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0화 (10/300)

# 10

언뜻 보기에는 한적한 국도였다.

하지만 보수가 되지 않은 국도는 곳곳이 깨졌고, 거칠게 자란 풀이 아스팔트를 뚫으며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평소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도로로 어울리지 않게 50cc 스쿠터가 들어섰다.

-용궁반점

용도가 선명히 적힌 스쿠터 위에는 상엽이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거 쉽지 않네. 역시 자전거를 가지고 왔어야 하는데.”

상엽은 화살표를 보며 계속해서 국도를 따라갔다. 그렇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좀처럼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저건 뭐야?”

도로 위에서 동물 사체를 뜯어 먹고 있는 들개들이 있었다.

들개들은 스쿠터 소리를 듣자 곧바로 이빨을 드러냈다.

이에 상엽은 왼손 위의 화살표를 보았다. 순간, 스쿠터가 크게 흔들렸다.

“아우!”

결국 상엽은 스쿠터에서 뛰어내렸다.

“걸어가고 말지.”

쓰러지는 스쿠터를 내버려 둔 상엽은 화이트 해머를 꺼냈다.

“덤벼, 강아지들.”

상엽은 거침없이 들개들을 향해 걸어갔다.

들개들도 두려움 없이 상엽을 기다렸다. 그리고 충돌이 일어났다.

콰쾅!

상엽의 해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스트라이크 3단계의 효과였다. 타격 지점에서 일어난 폭발은 들개들의 몸을 단번에 찢어 버렸다.

“이거 괜찮네.”

상엽도 스트라이크의 위력에 만족했다. 그는 스쿠터를 버리고 화살표를 쫓기 시작했다.

금산 진입 2일째.

상엽은 산책을 하듯 도로 위를 걷고 있었다.

“여긴 심심하네.”

변종 밀집도가 낮았다. 변종들이 간간이 나타나는 정도였다.

때문에 상엽은 만족할 만큼 사냥을 할 수가 없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산과 들이라는 차이가 있었고, 사냥꾼들이 방문하는 빈도가 달랐다.

지속적으로 변종이 처리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차이였다.

그런데 이 부분은 상엽이 잘못 생각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모든 사냥꾼들이 산을 꺼려 한다.

은폐물이 많아서 위험했기 때문이다. 이는 군사 작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직 산에서만 사냥을 했던 상엽은 이 부분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차라리 안쪽으로 들어갈까?”

생각만큼 코인을 모으지 못한 상엽은 개활지 옆에 있는 산들을 보았다.

“일단 의뢰부터 하자.”

상엽은 사냥보다 의뢰에 집중하기로 했다.

간간이 나타나는 변종들을 상대로 스킬을 시험하며 원치 않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이젠 스킬에도 익숙해졌고.”

상엽은 스트라이크 3단계를 계속해서 시험했다.

2미터를 미끄러지듯이 전진하는 것과 고스트 실드가 견디는 충격도 감안했다.

둘 모두 강화가 된 만큼 확실한 위력을 발휘했다.

고스트 실드는 피부에 순간적으로 얇은 보호막이 씌워지는 것 같았고, 스트라이크는 원래 힘에 비해 몇 배나 되는 충격을 만들었다.

‘어떻게든 더 강화를 해야 하는데…….’

문제는 역시 코인이다.

‘스트라이크는 2,400코인이고, 고스트 실드는 1,600코인.’

문제는 엄청난 강화 비용이었다.

‘그 정도면 신체 강화가 더 효율적일 수도 있어.’

스킬과 신체 강화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 도로 위로 늑대 다섯 마리가 나타났다.

“보고 싶었어.”

상엽은 곧장 늑대들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곧 걸음을 멈춰야 했다.

늑대들이 보는 곳은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늑대를 중심으로 반대편에 누군가 서 있었다.

‘사냥꾼.’

깡마른 체구에 피부가 까만 30대 중반 사내였다.

신장은 작은 편이었고 눈빛이 퀭해서 시체 같은 느낌도 있었다.

상대 역시 상엽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그는 늑대가 달려드는 데도 여전히 상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늑대가 지척에 닿았을 때, 팔을 들어 올렸다.

순간 바닥에서 수십 개의 날카로운 검은색 가시가 3미터 높이로 튀어 올랐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늑대들은 모두 빛으로 흩어졌다.

‘무기를 안 보여 주네.’

그도 상엽을 경계하는 것이다.

늑대들이 사라지고 나서도 상엽과 사내는 한참 동안 서로를 보고만 있었다.

