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3월 8일 아침.
꿈같은 휴가가 끝났다.
레나의 오피스텔을 나섰을 때, 입구에는 검은색 SUV가 세워져 있었다.
“받아.”
그녀는 상엽에게 자동차 키와 사각형의 카드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
“선물.”
상엽이 2년 동안 철거반에서 일한 임금보다 더 비싼 외제차였다.
그리고 사각형의 카드는 운전면허증이었다.
“이게 선물이라고?”
“신경 좀 썼어. 면허증은 정식 등록된 거니까 걱정하지 마.”
레나는 아이를 놀리듯 웃으며 말했다.
“일주일 동안 고생했어. 보답이라 생각해.”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무슨…….”
“맞아, 봉사료야.”
레나는 상엽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몸을 돌렸다. 하지만 상엽이 그녀를 다시 잡아 끌어당겼다.
그리고 진하게 입을 맞췄다.
“이건 계약 위반인데.”
긴 입맞춤이 끝나자 레나가 따지듯 물었다.
“선물은 이걸로 됐어.”
상엽은 그녀의 손에 자동차 키를 돌려주었다.
“안녕. 면허증은 고마워.”
그는 손을 흔들며 몸을 돌렸다. 그렇게 외제차를 놔두고 멀어지려는데 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봐.”
상엽은 그 말에 웃고 말았다.
갓코인 유저들의 인사법을 레나에게 처음 듣는 순간이었다.
* * *
“나 진짜 거지구나.”
상엽은 통장의 돈을 모두 털어서 차를 샀다.
물가 상승은 원자재 상승도 포함됐고 당연히 자동차의 가격도 올라갔다.
“괜찮아. 잘한 거야.”
“별로 안 괜찮아 보십니다.”
하급 화이트 상점 홍만식은 웃으며 상엽의 상태를 말해 주었다.
그들의 사이에 있는 테이블에는 현금 3천만 원이 놓여 있었다.
“가지고 가시지요.”
홍만식은 3천만 원을 챙기고 열쇠 하나를 올려 주었다.
“새 차나 다름없습니다.”
상엽은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잡았다.
“더 볼일이 있으십니까?”
“아니에요.”
그는 공허한 마음을 달래며 부동산을 나섰다.
도로에는 SUV가 세워져 있었다. 국산 중고차로 타고 다니기에 나쁘지 않았다.
“좋아. 이게 다 투자야.”
애써 스스로를 위로한 상엽은 차 문을 열었다. 그런데 운전석에 타려는 상엽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잠시 이야기 좀 해도 되겠습니까?”
30대 초반의 사내였다. 목소리는 낮고 굵었고 반듯한 인상에, 청바지에 깔끔한 세로 줄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화이트 유저 김관석입니다.”
그는 하얀색 단검을 꺼내 보였다. 끝이 살짝 휘어진 단검의 손잡이에는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확인을 시킨 그는 다시 단검을 집어넣으며 상엽의 대답을 기다렸다.
“타세요.”
상엽은 먼저 운전석에 올랐다. 그러자 김관석은 조수석에 올랐다.
“혹시 길드가 있으십니까?”
그는 나이가 많음에도 상엽을 무시하지 않고 정중한 어투로 물었다.
“아직요.”
“화이트 유저란 걸 먼저 볼 수 있을까요?”
상엽은 곧바로 화이트 해머를 보여 주었다.
“아직 기본 무기를 쓰시는군요.”
“네.”
“워해머만 사용하시는 겁니까?”
“그러고 있어요.”
“특이하군요. 해머를 쓰는 유저는 처음입니다.”
서로 무기를 확인하는 걸로 대화가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코인이 없는데도 제가 화이트 유저인 걸 알아보시네요.”
“화이트 상점을 방문하신 거라 생각했습니다.”
“일반인일 수도 있잖아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니까요.”
“아…….”
상엽은 순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상점 근처에서 날 지켜볼 수도 있구나.’
그게 정보가 되면 상엽의 비밀도 들킬 가능성이 있었다.
“팔라딘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아니요.”
“제가 속한 화이트 길드입니다.”
“화이트 길드라면 화이트 유저만 모인 건가요?”
상엽의 질문에 김관석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레이 길드를 보신 겁니까?”
화이트와 블랙이 섞인 길드를 그레이 길드라 불렀다.
“아니요. 정확히 말하면 아는 게 별로 없어요.”
“한국은 그레이 길드가 제법 있는 편이지요. 하지만 거대 길드는 될 수가 없습니다. 내부 분쟁이 심하니까요.”
“그렇군요.”
“거대 길드는 대부분 화이트나 블랙으로만 운영됩니다. 팔라딘도 마찬가지죠.”
“거대 길드인가요?”
“정확한 정보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전 세계에 길드원이 있습니다. 전 한국 지부의 부길드장입니다.”
김관석은 거대 길드라는 걸 슬쩍 내비쳤다.
“강요는 하지 않습니다. 언제든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궁금한 것 하나 물어도 될까요?”
“말씀하시지요.”
“길드에 들어가면 뭐가 좋은가요?”
