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신체 강화 10단계.
신체 개조 10단계.
근력 강화 5단계.
순발력 강화 5단계.
정신력 강화 3단계.
근육 4단계.
유연성 4단계.
피부 4단계.
헌터 아이 4단계.
스트라이크 6단계.
순간 증폭 3단계.
고스트 실드 7단계.
고스트 체인 5단계.
유령 추종자 3단계.
이것이 지금까지 상엽이 얻은 결과물이었다.
갓코인을 알게 된 지 이제 1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의 성장을 살펴보면 초반보다는 최근에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세 명의 사냥꾼을 잡고 10명의 팀을 전멸시킨 것이 결정적이었다.
“나쁜 놈이나 잡으러 다닐까? 열심히 일해 봐야 소용없네.”
상엽도 자신의 성장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위험해. 한 번 지면 끝이니까.”
“하긴. 리스크가 너무 크지?”
“너무 유명해지지 마. 그럼 죽어.”
갓코인은 언제나 경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강한 사람을 잡으면 많이 얻어.’
이제 상엽 정도의 수준이 되면 코인을 적게 들고 다닌다고 안전한 것도 아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계속 사냥해야지.”
상엽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 말을 들은 동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친구 할래?”
“친구잖아.”
상엽이 고민 없이 대답하자 동희의 눈동자가 커졌다.
“언제부터?”
“내가 너 구해 줬을 때부터.”
“아, 그런 거구나.”
동희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밥은 내가 책임질게.”
“어? 그건 좀 곤란해. 우리 친구 되는 거 고민해 보자.”
“안 돼. 한 번 친구는 영원히 친구야.”
동희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쳇. 안 된다고 할 수가 없네.”
상엽도 같이 웃어 주었다.
상엽은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3월 둘째 주에 보자.
그들은 그렇게 약속했다. 그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기로 했다.
-건강 말고 맛도 연구 좀 해 봐.
상엽은 힘을 주어 그렇게 말했다. 동희는 그저 웃기만 했다.
다시 혼자가 된 상엽은 예전처럼 사냥에 나섰다.
그런데 첫 사냥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상대는 10코인의 들개였고 간단히 처리하고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에 유령 추종자가 나타나서 지난번처럼 빛을 뿌려 늑대를 당황하게 했다.
간단히 늑대를 처리한 상엽은 자신 얼굴 앞에 떠 있는 빛을 보았다.
“야, 안 불렀는데 왜 나왔어?”
상엽의 질문에 빛의 모양이 변하기 시작했다.
분열하는 세포처럼 꿈틀거린 빛은 곧 작은 나비로 변했다.
-자아 있어.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상엽은 크게 놀랐고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뭐?”
-난 존재해.
말을 길게 하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너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래.
“너 혹시 내가 아오나의 스킬을 강화해서 변한 거야?”
-아오나의 영혼에 충성을.
종교 의식 같은 말에 상엽은 잠시 날갯짓을 하지 않는 나비를 보았다.
“너 혹시 더 성장하니?”
-맞아.
“알았어. 일단 너 마음대로 해. 대신 방해하거나 잔소리는 사절이야. 알아들었지?”
-알았어.
나비는 처음으로 날개를 움직이더니 상엽의 어깨에 앉았다.
“친구가 많이 생기네. 좋아.”
상엽의 말에 나비가 빛을 뿌렸다.
“귀여운 놈. 같이 가자.”
그는 다시 사냥에 나섰다.
* * *
“어? 또 변했네.”
사흘간 사냥을 하던 상엽은 추종자가 또 한 번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비 같았던 빛은 이제 새처럼 변했다.
“스킬 강화만으로 성장하는 건 아니구나.”
-믿음 필요해.
“그건 내가 잘해.”
-믿음. 충성으로 보답해.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친화력이 높아지며 추종자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자아가 더욱 뚜렷해진 추종자는 목소리도 선명해졌다.
“그런데 너 남자야? 여자야?”
-없어.
“없다니?”
-성별 없어.
목소리도 중성적이라 성별을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성장. 많은 믿음. 큰 힘이 필요해.
