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9화 (19/300)

# 19

-6개월만 기다려요. 그때는 제가 오빠보다 강해질 거예요.

태백산 국립 공원 입구를 통과하면서 상엽은 송연지의 말을 떠올렸다.

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녀의 표정이었다.

‘뭔가 결심한 것 같은데.’

그가 태백산에서 목숨을 걸고 사냥에 몰입했듯이 송연지도 많은 일을 겪었다.

이것은 긴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헤어지는 순간에 그녀는 6개월을 언급했고, 평소와 다른 분위기였다.

-꼭 다시 봐요.

상엽보다는 자신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았다.

‘잘할 거야. 믿자.’

태백산 입구를 통과하자 자연스레 모든 상념이 지워졌다.

그는 사냥터로 가기 전에 먼저 방어 부대로 갔다. 상엽이 예고 없이 나타났지만 경계병은 그를 알아봤다.

“잠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입구에 있던 군인은 급히 연락을 취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상엽은 안내를 받아 군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도착한 곳은 별관의 응접실이었다.

남자 군인이 상엽이 앉은 소파 앞의 테이블에 녹차를 놓았고, 5분도 되지 않아 김대진 준장이 들어왔다.

“어서 오게. 직접 와 줄 줄은 몰랐네.”

“좋은 일로 온 건 아니에요.”

상엽의 대답에 김대진이 웃음을 지우고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인가?”

“누가 제 정보를 팔아먹었더라고요. 사냥꾼들한테.”

“그게 무슨…….”

김대진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사안인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제가 화가 많이 났어요.”

상엽은 평소처럼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그 표정에 김대진은 처음으로 상엽에게서 두려움을 느꼈다.

인간을 뛰어넘은 괴물들.

갓코인 유저들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김대진도 잘 알고 있었다.

“확실한 정보인가?”

“네, 직접 들었어요. 그 녀석은 머리가 터져서 죽었죠.”

“철저히 조사하겠네. 변종 사냥꾼에 대한 정보를 누설하는 것은 군법에도 어긋나는 일이니.”

“아저씨는 아니라는 거죠?”

“그건 자네도 알지 않나?”

상엽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변종들을 사냥해 주고 있는데 그럴 리가 없지.’

처리를 하려고 해도 상엽이 더 많은 일을 하고 난 뒤에 했을 것이다.

“열흘 안에 해결해 주세요.”

“시간은 약속할 수 없네.”

여유를 두려는 김대진을 보며 상엽은 다시 웃었다.

“이 부대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어떻게 확신하지?”

“제 이름, 갓코인을 얻게 된 날짜, 현재 위치. 전부 알고 있었거든요. 이 부대가 절 감시했으니 어떤 정보인지는 아저씨가 더 잘 알죠?”

김대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열흘이에요. 누군지 밝혀내지 못하면 전 여길 떠나요. 아저씨가 원하는 소탕은 끝나는 거죠.”

상엽은 그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절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게 언제든.”

인사를 끝낸 상엽은 문이 아니라 벽으로 걸어갔다.

“시간이 없어서 지름길로 갈게요.”

쾅!

상엽은 화이트 해머를 꺼내 벽을 힘차게 때렸다.

순간 한쪽 벽이 폭발한 듯이 터져 나갔다. 그나마 힘 조절을 하지 않았다면 건물 전체가 무너졌을 것이다.

폭음이 들리자 경계를 하고 있던 군인들이 일제히 총구를 겨누며 달려왔다.

“내가 직접 범인을 찾게 하지 마세요.”

“물러서라!”

결국 김대진이 부하들을 물렸고 상엽은 부대를 빠져나왔다.

* * *

다시 사냥이 시작됐다.

쾅! 쾅!

상엽은 하얀 눈 위에서 땅을 두 번 두드렸다.

강한 진동이 산 전체를 울리며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노크했잖아. 매너 없이 대답도 안 해 주는 거야?”

쾅! 쾅!

상엽은 다시 노크를 하듯이 바닥을 두드렸다.

구오오!

결국 그가 바라던 상대가 나타났다.

대형 반달곰이었다.

“안녕, 5천 코인.”

예전에는 포효만 듣고 도망쳤던 상대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상엽은 자신감을 가지고 대형 반달곰 앞에 섰다.

그가 도망가지 않자 반달곰은 괴성을 지르며 곧장 달려들었다.

반달곰이 움직일 때마다 높게 쌓인 눈이 물보라처럼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상엽은 곰이 달려오는 진동을 발끝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오, 무섭네.”

