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9화 (29/300)

# 29

“징글징글하네.”

“상엽아, 피 난다. 이거 마셔.”

“보통 피 나면 약 발라야 하는 거 아니야?”

“먹는 게 최고야.”

드링크를 마시는 상엽의 주변은 폐허나 다름이 없었다.

사체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들 곁에는 수백 마리의 들개들이 있었을 것이다.

상엽은 동희가 건넨 드링크를 단숨에 들이켰다.

“캬!”

“맛있어?”

기대에 찬 동희의 표정에 상엽은 고개를 저었다.

“완벽하진 않아. 맛 연구가 부족해.”

“더 연구할게.”

“믿는다, 친구!”

둘은 다시 차에 올랐다.

설악산 구역에 들어온 지 닷새째.

그들은 여전히 설악산 입구에도 도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보이는 변종을 전부 처리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근데 너 참 대단한 거 같아.”

“왜?”

“이렇게 싸우는 사람은 거의 없어.”

상엽은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편한 방식으로 사냥을 해 왔기에 당연하다고 여겼다.

“목숨은 하나뿐이잖아. 근데 넌 목숨이 몇 개 되는 사람 같아.”

“그래? 들개 정도는 누구나 이렇게 잡지 않아?”

아무리 약한 변종이라도 순간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상엽처럼 포위망 안으로 달려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뭐 계속 싸우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

상엽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받아넘겼다.

“저기, 이제 설악산 보인다.”

원래는 많은 상점이 있고, 등산로로 잘 갖춰져 있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유령 마을이 되어 변종들의 은신처로 쓰이는 실정이었다.

“들개랑 들고양이가 안 보이네. 이제 시작인 거 같은데.”

설악산은 오랫동안 토벌 작전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특이한 변종 분포가 되어 있었다.

설악산 정상을 중심으로 과녁판 같은 여러 겹의 영역이 형성되어 있었다.

외곽으로 갈수록 약한 변종이 있었고 중심에 강한 변종이 자리 잡은 형식이었다.

“정상까지 가자.”

“알았어.”

상엽은 이 구조를 이미 알고 있었다.

김대진 준장에게 대략적인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구역이 아님에도 상당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이제부터 조심해.”

상엽은 차를 세웠다.

예전에는 주차장이었던 설악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본래 깨끗하고 활기 넘치던 등산로 입구는 떨어진 간판과 각종 오물, 부서진 구조물로 인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숨어 있는 놈들이 꽤 되는데.”

“고양이 같아.”

“정리하자.”

상엽이 먼저 움직였다. 동희는 반대쪽 방향의 상점으로 달려갔다.

동희도 상엽과 함께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위험한 전투 형식을 배우게 되었다.

위기도 많았지만 어떻게든 버텨 내고 있었다.

‘상엽이가 3마리 처리할 때, 한 마리라도 잡자.’

그는 이렇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쾅!

상엽이 먼저 건물의 벽을 때리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숨어 있던 변종들이 일제히 튀어나왔고 조용하던 주차장은 괴성으로 뒤덮였다.

‘너무 많은데.’

상엽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저돌적인 들개에 비해 고양이들은 지능적인 공격을 많이 해서 오히려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너무 쉽게 봤나?’

주차장에 진을 치고 있는 고양이는 200마리가 넘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들고양이를 한 번에 상대한 적은 없었다.

“동희야! 중앙으로!”

위기를 느낀 상엽은 맞서 싸우지 않고 차를 세워 놓은 주차장 중앙으로 뛰었다.

막 전투를 시작하려던 동희도 상엽의 말에 따랐다.

“이거 먹어!”

동희는 아공간 가방에서 지금까지 보여 주지 않았던 둥근 형태의 떡을 꺼냈다.

상엽은 일단 이를 받아 입 안에 집어넣었다.

‘악!’

그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마치 최루탄을 먹은 것처럼 맵고 시큼한 맛이 몸 전체를 쥐어짜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분노한 괴수처럼 폭발적인 힘이 솟았다.

“유지 시간이 짧아. 3분 정도가 한계야.”

상엽은 대답할 틈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달려드는 고양이들을 상대했다.

동희 역시 같은 떡을 먹고 전투를 시작했다.

콰쾅!

상엽은 굳이 고양이를 직접 때리지 않았다.

주변 땅을 가격해도 피부가 단단하지 않은 고양이는 스트라이크의 폭발과 파편만으로 처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동희는 아니다.

