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3화 (23/300)

# 23

최하급 블랙 상점을 통해 알아낸 하급 블랙 상점은 전당포였다.

쇠창살 뒤에 머리가 벗겨진 50대 남성이 앉아 있었고 상엽이 블랙 상점을 거론하자 자물쇠를 풀고 밖으로 나왔다.

문을 걸어 잠근 그를 통해 상엽은 처음으로 하급 블랙 상점의 목록을 보았다.

기본 메뉴는 화이트 상점과 같았다.

-무구

-신체

-스킬

무구의 기능은 완전히 같았고 가격 역시 동일했다.

상엽은 1만 코인부터 시작한다는 무기를 살폈지만 고민 끝에 사지 않기로 했다.

꽤 쓸 만해 보였지만, 유산 조각을 본 그를 만족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다음은 신체 스킬이었다.

화이트 상점은 근력, 순발력, 정신력 세 가지 목록이었다.

블랙 상점 역시 세 가지로 나뉘어 있었지만 내용은 분명히 달랐다.

-근육 강화

-유연성 강화

-피부 강화

전혀 다른 목록이 나타났다.

“근육은 힘과 순발력을 올려 줍니다. 유연성은 근육의 한계를 늘려 주며, 피부는 충격 내성과 회복력을 강화합니다.”

화이트 상점과 달리 근력과 순발력이 하나의 목록으로 묶여 있었다.

다만 상승 폭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대신 유연성을 이용하면 블랙 유저 특유의 동작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피부 강화는 화이트 상점과 가장 다른 부분이었다. 신체의 방어력을 강화하고 회복력을 높였다.

마지막은 블랙 상점 특유의 스킬이었다.

-탈리카의 그레이브스 드림: 무덤 속의 꿈

땅속에 들어가 수면을 취하면 회복력이 상승한다.

-롤테나의 다크 포그: 검은 안개

검은 안개 속에 몸을 숨긴다.

-알란의 기억의 파편: 기억 파편

상대의 기억에 자신의 얼굴을 깊이 새겨 계속 생각나게 한다.

-기리노이의 일루전 서클: 환영 공간

일정 범위에 원하는 환영을 만든다.

-돈모스의 낮은 속삭임: 속삭임

원하는 대상에게만 들리게 말한다.

다양한 스킬들이 보였다. 이 역시 시작은 1천 코인이었다.

‘신체 강화가 좋겠어.’

당장 구미가 당기는 스킬은 없었다. 이에 상엽은 신체 목록을 다시 열었다.

“세 가지 목록 모두 4단계까지 강화해 주세요.”

“22500코인입니다.”

상엽의 몸에서 검은빛이 빠져나가면서 엄청난 고통이 시작되었다.

‘아오! 깜박했어.’

하급 블랙 상점도 강화에 고통이 따르는 건 여전했다.

오히려 더욱 강력해졌다. 강화 단계가 많은 만큼 고통도 길었고 상엽은 끔찍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후우.”

드디어 고통이 끝나자 상엽의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런 모습을 전당포 주인은 무심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아니요, 충분해요.”

상엽은 몸이 회복되는 즉시 전당포를 나왔다.

* * *

상엽은 4290그레이 코인이 남았지만 굳이 모두 소모하진 않고 남대전 방어선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상엽이 군부대로 들어서려 할 때, 누군가 다가왔다.

“저, 저기…….”

눈물 자국이 선명히 남은 2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긴 생머리와 갸름한 얼굴형에 젖은 눈빛까지 더해져서 남자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청초한 모습이었다.

특히 빛에 흔들리는 것처럼 맑은 눈동자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왜 그러세요?”

“혹시 변종 사냥꾼이세요?”

상엽은 그 말에 경계를 하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매서워지자 여자는 놀란 듯 몸을 떨었다.

날씨에 비해 얇은 옷을 입은 여자는 가녀린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어 안쓰럽게 보였다.

“무슨 일인데요?”

“저, 저기 우리 오빠 좀 구해 주세요.”

“오빠요?”

“네. 오빠가 위험 지역에 들어갔어요. 사냥꾼이 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상엽은 괜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지만 눈앞에 있는 여성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때, 쐐기를 박듯 여자가 상엽의 손을 잡았다.

“제발 부탁드려요. 오빠만 구해 주시면 뭐든지 해 드릴게요. 부모님도 변종 때문에 돌아가시고, 가족은 오빠가 전부예요.”

“오빠가 어디 있는지는 알아요?”

