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신의 기술.
신이 가졌던 힘을 갓코인 상점에서는 기술이나 스킬이라는 이름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상엽이 가진 헌터 아이 역시 이 중의 하나였다.
“잘 생각했어. 지금도 많이 늦은 감은 있지만.”
상엽은 레나의 말을 흘려들으며 기술 메뉴를 선택했다. 곧바로 그의 앞에 수십 가지 스킬들이 펼쳐졌다.
이미 한 번씩은 봤던 이름들이었다.
처음 이곳에서 상엽은 헌터 아이를 선택했었다.
‘정말 볼수록 매력적이긴 해.’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체 능력 상승보다 이게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한 번에 적을 때려잡을 기술, 한 번의 회피, 다방면으로 사용 가능한 공격, 무궁한 가능성을 가진 기술들이었다.
다만 여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신체 강화와 개조는 모두 1단계가 100코인으로 시작했다.
화이트와 블랙의 기본 무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술들은 시작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살 수 있는 목록만 볼 수 있다.
이 규칙으로 인해 상엽은 최대 2100코인까지의 스킬을 볼 수 있었다.
그 목록 중에는 1단계가 2천 코인인 기술도 있었다.
10단계까지 강화를 하면 2백4만 6천 코인이 되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세이레나의 유혹
-발레티의 환영
-아이로스의 아이스 스피어
이 세 가지 목록은 1단계가 기본 2천 코인 스킬이었다.
유혹은 말 그대로 이성을 유혹하는 기술이었고 환영은 분신과 같은 스킬이었다.
아이스 스피어는 하늘에서 얼음 창이 떨어진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1단계 효율이 얼마나 될까?’
기술의 완성은 일반적으로 10단계였다. 특별한 기술은 단계가 더 많은 경우도 있었다.
레나가 기부를 하듯이 말해 준 기술이 이에 해당됐다.
-스키스트의 비행이라는 기술이 있어. 신보다 새가 되고 싶다고 했던 이상한 신이었지. 이 기술은 20단계까지 강화가 가능해. 그리고 1단계가 10만 코인이야.
하늘을 나는 기술.
하지만 1단계는 겨우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정도라고 했다.
이런 기술을 10만 코인이나 주고 구입할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상엽에겐 아직 먼 이야기였다.
어쨌든 1단계 효율이 어떤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갓코인을 사용하는 건 도박과 같았다.
‘이래저래 고르기가 더 힘드네.’
염력과 같은 스킬부터 불덩이를 던지는 마법, 물속에서 숨을 쉬는 능력도 있었고, 투명해지는 기술도 있었다.
특이하게 나무를 쇠로 바꾸거나 물이나 안개를 생성하는 스킬도 눈에 띄었다.
‘이래서 쇼핑에 빠지는구나.’
상엽은 한숨을 내쉬며 몇 가지 목록을 더 살폈다.
몸이 커지는 스킬, 작아지는 스킬, 바위로 변하는 스킬도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 하자.’
특이한 스킬을 뒤로하고 상엽은 전투 스킬들을 살폈다.
점프부터 타격, 순간 속도까지 다양한 스킬들이 있었다. 상엽은 이미 결정을 한 터라 바로 선택에 들어갔다.
-헬카누스의 습격: 스트라이크
1단계-타격 순간에 힘을 증폭시킨다.
2단계-1미터를 돌진하며 이동 거리만큼의 타격력이 증가한다.
3단계-2미터를 돌진하며 타격 지점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난다.
1단계가 300코인인 스킬이었다.
단계 역시 살 수 있는 목록까지만 볼 수 있었다.
‘3단계까지면 2100코인.’
상엽이 가진 코인을 전부 투자하면 3단계까지 강화가 가능했다.
‘일단 1단계만 써 보자.’
결정을 내린 상엽은 헬카누스의 습격을 구입했다.
“다른 건 안 사?”
“고스트 실드 1단계.”
레나는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무식하게 돌진만 하는 거 아니었어?”
“가끔씩 멈추기도 해.”
레나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오나의 고스트 실드: 유령 방패
1단계-지름 1미터의 투명한 방패를 생성한다.
2단계-지름 2미터의 투명한 방패를 생성한다.
3단계-몸 전체를 감싸는 보호막을 생성한다.
1단계가 200코인인 스킬이었다.
“이걸로 됐어.”
“잘 봐. 괜찮은 것들이 꽤 있어.”
레나는 놀리듯이 웃으며 다른 기술을 추천했다.
“여자 만나기에 좋은 기술도 많아.”
“그건 나중에.”
“안 산다는 말은 안 하네.”
“20살부터는 질펀하게 놀 거야.”
“질펀하게?”
