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은빛 늑대는 30미터 거리를 두고 상엽과 마주 섰다.
“저 똥개,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왜요? 나름 기품 있어 보이는데요.”
“그게 싫다는 거야. 똥개 주제에 있어 보이잖아.”
“어쩔 거예요?”
“남자답게 가야지.”
“무식하게요?”
“바로 그거야.”
쾅!
상엽은 메아리가 칠 정도로 힘차게 바닥을 찼다.
그의 몸이 미사일처럼 은빛 늑대를 향했다. 늑대는 피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지막 순간 가볍게 발을 굴러 뒤로 몸을 날렸다.
쿵!
상엽의 해머가 바닥을 때렸다.
그 순간, 회색 늑대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은빛 늑대는 유유히 물러나서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똥개 주제에 제법 똑똑하네.’
단순한 회피였지만, 효과는 제법이었다. 상엽은 자신이 나서면 놈도 나설 거라 예상했는데, 보기 좋게 실패를 한 셈이다. 그 실패로 인해 상엽의 손목과 허벅지에 늑대의 이빨이 들어왔다.
‘이대로면 당하겠는데?’
단련이 되고 개조가 된 신체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늑대들의 이빨은 매서웠고, 발톱은 사나웠다. 이대로 계속 공격을 받았다간 체력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상엽은 이를 악물며 다시 한번 발을 굴렀다.
그 순간 늑대 세 마리가 추가로 상엽을 물었다. 다섯 마리를 몸에 매단 채, 상엽은 거침없이 뛰어올랐다.
다른 늑대들도 사납게 상엽을 추격했다.
“이쪽으로 뛰어요!”
상엽은 시야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다시 한번 도약했다.
송연지는 침착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다 나무에서 몸을 날렸다.
‘네시의 손톱.’
단검은 든 그녀의 몸이 긴 잔상을 남기며 날아갔다. 그리고 상엽의 몸을 스치며 늑대 두 마리의 뒷목을 그었다.
사선으로 떨어진 그녀는 스프링처럼 바닥을 차더니 땅에 닿기 직전의 상엽에게 뛰었다.
그리고 또 한 마리의 늑대를 처리했다.
쾅!
상엽은 손목을 물고 있는 늑대를 바닥에 찍었다.
늑대의 머리가 그대로 터졌고, 고스트 실드로 또 한 마리를 처리했다.
“나무 위로 와요!”
송연지는 말을 하면서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추격하는 늑대들이 이미 지척이었다.
‘고스트 실드.’
떼를 지어 달려오던 늑대들 앞에 2미터 지름의 원형 방패가 생성되었다.
쿵! 쿵!
상엽의 몸을 모두 가릴 정도의 방패였다.
실드는 한 번의 공격을 막긴 했지만, 그의 몸은 이미 정상이라고 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어깨와 허벅지, 손목, 발목의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상엽은 빠르게 물러섰지만, 늑대들은 방패를 우회하며 상엽을 다시 포위하려 했다.
“올라와요!”
상엽의 옆에 화살이 꽂혔다. 그는 반사적으로 바닥에 꽂힌 화살을 잡았다.
순간 송연지가 이를 잡아당겼고 상엽의 몸이 떠올랐다.
아슬아슬하게 늑대를 피해 상엽의 몸이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송연지와 상엽의 사이로 은빛 늑대가 스쳐 갔다.
화살과 연결된 줄이 끊어지면서 상엽의 몸이 다시 떨어졌다.
‘그래, 차라리 제대로 가자.’
떨어지는 순간, 상엽은 이렇게 생각했다.
‘고스트 실드.’
상엽은 고스트 실드를 발아래로 내리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방패에 깔린 늑대가 빛으로 흩어졌고, 상엽은 곧장 해머를 휘둘렀다.
사투는 그때부터였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한 상엽은 늑대들의 포위망에서 전투를 시작했다.
그러자 은빛 늑대가 상엽의 뒤쪽으로 접근하려 했다.
“넌 나랑 놀아야지?”
은빛 늑대 앞에 송연지가 내려섰다.
‘이길 수 있을까?’
원래 계획은 상엽과 협공으로 잡으려 했다. 그래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잖아. 해야 돼.’
그 생각을 하는 사이, 은빛 늑대가 움직였다. 송연지도 속도전이 특기였지만 한순간 늑대의 움직임을 놓쳤다.
팟!
송연지의 팔뚝에 세 줄기 붉은 선이 남았다. 그나마 마지막에 반응을 했기에 목이 잘리는 건 피했다.
은빛 늑대는 어느새 송연지를 지나쳐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기회를 잡았음에도 곧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은빛 늑대의 옆구리에 붉은색이 보였다. 은빛 털이 피에 물든 것이다.
“만만하게 보지 마.”
송연지의 손에 들린 단검에는 늑대의 피가 묻어 있었다.
