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9화 (9/300)

# 9

삼일장이 치러졌고 상엽은 소장의 유골이 땅에 묻히는 순간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제 끝났어.’

슬픔이 남겠지만 시간이 치유해 줄 것이다. 슬픔은 지옥을 벗어나는 관문이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3일 후, 상엽은 짐을 쌌다.

소장의 가족들이 끝까지 만류했지만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변종 사냥꾼과 함께 있는 건 위험해.’

이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런데 단 한 가지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철거반 정리하는 것만 도와주면 안 될까?

소장의 부인은 철거반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게다가 다른 인부들이 모두 죽는 바람에 남은 사람은 상엽뿐이었다.

-뒤에 문제만 안 생기면 돼.

부인이 원하는 것은 이 정도였다. 소장이 남겨 놓은 재산이 꽤 있어서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를 위해 상엽은 주인이 사라진 철거반의 사무실로 갔다. 소장과 거의 모든 생활을 함께하다 보니 대부분을 알고 있었다.

‘결제 문제만 해결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소장의 책상을 열었다. 가족들의 사진과 함께 몇 가지 수첩이 나왔다.

“이게 공사 계획이고, 이게 결제 장부고…….”

상엽은 소장의 책상에 앉아 장부를 하나씩 확인했다.

사고 소식이 알려지고 대부분의 공사 계획은 취소가 되었지만 빠진 게 없는지 살피면 될 거 같았다.

상엽은 공사 계획에 있는 전화번호를 보며 하나씩 확인에 들어갔다.

‘하루면 될 거 같아.’

태백산 정비 사업이 큰 공사여서 스케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내일부터 시작하는 공사가 있었네.”

상엽은 마지막 계획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꽤 큰 공사였잖아.’

개인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제조 공장을 상대로 한 공사였다. 이로 인해서 여러 건설업체와도 연관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전화를 받는 사람도 책임자가 아니라 직원이었다.

‘이거 골치 아프네.’

회사가 상대가 될 경우, 인간적인 면보다 법적으로 흘러갈 확률이 높았다.

소장의 부인이 가장 우려하던 상황인 것이다.

-내일부터 공사 시작인데 연락이 안 돼서 그렇지 않아도 알아보는 중이었습니다.

“현재 준비 상황은 어떠신데요?”

-기존 계약에 대해서는 클레임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역시 손해 배상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상엽은 서류의 내용을 다시 살폈다.

-계약금 3천, 총 공사 기간 15일, 공사비 2억.

꽤나 큰 건수였다.

이 정도 공사라면 다른 업체와도 협력을 해야 했다.

중장비를 동원하고 건설 폐기물을 수거해 갈 업체도 필요했다.

모든 걸 확인한 상엽은 상대에게 다시 물었다.

“다른 업체는 선정됐나요?”

-선정 중입니다.

“그럼 제가 공사 진행할게요.”

-이미 클레임을 준비 중이라 곤란합니다.

“공사비는 그대로 하는 대신, 공사 기간 줄여 드릴게요.”

어떤 공사든 공사비만큼 중요한 것이 공사 기간이었다.

-자세한 제안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상대도 갑자기 업체를 구하느라 애를 먹는 듯했다.

“사흘 안에 철거 완료해 드릴게요. 잔금은 공사 완료 후에 주셔도 돼요.”

상엽은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기로 했다.

이틀 뒤.

상엽은 폐기물 수거 업체와 건설업체의 운반 트럭을 찾느라 하루를 보냈다.

다만 철거 관련 인부는 단 한 명도 뽑지 않았다.

‘한 시간 남은 건가?’

시간은 새벽 6시였다. 7시부터 폐기물 업체가 와서 정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전화를 받았던 직원은 30대 초반으로 실장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어리숙한 표정에 꾸부정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모습이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저기…….”

“왜요?”

“오늘부터 철거 시작하신다고…….”

“지금 할 거예요.”

상엽의 말에 상대는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장난치지 마세요. 제가 이 일 때문에 사장님한테 얼마나 깨졌는데…….”

“이번에는 칭찬받을 거예요.”

상엽은 단박에 그의 말을 끊고 명령하듯 말했다.

“위험하니까 나가세요.”

“네?”

“위험하니까 나가시라고요. 다쳐도 몰라요. 최대한 멀리 가세요.”

상엽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화이트 해머를 꺼냈다.

1시간 후.

직원은 멍하니 무너진 공장들을 보고 있었다.

멀쩡하던 공장 다섯 채가 완전히 가루가 되는 데 정확히 한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중간에는 배고프다며 컵라면까지 먹었다.

‘어떻게…….’

어느새 트럭들이 도착하면서 폐기물 수거를 시작했다.