맨주먹으로 싸우는 동희는 고양이와 근접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상처가 쌓여 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상엽의 무기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가 만든 폭발과 파편은 동희에게도 피해를 주었다.

“동희야, 무리하지 말고 버티기만 해.”

동희는 상엽의 말에 대답할 틈도 없었다. 그리고 고양이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뭐야?’

지금까지 들고양이들은 영역 안에 있지만 단체 생활을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명령을 받는 것처럼 포위망의 거리를 변화시켰다.

‘위험하다.’

상엽은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꼈다.

‘빨리 나가야 돼.’

변수가 발생하기 전에 피하지 않으면 빠져나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동희야!”

결국 상엽은 동희의 손을 잡고 포위망을 뛰쳐나왔다. 그 과정에서 온몸에 고양이의 발톱 자국이 남았다.

피부 강화가 아니었다면 난도질이 되었을 법한 공격이었다.

“뛰어.”

상엽은 뒤로 돌아보지 않고 최고의 속도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고양이들은 주차장 밖으로는 따라오지 않았다.

“후우.”

상엽은 길게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고양이들은 마치 놀리듯이 상엽이 주차한 차 위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중의 한 마리가 상엽의 눈에 띄었다.

“저 녀석이구나.”

다른 녀석들에 비해 덩치가 두 배는 됨직한 고양이가 있었다.

화염 같은 붉은 털에 사신처럼 검은 눈을 가진 녀석이었다.

무려 5천 코인을 가진 고양이를 보며 상엽은 이를 갈았다.

“비만 고양이 따위가.”

“쿨럭!”

고양이를 주시하던 상엽은 갑작스러운 기침에 시선을 돌렸다.

“동희야!”

동희가 자신의 뒷목을 잡으며 쓰러졌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주하는 과정에서 위험한 곳이 다친 것이다.

“움직이지 마.”

상엽은 정령의 정수를 꺼내며 얼른 치료를 시작했다. 다행히 피가 멈추면서 위기를 넘겼다.

“여길 안 오는 이유가 있구나.”

“미안해, 나 때문에.”

“너 때문에 그나마 산 거야. 혼자 왔으면 나도 죽었을 거야.”

“차는 어쩔 거야?”

“그러게. 내 전 재산인데.”

아무리 비싸도 목숨보다 소중할 수는 없었다.

“일단 돌아가자.”

설악산 공략 첫 시도는 주차장까지가 한계였다.

* * *

그들은 방어선까지 다시 돌아오는 데 열흘이 걸렸다.

뚫고 지나온 자리로 변종들이 들어찼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영역은 과녁판처럼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들은 직선으로 이를 뚫었으니 다른 변종들이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이다.

결국 빠져나올 때도 똑같은 전투를 펼쳐야 했다.

차까지 잃은 그들은 들어갈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방어선에 도착해서 코인을 확인했을 때, 그들의 고생은 분명한 보상을 받았다.

그들이 12일 동안 설악산 지역에서 획득한 코인은 7만 5천 코인이 넘었다.

정확히는 상엽이 48700코인을 모았고, 동희는 18900코인을 모았다.

시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한계를 느낀 터라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다시 도전할 거지?”

“당연하지.”

그들은 상점을 찾기 위해 서울로 돌아갔다.

상엽은 고민 끝에 신체 강화를 선택했다.

기술을 강화하는 것이 당장 전투는 쉬워지겠지만 결국에는 신체 강화가 기본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더 강해지면 돼.’

4만 8천 코인으로 화이트 상점의 근력과 순발력을 1단계씩 올리는 데 3만 2천 코인을 소모했고, 4단계였던 정신력도 상승시켰다.

마지막으로 블랙 상점의 피부 강화를 1단계 올리면서 4만 8천 코인이 소모되었다.

이로 인해 상엽의 신체 강화 단계는 근력과 순발력이 6단계였고 나머지는 일괄적으로 5단계가 되었다.

‘신체 강화는 전부 하자.’

그는 여전히 신체 강화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신체 강화가 우선이고 스킬을 부수적인 힘으로 믿었다.

“동희는 어디 있지?”

일부러 동희를 피해서 블랙 상점을 다녀온 상엽은 전화기를 들었다.

동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다.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동희는 미안한 표정으로 상엽에게 말했다.

“혼자 강해질 시간이 필요해. 서너 달 후에 다시 만나자.”

“그래, 알았어.”

상엽은 고민하지 않고 동희의 결정을 존중했다.