“그건 자연스럽게 될 거야.”
추종자가 성장하면서 고스트 실드와 고스트 체인의 위력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었다.
-아오나의 고스트 실드
6단계-보호막이 강화되며 네 겹으로 늘어난다.
7단계-보호막이 강화되며 다섯 겹으로 늘어난다.
-아오나의 고스트 체인: 유령 사슬
4단계-30미터 내의 물체를 감싼다.
5단계-40미터 내의 물체를 감싼다. 사슬이 두 줄로 늘어난다.
스킬을 구입할 때는 분명 이렇게 설명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강력했다.
고스트 실드는 일곱 겹으로 늘어나더니 오늘부터는 두꺼운 하나의 벽으로 변했다.
고스트 체인 역시 50미터를 넘게 날아갔고 사슬에 가시가 돋치기 시작했다.
“귀여운 놈.”
상엽은 새로 변한 추종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아쉬운 듯이 중얼거렸다.
“여자였으면 좋았겠지만.”
-전사는 여자를 조심해.
상엽은 허를 찌르는 잔소리에 할 말을 잃었다.
‘이걸 확.’
-들려. 속마음.
그는 뭔가 쉽지 않은 상대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좋아. 내 친구니까.”
상엽은 다시 웃으며 사냥에 나섰다.
* * *
상엽은 의뢰 목표였던 하얀 표범과 마주 섰다.
‘2,000코인짜리구나.’
태백산에서 만난 표범과 비슷한 변종이었다.
상엽은 거침없이 전투에 나섰다. 하얀 표범은 지금까지 만난 변종과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상엽 역시 예전과 달랐다.
상엽은 표범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굳이 작전을 펼치거나 피하지 않았다.
-주인. 무식해.
“야! 싸우는 중이잖아!”
추종자는 지켜보기 답답했는지 싸움에 끼어들었다.
표범의 후방에 자리를 잡으며 추종자는 계속해서 표범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 짧은 순간이 상엽에겐 큰 기회가 되었다.
“안 도와줘도 되는 놈인데.”
상엽은 투덜거리며 스트라이크로 표범의 머리를 때렸다. 단 한 방에 표범은 빛으로 흩어졌고 의뢰가 완료되었다.
“너 뭐 해?”
-유물 조각.
추종자는 이미 유물 조각을 찾아서 그 위에 떠 있었다.
덕분에 상엽은 조각을 찾는 수고를 덜었다.
“자, 이제 돌아갈 시간이네.”
유물을 챙긴 상엽은 날짜를 확인했다.
“2월 28일.”
상엽은 잠시 하늘을 보았다.
“휴가다!”
스스로가 정한 휴가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상엽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 * *
“뭔가 후련해.”
상엽은 기분이 좋았다.
대전에서 가지고 있던 코인을 완전히 소모했다.
화이트 상점에서 정신력을 4단계로 강화했고, 블랙 상점에서 근육과 유연성을 5단계로 강화했다.
보상 코인이 화이트 코인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머지는 레나를 통해 잡화를 구입했다.
-내가 내일 찾아갈게. 내가 그 정도 매너는 있는 남자거든.
마지막으로 달빛 캔디까지 사면서 상엽이 보유한 코인은 제로가 되었다.
단순히 수치일 뿐이지만 상엽은 후련한 기분을 느꼈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탄 그는 오랜만에 잠이 들었다. 항상 긴장하던 마음이 풀어진 것이다.
하지만 잠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무 위협도 없고,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지만 스스로 잠에서 깼다.
그를 자극한 것은 숨소리였다.
그저 평범한 숨소리. 그럼에도 그는 깊이 잠들 수 없었다.
‘이렇게 됐구나.’
이젠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이미 가진 게 너무 많아.’
한번 시작한 이상, 살기 위해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어! 까짓것!’
그는 웃으며 창밖을 보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고속 도로 옆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원주였다.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갔다.
강릉의 작은 어촌 마을에 도착한 상엽은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은 방파제를 걸었다.
변종의 출현으로 유령 마을이 된 탓에 쓸쓸한 파도 소리만 들리는 곳이었다.