“아저씨.”

“네!”

직원은 상엽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폈다.

“공사는 내일이면 끝날 거예요. 확인하시고 잔금 처리 확실히 하세요.”

“네!”

상엽은 확답을 듣고 트럭들이 오가는 건설 현장으로 돌아갔다.

보름 공사를 사흘 만에 끝낸 상엽은 마지막으로 철거반 사무실을 들렀다.

50평 공터에 간단한 조립식 건물이 그가 2년 동안 일을 하던 철거반 사무실이었다.

책상은 단 3개였고, 그나마 하나는 쓰지도 않았다.

소장과 여직원이 쓰던 두 개의 책상은 주인을 잃어 더 이상 쓸 곳이 없었다.

‘여기도 끝인가?’

상엽은 사무실 구석에 있는 배낭을 들었다.

“소장님, 잘 있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상엽은 마지막 인사를 하며 철거반을 떠났다.

* * *

8월이 시작되었다.

유례없는 불볕더위라고 했지만 상엽은 시원한 가을처럼 평온한 모습이었다.

철거반이 있던 원주를 떠난 상엽은 서울로 향했다.

은빛 늑대와의 전투에서 2100코인을 모은 그는 레나의 상점에서 이를 모두 소비했다.

-아오나의 고스트 실드

3단계-몸 전체를 감싸는 보호막을 생성한다.

-헬카누스의 습격: 스트라이크

3단계-2미터를 돌진하며 타격 지점에 작은 폭발을 일으킨다.

두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2천 코인을 소모했다. 이로써 남은 코인은 100코인이었다.

“의뢰.”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야?”

“해야지.”

레나는 상엽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뭐야? 그 일은 끝난 거 아니었어?”

“끝났지.”

“그런데 왜 그렇게 진지해? 목표를 이뤘으면 조금 쉬는 것도 괜찮지 않아?”

“진짜 목표가 생겼어. 갓코인으로 할 수 있는 일.”

“그게 뭔데?”

“누나를 살리려고.”

그 말에 레나는 흥미롭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갓코인 유저답네.”

상엽의 새로운 인생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상엽은 매번 같은 꿈을 꿨다.

그 꿈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기억의 재생이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나무에 연결된 밧줄에 목을 매달고 흔들리는 한 여인.

그 창백한 얼굴이 낫지 않는 감기처럼 끈질기고 집요하게 상엽의 뇌리에 남았다.

‘누나.’

초등학교 때부터 누나는 상엽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세상에서 우리 누나가 제일 예뻐.’

상엽은 그렇게 자랑하고 다녔다. 다른 이들도 그 말에 부정을 하지 않았다.

어디서든 주목을 받을 만큼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누나가 한적한 국도 변의 나무에 목을 매달고 죽어 있었다.

‘자살.’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상엽은 그럴 리가 없다고 외쳤지만 누구도 그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가족을 잃은 고아.’

세상 사람들에게 고아의 말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덜컹!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상엽은 작은 충격을 느끼며 눈을 떴다.

서울에서 대전으로 가는 고속 도로였다.

변종 들개가 튀어나와 버스를 들이받은 것이다.

-안심하세요. 안전합니다.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라 버스 기사는 침착하게 안내 방송을 했다.

승객들도 놀랐던 마음을 진정시키며 안정을 찾았다.

‘누나.’

3살 많은 누나는 어린 나이에도 엄마 역할을 훌륭히 해냈었다.

‘항상 웃어야 돼. 우리는 불행하지 않아. 그냥 조금 힘들 뿐이야. 시간이 가고, 열심히 살면 누구보다 행복할 거야.’

상엽이 우울할 때면 누나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살릴 거야.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는 아직도 누나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로 인해서 학교를 그만뒀고 혼자서 이를 밝히려다 많은 사고를 쳤다.

기물 파손, 억울한 폭행까지 뒤집어쓰면서 상엽은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다.

“이제는 할 수 있어.”

예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삶의 의미를 잃었다.

무기력한 삶에서 소장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상엽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진짜 시작이야.’

갓코인 수집의 시작은 의뢰였다.

최초로 받은 100코인짜리 의뢰는 대전 근교의 금산이 목적지였다.

의뢰에는 네 가지 분류가 있었다.

제거, 수색, 경쟁, 특수.

제거는 변종을 대상으로 했고, 수색은 유물이나 유산과 관련이 있었다.

경쟁과 특수는 특별한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의뢰였다.

‘칼날 두더지라. 우리나라에 두더지도 있었나?’

그는 의뢰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1단계 제거 의뢰

칼날 두더지를 처리하라.

보상 코인 300화이트 코인.

