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6화 (6/300)

# 6

잔잔한 물소리가 여유로운 바람과 어우러져 계곡의 운치를 더했다.

사람이 찾지 않는 산은 스스로를 정화했고, 모든 자연은 본연의 순수함을 찾고 있었다.

“와! 다 됐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계곡 옆의 바위에서 송연지는 환호성을 질렀다.

평평한 바위의 버너 위에서는 라면이 맛있는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먹어.”

“잘 먹겠습니다!”

송연지는 환호성을 지르며 양은 냄비 안으로 젓가락을 집어넣었다.

상엽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자신도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근데 왜 돌아온 거야?”

송연지가 산을 떠난 건 3일 전이었다. 그런데 치료를 끝낸 그녀는 다시 산으로 왔다.

“저 의뢰 실패했잖아요. 의뢰비 모아야 돼요.”

“그런데 그게 왜 여기냐고.”

“어디를 가든 똑같으면 아는 사람 있는 곳이 더 좋지 않아요?”

꽤나 논리적인 설명에 상엽은 더 이상 따지지 못했다.

“제가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사 왔잖아요, 산적 오빠.”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그리고 왜 존댓말이야? 동갑이라고 했잖아.”

“나이가 뭐 중요해요? 그냥 오빠 하세요.”

“싫은데.”

“그럼 친구라 생각하세요. 전 오빠라고 생각할 테니까.”

상엽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저 여기서 사냥 좀 하다 가면 안 돼요?”

“의뢰비만 모은다며? 100코인만 모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레이 상점의 의뢰에는 갓코인이 필요했다.

의뢰는 받는 것이 아니라 사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의뢰는 언제든 포기할 수 있어. 하지만 코인은 돌려주지 않아.

레나의 상점에는 100코인 의뢰부터 1000코인 의뢰까지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의뢰를 구입해서 해결하면 최소 2배에서 의뢰에 따라 10배까지 보상이 지급되었다.

“제가 전투 경험이 별로 없어서요. 훈련 좀 하려고요.”

“꽤 잘 싸우던데.”

“산은 처음이에요. 개활지 전투만 해 봐서요. 확실히 산은 다르더라고요.”

“마음대로 해. 대신 또 도와준다는 보장은 없어.”

상엽의 말에 송연지는 노골적으로 섭섭하다는 감정을 드러내며 물었다.

“산적 오빠, 나 싫어요?”

“아니. 친절해지고 싶을 만큼 예뻐. 목소리도 귀엽고.”

예상치 못한 솔직한 대답에 송연지가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근데 왜 그래요?”

“집중해야 돼서. 여기서 꼭 해야 할 일이 있거든.”

송연지는 상엽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더 이상 장난을 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돼요?”

“찾아야 될 사람이 있어. 넉 달 전에 실종됐거든.”

“아…….”

송연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알아, 안 된다는 거. 그래도 해야 돼.”

담담하게 말하는 상엽을 보며 송연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따뜻한 사람이었네요.”

“따뜻해야 될 만큼 나한테 잘해 줬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넌 이 근처에서 훈련해. 난 조금 위험한 지역으로 갈 거니까.”

“알았어요. 이건 제가 치울게요.”

상엽의 배낭 옆에는 송연지의 배낭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상엽은 그 광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사이좋은 초등학생 둘이 앉아 있는 것 같은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아! 그런데 산적 오빠, 대형 멧돼지 유물은 뭐였어요?”

“무슨 소리야?”

“어머? 몰랐어요? 특별한 개체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상엽은 고개를 저었다.

“어휴, 이 오빠 정말 아무것도 모르네. 아무래도 제가 좀 보살펴 드려야 할 것 같네요. 따라오세요.”

타이밍을 잡고 분위기를 바꾼 송연지는 상엽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대형 멧돼지의 우리였다.

상엽은 우리에 소장의 흔적이 없는 것만 확인하고 그냥 돌아왔다.

그런데 송연지는 우리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디 있을 텐데.”

“뭘 찾는 건데.”

“변종이 특별해지는 건 세 가지 이유예요.”

그녀는 여전히 바닥을 살피며 설명을 계속했다.

“유물의 영향을 받았거나 신의 유산과 관련되었거나.”

“신의 유산은 또 뭐야?”

“쉽게 말해서 장비예요. 무기나 방어구일 수 있고 반지나 목걸이, 보석. 뭐 다양해요.”

“마지막 하나는 뭔데?”

“사람을 많이 죽여도 변해요. 진화하는 거죠. 세 번째 이유가 아니라면 여기 뭔가가 있을 거예요.”