상엽은 지금까지 이 부분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에 김관석은 간단한 예를 들어 주었다.
“집단의 힘이 가장 큽니다. 분쟁을 줄이고 안전할 수 있지요. 물론 집단끼리의 싸움이 일어나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지만요.”
그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장점과 단점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생활면에서도 장점이 생기고, 정보력에도 강해집니다. 경제적인 지원이나, 정치적인 부분에서 생기는 문제도 길드 차원에서 해결이 되지요. 전체적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개인 주택을 생각하면 될까요? 모이면 힘이 되죠.”
“그건 좋네요.”
“유물과 유산 조각은 모으기가 힘들지요. 하지만 길드원이 많다면 그 확률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서로 필요한 것을 안정적으로 교환할 수 있지요.”
“정보도 공유하고요.”
“물론입니다. 정보가 곧 코인이죠.”
목숨을 건 전장에서 집단을 만드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생각해 볼게요.”
“기다리겠습니다.”
김관석은 명함을 상엽에게 주고 차에서 내렸다.
“또 뵙기를.”
“또 봐요.”
인사를 끝으로 김관석은 멀어졌다.
“길드라…….”
작은 팀은 만난 적이 있지만 거대 길드와의 대화는 처음이었다.
화이트 길드, 블랙 길드.
“진짜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구나.”
아직도 상엽은 갓코인 유저로서 경험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
“휴가는 끝났어.”
상엽은 다시 마음을 잡았다.
* * *
“우와, 운전도 할 줄 알아?”
“당연하지.”
상엽은 서울에서 동희를 다시 만났다. 사냥터로 가기 전에 밥이라도 같이 먹기 위해서였다.
“밥은 먹었어? 도시락 싸 왔는데.”
“오늘은 남들처럼 하루 지내보자.”
“무슨 뜻이야?”
“식당 가서 밥 먹자고.”
상엽은 조금 떨렸지만, 태연한 척하며 동희의 말을 기다렸다.
“평범하게?”
“응, 어때?”
“좋아. 헤헤.”
다행히 동희는 상엽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자, 그럼 간다.”
상엽은 얼른 화제를 돌리고 차를 몰았다.
“안전 운전 하는구나.”
“당연하지. 안전이 최고야.”
“싸울 때는 안 그렇던데?”
“싸울 때는 나만 죽지만 운전은 남도 죽잖아.”
“역시 넌 생각이 깊어.”
상엽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보는 칭찬에 웃고 말았다.
“그런데 언제 다시 사냥터에 갈 거야?”
“내일.”
“어디로?”
동희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이에 상엽은 숨기지 않고 계획을 말했다.
“설악산에 갈 거야.”
“정말 거길 간다고?”
대한민국의 최고 위험 지역으로 손꼽히는 지역이 바로 설악산이다.
‘유일한 군사 작전 실패 지역.’
대대적인 소탕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군대가 괴멸된 지역이라 최고 위험 지역이었다.
여전히 작전 지역으로 ‘출입 불가 지역’이었지만 실질적인 소탕 작전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주요 도시와 멀고, 산세가 워낙 깊어 군대에서도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
여전히 방어선만 펼쳐서 수도권으로 변종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실정이었다.
“거긴 사냥꾼들도 잘 안 간다고 하던데.”
동희도 설악산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다.
“변종들이 많다고 들었어. 강한 놈도 많고.”
“너 왜 기대하는 눈빛이냐?”
“새로운 재료가 많잖아. 헤헤.”
동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상엽에게 물었다.
“같이 가면 안 돼?”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는 알지?”
“상관없어.”
상엽도 동희가 함께 간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요리만으로도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한다.
“그런데 넌 어떻게 그런 요리를 하게 된 거야?”
상엽은 운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질문을 하고 나서 실수를 깨달았다.
‘이런 건 묻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데 동희의 대답이 의외였다.
“요리의 신전에 다녀왔어.”
“뭐?”
상엽은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차를 멈출 뻔했다.
“신전을 통과한 거야?”
“응. 그래서 스킬을 얻게 됐어. 그런데 연구는 내가 직접 해야 돼.”
“특이하네.”
“응. 그런데 아직 멀었어. 이제 겨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니까.”
상엽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신전이라…….”
“쉽지 않아. 나도 거의 포기했었는데, 운이 좋아서 통과했어.”
항상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던 동희도 신전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쉽지 않을 건 알고 있어. 그래도 필요한 게 있으면 해야지.”
“나도 그럴 거야. 그런데 유물 모으기가 너무 어려워.”
사실 상엽에겐 완성된 유물이 하나 있긴 하다. 그런데 솔직히 신전의 보상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좋은 오함마도 구해야 하는데.”
“안 그래도 그거 내가 조금 알아봤어.”
“알아보다니?”
“다크 마켓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한 번씩 거기에 요리를 팔거든.”
“다크 마켓이 뭔데?”
“브로커들이 유물이나 유산 조각을 교환하는 곳이야. 수수료가 좀 비싸긴 한데 안전하게 교환할 수 있으니까.”
동희가 브로커와 접촉한 것은 가마솥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상엽의 해머도 같이 알아보았다.