의뢰 보상 코인은 블랙이나 화이트였다. 의뢰를 주던 레나는 이렇게 말했다.

-역시 넌 이상해. 원래 해당 진영의 의뢰만 볼 수 있는데 말이야. 너한텐 두 개 진영 모두 보이잖아.

덕분에 상엽은 선택의 폭이 넓었다.

상엽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착을 기다리고 있을 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산적 오빠!

놀이공원에 온 아이처럼 유쾌한 목소리였다.

“왜?”

-어디예요?

“금산 가는 길이야. 의뢰하러.”

-전 의뢰 끝났어요! 어휴.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저도 이러다 산적 되겠어요.

“난 이제 산적 아니야.”

상엽은 장례식을 치르느라 머리와 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한 상태였다.

-어머! 지금 보여 줄 수 있어요?

대화를 하는 사이,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섰다.

“나 이제 내려야 돼.”

-아우, 치사해라.

“고생했으면 쉬어. 이제 내가 고생할 차례야.”

-알았어요. 조심해요.

상엽은 전화를 끊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그가 이동한 곳은 대전의 남쪽 방어선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남대전 방어선이라 불렀다.

금산은 본래 인삼으로 유명하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버려진 땅이 되었다.

방어선이 구축되기 전에 도심이 뚫렸기 때문이다. 본래부터 도심이 그리 크지 않은 편이라 국가에서도 굳이 이를 복구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금산을 통과하는 고속 도로가 있음에도 국도는 허가를 받지 않으면 갈 수 없는 통제 지역이 되어 버렸다.

상엽은 통제 구역에 커다랗게 세워져 있는 붉은색 표지판을 보았다.

‘1급 위험 지역.’

한국 정부는 변종 지역에 대한 다섯 가지의 구분이 있었다.

안전 지역, 이는 방어선이 구축된 도심이었다.

주의 지역, 방어선 근처와 병력이 10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경고 지역, 도롯가나 방어 병력이 10분 내에 도착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위험 지역, 주둔 병력이 멀고 변종들이 있다고 확인된 지역이었다.

출입 불가 지역, 국가에서 직접 통제하는 작전 대상 지역이었다.

금산은 1급 위험 지역이었다.

‘밤에 몰래 나가야 하나?’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상엽은 한 가지 문제에 부딪쳤다.

‘꽤 먼 거 같은데.’

의뢰를 받는 순간부터 그의 왼손에는 화살표가 생겼다. 목표물을 알려 주는 표시였다.

가까워질수록 화살표가 커지는데 아직 꽤 거리가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택시는 못 갈 텐데. 운전면허증도 없고. 오토바이라도 좀 배워 둘걸.’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방어선에 가까워졌다.

이를 본 군인 두 명이 상엽을 향해 걸어오며 손을 저었다.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상엽은 그제야 걸음을 멈췄다.

군인들은 자연스럽게 상엽의 곁으로 오더니 사무적인 말투로 주의를 주었다.

“1급 위험 지역입니다. 위험하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경고 없이 바로 체포할 수 있습니다.”

방어선은 작전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상엽은 작전 지역을 표시하는 경계선의 10미터 앞에 있었다.

“알았어요.”

괜히 문제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상엽은 밤을 이용해 몰래 지나가려 했다.

‘쉽지는 않겠는데.’

철저한 경계 시스템 때문에 쉽지는 않아 보였다. 그런데 돌아서던 상엽은 엔진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군인들의 무전기로 명령이 전달되었다.

-대기하라.

군용 지프 한 대가 상엽이 있는 경계선으로 오고 있었다.

지프에서 누군가 내리자 경계를 서던 두 명의 군인은 뻣뻣하게 허리를 세우며 거수경례를 했다.

“정상엽 씨.”

군인 간부는 부하들이 아니라 상엽을 불렀다. 상엽은 기억을 더듬었지만 그를 만난 적이 없었다.

“경계선을 통과하러 오신 겁니까?”

“네.”

“제가 모시겠습니다.”

상엽은 모르고 있지만 이미 그의 신상은 모든 부대에 전달되었다.

“이걸 보여 주시면 앞으로 어디든 통과가 될 것입니다.”

지프에 오르자 간부는 주민 등록증 같은 카드 하나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상엽이 재출한 적도 없는 사진까지 프린트되어 있었다.

‘원치도 않았는데 변종 사냥꾼 신분증이 생겨 버렸네. 역시 시스템이란 무서워.’

그는 아직 변종 사냥꾼에 대한 국가의 정책이 어떤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더 도와드릴 건 없습니까?”

상엽은 일단 인정하기로 했다. 여기서 시스템을 거부하며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말했다.

“자전거 있어요?”

간부는 이해하지 못하고 상엽을 쳐다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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