레나는 비웃었지만 상엽의 표정은 진지했다.
“진짜야?”
“그게 내 꿈이야. 20살부터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거. 질펀하게 노는 것도 그중의 하나야.”
“그런 말을 그렇게 진지하게 하지 말아 줄래?”
“넌 바라는 게 너무 많아. 피곤한 스타일이야.”
“뭐?”
“나 갈게.”
상엽은 손을 흔들고 대기실을 나섰다.
* * *
행복 장의사.
상엽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호리호리한 체격의 40대 중년이 꾸부정한 자세로 빗자루질을 하다 인사를 했다.
낡은 검은 양복에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왔고, 구레나룻부터 턱까지 수염이 이어져 있었다.
“오셨군요.”
화이트 상점 남수사는 여전히 친절했다.
“신체 강화하러 왔어요.”
상엽은 슈퍼에서 음료수를 사듯이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나이가 훨씬 많음에도 남수사는 정중하고 친절했다.
장의사 안쪽에 있는 작은 사무실로 안내된 상엽은 지난번처럼 상점을 열었다.
“5단계마다 큰 증가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말해 주셨어요.”
스킬 두 가지와 신체 강화 5단계 1600코인.
상엽이 2100코인을 모으고 산에서 내려온 이유였다.
“축하드립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하얀빛이 상엽의 몸을 감쌌다. 신체 개조와는 달리 고통은 없었다.
대신 한순간 엄청난 중력을 받는 것처럼 무거워졌다가 이 무게가 서서히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이 무게는 선명히 느낄 수 있는 힘으로 변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해요, 아저씨.”
“지난번에 말한 일은 해결하셨습니까?”
“아직요.”
남수사는 상엽의 사연을 기억하고 있었다.
“의지가 있으니 분명히 해결하실 겁니다. 그러려면 더 강해지셔야 합니다.”
“제가 느린 편인가요?”
“아닙니다. 갓코인 발견 시점을 감안하면 아주 빠른 편입니다.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래요?”
“본래 초반이 힘듭니다. 강해졌다고 해도 변종과 싸우는 힘을 가지는 게 고작이죠. 대부분은 이 단계에서 소멸합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더 욕심을 내는 거죠. 강해질수록 코인을 빨리 모으게 되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이는 상엽도 알고 있었다.
“의뢰를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위험하지만 코인을 모으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드러나지 않은 수입이 많지요.”
“일단 소장님부터 찾고요.”
상엽은 모든 것을 그 후로 미뤄 두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저씨.”
“말씀하시지요.”
“화이트 유저끼리 만났을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직접 만나신 겁니까?”
“네.”
남수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유물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유물요?”
상엽도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신전으로 가는 열쇠 조각입니다. 조각을 모두 모으면 해당 신전에서 신의 힘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상엽은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각각의 신은 유물을 남겼고 이를 모으는 자들을 트레저 헌터라고 합니다. 유물은 모두 모으면 열쇠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가치가 있습니다.”
“어떤 가치요?”
“흡수할 경우 그레이 코인으로 변환이 됩니다. 최소 100코인부터 500만 코인이 넘는 유물도 있습니다.”
“유물 조각 하나에요?”
“그렇습니다.”
엄청난 수치에 상엽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 예전에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가장 빨리 코인을 모으는 방법은 유물 획득입니다. 많은 의뢰들이 유물 획득에 연관되어 있지요.
신의 조각.
신의 신전에서 그 힘에 도전할 수 있는 열쇠가 유물이었다.
남수사가 의뢰를 권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유물은 어떻게 모으나요?”
“의뢰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얻을 확률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상점에는 유물에 대한 힌트가 있습니다.”
상엽은 예상치 못한 말에 반사적으로 물었다.
“그럼 저도 힌트 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가진 유물의 정보는 2000코인입니다. 그리고 힌트뿐이라 현재의 능력으로는 힘드실 겁니다.”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각각의 상점들은 최소 하나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는 원하는 유물을 명확히 알고 추적할 때 유용한 것이라 지금 상엽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고마워요.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항상 조심하시길. 또 뵙길 바랍니다.”
남수사와 도지연은 항상 마지막에 같은 말을 했다.
-또 만나요.
그것이 최고의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 살아서 다시 상점을 찾는 것.
이것이 갓코인 유저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 * *
다시 태백산 계곡으로 돌아온 상엽은 배낭을 내려놓고 숲으로 들어갔다.
‘빨리 힘을 좀 써 보고 싶은데.’
여기까지 오면서 어느 정도 실감은 했다. 달리는 속도가 대폭 상승했고 주먹질 한 방에 높게 자란 아름드리나무를 부러트릴 수도 있었다.