“네. 이게 오빠 책상에 있었어요.”

여자는 상엽에게 지도 한 장을 내밀었다. 금산의 상세 지도였다.

지도에는 붉은 원으로 표시된 지역이 있었다.

‘두더지 출현 지역이네.’

김만득의 지도를 떠올린 상엽은 그 위치를 알아봤다.

“부탁드려요. 제발.”

여자는 한 발 물러서더니 몇 번이나 허리를 숙여 부탁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눈가에서 흩어진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를 본 상엽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알았어요. 제가 알아볼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자는 구원을 받은 신도처럼 상엽의 양손을 잡았다. 그리고 신명을 받은 듯이 가슴에 안았다.

상엽은 손으로 느껴지는 뭉클한 느낌에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제가 기다린다고 꼭 전해 주세요. 오빠가 죽으면 저도 죽는다고…….”

여자는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고, 상엽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상엽은 걸음을 걸으면서도 여자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그때마다 여자는 그 자리에서 상엽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진짜 예쁘네.’

객관적으로 연예인처럼 아름답다거나 인형처럼 예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여리고 청초한 매력이 상엽의 마음을 흔들었다.

결국 상엽은 수십 번이나 뒤를 돌아본 뒤, 아쉬운 표정으로 방어선을 통과했다.

“자, 이제 정신 차리자.”

상엽은 일단 지도를 꺼내 목표 지점을 잡았다.

여자에게 받은 지도를 다시 확인하자 방향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여길 갔다고?”

지도에 표시된 두더지 지역에는 김만득의 메모가 있었다.

‘특별 위험 구역.’

김만득조차도 위험하다고 표시한 지역이었다.

‘그런 곳에 갔다? 한 달밖에 안 된 녀석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다시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던 모습에 심장이 녹는 것처럼 슬퍼졌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었다.

‘정신 스킬?’

상엽은 갑자기 새로운 의심이 생겼다.

‘나에게 왜?’

유물 획득을 위한 함정이라면 상엽을 죽여서 뭔가를 얻으려 할 것이다.

굳이 변종이 가득한 지역으로 보낼 이유가 없었다.

‘날 유인하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상엽은 그 여자가 떠올랐다. 이성이 어떤 판단을 내리던지 한쪽 마음은 계속해서 그녀를 도와주라고 외쳤다.

‘쳇.’

상엽이 이성적인 사고를 할수록 여자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생겼다.

이것은 곧 혼란으로 이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결국 그는 다시 방어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대전 시내로 나섰다.

“어, 어디 가세요?”

“소모품이 떨어져서요. 지도를 보니까 꽤 멀어서 준비를 더 해야 할 거 같아요.”

상엽은 대충 변명을 하고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화이트 상점으로 갔다.

“정신력 3단계까지 강화해 주세요.”

3500코인으로 그는 정신력 3단계 강화를 진행했다.

강화가 끝난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여자를 떠올렸다. 순간 심장 박동이 빨라졌지만 이성이 마비될 정도는 아니었다.

‘됐어.’

휘둘리지 않을 자신감이 생긴 상엽은 다시 방어선으로 이동했다.

여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오셨네요. 걱정했어요. 그냥 가 버리실까 봐…….”

“아니에요. 제가 꼭 해결해 드릴게요. 그런데 이름이 뭐예요? 그 정도는 알고 싶은데…….”

“유진이에요. 장유진.”

“아, 유진 씨. 이렇게 불러도 되죠?”

장유진은 수줍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상엽은 바보처럼 웃었다.

“헤헤.”

“정말 감사합…….”

그녀는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세우는 순간, 상엽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

장유진은 놀란 표정이었지만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엽을 꼭 안으며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꼭 부탁해요.”

“나도 부탁해.”

“제가 뭘 해 드리면 될까요?”

“긴 여행이 될 거 같아서 그러는데 잠깐만 쉬다 가면 안 될까?”

“네?”

그녀는 품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이에 상엽이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시키는 대로 해, 꽃뱀 아가씨.”

“네? 갑자기…….”

“지금부터 여관으로 가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저기…….”

“움직여. 그냥 죽일 수도 있는데 참는 중이니까.”

상엽은 웃으며 그녀를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대신 다정한 연인처럼 그녀의 목에 팔을 감았다.

장유진은 어쩔 수 없이 상엽에게 이끌려 근처의 여관으로 들어갔다.

방에 도착한 상엽은 장유진을 침대에 던졌다. 그리고 화이트 해머를 꺼냈다.

“왜 이러세요?”

