄까요?”

“좋지! 안 그래도 부탁하려고 했어!”

“네. 잠깐만 기다려요.”

송연지는 상엽이 깨끗하게 비운 냄비를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 * *

쾅!

상엽의 해머가 다가오는 늑대의 머리를 찍는 순간, 다른 세 마리가 그의 등을 덮쳤다.

하지만 세 마리가 목표 지점에 닿기도 전에 검은 그림자가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투둑.

허무한 소리와 함께 늑대 머리 세 개가 바닥을 굴렀다.

그것을 끝으로 열 마리 늑대는 모두 빛으로 산화했다.

“꽤 하는데?”

“200번 죽을 뻔했다니까요. 그 보상이죠.”

“그래서 신전에 가는 거구나.”

“아직 멀었어요. 스킬을 강화하고 무기를 강화하려면 한참 멀었거든요.”

“신전에서 얻은 것도 강화해야 돼?”

“물론이에요. 스킬은 10단계, 무기도 10단계예요.”

“치사한 신이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신전의 무기와 스킬도 강화를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효과가 일반 무구나 스킬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얼마나 강화했는데?”

“4가지 전부 3단계예요. 1단계가 1만 코인이거든요. 신체 강화를 하느라 많이 강화하진 못했어요.”

“그걸 10단계까지 해야 한다고?”

“네.”

“도둑놈들.”

“그 말을 신들이 들었어야 하는데.”

“만나면 그렇게 말할 거야.”

그들의 대화는 다시 나타난 늑대들로 인해 중단되었다.

“진짜 많긴 하네요.”

“이게 다 코인이야.”

설악산 초입은 늑대의 영역이었다.

대부분 무리를 지어서 사냥을 했고, 나무를 밟고 도약할 정도로 민첩했다.

위력도 만만치 않았지만 상엽과 송연지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작하자.”

“좋아요!”

“너 왠지 신난 거 같다?”

“산속 데이트, 로맨틱하잖아요.”

“나랑 하는 데이트? 아니면 변종이랑 하는 데이트?”

“둘 다요!”

그들은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사흘 동안 그들은 늑대의 영역을 헤집고 다녔다. 늑대들에게 그들은 사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의 사냥이 중단된 것은 상엽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잠깐, 누가 나타났어.”

그들은 빠르게 나무 위로 몸을 숨겼다.

‘102블랙 코인.’

헌터 아이에 걸린 상대는 점점 더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메아리를 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상엽아!”

상엽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동희다!”

“오빠 친구라는 사람요?”

“맞아.”

상엽은 나무에서 뛰어내려 동희를 향해 달렸다. 송연지도 늦지 않게 그의 뒤를 따랐다.

“상엽아!”

“친구! 드디어 왔구나!”

동희는 검은 장갑을 집어넣고 상엽에게 달려왔다.

“헤헤.”

“위험하게 왜 여기까지 들어왔어?”

“나도 이제 강해졌어. 괜찮아.”

“오! 든든한데!”

“이거 먹어.”

동희는 아공간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꺼냈다. 그런데 그 순간 검은 잔상이 나타나 샌드위치를 빼앗았다.

“먹지 마세요.”

“연지야, 왜 그래?”

동희는 갑자기 나타난 송연지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상엽아, 누구야?”

“내 친구, 송연지. 그리고 이쪽은 석동희.”

상엽은 일단 지척에 있는 둘 사이로 들어가며 소개를 시켰다.

그런데 송연지의 눈빛을 본 상엽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왜 그래?”

“오빠, 제정신이에요?”

“뭐가?”

송연지는 동희를 노려보며 말했다.

“블랙 유저잖아요.”

상엽은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아, 그 생각을 못 했네.’

화이트 유저 송연지, 블랙 유저 석동희.

동희는 코인의 색깔을 따지지 않았지만 송연지는 아니었다.

“이건 먹지 마세요.”

송연지는 샌드위치를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 순간, 동희의 표정이 변했다.

“내 음식을 버려?”

“왜? 독이라도 넣었던 거야?”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물러서지 않았다.

“상엽아, 나 이 여자 죽일 거야.”

“뭐? 역시 블랙 유저답네.”

둘은 각자의 무기를 꺼냈다.

“잠깐!”

상엽은 결국 둘 사이를 몸으로 막았다.

“상엽아, 비켜. 내 음식을 버렸잖아.”

“에이. 버리다니 무슨 소리야? 잠깐 놓친 거지.”

상엽은 얼른 바닥에 떨어진 샌드위치를 들었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갔다.

“오빠!”

송연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상엽은 샌드위치를 단숨에 먹어 치웠다.

순간, 상엽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에 송연지가 급히 아공간 가방을 열었다.

“해독제 마셔요!”

상엽은 손을 저으며 샌드위치를 모두 삼키고 동희에게 뛰어가려는 송연지를 끌어안았다.

“비켜요!”

“좀 참아 보라니까.”

“뭐라고요? 지금 저 사람 편드는 거예요?”

송연지가 날카로운 어투로 묻자 동희가 대신 대답했다.

“색깔쟁이 바보 여자.”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오빠, 좀 놔 봐요!”

둘의 사이는 급격히 심각해졌다.

“상엽아, 비켜. 나도 참기 싫어. 어린 여자애가 예의도 없는 거 같아.”

“너랑 나랑 동갑이거든!”

“근데 왜 상엽이한테 오빠라 그러는데?”

“산적 오빠가 늙어 보여서 그런다! 왜? 불만 있어?”

“역시 이상한 바보 여자.”

결국 송연지가 참지 못하고 스킬을 썼다.

그녀의 몸이 연기로 흩어지더니 상엽의 품을 빠져나갔고 동희에게 돌진했다.

“그만두라고!”

어쩔 수 없이 상엽은 재빨리 이동해서 동희의 앞을 막았다.

순간 연기로 흩어졌던 송연지가 상엽의 앞에 나타났다.

“오빠, 미쳤어요?”

그녀의 칼날이 상엽의 목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었다.

“원래 친구는 목숨 걸고 지키는 거야.”

“나는 친구 아니에요?”

“같은 상황이면 너도 이렇게 지킬 거야.”

결국 송연지는 칼을 거두어들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 혼자가 아니었다.

“한 번만 더 상엽이 건드리면 내 손에 죽을 거야.”

동희의 눈빛이 악귀처럼 변해 있었다.

“자, 일단 둘 다 진정해. 알았지?”

상엽은 양쪽을 번갈아 보며 최대한 웃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전부 성인이잖아. 성인답게 말로 풀자고.”

다행히 송연지와 동희는 천천히 무기를 내리기 시작했다. 상엽은 한숨을 쉬며 이들에게 다시 말했다.

“날 봐. 대화하기 참 좋은 얼굴이잖아.”

“아닌데요.”

“그건 아니야.”

상엽은 그 말에 뒷목이 뻐근해졌지만 꾹 참고 말했다.

“드디어 둘의 의견이 일치했네.”

바라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일단 한 고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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