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7화 (27/300)

# 27

대한민국 특수기동대 형사 강차연.

그녀는 갓코인을 알기 전부터 강력반을 꿈꾸는 경찰이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슬림한 체구에 여자라는 차별로 인해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성범죄를 전담하는 여자형사기동대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범죄자를 잡고 갓코인을 얻게 되었다.

살인이라는 죄책감을 갓코인으로 바꾼 그녀는, 그때부터 범죄자를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그러던 중에 아동 성범죄자 몇 명을 직접 처리하면서 문제가 됐고 경찰을 그만둘 위기에 처했다.

그때, 정부에서 특수기동대를 만들어 그녀를 영입했다.

갓코인 유저 세 명으로 구성된 특수기동대였다.

갓코인 범죄자를 대상으로 하는 부서였고 강차연은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다.

“이제 끝이야.”

강차연은 벽처럼 솟아오른 빌딩을 보고 있었다.

“잘못한 놈은 벌을 받아야지. 돈이 있든, 없든.”

그녀는 바지 주머니에 있는 서류 한 장을 꺼냈다. 구겨진 서류는 누군가의 신상 정보였다.

“서장길. 확인된 성폭행만 7건, 살인 2건.”

강차연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의심 성범죄 22건, 살인 5건. 세금도 안 내고, 처벌도 안 받고.”

그녀는 서류를 구겨서 바닥에 던졌다.

“이런 놈이 무죄라고?”

어제 재판에서 서장길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갓코인 유저라 이거지?’

재계와 정계에 깊게 손을 뻗은 그는 확실한 물증이 있음에도 재판부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권력을 가진 갓코인 유저라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경찰에서 왔어요.”

강차연은 25층 빌딩 로비로 들어서서 경비원에게 신분증을 내밀었다.

“그건 가지세요. 이제 필요 없으니까.”

그녀는 신분증을 돌려받지 않고 빌딩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뜸 화제경보기 앞에 섰다.

쾅!

그녀는 화제경보기를 후려쳤다.

작은 주먹에 경보기가 박살 나며 건물 전체에 시끄러운 사이렌이 울렸다.

놀란 사람들이 허둥지둥하자 그녀는 빌딩 전체가 울리도록 크게 외쳤다.

“전부 나가세요! 위험한 변종이 이 빌딩 안에 있습니다!”

변종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실제로 불이 난 것처럼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놀란 경비원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강차연에게 와서 물었다.

“위험한 변종이 있다니까요.”

“어디 변종이 있단 말입니까?”

강차연은 손가락을 세워 자신을 가리켰다.

“여기 있잖아요. 제가 그 위험한 변종이에요.”

경비원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강차연이 25층의 가장 큰 문 앞에 서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분 남짓이었다.

그녀가 지나온 길에는 이미 수십 명의 사내들이 쓰러져 있었다.

강차연은 자신의 목적지 앞에 놓인 마지막 문을 열었다.

활짝 열린 문 안에는 고급 소파에 앉아 있는 40대 중년 남자가 있었다.

“서장길.”

“강차연 형사님, 다시 뵈니 반갑네요. 그런데 영장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소파에 몸을 묻고 다리를 꼰 서장길은 여유롭게 웃었다.

“경찰로 온 거 아니야.”

“그럼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갓코인 유저로 왔어. 무슨 말인지 알지?”

“특수기동대 규칙에 어긋날 텐데요.”

“나 이제 경찰 아니야. 더러워서 못 해 먹겠더라고.”

쩌엉!

묵직한 진동 소리가 발생하면서 강차연의 몸이 강철로 변했다.

그렇지만 서장길은 여전히 여유를 부렸다.

“형사님 동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네요.”

강차연은 그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두 명의 사내가 복도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강차연, 그만둬.”

40대 초반의 대머리 사내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뒤에는 30대 초반에 엄청난 근육을 가진 사내가 있었다.

“특수기동대 3분이 전부 모였군요. 제가 술이라도 한잔 사 드릴까요?”

서장길의 여유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를 본 강차연이 서장길을 향해 뛰었다.

“강차연!”

그녀와 서장길의 사이에 얼음 장막이 올라왔다.

챙!

강차연이 장막을 부수고 돌진했지만 그 찰나의 틈에 서장길은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두 명의 형사가 강차연의 앞과 뒤를 막았다.

“나쁜 놈은 놔두고 전 잡겠다는 건가요?”

“기동대 수칙을 위반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면 최대한 조용히 수습할 테니 그만둬.”

기동대장 박석태.

강차연을 기동대로 영입한 인물이었다.

“두 번 참았어요. 그리고 세 번째는 참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요.”

