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신체 개조 5단계가 진행되는 동안, 도지연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꿈꾸는 표정을 했다.
“역시 고통은 아름답네요.”
상엽은 그 말에 어떤 대응도 할 수 없었다. 숨을 쉬기도 어려울 만큼의 통증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4단계 개조까지는 참을 만하다 싶었는데, 5단계는 그런 수준을 확연히 넘어섰다.
피부가 불에 타서 녹아내리는 것 같았고, 뼈가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이었다.
속이 매스꺼워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데 목이 막혀 입을 벌릴 수도 없었다.
“힘껏 비명을 질러 봐요. 제가 들을 수 있게.”
극한의 고통에서도 도지연의 목소리는 거짓말처럼 또렷하게 들렸다.
‘망할!’
상엽은 그 목소리에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절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틸 생각이었다.
‘언젠가는 끝나.’
끝이 정해진 고통은 버틸 수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고통도 이겨 낸 상엽에게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후우.”
결국 고통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상엽의 몸은 젖은 빨래처럼 늘어지기 시작했다. 관절이 제멋대로 꺾여 있었고 피부는 용암이 끓는 것처럼 들썩거렸다.
“잘 견뎌 냈어요.”
도지연은 쓰러진 상엽 앞에 앉으며 말했다.
그녀는 땀에 젖은 상엽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 주기 시작했다.
“이제 웬만한 고통은 참을 만할 거예요. 정말 전사가 되기 시작한 거죠.”
신체 개조 5단계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고통에 대한 내성이 첫 번째고 충격 흡수가 두 번째다. 몸 자체가 고통이나 충격에 견딜 수 있게 바뀌는 것이다.
“자, 이제 일어나세요.”
관절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피부도 진정되었다. 그리고 늘어졌던 근육이 단단히 조이면서 힘이 느껴졌다.
상엽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때요?”
“좋네요.”
상엽은 달라진 몸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감각은 잘 벼려진 면도날처럼 날카로워졌고 피부는 몇 겹이나 압축된 고무처럼 단단해졌다.
“고통은 이처럼 아름답죠.”
도지연은 상엽의 어깨에 얼굴을 올리며 상엽을 안아 주었다.
“느껴지죠?”
“확실히 느껴져요.”
“더 빨리 성장해 줘요. 제가 만족할 수 있게.”
도지연은 손가락으로 상엽의 상체를 아주 천천히 쓸어내렸다.
선명해진 감각은 상엽의 몸 전체를 떨리게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을 기대해요.”
도지연은 마지막으로 상엽의 볼에 입을 맞추고 뒤로 물러났다.
“이제 무기를 선택해 볼까요?”
“해머로 할게요.”
상엽은 예정대로 블랙 해머를 샀다.
블랙 해머는 화이트 해머에 비해 길이가 조금 짧은 대신 해머가 큰 형태였다.
“해머라니, 남자답네요. 과격한 남자가 매력적인 법이죠. 역시 당신은 특별한 남자 같아요.”
그녀는 반쯤 감긴 눈으로 매혹적인 붉은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다.
“이제 갈게요.”
“인사는 하고 가야죠.”
도지연은 이번에도 상엽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 하지만 상엽이 먼저 돌아섰다.
“다음에요.”
상엽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아저씨, 이제 가요.’
그는 빠른 걸음으로 도지연의 병원을 떠났다.
* * *
은빛 늑대의 영역은 상엽이 설정한 5구역이었다.
은빛 늑대가 있다는 건 송연지가 알아낸 정보였고, 그 전까지 상엽은 늑대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한다는 사실만 알았다.
마치 군대처럼 몰이사냥을 하고, 정해진 위치에 순찰까지 도는 독특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들어가지 못했다.
“혼자 가도 된다니까.”
“저 못 믿어요?”
“믿어. 그런데 그게 목숨을 지켜 주진 않잖아?”
“어차피 오빠가 살린 목숨이잖아요. 오빠 때문에 죽는 거면 받아들여야죠.”
송연지는 농담과 진담을 섞어 이렇게 말했다. 결국 그녀는 상엽과 함께 5구역으로 들어갔다.
“빠른 녀석들이 많아요. 그리고 나무 위에서는 다람쥐를 조심해요.”
“시계가 있던 곳부터 가자.”
“제가 지켜 줄 테니까 너무 쫄진 말아요, 산적 오빠.”
그녀는 5구역 입구에서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연지는 괜찮겠어.’
송연지도 상점을 다녀왔다.
현재 그녀의 신체 강화는 8단계로 상엽보다 높았다. 다만 상엽은 신체 개조와 어우러져 더 강한 효과를 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송연지는 스킬에도 많은 코인을 소모하고 있었다.