크릉!
상처 입은 은빛 늑대는 처음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 놀린 거 취소할게.”
늑대는 더욱 빠른 속도로 송연지를 덮쳤다.
그녀 역시 그때부터 사투를 시작했다.
은빛 늑대는 송연지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고 냉정했다.
그녀도 방어보다 목숨을 걸고 부딪치는 걸 선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가 쌓이는 건 그녀였다.
이번에는 은빛 늑대도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더욱 속도를 높이며 송연지를 압박했다.
챙!
끝까지 항전을 하던 송연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단검을 놓쳤다.
그녀의 손목에는 길게 붉은 선이 그어졌다. 그럼에도 송연지는 활을 꺼내 방향을 틀려는 은빛 늑대를 겨눴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은빛 늑대는 빠르게 옆으로 뛰었고 송연지는 이를 다시 겨누려 했다.
‘이런!’
그때서야 깨달았다.
활을 겨누느라 송연지는 처음으로 이동을 멈췄다.
은빛 늑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향해 뛰었다.
‘당했어.’
송연지는 이 단어 하나를 떠올렸다.
은빛 늑대의 모습이 점차 가까워졌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였다.
퉁!
그녀는 마지막 순간 활시위를 당겼다. 명중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최후까지 싸우고자 했다.
이번에는 죽음을 직감한 순간에도 그녀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렇게 은빛이 그녀의 눈을 가득 채웠을 때였다.
그녀를 집어삼키던 은빛이 갑자기 아래로 추락했다. 그리고 은빛이 사라진 시야에 붉은색이 나타났다.
온몸이 피로 물든 사내였다. 멀쩡한 곳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였다.
텅.
사내는 결국 들고 있던 무기까지 놓치고 말았다.
“오빠…….”
송연지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몸을 움직여야 했다.
상엽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기 때문이다.
“이런 몸으로…….”
은빛 늑대는 결국 회색빛으로 산화했다. 그 외에 상엽과 싸우던 모든 늑대도 사라져 있었다.
상엽 혼자 그걸 해낸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잃는 순간까지 송연지를 지켜 냈다.
“바보같이…….”
송연지는 상엽을 안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 * *
상엽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그런데 평범한 병원으로 보이진 않았다.
“산적 오빠, 저 보여요?”
상엽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국립 군인 병원이에요. 급해서 일단 이리로 왔어요.”
그의 온몸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잠시 후, 가운을 입은 여자 의사와 준장 계급의 50대 후반 군인이 함께 들어왔다.
여자 의사는 군대 소속이 아니라 지원을 온 일반 의사였다.
그녀는 상엽을 보더니 상태 확인을 위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 후에야 그의 상태를 알려 주었다.
“근육 손상이 심해서 입원하셔야 합니다. 회복 경과를 보고 퇴원 결정을 하시는 게 현명하실 거 같습니다.”
일반인이라면 6개월 이상 입원과 재활을 해야 하는 상처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회복력이 엄청나네요.”
그렇지만 변종 사냥꾼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일반인의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상엽이 인사를 하자 의사가 물러났다. 대신 그 자리를 50대 후반의 군인이 대신했다.
“김대진 준장이네.”
그의 모자에는 별 하나가 달려 있었다.
본래 이런 방어 부대의 최고 책임자는 대령 정도지만 그는 특이하게 준장 계급을 달고 있었다.
그에게 특별한 사연이 있었지만 상엽은 군대 시스템에 대해 전혀 모르는 터라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다.
“회복할 때까지 편안히 머물다 가게.”
“고마워요.”
“회복하면 차나 한잔하지. 지금은 쉬게.”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상엽은 그 경험이 무척 신기했다.
“지금 별 단 아저씨가 나한테 인사하고 간 거야?”
“변종 사냥꾼이잖아요.”
“그래서?”
“뭐가 그래서예요. 그러니까 온 거지.”
“별 단 아저씨가 그래서 온 거라고?”
“당연하죠. 같은 편이면 최고의 전력이고, 적군이면 최악의 테러범이 될 텐데.”
상엽은 별로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항상 무시만 당했는데.”
“이젠 아닐 거예요. 아마 병원비도 안 받을걸요.”
“진짜?”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일용직은 몸이 재산이야. 병원비 주고 나면 남는 거 없어.”
“그런 사람이 싸움을 그렇게 해요?”
“내가 뭐?”
송연지는 상엽의 전투 방식에 대해 말을 하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아니에요. 좀 더 자요.”
“넌 괜찮아?”
“일어나자마자 물었으면 감동했을 텐데.”
송연지는 상엽의 얼굴 옆에 턱을 괴며 말했다.
“뭐하는 거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어서요. 두 번이나 날 구해 주다니.”
“나 때문에 죽을 뻔한 거잖아. 말은 바로 해야지.”