그는 산이 달려드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럼에도 정면 대결을 피하지 않았다.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성장을 확신했다.

신체 강화 10단계, 신체 개조 10단계.

이 둘이 주는 시너지는 어마어마했다.

‘스트라이크, 순간 증폭.’

상엽은 두 스킬을 동시에 사용했다.

그의 근육이 굵은 고무줄을 꼬아 놓은 것처럼 단단하게 조여졌고, 그 순간 바람처럼 앞을 튀어 나갔다.

콰르릉!

둘의 충돌에 지진과 같은 울림이 산 전체로 퍼져 나갔다.

미사일이 떨어진 것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간 기파가 눈보라를 만들었고 중앙에는 거대한 회오리가 발생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둘은 똑같이 달려들었던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

“으…….”

상엽은 바닥에 널브러져 몸을 떨었다.

해머를 놓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해볼 만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반달곰의 힘은 상당했다.

“망할!”

그런데 그건 반달곰도 같은 상황이다. 놈 역시 상엽을 보면서 상당히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상엽은 고통을 꾹 참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화이트 해머 대신 블랙 해머를 꺼냈다.

“야, 한 판 더 붙자.”

상엽은 블랙 해머를 땅에 끌며 앞으로 걸어갔다.

반달곰 역시 겨우 몸을 세우고 상엽을 노려보았다. 반달곰의 얼굴은 이미 반쯤 무너져서 분수처럼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덤벼.”

상엽은 시간을 끌면 유리해지는 걸 알면서도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둘은 다시 서로를 향해 뛰었다.

쾅!

첫 충돌보다는 소리가 작았다. 그리고 서로 튕겨 나지도 않았다.

“헉, 헉.”

숨을 몰아쉬는 상엽은 해머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해머는 반달곰의 머리 안으로 완전히 파고들었다.

반달곰의 몸이 빛으로 흩어지더니 상엽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아오, 아파.”

상엽도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식하면 몸이 고생이라더니.”

그는 잠시 바닥에 누워 고통이 끝나길 기다렸다.

신체 개조 10단계의 효과는 빠른 재생력이었다. 전투 중에 효과를 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휴식 중에는 직접 느낄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화이트 상점에 그걸 보완하는 스킬이 있었지.’

해피 드림이라는 이름의 스킬은 실질적으로 블랙 유저의 빠른 재생과 효과가 같았다.

‘경쟁이니까. 필요한 건 그렇게 보완하는 거겠지.’

상엽은 차분하게 상처가 회복되길 기다렸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만큼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그나마 반달곰은 몸으로 충격을 받았고, 상엽은 해머를 이용했기에 이 정도로 끝났다.

“자, 그럼 뭘 지키고 있었는지 볼까?”

상엽은 몸을 모두 회복하고 반달곰이 튀어나왔던 장소로 갔다.

굳이 뭔가를 찾을 필요도 없이 반달곰이 나타났던 곳에는 큰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그리고 구덩이 안에 반달 형태의 유물 조각이 있었다.

“두 개짜리 같은데.”

이제 상엽도 문양을 보고 예측이 가능했다. 원으로 뻗어 가는 문양에 끊긴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형 문양은 정확히 반으로 갈린 부분에서 끊어져 있었다.

‘흡수할까?’

상엽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연지한테 물어보자.’

그는 감정 스킬이 없어서 이 유물이 얼마짜리 코인인지 알지 못했다.

‘두 개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려면 유물을 숨기는 물품이 필요했다.

‘하급 그레이 상점에 있다고 했어.’

송연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는 아낌없이 상엽에게 말해 주었다.

‘이제 조금씩 모아 보자. 무기도 있다고 했어.’

그가 유물을 흡수하지 않고 모으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신의 무기들이 있어요. 그중에는 오빠가 좋아하는 워해머도 있고요. 물론 찾기가 쉽지는 않아요.

그 말을 상엽은 이렇게 이해했다.

-신의 오함마가 있다.

상엽은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반드시 내가 찾아야 돼.’

상엽은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닷새 동안 상엽은 엄청난 거리를 이동했다.

“이거밖에 없어?”

그는 미치광이처럼 변종들을 사냥하고 다녔다. 그가 지나온 길의 변종들은 모두 전멸을 면치 못했다.

“이거 수입이 점점 줄어드는데.”

반달곰 영역에서는 그나마 많은 코인을 모았다. 하지만 그곳을 정리한 후로는 하루 2천을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사냥 속도는 늘었지만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소백산에 가까워지고 있구나.’