-그라덴의 유물 감정 4단계
-그라덴의 유물 추적 3단계
-톨라덴의 유물 감지 3단계
-다크문의 은신 2단계
-트레인지의 깃털 3단계
-네시의 손톱 3단계
이렇게 총 6개의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 코인 사용량은 상엽의 몇 배에 달했다. 다만 트레저 헌터의 스킬을 사다 보니 전투 스킬이 부족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상엽은 5구역으로 들어섰다.
10분 동안은 어떤 변종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그렇다고 변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6마리로 늘었어요.”
주변을 살핀 송연지가 상엽에게 상황을 알렸다.
이미 6마리의 늑대가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리하고 가자.”
“조금만 더 가면 시계가 있던 곳이에요.”
“그러니까 미리 처리하고 가는 게 낫겠어. 이 녀석들 우리 목적지를 아는 거 같아.”
오랫동안 산속에서 전투를 벌인 상엽은 자신의 판단을 확신했다.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으니까 내버려 두는 거야.’
상엽은 이 상황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그런데 송연지가 한발 빨랐다.
그녀는 어느새 활을 꺼내 세 개의 화살을 걸었다.
퉁!
동시에 날아간 화살은 몇 개의 나뭇잎을 뚫으며 바닥에 꽂혔다.
늑대 근처에 떨어지긴 했지만 단 한 발도 명중하지 못했다.
“뭐하냐?”
“일부러 그런 거예요. 반대쪽이나 처리해요.”
바닥에 꽂힌 화살 하나와 송연지의 손이 빛으로 연결되었다.
송연지는 이를 밧줄처럼 잡아당기며 화살이 떨어진 자리로 날아갔다.
이를 본 상엽은 그녀의 반대쪽으로 뛰었다.
그곳에도 세 마리의 늑대가 있었다.
늑대들은 상엽의 움직임을 보자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이에 상엽은 바닥을 힘차게 굴렀다.
순간 그의 몸이 저공비행을 하는 전투기처럼 늑대들의 뒤를 쫓았다.
쾅!
해머가 등을 보인 늑대의 허리를 찍었다.
단 한 방으로 늑대의 뼈가 산산이 부서지자 상엽은 다음 공격을 위해 고스트 실드를 만들었다. 그런데 실드는 단계가 올라가면서 2미터 지름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바닥에 끌리면서 상엽의 중심이 흐트러졌다.
‘아직 연습이 부족한가?’
그는 어쩔 수 없이 멈춰 서서 방패 크기를 조절했다. 하지만 그사이에 늑대 두 마리는 멀리 달아나고 말았다.
“어머! 산적 오빠! 설마 놓친 거예요?”
“실수했어.”
늑대 세 마리를 단숨에 처리한 송연지가 상엽의 곁으로 왔다.
이 지역은 그녀가 훨씬 익숙했고 은빛 늑대와의 전투 경험도 많았다.
“산적 오빠, 평소보다 여유가 없는 거 알아요?”
“그래 보여?”
“그래 보이는 게 아니라 사실이에요. 여기까지 오는 걸음 속도도 빨랐고, 늑대를 발견하는 것도 늦고. 지금은 실수까지 했네요.”
놀리는 말투와 달리 그 내용은 진지하고 냉정했다.
“인정해. 이제 제대로 가자.”
“좋아요.”
상엽은 다급한 마음을 달랬다.
그때부터 그들은 속도를 늦추고 눈에 띄는 변종들을 모두 처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천천히 모두 잡으면서 가자.’
상엽은 생각을 바꿔서 실수를 줄였다. 그리고 상승한 힘에 적응하면서 전투가 점점 더 수월해졌다.
“여기예요.”
시계를 발견했던 지점에 도착했지만 별다른 단서는 없었다.
‘다섯 달이나 됐으니까.’
사고가 일어난 게 5개월 전이다. 다른 흔적은 역시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시간을 좀 더 들여도 되겠지? 전부 찾아보고 싶은데. 분명히 여기 늑대들과 관계가 있는 거 같아.”
“상관없어요. 어차피 사냥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그래, 고마워.”
그들은 은빛 늑대 소탕을 목표로 했다.
그때였다.
상엽은 등골이 서늘한 기분이 들어 급히 뒤를 돌았다.
“저 녀석이구나.”
오르막에 툭 튀어나온 바위가 있었고, 그 위에 은빛 털을 가진 늑대가 서 있었다.
덩치는 다른 늑대와 같았다. 그런데 송연지조차도 늑대가 다가오는 걸 감지하지 못했다.
‘230그레이 코인.’
상엽은 코인의 수치만으로도 지금까지 상대한 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은빛 늑대는 무심한 눈빛으로 상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순간 몸을 돌렸다.
상엽이 다급히 은빛 늑대가 있던 바위로 뛰었다. 하지만 늑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식, 거만한 거 봤지?”
“열 받았어요?”
“내가 그런 표정 정말 싫어하거든. 하도 많이 당해서.”
“아픔이 느껴지는 말이네요.”
“아플 것까지는 없어. 항상 복수해 줬으니까.”