“명령이다,그만둬.”

“더러운 새끼들.”

“강차연!”

“닥쳐. 주둥이에서 하수구 냄새 나니까.”

챙!

그녀의 강철 몸에서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솟았다.

어제까지 동료였던 특수기동대의 싸움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10분이 흘렀다.

강차연의 강철 피부는 여전히 건재했다. 상대들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경찰이 범죄자와 같은 편에서 싸운다? 재미있네.”

그녀는 두 명의 경찰뿐만 아니라 서장길과도 싸우고 있었다.

‘상황이 안 좋아.’

그녀의 방어 능력과 스킬은 세 명을 압도했다. 하지만 공격은 아니었다.

어설픈 갓코인 유저는 그녀의 신체 능력을 감당하지 못했지만, 지금 상대들은 그 수준을 넘어선 사람들이었다.

수백 번의 공격을 버텨 냈지만 정작 그녀의 공격은 거의 통하지 않았다.

이것은 결국 그녀의 위기로 이어졌다.

전투가 시작된 지 20분이 흘렀을 때, 사무실 안은 거친 숨소리로 가득했다.

“징글징글하네요, 형사님.”

서장길은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제 끝인 거 같은데. 아깝네요. 그 훌륭한 몸이 사라지다니.”

그는 강차연의 몸을 천천히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강차연은 그의 혀를 뽑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은 못 버텨.’

강철 피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방어에 한계가 온 것이다.

이를 알아차린 상대는 그녀를 더욱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강차연은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할 수가 없었다.

‘저 자식은 죽여야 돼.’

강차연은 단 한 가지만 생각했다. 끝도 없이 뒤로 밀리면서 오직 서장길의 행동만 주시했다.

쾅!

두 경찰의 주먹이 동시에 강차연의 몸을 때렸다. 강차연의 움직임이 충격에 멈추는 순간, 서장길이 옆으로 접근했다.

푹.

서장길의 칼이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런데 반쯤 들어가던 칼날이 멈췄다.

강차연이 서장길의 손을 잡은 것이다.

“개새끼.”

그녀는 서장길을 끌어당겨 목을 잡았다.

그 순간 다른 경찰들이 다시 강차연의 몸을 때렸다. 수십 번의 타격을 당하면서도 강차연은 끝까지 서장길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가 원하던 소리가 들렸다.

두둑!

서장길의 목이 부러졌다.

강차연은 이에 그치지 않고 그의 머리를 끌어당겼다.

그의 목이 몸과 분리되며 뽑혔고, 그 순간 두 경찰은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강차연의 몸을 때렸다.

쾅!

강차연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아직 안 끝났어.’

그녀는 빛으로 흩어지는 서장길을 확인했다. 그리고 떨리는 몸을 다시 일으켰다.

이미 그녀의 강철 피부는 사라지고 없었다.

“강차연, 적당히 했어야지!”

기동대장 박석태는 지금까지 꺼내지 않았던 무기를 잡았다.

2미터에 달하는 창이었다. 그의 옆에 있던 사내도 양손으로 잡는 대형 검을 꺼냈다.

“대장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처리해. 그래야 뒤탈이 없어.”

사형 선고였다.

“덤벼, 비리 경찰 새끼들.”

강차연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빨리 끝내지.”

두 경찰은 마무리를 확신하며 강차연을 향해 뛰었다.

강차연은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을 결심했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태풍 같은 기세가 느껴졌다. 그리고 건물 전체를 울리는 소음이 이어졌다.

콰쾅!

지진이 난 것처럼 건물 전체가 울렸고 강차연은 흩어진 붉은 물결을 보았다.

자신에게 달려들던 두 명의 형사가 핏물로 흩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안녕, 멋진 누나.”

나타난 이는 상엽이었다.

“미안해. 안 끼어들려고 했는데…….”

상엽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세금이 아까워서 끼어들었어. 이건 세금 환급이라 생각하고 가져갈게.”

그는 두 경찰이 남긴 유물과 유산을 모두 챙겼다.

“저건 누나가 가져. 누나가 잡았으니까.”

“너…….”

상엽은 놀란 강차연을 이끌고 서장길이 소멸된 장소로 이끌었다.

“누나, 일단 뒬까? 주변에 경찰이 쫙 깔렸던데?”

강차연이 유물과 유산을 모두 챙겼을 때, 상엽이 그녀의 허리로 손을 집어넣었다.

펑퍼짐한 옷에 숨겨진 얇은 허리가 상엽의 팔에 감겼다.

“성추행 아니다, 경찰 누나.”

“나 이제 경찰 아니야.”

“신고는 안 할 거지?”

“당연하지.”