반달곰 영역을 기점으로 다시 변종들이 약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태백산에 비해 개체 수 밀집도가 높지 않았다.

1만 6천 700코인.

반달곰 대장을 잡고 5천 코인으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이 정도로 그쳤다.

그나마 반달곰 영역에서 다른 곰을 잡으면서 이 정도를 맞춘 것이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국방부 지도에서도 더 이상 특별한 곳이 없었다.

‘몇 곳만 정리하면 끝나겠는데. 예정대로 5일만 더 있자.’

상엽은 국방부 자료를 보며 아직 토벌되지 않은 지역으로 갔다.

그나마 그런 곳이 개체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정했던 열흘이 지났다.

예상대로 코인은 2만 5천 600코인에 그쳤다. 지난 닷새 동안, 하루 2천 코인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상엽은 회색 늑대 구역을 완전히 정리하고 하늘을 보았다.

헬기가 상엽의 머리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시끄러운 헬기 소리가 절정에 달했을 때, 예전처럼 사다리가 내려왔고 김대진 준장이 상엽 앞에 섰다.

그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노란 봉투를 내밀었다.

“신상태. 이미 군 재판에 넘겨졌네.”

상엽은 서류를 받아서 내용을 살폈다.

“자네뿐만 아니라 세 명의 정보를 넘겼더군.”

“연지도 있었겠네요.”

“그렇다네.”

“몇 군데나 팔아먹은 건가요?”

“최소 두 곳이네. 한 곳은 연락이 닿지 않고, 다른 한 곳은 접촉 중이니 곧 소식이 있을 걸세.”

이미 서류에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상세한 내용이라 상엽이 따질 수도 없었다.

“아저씨. 제가 말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뭐죠?”

“무슨 말인가?”

“아저씨 정도 되는 사람이 저 같은 변종 사냥꾼 한 명에게 이런 것까지 보여 줄 필요는 없는 거 같아서요.”

상엽의 솔직한 의문에 김대진은 웃었다. 특유의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대비라고 생각하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앞으로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변종 사냥꾼과 연결이 될 수밖에 없다네. 전 세계가 그렇지 않은가?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그렇게나 강하다면, 결국 그 힘이 그 국가의 힘이라는 뜻으로 귀결되지.”

“제가 국가의 힘이 된다는 뜻인가요? 그건 제가 싫은데요.”

“물론 알고 있네. 자네를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겠지. 하지만 이건 자네도 인정할 것이네.”

“뭘요?”

“어떤 일에 관해서 누군가 나와 똑같은 조건을 제시한다면 자네는 누구와 일을 하겠나?”

그 질문에 상엽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일을 한 번 해 본 사람이 편하다. 그리고 같은 조건이 아니라 조금 불리한 조건이라도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일하기 마련이다.

“정부랑 할 일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내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정부에서 직접 움직일 것이네. 어차피 선택은 자네 몫이네.”

상엽은 관심이 없었지만 이는 예상된 결과였다.

그동안 정부가 변종 사냥꾼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고 최대한 분쟁을 만들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결국 변종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만큼 정부에서는 직접적인 대책이 필요했고, 갓코인에 대한 대비를 위해서도 변종 사냥꾼은 필수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정부가 갓코인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응할 것이네.”

“그렇군요.”

“자, 그럼 이 배낭은 여기 버리고 가지.”

“아니에요. 여긴 더 이상 볼일이 없어요.”

“무슨 뜻인가?”

상엽은 자신이 들고 있던 지도를 김대진에게 넘겨주었다.

그곳에는 그가 정리한 구역이 모두 표시되어 있었다.

“주요 지점은 전부 처리했어요. 저도 받은 게 있으니 한 곳만 골라요. 거긴 처리해 줄게요.”

김대진은 상엽의 지도를 한눈에 알아봤다.

‘이렇게 빨리.’

그들이 파악한 것보다 훨씬 많은 지역을 처리했다. 이 정도라면 남은 병력으로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고맙네. 나머지는 내가 처리하지.”

김대진은 손을 내밀었다. 상엽은 잠시 고민하다 돌아섰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래도 아저씨 말이 맞아요. 같은 조건이면 아저씨 도와줄게요.”

“그걸로 충분하네.”

“아 참. 내 정보 팔아먹은 사람, 제대로 처리해 주세요. 전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거든요.”

“걱정 말게.”

상엽은 김대진과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미련 없이 태백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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