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8화 (18/300)

# 18

하급 화이트 상점.

위치는 서울역 근처의 부동산이었다.

책상 하나가 전부인 부동산에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있었다.

“홍만식입니다.”

그 역시 남수사처럼 친절하게 상엽을 맞이했다.

그곳에서 상엽은 처음으로 하급 화이트 상점을 열었다.

상점을 열고 물품을 구입하는 방식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그 내용은 분명히 달랐다.

-무구

-신체

-스킬

상엽은 제일 먼저 무구 목록을 선택했다.

그러자 다시 두 가지 메뉴가 나타났다.

-무구 구입

-무구 강화

최하급 상점과 달리 강화 목록이 따로 생겼다.

“원하는 무구를 강화하실 수 있습니다. 비용은 무기에 따라 다릅니다.”

상엽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무구 강화를 선택하고 화이트 해머를 꺼냈다.

-500코인

“최하급 무기는 500코인부터 시작하며 10단계까지 강화가 가능합니다.”

무구에 따라 강화 비용과 최종 단계가 달랐다.

‘여기에 투자하지 말자.’

그는 일단 이해만 한 상태에서 직접 강화를 하진 않았다.

“응? 무기는 목록이 없네요.”

무기 구입 메뉴를 살폈지만 단 하나의 무기도 보이지 않았다.

“코인이 부족하셔서 그렇습니다.”

6206코인으로는 살 수 있는 무구가 하나도 없었다.

“가장 저렴한 무구가 1만 코인입니다.”

상엽은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상엽은 이어서 신체 메뉴를 살폈다. 그러자 예상과 다른 목록이 나타났다.

-근력 강화

-순발력 강화

-정신력 강화

세 가지 메뉴가 나타났다.

단순 신체 강화에서 세부적으로 나뉜 것이다. 이에 대해 홍만식은 추가 설명을 했다.

“상급 상점으로 갈수록 신체 강화가 세부적으로 나뉩니다. 대신 효과는 확실하지요.”

상승 폭은 높아지는 대신, 메뉴가 세 가지로 늘어난 것이다.

“세 가지 중의 어느 하나라도 10단계를 달성하시면 다음 상점 위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정신력은 어떤 효과가 있는 건가요?”

“스킬을 많이 쓰는 경우에 후유증을 줄여 주고, 힘든 상황에서도 이성을 유지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 공격에 대한 내성을 키워 줍니다.”

세 가지 모두 필요한 능력이었다.

‘힘, 속도, 정신.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

상엽은 나름대로 정리를 하고 강화 비용을 확인했다.

‘시작이 500코인.’

1단계가 무려 500코인이었다.

‘10단계면 256,000코인. 총합이면…….’

한 가지 목록을 10단계까지 강화하는 데 드는 총비용은 어마어마했다.

“51만 1500코인입니다.”

홍만식은 상엽이 눈알을 굴리자 미리 대답을 해 주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세 가지를 전부 강화하면…….”

“153만 4500코인입니다.”

상엽은 그 수치에 잠시 말을 멈췄다.

“바가지는 아닙니다. 제가 먹는 건 하나도 없으니 안심하시길.”

“알아요, 정찰제인 거.”

“감사합니다.”

하급 상점에 도착하니 지금까지 어렴풋하던 것들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의 성장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물론 코인만 많으면 전부 강화하는 것도 가능했다.

“스킬도 좀 볼게요.”

최하급과 하급 상점의 가장 큰 차이는 스킬이었다.

최하급 상점에는 스킬 자체가 없었다.

하급 상점부터 각 진영의 전용 스킬이 나타났다.

“블랙 유저는 사용할 수 없는 스킬입니다.”

그 말에 상엽은 잠시 고민을 했다.

‘둘 다 사용할 수 있거나, 둘 다 사용할 수 없거나.’

상엽은 스킬 목록을 확인했다.

스킬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섯 가지뿐이네요. 혹시 더 비싼 스킬이 있어서 제가 못 보는 건가요?”

“아닙니다. 제 상점에서 살 수 있는 고유 스킬은 다섯 가지가 전부입니다. 상위 상점으로 가시면 다른 스킬들이 있습니다.”

상엽은 설명을 들으며 다섯 가지 고유 스킬을 확인했다.

-란테스의 해피 드림: 치유의 꿈

자연 치유 능력이 상승하며, 수면 중 효과가 상승한다.

-아르테스의 실버 월: 은빛 장막

은빛 장막을 생성해 안전 구역을 만든다.

-두란테스의 정의의 힘: 순간 힘 증폭

짧은 시간 힘을 증폭시킨다.

