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4화 (4/300)

# 4

“고마워요, 아주머니.”

“많이 먹어.”

상엽은 소장의 집에 들렀다. 소장의 부인은 그냥 인사만 하고 가려는 상엽에게 밥을 차려 주었다.

“얼굴이 많이 상했네.”

“아주머니, 제가 첫인상이 나쁜 편이에요?”

“왜? 누가 안 좋대?”

“다들 그러던데요.”

“이발하고 면도만 하면 상엽이처럼 미남이 없지. 키도 크고 남자답게 생겼잖아.”

부인은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따뜻하지만 가장 강인한 집안의 버팀목이었다.

지금도 그녀는 슬픈 눈빛을 숨기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서 먹어. 식겠다.”

“잘 먹겠습니다!”

아침마다 상엽은 이렇게 외쳤다.

“오랜만에 들으니까 좋네.”

상엽은 소장의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소장의 부인은 반찬을 챙겨 주고 마지막으로 물까지 건네주었다.

모든 식사가 끝났을 때, 현관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지연이 왔니?”

소장의 딸이었다. 상엽도 얼른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상엽보다 3살이 많았고, 대학교는 휴학한 상태에서 최근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소장의 실종에 충격을 받아 쉬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석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지연은 상엽을 보자 웃으며 인사를 했다.

“상엽이 왔어?”

2년 전에는 상엽이 이 집에 사는 걸 반대했던 지연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아들처럼 대하고, 상엽도 잘하는 걸 보고 급격히 친해졌다.

“밥 먹었어?”

“방금 먹었어. 누나도 얼른 먹어. 난 이제 가려고.”

“잠깐만 기다려.”

지연은 얼른 자신의 방으로 뛰어갔다. 그러더니 쇼핑백 하나를 들고 나왔다.

“티셔츠랑 신발이야.”

상엽은 예상치 못한 선물에 할 말을 잃었다. 그뿐만 아니라 소장의 부인도 뭔가를 들고 왔다.

“밑반찬이야.”

그걸 받아 들며 상엽은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이들에게 남겨진 마지막 희망. 그것이 상엽이었다.

변종에 의한 실종.

그것이 사망과 다를 바 없음을 가족들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애도를 하고 있는 거겠지?’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잊는 방법을 채득하기 마련이다. 상엽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의 슬픔을 빨리 끝내 줘야 돼.’

그도 직접 경험했던 일이었다.

상엽도 실종된 누나를 기다렸고 죽음이 확정되기 전까지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상엽이 17살에 겪었던 일이고, 그것을 계기로 소장의 집까지 오게 된 것이다.

“네, 잘 먹을게요.”

“이발 꼭 하고. 면도도 해.”

지연은 상엽의 손에 돈을 쥐여 주었다. 상엽은 받지 않으려 했지만 한사코 주는 통에 거절할 수 없었다.

“조심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상엽은 결국 그들이 챙겨 주는 모든 걸 받았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는 최대한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

* * *

태백산 계곡으로 돌아온 상엽은 제일 먼저 배낭을 숨겼다.

간간이 순찰대가 오긴 하지만 이미 상엽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에 배낭은 건드리지 않았다.

서로 인사까지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상엽이 오직 변종만 상대하는 걸 인지한 뒤부터는 조금씩 호의 아닌 호의를 보이기도 했었다.

‘지켜보는 느낌도 있지만…….’

가끔 그런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상엽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상엽은 지도를 펼쳤다.

“일단 멧돼지를 먼저 잡으러 가 볼까? 고기값도 비싼데.”

상엽은 화이트 해머를 꺼내고 괜히 자신의 머리카락과 턱을 만졌다.

머리카락은 짧은 스포츠머리로 바뀌어 있었고, 수염은 깔끔하게 깎았다.

“좋아, 잘생겼어.”

시냇물에 얼굴을 비춰 본 상엽은 만족한 듯이 웃으며 숲으로 들어갔다.

수색과 전투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금세 사흘이 되었고 다시 일주일이 되었다.

시간의 관념이 무뎌지고 잠시 정신을 차려 보면 한 달이 흘러 있었다.

“크아!”

상엽은 트럭처럼 돌진하는 멧돼지를 피하지 않았다.

바람처럼 땅을 스치며 다가오는 회색 잔상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멧돼지가 지척에 도달했을 때쯤, 상엽의 팔이 움직였다.

그의 양팔이 채찍처럼 휘어졌고 한순간 가공할 속도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쾅!

폭탄이 터진 것처럼 반경 3미터의 흙이 일제히 튀어 올랐다.

화이트 해머가 떨어진 자리는 폐허가 되었고 그 아래 있던 멧돼지는 회색빛으로 산화해 상엽에게 흡수되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신체 개조를 이용한 움직임에 익숙해진 상엽은 그 위력을 실전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신체 강화와 신체 개조.