‘3단계 정도는 상승한 느낌이야.’
강화 5단계의 효과를 체험하자 상엽은 욕심이 났다.
‘10단계까지 가면 완전 달라지겠지?’
처음에는 단순히 소장을 찾는다는 목표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는 개인적인 목표도 하나씩 생겨났다.
‘강해지자.’
마음을 다진 상엽은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소음이 메아리쳤다.
쿠구궁!
나무가 쓰러지고 땅이 뒤집히는 소음이었다. 상엽은 이 소리를 분명히 기억했다.
‘대형 멧돼지.’
상엽은 본능적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소리는 점차 거칠어졌다. 나무들이 쓰러지고 땅의 울림이 직접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소리가 뒤따랐다.
“아악!”
여자의 비명 소리였다.
‘송연지?’
본능적으로 이를 알아차렸을 때, 상엽의 눈에 대형 멧돼지의 모습이 보였다.
바위에 등을 기대고 있는 송연지는 금방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만신창이였다.
온몸이 피로 물들고 단검을 움켜쥔 손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멧돼지는 그녀를 향해 마지막 돌진을 하고 있었다.
몸길이만 5미터가 넘는 멧돼지는 불도저처럼 모든 땅을 뒤집으며 곧장 송연지를 향했다.
송연지는 어떻게든 움직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빠, 미안해.’
그녀는 들리지 않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렇게 멧돼지가 그녀의 지척에 다다랐을 때였다.
또 하나의 거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소음이 이어졌다.
쾅!
엄청난 충격에 멧돼지의 경로가 사선으로 바뀌었다.
쿠궁!
중심을 잃고 바닥을 구른 멧돼지는 수십 개의 나무를 쓰러트리고 겨우 멈췄다.
“아우, 팔 저려.”
두 개의 기세가 부딪쳤던 곳에서 상엽은 저린 손을 흔들어 보았다.
통증이 남을 만큼 강한 충돌이었다.
‘스킬까지 썼는데 이 정도라니.’
정면에서 부딪쳤다면 튕겨 나가는 쪽은 상엽이었을 것이다.
“안 죽었으니까 눈 떠.”
상엽은 바위에 기대서 눈을 감고 있는 송연지에게 말했다.
그제야 송연지는 천천히 눈을 떴다.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금세 눈물을 글썽이며 상엽을 불렀다.
“산적 오빠…….”
“그 호칭 좀 어떻게 안 할래?”
상엽은 송연지를 뒤로하고 쓰러진 멧돼지를 향해 달렸다.
멧돼지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몸을 떨며 어떻게든 일어나려 했다.
“늦었어.”
상엽은 10미터 앞에서 힘을 주며 도약을 했다.
멧돼지는 위기를 느끼고 괴성을 질렀지만 이미 상엽의 해머가 떨어지고 있었다.
콰직!
해머는 대형 멧돼지의 머리를 터트렸다. 머리를 잃은 몸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심하게 떨리다가 천천히 빛으로 산화했다.
‘100그레이 코인.’
남아 있던 20코인에 80코인이 더해져서 상엽의 보유 코인은 100코인이 되었다.
“어쨌든 잡긴 잡았네.”
상엽은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송연지가 있는 바위로 돌아왔다.
그녀는 화살표가 떠올라 있던 자신의 왼손을 보고 있었다.
멧돼지가 제거되면서 그 화살표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 내 의뢰가…….”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병원이나 가. 상점 가서 치료하든지.”
송연지는 그냥 떠나려는 상엽을 다급하게 불렀다.
“산적 오빠.”
“이게 확! 그렇게 부르…….”
“정말 고마워요.”
송연지가 진심이 담긴 표정으로 고개까지 숙이며 말하자 상엽도 말을 멈췄다.
“오빠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인사 듣자고 한 거 아니야. 그냥 잊어.”
“아니에요.”
그녀는 상엽이 괜찮다고 했음에도 기어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허리까지 숙였다.
“제가 꼭 보답할게요.”
“그러든지.”
“원하는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상엽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1년 뒤에.”
“네?”
“1년 뒤에 해 달라고. 지금은 질펀할 시기가 아니라서.”
“뭔가 좀 변태스럽지만 저도 그때는 성인이니까.”
상엽은 그 말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러자 당연한 결론에 다다랐다.
“우리 동갑이네.”
“네?”
“우리 동갑이라고. 나 19살이야.”
송연지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장난치지 마세요.”
“동갑이야.”
단호한 말투에 송연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힘을 주어 말했다.
“그냥 오빠라고 할게요.”
“왜?”
“그 모습과 동갑이고 싶지 않아요, 산적 오빠.”
송연지의 표정은 상엽의 말보다 단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