‘22,700그레이 코인.’

상엽이 본 최고 수치였다. 하지만 상대가 어떤 코인을 사용하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강해.’

상대의 여유와 스킬, 그리고 자신의 상태를 감안해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전투에도 상당히 익숙한 것 같고.’

상엽은 이번이 첫 의뢰다. 특징을 감안하더라도 초보 수준인 그가 베테랑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다.

‘사냥꾼을 만나면 이렇구나.’

그저 마주했을 뿐임에도 상엽은 자신이 어떤 세계에 들어왔는지 분명히 깨달았다.

일반인 사이에서는 괴물이지만 그 괴물들 사이에서는 아기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방법은 있었다.

‘어느 쪽이지?’

고민을 하는 사이, 상대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발씩 걸어오는 것이다. 그는 상엽이 강하지 않다고 판단하면서도 신중하게 걸음을 옮겼다.

‘지금 해야 돼.’

상엽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았다.

블랙과 화이트.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 그는 뭔가를 발견했다.

사내의 발목과 무릎이었다.

‘블랙 유저다.’

블랙 유저는 순간적인 힘을 증폭시키는 방식을 훈련한다. 이런 행동의 기본은 근육을 팽팽하게 땅기는 것부터였다.

이것이 버릇이 되면 그냥 걸을 때도 일반인보다 근육이 반대쪽으로 조금 더 접히게 된다.

‘블랙 해머.’

상엽은 전투를 준비하는 것처럼 블랙 해머를 꺼냈다. 이를 본 사내는 바로 걸음을 멈췄다.

“블랙 유저였군.”

그도 보란 듯이 무기를 꺼냈다.

검은색 칼이었다. 그런데 기본 무기가 아니었다. 칼날이 지그재그로 되어 있고 손잡이에는 푸른색 보석이 박혀 있었다.

“의뢰를 하러 온 건가?”

“네, 아저씨는요?”

“잡을 놈이 있어서 잠깐 왔을 뿐이다.”

“그놈은 잡으셨나요?”

“물론.”

“고생하셨네요.”

블랙 유저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그들은 경계를 한층 누그러트렸다.

“조심해라. 여긴 화이트 유저도 많이 오는 곳이니.”

“그럴게요.”

사내는 상엽이 친근하게 대답을 하자 날카로운 외모와 달리 뭔가를 건네주었다.

“받아라.”

“이게 뭔가요?”

“수색한 지역의 지도다.”

직접 손으로 그린 금산의 변종 배치 지도였다. 완벽하진 않지만 절반이나 변종의 정보가 채워져 있었다.

“이런 걸 저한테 주셔도 되나요? 소중한 정보 같은데.”

“어차피 난 이제 다시 올 일이 없을 테니까.”

“그건 모르는 일이잖아요.”

“한국을 떠난다. 더 큰 무대로 가야지.”

“아…….”

한국은 산에만 변종의 개체 밀집도가 높은 편이었다. 게다가 삼면이 바다라 변종의 이동도 불가능했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변화에 대처한 이유였다.

-막강한 군사력

-위험한 야생 동물의 부재

이 두 가지가 결정적이었다.

그래서 변종 사냥꾼들은 일정 수준이 넘으면 더 이상 한국에 머물지 않았다.

유물 사냥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연이라 생각해라.”

사내는 그 말을 남기며 상엽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그러면서 마지막 조언을 했다.

“화이트 유저를 만나면 가차 없이 죽여라. 색깔에 현혹되면 네가 죽을 테니까.”

화이트 코인은 엔젤 코인으로도 불린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엔젤 코인을 선택했다.

반면 일반인은 블랙 코인이 많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화이트 유저가 천사 같은 건 아니었다. 사내는 이 점을 말하는 것이다.

“명심할게요.”

“행운을 빌지.”

“고마워요. 이름이라도 말해 줄래요? 다음에 만나면 보답하고 싶은데요.”

“김만득.”

“풋!”

상엽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아, 죄송해요. 만득 아저씨.”

“만득 아저씨?”

“인간적이고 좋은 이름이네요.”

“겁이 없는 녀석이었군.”

상엽은 그냥 밝게 웃었다.

공사판에서는 언제나 거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루살이 인생이잖아요.”

“크큭! 재미있는 녀석이군. 좋아, 또 만나자.”

김만득은 그 말을 남기며 상엽에게서 멀어졌다. 그의 여유와 자신감을 보며 상엽은 많은 것을 깨달았다.