상엽은 웃으며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좀 거칠 거야. 초보 운전이라서.”

그는 곧장 부서진 사무실의 벽을 향해 뛰었다.

쾅!

상엽은 벽을 부수고 뛰어올랐다.

* * *

“그래서 결국 구해 주고 왔다고?”

“응. 유물과 유산도 잔뜩 챙겨 왔지.”

“그 오지랖이 널 죽일 거야.”

상엽은 오피스텔 소파에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레나의 곁으로 갔다.

“그 전에 네 질투 때문에 죽을 거 같은데?”

“질투?”

“아니야?”

상엽의 질문에 레나는 진한 비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착각하지 마. 널 이용해서 나도 즐기는 거뿐이니까.”

“그럼 아무 문제 없잖아. 그리고 난 아직 내 기억을 돌려받지 않았어.”

“언제든 가져가.”

“안 그러려고.”

상엽은 레나의 곁에 앉아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 기억은 계속 네가 가지고 있어.”

“뭐?”

“언제든 내가 죽으면 너 가지라고.”

“갑자기 왜 그래?”

“대신 우리 내기, 매년 하는 게 어때?”

“결국 그거였어?”

레나의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 이에 상엽이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이렇게까지 안 할 거야. 성인식은 이번에만.”

“무슨 뜻이야?”

“여기 오는데 좋더라고.”

레나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상엽을 보았다.

“나 원래 갈 곳이 없거든. 그런데 갈 곳이 있고, 와도 되는 곳이 있는 거. 그게 너무 좋았어.”

“그러니까 집에만 올 수 있게 해 달라는 거야?”

“응. 이번처럼 매년 3월에 일주일만. 네가 원하지 않는 건 안 해도 돼. 어때?”

그 말에 레나는 웃었다. 차갑던 표정이 단번에 무너졌다.

“쓸데없이 순수하네.”

“내 매력이지.”

상엽이 손에 힘을 주었다. 레나는 거부하지 않고 상엽의 품에 안겼다.

“성인식 계속해도 되지?”

“순수하다는 말은 취소.”

“나도 순수한 거 싫어해.”

상엽은 그녀를 안고 침대로 갔다.

* * *

“그런데 정말 왜 구해 준 거야?”

레나가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침대 위에서 상엽의 품에 안긴 채로 나지막이 물었다.

“처음부터 구해 줄 생각은 없었어.”

“그럼 왜 따라간 건데?”

“뭘 좀 부탁하려고.”

“부탁?”

“우리 누나 사건. 부탁이 안 되면 협상이라도 하려고 했어. 갓코인 경찰이면 충분히 가능할 거 같아서.”

레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냥 살려서 물어본다더니.”

“그럴 거야. 그래도 빨리 알아서 나쁠 건 없잖아. 그 사건에 의문이 많거든.”

“그래서 물어봤어?”

“아니. 내일 만나기로 했어. 당장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서.”

고아였던 상엽은 접근조차 할 수 없던 기록이다. 하지만 이제는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 * *

다음 날 오후.

상엽은 홍대 근처의 카페에서 강차연을 만났다.

“고마워.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

그녀는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피부만 깨진 것이라 회복하는 데 하루면 충분한 모습이다.

상엽은 그녀의 이야기를 잠시 듣다가 물었다.

“경찰은 어떻게 됐어?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텐데.”

“날 잡으려고 하겠지. 그런데 시간은 좀 걸릴걸. 당장은 잡으려고 해도 사람이 없으니까.”

“꽤 여유 있네.”

“곧 도망자 신세가 될 테니까 지금 즐겨야지.”

“별로 다급해 보이지는 않는데?”

“정부는 날 잡을 수 있는 갓코인 유저를 찾을 거야. 뭐 신분이야 노출되겠지만, 어차피 갓코인 유저는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잖아. 크게 달라질 건 없어.”

“그래도 현상금이 걸리면 피곤하잖아.”

“조심해야지 뭐.”

“하긴……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니.”

“어차피 똑같아. 나도 갓코인 범죄자들 계속 잡을 거거든.”

“혼자서?”

“오히려 편해졌어. 절차 같은 거 따질 필요 없으니까.”

“정보는?”

“다 방법이 있지.”

상엽이 원하던 대답이었다.

“그럼 나도 부탁 하나 해도 될까?”

“해, 들어줄게.”

“뭔지 듣지도 않고?”

“살려 줬잖아. 들어줘야지.”

“누나, 화끈하네.”

강차연은 대답 없이 상엽의 말을 기다렸다.

“사건 기록 좀 살펴 줄래? 3년 전 사건이야.”

상엽은 어린 시절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의문으로 다시 다가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