“그만해. 갓코인 유저인 거 아니까.”

그녀는 끝까지 눈물을 흘리며 불쌍하게 빌었다. 하지만 상엽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다시 보니까 되게 못생겼네.”

장유진의 표정이 변했다. 청초하던 느낌이 사라지자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눈빛이 나타났다.

“쳇. 그사이에 정신력 강화를 하고 온 거야?”

상엽은 그 말에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강간이라도 하려고? 아니면 죽일 거야?”

“응.”

“뭐?”

“죽일 거야.”

상엽은 화이트 해머를 들어 올렸다.

“자, 잠깐!”

“그냥 죽어. 귀찮으니까.”

상엽은 그대로 해머를 내려쳤다. 장유진은 아슬아슬하게 해머를 피하고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려 했다.

하지만 상엽이 앞을 막는 게 빨랐다.

“너!”

“알잖아. 네 실력으로는 도망 못 가는 거. 그냥 죽어.”

“왜 날 죽이려는 거지?”

장유진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상엽은 그 모습이 꽤 희극적이라고 생각했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었다.

“너도 날 죽이려고 했잖아. 내가 죽는 건 괜찮고, 네가 죽는 건 억울해?”

“자, 잠깐만! 날 죽이려면 밖에서 죽일 수도 있었잖아. 데리고 온 이유를 말해 봐. 협조할 의향도 있으니까.”

상엽은 그녀의 어깨를 밀었다.

힘에 밀린 그녀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졌고 상엽은 해머를 들어 올렸다.

“딱 한 번 기회를 줄게. 내가 널 살릴 가치를 보여 봐.”

“뭐?”

“어설프게 유혹할 생각은 하지 마. 내가 원하는 걸 정확히 찾아내지 못하면 오함마가 머리에 떨어질 거야.”

상엽은 무표정이었다.

이를 본 장유진은 모든 말이 진심임을 알아차렸다.

“조, 좋아. 진정해.”

장유진은 살기 위해서 모든 걸 털어놓기로 했다.

“난 팀 아이언의 팀원이야. 석동희의 기억을 읽고 널 알아냈어.”

상엽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난 널 함정으로 유인하는 역할이었고, 변종과 싸우기 시작하면 뒤를 칠 생각이었어. 여기까지야.”

내용은 의외로 단순했다. 하지만 상엽은 그녀의 특별한 스킬에 놀라고 있었다.

‘기억을 읽는다니. 그래서 내가 정신 강화를 한 것도 알았구나.’

상엽은 무심한 눈으로 장유진을 보며 말했다.

“부족해.”

그가 해머를 움직이려 했다. 그러자 장유진이 다급히 외쳤다.

“석동희는 아직 살아 있어!”

그 말이 상엽의 손을 멈췄다.

“어디야?”

“날 살려 준다고 약속하면 말해 줄게. 우리 팀원 두 명이 그를 지키고 있어.”

“함정에는 몇 명이 있는데?”

“다섯 명.”

“이 근처에는?”

“한 명.”

장유진은 모든 걸 솔직히 털어놨다. 머리를 굴릴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좋아. 약속해. 동희가 있는 장소를 말하면 널 살려 줄게.”

“정말이지?”

“약속해. 난 약속 잘 지켜. 일용직에게 약속은 생명이거든.”

그녀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한임 초등학교. 위험 지역에 있는 폐교야.”

“좋아. 그럼 이제 여기 근처에 있는 놈을 불러.”

장유진은 이유를 알지 못해 상엽을 쳐다보기만 했다.

“널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잖아. 그놈도 같이 묶어 놔야 내가 동희를 구할 시간을 벌지. 안 그래?”

“정말 살려 주는 거지?”

“약속했잖아.”

장유진은 상엽의 눈치를 보며 핸드폰을 꺼냈다.

“안 들키게 잘해.”

결국 장유진은 전화를 걸었고 숨을 고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우리 편에 서기로 했어. 유물도 전부 받았고. 걱정 마. 완전 노예로 만들어 놨으니까.”

그녀는 숙련된 연기자였다.

전투보다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터라 거짓말에 익숙했다.

5분 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상엽은 장유진에게 문을 열도록 했고, 곧 한 사내가 들어왔다.

그리고 소음이 발생했다.

쾅!

사내의 머리가 한 방에 터져 버렸다.

“무슨 짓이야!”

장유진이 놀라서 소리쳤다. 이에 상엽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거짓말이었어.”

쾅!

장유진의 머리에도 해머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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