‘연지와 같은 말을 하네.’

그가 친구라 생각한 두 명은 같은 선택을 했다.

‘나 때문인가?’

동희는 상엽에게 10병의 음료를 넘겨주고는 서울을 떠났다. 상엽은 터미널에서 그를 배웅하고 돌아서면서 송연지를 떠올렸다.

-6개월만 기다려요.

송연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개월 전이었다.

‘잘 있겠지?’

그는 송연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다.

송연지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꼭 다시 보자.”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갓코인 유저의 운명이다.

* * *

혼자가 된 상엽은 다시 설악산으로 갔다.

“일할 시간이네.”

그는 설악산 방어선을 통과해 들개가 나타나는 지역으로 갔다.

“난 이런 곳이 좋아.”

상엽이 원하는 두 가지 조건은 사냥꾼이 없는 것과 변종이 많은 것이다.

“일단 여기 들개부터 정리해 볼까?”

그는 설악산 변종 영역의 가장 외곽을 택했다.

들개는 익숙한 사냥감이었고, 그는 여러 마리를 상대하는 데 익숙했다.

“반갑다, 똥개들.”

그는 해머를 꺼내며 들개들에게 걸어갔다.

그 순간, 그의 머리 위에 하얀빛이 떠올랐다. 빛은 곧 나비 모양으로 변했다.

“너도 있었지? 잘해 보자.”

상엽은 추종자와 함께 들개 사냥을 시작했다.

원형으로 중첩된 영역은 자연스럽게 외곽의 영역이 커지는 구조였다.

설악산 외곽의 들개들은 그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상엽은 한 달 동안 들개들의 영역을 돌았다.

“이제 반 왔네.”

단 하루도 쉬지 않았지만 영역의 반을 정리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이제는 들개들의 밀집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넌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거야?”

지난 한 달 동안 상엽의 유일한 친구는 유령 추종자였다. 그런데 나비로 변한 추종자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았다.

“스킬 레벨을 올려 볼까?”

상엽은 이를 깊이 고민했다.

하루에 4천 코인.

그는 한 달 동안 12만 코인을 넘게 모았다. 다만 특별한 변종이 없어서 유물이나 유산 조각은 하나도 얻지 못했다.

“어차피 고양이 지역으로 가려면 올리긴 해야 돼.”

예전 기억을 떠올리던 상엽은 필요한 스킬을 떠올렸다.

‘고스트 실드.’

고양이 지역으로 가기 전에는 반드시 강화해야 하는 스킬이었다.

“10단계까지 17만 9200코인.”

현재 7단계인 고스트 실드를 10단계까지 올리는 데 필요한 금액이었다.

“일단 살아야지. 아끼지 말자.”

그는 결정을 내렸다.

“6만 코인만 더 모으면 돼.”

상엽은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보름 후.

그는 목표로 했던 19만 코인을 모았다.

홀로 45일을 사냥하면서 잡화 소모도 많아서 이를 보충하기 위해 19만 코인이 필요했다.

“레나도 오랜만이네.”

그는 레나의 웃음을 떠올리며 소환권을 사용했다.

잠시 후, 예상대로 레나는 상엽 앞에 나타났다. 몸매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청바지에 한쪽 어깨가 드러난 하얀색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었다.

“역시 예쁘네.”

“역시 매너가 없어.”

“뭐 하고 있었어?”

“남자 꼬시고 있었어.”

“거짓말.”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그 정도 모습이면 유혹하기 전에 넘어올 텐데.”

레나는 상엽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으며 다가갔다.

“왜 불렀어?”

“상점으로 부른 거야.”

“그것뿐이야?”

“매너를 지킨 거야. 안 지켜도 되는지 눈치 보는 중이고.”

“그래?”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아무도 없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엽이 진한 키스를 시도했다. 레나는 거부하지 않았고 오히려 상엽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하지만 상엽은 더 이상을 시도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변종이 득실거리는 지역이거든.”

“행복한 죽음이잖아. 어때? 난 괜찮은데.”

“아직은 아니야.”

상엽은 한 발 물러서서 손을 내밀었다. 레나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상점을 열었다.

“고스트 실드 10단계.”

“드디어 스킬 완성이네.”

“강화가 아니라 완성?”

“최종 단계. 그게 진짜 신의 힘이야. 신이 쓰던 기술을 그대로 쓰는 거지.”

10단계 스킬.

상엽이 처음으로 스킬을 완성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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