“상대방이 아팠겠네요. 뭔가 후련해요. 잘했어요.”
뜻밖의 칭찬을 들은 상엽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에 송연지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친구끼리 칭찬할 수도 있죠.”
“그럼 말도 친구처럼 하지 그래?”
“그건 싫어요. 괜히 저도 늙어 보이는 거 같아서.”
“이 일만 끝나면 나도 깔끔하게 다닐 거야.”
“그럼 그때 봐서 괜찮으면 친구처럼 해 줄 게요.”
상엽은 잠시 짜증이 났지만 덕분에 은빛 늑대에 대한 분노는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 녀석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예요. 알죠?”
“그래 봤자 똥개야.”
“자신 있다는 말로 들리네요.”
“당연하지.”
그들은 은빛 늑대의 도발을 무시하고 소탕 작전을 계속했다.
첫 위기는 사흘째가 되었을 때였다.
둘째 날에 겨우 다섯 마리만 발견했던 그들은 사흘째 아침에 삼십 마리의 늑대와 마주쳤다.
넓은 포위망을 형성하다 갑자기 좁혀 버린 탓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포위망을 만든 늑대들은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50마리가 되었다.
“더 늘어날 거 같은데요.”
송연지는 나무에서 내려와 상엽의 등을 지켰다.
“다시 올라가.”
“네? 영화에서 보면 다 이렇게 하던데요.”
“서로 방해되잖아.”
“쳇, 야박하게.”
그녀는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상엽은 곧장 포위망을 향해 뛰었다.
자연스레 포위망이 좁혀지며 등 뒤에 있던 늑대들이 달려들었다.
“어딜.”
상엽의 등을 노리던 늑대의 머리에 화살이 꽂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쾅!
“덤벼 봐.”
상엽은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최대한 멈추지 말고…….’
다리를 움직이지만 동선은 꼬이지 않도록 주의했다.
회전을 통해 해머를 휘두르고, 다시 그 반동으로 다음 늑대를 상대한 뒤에 등으로 다가오는 녀석을 올려 쳤다.
‘절대 멈춰선 안 돼. 멈추면 당한다.’
그 생각뿐이었다.
그러면서 늑대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미친 거 아니야?’
송연지는 여러 마리의 늑대를 상대하는 상엽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녀는 상엽이 최대한 물러서며 따라붙는 늑대들을 한 마리씩 처리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상엽은 늑대들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천천히 물러서며 난전을 벌였다.
그 모습은 마치 제왕의 기품을 지키려는 맹수의 방어전 같았다.
‘저러다 죽겠어.’
지켜보는 송연지는 아슬아슬하게 전투를 이어 가는 상엽을 보며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츳!
결국 세 마리째를 처리했을 때, 늑대의 발톱이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상엽의 움직임은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확실히 쓸 만한데?’
예전 같으면 피부가 깊이 베이며 피가 쏟아져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붉은 선에 피가 맺히는 정도로 끝났다.
피부가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상엽은 더욱 과감하게 움직였다.
“버티기만 해요! 무리하지 말고!”
결국 송연지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짧은 순간이지만 송연지는 상엽이 죽을 뻔한 위기를 네 번이나 보았다.
그때마다 신기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단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목숨이 위험했다.
‘저런 식으로 싸워 왔구나.’
상엽의 치열한 전투 방식을 본 송연지는 경건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는 능력이나 실력이 주는 위화감이 아니었다.
‘투지.’
상엽의 투지는 변종의 광기를 닮았다.
“질 수 없지!”
송연지는 난전에 끼어들지 못한 외부의 늑대들을 향해 화살을 겨눴다.
퉁! 퉁! 퉁!
연속으로 날아간 화살은 정확히 늑대에 명중했다. 그러자 전장의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송연지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쾅! 쾅!
“어딜 봐? 내가 여기 있는데.”
“연인한테 말하는 거 같네요.”
“아주 사랑하지. 절대 놓아줄 수 없거든.”
상엽의 손에 늑대 두 마리가 회색빛으로 흩어졌다.
공격을 할 때마다 상엽의 몸에는 상처가 쌓였지만 치명적인 부상은 없었다.
‘할 만해.’
늑대 무리에 혼란이 생긴 틈을 타서 상엽은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고 상처를 감안한 공격에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50마리가 30마리가 되고 순식간에 2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자 상엽과 송연지에게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늑대들도 밀리는 기색이 확연해지자, 공격까지 약해지기 시작했다. 상엽은 그 약점을 파고들어 더욱 세차게 해머를 휘둘렀다.
그때였다.
우우우!
귀곡성 같은 늑대 울음이 메아리쳤다. 이에 포위망을 형성했던 늑대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상엽은 굳이 추격하지 않고 멀어지는 늑대들을 보았다.
“이제야 온 건가?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네.”
“정말 사랑하나 봐요?”
“사랑은 국경과 종족을 초월하잖아.”
물러선 무리들 사이로 은빛 늑대가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