-홀테스의 바람의 눈: 정밀 감각

짧은 시간 감각이 증폭되고 허용하는 거리까지의 모든 자연적 요소가 감지된다.

-가둔테스의 이모션 아이: 감정의 눈

원하는 대상의 감정이 색으로 표시된다.

전투에 관련된 두 개의 스킬과 하나의 회복 스킬이 있었다.

나머지 두 개는 활용에 따라 효과가 다를 듯했다.

‘전투만 있는 게 아니었지.’

상엽은 전투를 위주로 하지만 갓코인의 스킬에는 다른 분야도 많았다.

‘수영이랑 잠수도 있던데.’

물속에서 숨을 쉬는 스킬도 있었고 음식을 만드는 데 관련된 스킬도 있었다.

‘은빛 장막은 직접 봤고.’

세 명의 헌터를 상대할 때, 화이트 유저가 은빛 장막을 펼쳤다.

설명에는 안전지대를 형성한다고 했지만 이를 방어 스킬로 활용한 것이다.

“시작은 모두 1천 코인입니다.”

1단계 1천 코인짜리 스킬들이었다.

상엽은 여기까지만 확인하기로 했다.

‘스킬은 하급 그레이 상점에 더 많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는 데도 유독 한 가지 스킬이 눈에 띄었다.

-두란테스의 정의의 힘: 순간 증폭

짧은 시간 힘을 증폭시킨다.

타격 중심의 상엽 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스킬이었다.

‘좋은 무기도 필요하고, 스킬도 있어야 하고, 신체도 강화해야 하고…….’

상엽은 마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가진 코인으로는 블랙 상점까지 둘러봐야 의미가 없겠어.’

상엽은 이미 대부분의 코인을 소진한 터라 차라리 이곳에서 필요한 스킬들을 시험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근력 강화 2단계, 순발력 2단계, 순간 증폭 2단계. 이렇게 할게요.”

상엽의 요청은 곧바로 받아들여졌다.

“6,000코인입니다.”

상엽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빛은 모든 걸 태울 것처럼 강렬히 빛나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순간, 상엽의 근육이 단단히 조여졌다. 반면 몸은 선명히 느낄 정도로 가벼워졌다.

‘효과가 좋다더니.’

그렇지 않아도 10단계 강화와 개조로 몸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강화까지 진행되자 새로운 몸을 얻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다른 갓코인 유저에 비해 신체 강화를 빠르게 진행하는 편이었다.

반면 스킬은 5단계가 최고일 정도로 투자를 하지 않았다.

‘노가다는 건강이 생명이야.’

이 역시 그의 직업병이었다.

“감사해요. 이제 갈게요.”

“언제든 다시 오시기 바랍니다. 볼일이 없으실 때도 쉬어 가실 수 있습니다.”

홍만식은 상엽에게 따로 명함을 내밀었다. 거긴 주소뿐만 아니라 전화번호도 적혀 있었다.

“진짜 부동산도 하시나요?”

“물론입니다. 원하시면 제가 특별히 잘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말입니다.”

“중개비는요?”

“정찰제입니다.”

마지막 대답은 시리도록 냉정한 말투였다. 그래서 상엽은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갈게요.”

“또 뵙기를 바랍니다.”

상엽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206그레이 코인이 남은 상엽은 편안하게 거리를 걸었다. 많은 코인을 가졌다는 약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상대가 목숨 걸고 달려들 코인이 아니다.

‘좋아.’

주먹을 움켜쥔 상엽은 새로운 힘에 만족했다.

신체 강화와 개조 10단계에서 엄청난 상승이 있었고, 하급 상점의 세부 강화도 훌륭했다.

하지만 이를 코인으로 바꾸면 다른 결과가 나왔다.

‘1.5배 정도 되는 거 같은데.’

그가 판단한 대로 하급 상점의 상승효과는 1.5배였다.

‘상승에 비해 코인은 훨씬 많이 드는구나.’

최하급 신체 강화가 총 10만 2300코인, 하급 상점 신체 강화에서 힘과 민첩을 모두 강화하면 102만 3천 코인이었다.

50%를 더 올리는 데 코인은 10배가 드는 것이다.

물론 상엽의 계산법에는 문제가 있었다.

50%라고 해도 그걸 단계로 따지면 계산 오류가 발생했고, 5단계마다 일어나는 상승분을 감안하면 또다시 오차가 있다.

그렇다고 결론이 다른 건 아니다.

그저 코인 대비 효율이 조금 떨어질 뿐.

‘그래도 해야지. 기본이 제일 중요해.’

비효율적이라도 상엽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한 걸음씩 가자.”

비싼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상엽은 흔들리는 생각을 정리하며 머리를 식혔다.