멧돼지가 있던 장소를 감안하면 진화할 만큼 사람을 많이 죽였을 거 같진 않았다.

그래서 송연지는 뭔가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찾았다!”

송연지는 구석에 깔린 수풀을 걷어 내더니 뭔가를 집어 들었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석판이었다.

“유물 조각이네요.”

송연지는 유물을 상엽에게 내밀었다.

‘남수사가 조심하라고 했는데.’

화이트 유저끼리 싸움이 있다면 개인적인 감정이거나 유물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음, 세 조각짜리인 거 같아요.”

상엽의 생각과 상관없이 송연지는 유물에 대해서 분석을 시작했다.

“높은 등급 같지는 않은데요. 그냥 흡수하세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저 트레저 헌터예요. 아직 초보지만. 헤헤.”

“그냥 흡수하면 되는 건가?”

“네. 250코인 정도 될 거 같아요.”

상엽은 그제야 송연지의 동공 앞에 렌즈처럼 빛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유물 감정 스킬이 있는 거구나.’

그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유물을 흡수했다. 해머를 꺼내고 집어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 어렵지는 않았다.

유물은 곧 빛으로 흩어져 상엽의 몸으로 들어갔고 송연지의 말대로 250코인이 늘어났다.

“너 대단한데?”

“그죠? 가능성이 보이죠? 전 최고의 트레저 헌터가 될 거거든요.”

“경험도 많은 거 같아. 언제 갓코인을 알게 된 거야?”

“2년 전에요. 갓코인 유저가 된 건 1년쯤 됐고요.”

“트레저 헌터가 될 거라고?”

“네. 아빠도 트레저 헌터였어요.”

“아빠도 갓코인 유저야?”

“지금은 아니에요. 죽었거든요.”

상엽은 질문을 멈췄다.

“미안해.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어.”

“괜찮아요. 제가 다시 살릴 거라서 상관없어요.”

“살려?”

“갓코인으로 살릴 거예요. 아직 멀었지만 꼭 해낼 거예요.”

상엽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갓코인으로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어?”

“신의 힘이잖아요. 마지막 단계에 있는 신의 상점에서 살릴 수 있어요. 가격은 한 명을 살리는 데 1억 화이트 코인이에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치가 나왔다.

“이거 되게 비싼 정보예요. 산적 오빠니까 특별히 알려 주는 거라고요.”

이야기를 듣는 상엽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그 말은 상엽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꼭 코인만으로 가능한 건 아니에요. 아빠 일기장에 유물 중에도 그런 능력이 있다고 했어요. 아직 실마리는 못 찾았지만.”

“아빠는 왜 트레저 헌터가 된 거야?”

평소답지 않게 상엽은 많은 것을 물었다. 송연지는 단순히 관심을 가져 주는 거라 생각하고 솔직히 대답했다.

“엄마를 살리려고요. 제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거든요.”

상엽은 다시 뭔가 질문을 하려다 그만뒀다. 슬픈 사연을 떠올리게 한다는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더 분발해야겠네. 1년이나 지났는데 초보라니.”

“정보를 사는 데 투자를 많이 해서 그래요. 트레저 헌터는 정보가 곧 힘이거든요.”

송연지는 갑자기 밝게 웃었다.

그 웃음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할까요?”

“뭘?”

“사냥요. 전 훈련하고.”

“따로 해야지.”

“알았어요. 너무 그렇게 짐짝 취급 하지 마세요.”

송연지가 돌아섰지만 상엽은 이를 붙잡지 않았다.

‘잡는 척이라도 좀 하지. 왠지 열 받네.’

그녀는 괜히 상엽을 노려보고는 계곡으로 돌아갔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상엽은 계속 그 말을 되뇌고 있었다.

* * *

상엽이 설정한 3구역 수색이 시작되었다.

3구역은 멧돼지와 늑대, 들개와 들고양이가 혼재된 지역이었다.

아직 누구도 명확한 지배자가 없었다.

대신 개체 수는 가장 많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시도하기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현 상황에선 아주 제격의 장소가 됐다.

상엽은 성장한 힘과 기술을 마음껏 활용했다. 예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연습의 대상으로 쓰기에 유용해졌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상엽은 3구역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키아!

그를 발견한 변종 고양이 세 마리가 나무에서 일제히 뛰어내렸다.

‘스트라이크.’

선두에 있던 고양이는 공중에서 상엽의 해머에 핏물로 흩어졌다.

‘고스트 실드.’

상엽의 왼쪽 손목에 1미터 지름의 투명한 원형 방패가 생성되었다.