“누나, 잘 지내지?”
상엽은 잠시 추억에 잠겼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아 내며 누나의 뼛가루를 뿌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곳이 강릉의 방파제였다.
이곳은 부모님의 고향이자 누나와 함께 살았던 마을이기도 했다.
-누나는 파도가 좋아. 부서지는 소리가 시원하거든.
누나는 그렇게 말했다.
“난 파도 소리가 참 싫어. 누나가 생각나서 슬프거든.”
세상이 변했지만 바다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상엽의 기억도 그대로였다.
-누나만 믿어. 1년 안에 돌아와서 내 동생 아무 걱정 없이 살게 해 줄 테니까.
사건이 일어나기 1년 전, 누나는 서울로 갔다. 매일 동생의 안부를 물었고 상엽은 힘내라며 응원해 주었다.
“그깟 연예인이 뭐라고.”
누나는 강릉 시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찍힌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것을 계기로 유명 연예 기획사에 들어가 연습생이 되었다.
죽기 직전까지만 해도 곧 데뷔를 한다며 응원해 달라던 누나였다.
하지만 국도 변에서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누나를 살릴 거야. 그러면 다 알게 되겠지.”
수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밝혀낼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았다.
“나 이제 성인이야.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어.”
상엽은 들고 있던 국화 한 송이를 방파제 위에 놓고 돌아섰다.
3월 1일.
상엽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서울로 이동했다.
번화가로 간 상엽은 예전에 갔던 이발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머리를 깎고 면도를 했다.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모양입니다.”
“저 어른 됐어요.”
“그렇습니까?”
“못 믿는다는 표정은 뭐죠?”
“오해입니다. 허허.”
노년의 이발사는 웃으며 상엽의 머리를 다듬어 주었다.
이발소를 나온 상엽은 셔츠와 청바지를 새로 사고 목욕까지 마쳤다.
깔끔한 모습의 상엽은 빼어난 미남은 아니었지만 훤칠한 키에 남자다운 느낌을 주는 사내였다.
‘하고 싶었던 거 다 하자.’
그는 혼자만의 생일 파티를 시작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느긋하게 커피도 마셨다.
오락실과 PC방에서 할 줄도 모르는 게임을 해 보기도 했고, 극장에 가서 영화도 보았다.
혼자였지만 신선한 경험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밤은 혼자가 아니니까.’
시간이 참 느리게 흘렀다. 그러다 드디어 해가 지고 밤이 되었다.
밤 11시.
상엽은 클럽 오컬트 앞에 섰다.
평소에는 명함을 주고 뒷문으로 들어갔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른 이들 틈에 끼어서 당당히 손님이 되었다. 이젠 문지기도 그를 뒷문으로 안내하지 않았다.
‘이런 곳이구나.’
사람들은 귀를 때리는 것 같은 음악에 취해 깊어지는 밤을 즐기고 있었다.
자극적인 옷과 춤, 그 사이에 터져 나오는 웃음과 환호성은 모든 관념과 체면을 내려놓게 하는 힘이 있었다.
상엽은 그들 사이에서 한 곳을 주시했다.
음악이 바뀌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무대 위로 타이트한 가죽 핫팬츠에 화려한 민소매 셔츠를 입은 여성이 등장했다.
여성은 간단히 손을 흔들어 주고 DJ스테이지를 시작했다.
‘레나.’
그녀의 음악은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극단적인 자극과 심장이 괴로울 정도의 빠른 템포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멋있네.’
무대 위의 레나는 상엽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매력에 이끌려 멍하니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한 가지 의상이 눈에 들어왔다.
“망사 스타킹!”
DJ 레나는 상엽이 좋아한다고 말했던 망사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기분이 더욱 좋아진 상엽은 방해하지 않고 끝까지 레나의 무대를 지켜봤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드디어 레나가 인사를 하며 무대를 내려갔다.
상엽이 가장 기다렸던 시간이 된 것이다.
“자, 진짜 성인식을 시작해 볼까?”
상엽은 당당히 레나의 대기실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