‘시간이 좀 남았네.’

시계를 확인한 상엽은 약속을 떠올렸다.

송연지와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블랙 상점을 가지 않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남았다.

‘사람 구경이나 좀 하자.’

어젯밤 송연지와 일반인처럼 밥을 먹고 거리를 걸었다. 송연지가 상엽에게 옷도 사 주었고, 둘은 편한 친구가 되어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제법 즐거운 시간이었다.

-내일 저녁에 다시 봐요.

그녀도 볼일이 있어서 저녁에 약속을 잡았다.

“미리 연락하고 커피숍에서 만날까?”

어제의 휴식 때문인지 상엽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송연지를 빨리 만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난 볼일 끝났어. 미리 올 수 있으면 와. 일부러 올 필요는 없고.

이어서 자신이 가려고 하는 커피숍의 이름까지 문자로 보냈다.

“커피숍이라…….”

다른 이들에겐 익숙한 장소지만 힘들게 살아온 상엽에겐 아니었다.

“예전에는 돈 아까워서 안 갔는데.”

지금도 커피 가격을 보면 아깝긴 마찬가지였다. 한 잔에 1만 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변종 출현 이후, 전 세계가 물가 상승으로 몸살을 앓았다. 식량 가격 급등을 시작으로 모든 부분의 물가가 오른 것이다.

그나마 한국은 기준 물가 상승률이 2배로 그쳤다. 체감 상승률은 3배 정도였다.

다만 남아돌던 기본 식량들이 기준 이하로 내려가면서 경제적 폭탄을 안고 있는 실정이었다.

때문에 식량 기지와 식량 단지 건설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었다.

예전에는 정책적으로 가장 먼저 희생시키던 농민들이 이제 가장 중요해진 것이다.

“오늘만.”

결국 상엽은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사람들은 상엽에게 별다른 시선을 주지 않았다.

‘연지가 유명해지지 말라고 했어.’

어제 대화에서 송연지가 상엽의 몇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오빠, 눈에 띌 행동은 하지 마세요. 유명해지면 안 돼요. 유명해진다는 건 목표물이 된다는 뜻이니까.

주목받는다는 것은 적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이미 사냥꾼의 추적을 받아 본 상엽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눈에 띄지 말자.’

그 생각을 하며 카페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던 중, 주문했던 커피가 나왔다.

상엽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커피를 받으려 했다. 그런데 뭔가가 그의 손에 부딪쳤다.

“악!”

비명을 지른 사람은 여자였다.

상엽과 같은 타이밍에 일어나다가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쏟고 말았다.

“괜찮으세요?”

상엽은 혹시나 여자가 다치지 않았는지 물었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여자는 멍한 눈으로 상엽을 보았다.

“저기…….”

“왜 그러세요?”

여자가 손가락을 세워 아래를 가리켰다.

상엽의 손에 커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뜨거운 커피였는데…….”

“하하, 제가 원래 뜨거운 걸 좋아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상엽은 주문한 커피를 받아서 커피숍을 나왔다.

‘눈에 띄지 말자.’

그는 나름대로 잘 대처했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커피숍에서 멀어졌다. 그때, 또다시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을 배달하던 사내가 전화를 하느라고 갑자기 뛰어든 아이를 보지 못한 것이다.

상엽은 본능적으로 아이를 향해 달렸다.

쿵!

아이를 안고 몸을 돌리는 순간, 등에 작은 충격이 느껴졌다.

6살쯤 된 아이는 소리에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이에 상엽도 정신을 차렸다.

‘이런.’

자신이 너무 멀쩡하다는 오류가 생겼다.

“아아.”

그는 괜히 등이 아픈 척하며 바닥에 엎드렸다.

‘에이 씨. 어설펐어.’

누가 봐도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를 낸 사람에겐 아니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꼬마야, 괜찮니?”

배달원의 질문에 상엽은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냥 얼굴 가리고 튈까?’

누군가 이 상황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괜히 골치 아플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잠시만요. 구급차 부를게요.”

상엽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때,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여기서 뭐해요?”

송연지였다. 이에 상엽이 눈만 살짝 들며 대답했다.

“아픈 척하고 있어.”

“왜요?”

“네가 유명해지지 말라며.”

“그럼 빨리 얼굴 가리고 튀어요. 사람들이 폰으로 찍고 있어요.”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송연지는 손을 내밀었다. 상엽은 이를 잡으며 있는 힘껏 몸을 날렸다.

쾅!

보도블록이 가루로 흩어지며 그들의 몸이 떠올랐다.

그리고 상엽과 송연지는 8차선 도로를 단숨에 뛰어넘어 반대편 3층 건물 옥상에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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