상엽은 이걸로 두 번째 접근하는 고양이의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리며 세 번째 고양이의 머리를 방패로 찍었다.

쾅!

그가 휘두른 방패는 해머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나 남았네.”

남은 한 마리는 위기를 감지하고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상엽이 한발 빨랐다.

쾅!

물러서던 고양이의 허리에 해머가 떨어졌다.

마지막 고양이까지 처리한 상엽은 나뭇잎 사이로 붉게 물든 하늘을 보았다.

저녁이 된 것이다.

‘내려가자.’

신체 개조로 밤눈이 밝아졌지만 아직 완벽한 전투를 펼치기는 무리였다.

‘다음에는 신체 개조도 5단계까지 가야겠어.’

상엽은 밤이 아까웠다.

초반에는 많은 휴식이 필요해서 필수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신체 강화 때문인지 짧은 수면으로도 몸이 개운했다.

“내일 보자.”

상엽은 허공에 인사를 하고 계곡으로 돌아왔다.

계곡에 돌아온 상엽은 주변을 살폈다. 항상 보이던 송연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늦네.”

그녀와 함께 지낸 것도 벌써 한 달이 흘렀다.

사투를 벌이는 낮만큼의 밤을 함께 보낸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했고, 서로를 위해 보초를 섰다. 이는 서로에게 편안한 휴식이 가능하게 했다.

‘코인도 꽤 모였고……. 이틀만 더 하면 되려나?’

그가 보유한 코인은 3300코인이었다.

‘200코인만 더 모으면…….’

목표는 3500코인.

이걸로 스킬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하고 신체 개조 5단계를 할 생각이었다.

‘블랙 해머도 사고.’

송연지와 상엽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한 가지는 말하지 않았다.

‘블랙 코인을 사용한다는 건 비밀로 해야지.’

그럼에도 상엽은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블랙 해머를 살 생각이었다.

‘의외로 효과가 좋아. 무기만 보여 주는 걸로 믿게 되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블랙 유저를 속일 수가 있고, 두 번째는 도지연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꽤 늦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찾으러 가야 하나?”

상엽의 걱정이 점차 커질 때쯤, 계곡 건너편 숲에서 소리가 들렸다.

“산적 오빠!”

다행히 송연지는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늦었네.”

“설마 걱정한 거예요?”

“항상 걱정했어.”

“이제 슬슬 제 매력에 빠지나 보네요.”

“거기까진 아니야.”

“쳇, 쓸데없이 솔직하기는.”

연지는 아랫입술을 내밀더니 허리에 찬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오빠, 이거 한번 볼래요?”

그녀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반쯤 부서진 시계였다.

“사람의 흔적이 있어서 일단 가져와 봤어요.”

연지는 설명을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상엽의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상엽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단단한 바위 같던 표정이 무너진 것도 그때였다.

“소장님…….”

상엽이 그토록 찾으려던 소장의 흔적이었다.

“오빠, 괜찮아요?”

“어, 어디서 찾았어?”

“은빛 늑대 영역이었어요.”

상엽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5구역 은빛 늑대의 영역이었다. 송연지는 최근 이곳에서 정찰 겸 외곽의 늑대를 사냥하고 있었다.

속도 위주의 전투를 훈련하기에 좋은 구역이었기 때문이다.

“오빠.”

돌아서는 상엽을 송연지가 잡았다. 하지만 상엽은 이를 뿌리치며 걷기 시작했다.

“기다려요!”

송연지가 상엽의 앞을 막았다.

“진정해요.”

“가야 돼.”

상엽은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송연지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은빛 늑대에 대해서 말해 줬잖아요. 지금은 안 돼요.”

“비켜.”

상엽이 송연지를 밀치고 지나가려 했다. 이에 송연지가 상엽의 어깨를 잡으며 소리쳤다.

“정상엽!”

송연지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정신 차려! 그냥 가서 죽겠다는 거잖아!”

그녀의 고성이 상엽의 걸음을 멈췄다. 잠시 흥분하긴 했지만, 현실을 잊을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실수했어.”

“그럼 사과도 해.”

“미안해.”

깔끔한 사과에 송연지도 심호흡을 하며 화를 가라앉혔다.

“나도 미안해.”

그녀로 인해 분위기가 한층 진정되었다.

‘아저씨, 조금만 더 기다려요.’

상엽은 은빛 늑대의 영역에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송연지를 보며 물었다.

“라면 먹을래?”

“좋아요.”

“그냥 반말해. 그게 훨씬 편해.”

“싫어요, 산적 오빠.”

그들은 다시 예전처럼 자리를 잡고 늦은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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