“길드들도 많이 이용해. 중요한 건 풀지 않지만.”
자신이 원하는 걸 위해 필요 없는 걸 내놓는 것이다. 이런 시장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브로커들이 판매와 교환을 대행했다.
“무기는 칼이나 활, 지팡이가 가장 인기가 좋아.”
어디든 많이 사용하는 무기일수록 수요가 높았다. 그만큼 거래 조건도 까다롭고 가격도 고가이기 마련이다.
“오함마는?”
“웃던데.”
“뭐?”
“그런 건 아직까지 찾는 사람 없었대. 한참 웃다가 한번 알아본다고 하더군.”
“쳇.”
“투덜거리지 마. 차라리 잘된 거지. 쓰는 사람이 없으면 가격도 쌀 거고. 곧 연락이 올 거야.”
“수수료는 얼만데?”
“건마다 달라. 이번 거는 선금 2천만 원. 거래가 성사되면 조각 하나당 3천만 원이야.”
끼이익!
상엽은 놀라서 차를 멈췄다.
“얼마라고?”
“선금 2천. 조각 하나당 3천만 원. 뭘 이 정도로 놀라? 인기가 좋은 것들은 특별 경매도 있어.”
“경매?”
“작년에 할란의 검과 관련된 조각은 50억에 팔렸다는 소문도 있어. 그 이상도 있다는데, 나는 아직 모르고.”
상엽은 너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억 단위를 이렇게 쉽게 말하는 동희가 도리어 신기하게 보일 지경이다.
“너 그렇게 돈이 많아?”
“많지는 않아.”
“얼마나 있는데?”
“3억쯤?”
상엽은 3억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동희에게서 거리감을 느꼈다.
“너 부자구나.”
“부자는 무슨.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하다. 너도 벌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벌 수 있잖아.”
“하긴 뭐…… 그래서 넌 뭘로 돈을 벌었는데?”
“뭐긴 뭐야. 요리 팔아서 벌지.”
“아!”
상엽은 자신이 마셨던 음료를 떠올렸다.
“얼마에?”
“다른 건 안 팔고 드링크만 파는데, 병 하나당 2백만 원.”
“그게 2백만이나 해?”
“응. 거대 길드에 독점으로 주면 더 벌 수도 있는데, 안 해.”
대량 주문으로 살 경우 오히려 금액이 올라갈 정도로 인기 있는 물품이었다.
“브로커가 먹는 돈도 있으니까 실제로는 더 비싸다는 거구나.”
“응.”
상엽은 그 말을 듣고 한 가지를 결심했다.
“와! 내가 그럼 네 음식 먹으면서 엄청 배부른 소리 한 거네. 앞으론 군소리하지 말고 먹어야겠다.”
“킥킥, 그래. 나도 네가 먹어 주는 건 즐거워서 좋아.”
상엽은 항상 동희의 음식을 급하게 먹었다. 그게 동희의 눈에는 맛있게 먹는 걸로 보였다.
“가자. 내가 스페셜 요리로 해 줄게. 최근에 개발한 거 있거든.”
“좋아! 가자!”
상엽의 차가 다시 출발했다.
* * *
설악산 출입 불가 지역은 주변 도시를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가장 큰 위험 지역이었고, 설악산에서 한참 떨어진 지역에 방어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워낙 지역이 넓어 방어 병력이 집중되어 있지 않고, 최대한 빨리 지원을 가는 방식이었다.
이로 인해 방어선과 변종 출현 지역까지의 거리가 있었다.
출입 불가 지역이라고 해도 상엽의 차는 무사히 방어선을 넘었다.
“자, 준비됐지?”
“응.”
“보이는 놈은 전부 다 잡는 거야.”
“전부 다?”
“설악산 토벌이지. 군대에서 못 하는 걸 우리가 하는 거야.”
상엽은 이 방식이 코인을 모으는 데는 최고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강해져서 돌아가자!”
“응!”
그들의 앞에 드디어 변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앞에는 200마리가 넘는 들개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상엽아, 너무 많지 않아?”
끼이익!
상엽의 차가 긴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멈췄다.
“그래 봐야 똥개야.”
상엽은 차 문을 열고 내렸고 동희도 뒤따랐다.
‘엄청 많다고 하더니.’
설악산 지역의 의뢰는 받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했다. 그 이유를 상엽은 직접 몸으로 느꼈다.
그냥 따돌리고 갈 숫자가 아니었다.
“준비됐지?”
“응.”
“가자.”
상엽은 화이트 해머를 꺼냈다. 그러자 동희의 양손에 검은색 장갑이 나타났다.
화이트와 블랙.
그들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같은 편이 되었다.
‘거대 길드는 못 들어가겠네.’
상엽은 색깔이 아니라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이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온갖 군상들이 다 모이는 곳이 노가다 판이니까.’
하지만 친해지면 그들만큼 좋은 사람들이 없다.
“먼저 간다.”
상엽이 먼저 들개들을 향해 뛰었다. 동희가 등 뒤에 있지만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동희도 사심 없이 상엽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둘은 하나가 되어 전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