“저도 사냥하러 간 거예요. 봉사 활동 간 거 아닌데요.”
상엽은 봉사 활동이라는 말에 웃고 말았다.
“그 녀석 둥지는 살펴봤어?”
“오빠가 잡았잖아요. 오빠랑 같이 가려고요.”
“너 가져.”
“정말요?”
“응, 너 아니었으면 나도 죽었어. 도와줘서 고마워.”
“그럼 얼른 자요.”
“뭐?”
“오빠가 자야 가지러 가죠. 그러니까 빨리 자요.”
“쳇, 알았어.”
그렇지 않아도 피곤했던 상엽은 거절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송연지는 어렵지 않게 은빛 늑대의 둥지를 찾아냈다. 위치는 5구역의 중앙이었다.
특별히 자세히 살필 것도 없이 눈에 띄는 구조물이 있었다.
“악취미네.”
작은 구덩이 옆에 인간의 두개골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언뜻 봐도 30명은 넘어 보였다.
전리품처럼 쌓아 놓은 두개골들을 보며 불쾌한 표정을 하던 그녀는 곧 은빛 늑대의 둥지를 살폈다.
‘유물 감지.’
그녀의 손바닥 아래에 파란색 빛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손의 움직임에 따라 주변 1미터 반경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둥지를 전부 살폈지만 그녀가 원했던 유물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죽여서 진화한 건가? 그렇진 않을 텐데.’
그녀는 한 번 더 둥지를 살폈다. 그러다 여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설마?”
송연지는 두개골이 쌓인 곳에서 유물 감지를 시도했다. 그러자 곧바로 파란빛이 반응을 보였다.
“에이, 나쁜 놈. 하필 여기다 묻어 뒀냐?”
그녀는 활을 꺼냈다.
그리고 쌓아 놓은 두개골을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다.
모든 두개골을 치워 내자 드디어 그녀가 원하던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대리석으로 된 오각형 모양의 석판이었다.
“어?”
그녀는 석판을 잡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아빠 일기에 있었던 건데.”
정오각형의 석판은 각 변에서 무늬가 끊긴 형태였다.
“6개짜리 조각이면……. 어?”
송연지는 드디어 원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도르문트의 기적!”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에 분명히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건 보관해 놔야겠다. 모으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녀는 가방에서 붉은 보석함을 꺼냈다. 손바닥 크기의 보석함을 열자 그 안에서 빛이 뿜어졌다.
“들어가.”
석판을 뿜어지는 빛 위에 올리자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순간 빛이 석판을 삼키며 뚜껑이 자동으로 닫혔다.
-그라덴의 유물 보관함.
보관함에 넣은 유물은 탐지 기술에 걸리지 않았다.
이는 하급 그레이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잡화였다.
“산적 오빠한테는 비밀로 해야지.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녀도 비밀이 있었다.
“유물은 배신을 부른다. 아빠도 그렇게 죽었으니까.”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었다.
* * *
상엽은 의사의 만류를 무시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은빛 늑대의 둥지에 도착했다.
흩어진 두개골들이 보였다.
“유물이 이 아래 있었어요.”
상엽은 송연지의 설명을 들으며 두개골 무덤 앞에 앉았다.
흩어진 두개골들을 보자 그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니기를.’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어.’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송연지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두개골을 하나하나 살피는 상엽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걸 수도 없었고, 그 분위기와 눈빛에 압도되어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상엽은 송연지가 꺼려 했던 두개골을 직접 손으로 들어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특징을 가진 두개골 하나를 발견했다.
그걸 보는 순간, 상엽의 모든 행동이 멈췄다. 꿈을 꾸는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거 내 딸이 해 준 거야! 아빠 이빨 고쳐 준다고 공부 시간 쪼개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거지!
소장은 그 말을 수십 번도 더 했다.
공사 현장에서 많은 사고를 당하며 소장의 이빨은 대부분이 망가져 있었다.
그럼에도 검소한 성격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어금니에 금니를 씌웠다. 소장은 딸이 해 준 거라며 입버릇처럼 자랑을 하고 다녔다.
망가진 치아에 유일하게 씌워진 금니를 보며 상엽은 소장을 확신했다.
“아저씨…….”
상엽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뼈만 남은 소장을 끌어안았다.
-야! 무식이! 열 받으면 살아야지! 죽지 말고 살아서! 빌어먹을 세상에 복수해야지! 일어서!
부모님에 이어 누나가 죽고 나서 삶의 의미를 잃은 상엽에게 소장은 그렇게 말했다.
“하루살이 노가다도 살아야 희망이 있다고 했으면서…….”
상엽은 울고 말았다. 그렇게 터져 버린 감정의 둑은 단숨에 무너져 버렸다.
“살자면서! 왜 여기 이러고 있냐고!”
그의 눈물은 한참 동안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