‘가야 할 길이 멀어.’

상엽은 블랙 해머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순간이었는지 다시 확인했다.

-화이트 유저를 보면 가차 없이 죽여라.

그가 화이트 해머를 꺼냈다면 김만득은 주저 없이 상엽을 죽였을 것이다.

‘그래, 이런 곳이었지.’

상엽은 자신의 여유가 거만이었음을 인정했다.

“제대로 가자.”

그는 후회 대신 변화를 선택했다.

김만득이 남긴 변종 지도는 상당히 훌륭했다.

상엽은 가장 안전하게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나타나는 변종들은 전부 영역 밖에 있는 녀석들이라 간단히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화살표가 최대 크기로 변했다.

“저긴가?”

본래 엄청난 넓이의 인삼밭이었다.

경사가 진 지역으로 작은 산 한쪽 면을 모두 깎아 내서 만든 농경지였다.

‘칼날 두더지.’

상엽은 목표를 다시금 확인하며 밭으로 들어갔다. 순간, 땅속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튀어 올랐다.

‘뭐야?’

상엽은 급히 물러났지만 발아래가 시큰했다. 운동화를 뚫고 들어온 가시가 발바닥에 상처를 남긴 것이다.

“이번에 새로 산 건데.”

상처보다 운동화가 아까웠던 상엽은 물러서서 화살표를 확인했다.

“숨바꼭질은 별로 안 좋아해.”

상엽은 심호흡을 하고 밭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가 지나온 자리에서 가시가 튀어 올랐고, 때로는 예상 경로를 막기도 했다.

‘저기다.’

상엽은 밭의 정중앙에 흙의 모양이 조금 다른 지점을 찾아냈다.

이를 본 상엽은 힘을 주어 바닥을 차며 몸을 날렸다.

공중으로 떠오른 상엽은 화이트 해머를 꺼내며 공중에서 스트라이크를 시전했다.

그의 몸이 갑자기 아래로 추락하며 화이트 해머가 목표 지점을 때렸다.

쾅!

땅이 뒤집어지는 폭발과 함께 흙이 튀어 올랐다.

“안녕, 200코인 두더지.”

흩어지는 흙 사이에 검은색 두더지가 있었다. 상엽은 이를 보며 다시 해머를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두더지가 빨랐다.

두더지의 털이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워지더니 모든 방향으로 가시가 되어 튀어 나갔다.

‘고스트 실드.’

상엽은 대형 방패를 만들어 이를 막았다. 하지만 방어만으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방패를 든 채로 상엽은 몸을 띄웠다.

그리고 고슴도치보다 한 발 높은 곳에서 방패를 휘둘렀다.

쾅!

고슴도치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엽은 이를 보며 다시 한번 스트라이크를 시도했다.

그 순간, 고슴도치가 상엽을 보며 긴 주둥이를 벌렸다.

‘제길.’

고슴도치의 입에서 고드름 같은 굵은 가시가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보여 준 공격과는 확연한 위력 차이가 느껴졌다.

공기를 찢어 내는 소리가 들렸지만 상엽은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에 가자.’

길게 끌면 위험해진다고 판단한 상엽은 공격을 선택했다. 그래서 앞으로 내달렸다.

츳!

가시는 결국 그의 왼손 팔뚝에 깊이 박혔다. 상엽은 고통이 엄습하는 와중에도 스트라이크를 꽂았다.

쾅!

두더지의 몸이 풍선 터지듯이 사방으로 퍼지며 소멸했다.

“큭!”

상엽은 해머를 집어넣고 피가 새어 나오는 팔뚝을 잡았다.

두더지와 가시가 동시에 소멸하면서 팔뚝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렸기 때문이다.

몸을 틀지 않았다면 뚫리는 건 팔뚝이 아니라 심장이었을 것이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고스트 실드의 보호막까지 뚫고 들어온 것이다.

그나마 신체 개조의 영향으로 새어 나오는 피의 양이 줄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출혈이 커서 상엽은 옷을 벗어 상처 부위를 감쌌다.

‘위험한데. 이렇게는 안 되겠어.’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누군가 빠르게 접근하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사냥꾼.’

변종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상대는 반대쪽 산에 있었는지 경사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나타났다.

40대 초반의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상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역시 무기는 보여 주지 않았다.

상엽에게 다시 선택의 순간이 왔다.

‘청기 백기 게임이야?’

화이트와 블랙.

확률은 50퍼센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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