그 시너지는 상엽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신체 강화는 후유증 없이 순수하게 신체의 능력을 상승시켰다. 그 상승 폭도 상당히 커서 위력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반면, 신체 개조는 상승 폭이 절반밖에 되지 않고, 신체에도 약간 무리가 가지만 다양한 운용을 통해 변수를 만들기에 적합했다.

그렇지만 신체 개조에는 결정적인 후유증이 있었다.

‘고통.’

한계 이상의 움직임이 가능한 만큼 조절하지 않으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신체 강화가 후유증을 막아 주고 있었다.

“이제 저 녀석만 남았네.”

상엽은 자신이 설정한 2구역의 중앙을 보았다.

“대형 멧돼지.”

이 영역의 지배자였다.

“80코인짜리였어.”

그는 2주 전에 다른 멧돼지보다 3배는 큰 녀석을 만났다.

그리고 단 한 번의 마주침으로 아직 잡기는 무리라고 판단하고 나무 위로 피신했다.

멧돼지가 한 번 돌격한 길은 긴 도랑이 생겼고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을 정도였다.

“그래 봐야 돼지고기지.”

발전을 하긴 했지만, 현재 상태로도 상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상엽의 생각이었다.

‘상점에 다녀오자.’

한 번 더 업그레이드가 필요했다. 소장의 흔적을 찾으려면 모든 구역을 수색해야 했고, 대형 멧돼지의 자리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래도 계획한 코인은 모았으니까.’

한 달 동안 숲에 살면서 현재 그가 보유한 코인은 2120그레이 코인이 되었다.

실력이 높아질수록 당연히 코인을 모으는 양도 급격히 늘어났다.

‘빨리 팔아야지. 쓸데없이 사냥꾼들 만나면 피곤하니까.’

상엽은 결정을 내리고 계곡을 향해 움직였다. 그런데 계곡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그는 급히 몸을 숨겼다.

‘저건 뭐야?’

누군가 대충 숨겨 놓은 상엽의 배낭을 뒤지고 있었다.

‘87화이트 코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짧은 단발머리에 눈에 띄는 분홍색 스포츠웨어를 입고 있었다.

160cm가 되지 않는 작은 신장이었고 뽀얀 피부에 호기심을 담은 큰 눈이 인상적이었다.

“에이, 가져갈 게 하나도 없네.”

여자는 상엽의 배낭 속에서 물건을 하나씩 꺼내더니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특히 가방 가장 구석에 있던 옷을 보고는 괜히 냄새를 맡았다가 기침을 토해 냈다.

“어휴, 지독해.”

옷을 뒤로 던진 여자는 배낭의 주머니를 본격적으로 살피려 했다.

그 순간, 숲에서 소리가 들렸다.

“야, 좀도둑. 뭐하는 짓이야?”

여자는 놀란 표정으로 숲에서 나타난 남자를 보았다. 그리고 동공이 터질 듯 커지며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산적이다!”

상엽은 그 평가에 몸이 굳고 말았다. 그러다 타이밍을 한참 놓치고 뒤늦게 외쳤다.

“도둑이 누구보고 산적이래!”

“어? 우리나라 사람이에요?”

여자의 태연한 물음에 상엽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상엽이 눈살을 찌푸리며 여자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여자는 경계선을 치듯 손바닥을 펼치며 물러섰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내 배낭이나 제대로 해 놓지?”

“네? 설마 이게…….”

여자는 배낭과 상엽을 번갈아 보았다.

“맞아, 내 거야.”

“노숙자 배낭인 줄 알았는데 산적의 배낭이었군요.”

“산적은 너지. 산에서 남의 물건을 훔치려고 했으니까.”

“어? 말이 그렇게 되나요?”

“알면 원래대로 해 놓지?”

상엽은 여유로운 대화와 달리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보유 코인만으로는 실력을 알 수가 없으니…….’

이런 생각을 할 때, 여자는 뜻밖의 말을 했다.

“죄송해요. 길을 잃어서 뭐라도 먹을 게 없나 했어요.”

“길을 잃었다고?”

상엽이 되묻자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울상을 지었다.

상엽은 그 표정에 어이가 없었다.

“너 뭐하냐?”

“네?”

“계곡에 네 뒷모습 다 비쳐.”

일렁이는 물결 위에 하얀색 단검을 숨기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정확히 잡혔다.

화이트 대거였다.

상엽은 상점에서 이를 본 적이 있었다.

“아, 쪽팔려.”

여자는 포기하고 숨겨 뒀던 손을 보여 주었다. 이에 상엽도 무기를 꺼냈다.

화이트 해머를 본 여자는 놀란 표정으로 상엽에게 물었다.

“어? 화이트 유저였어요?”

“맞아.”

“다행이다. 어떻게 변명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여자는 금세 경계를 풀더니 경직됐던 몸을 풀었다.

‘화이트 유저끼리는 그레이 코인도 빼앗을 수가 없으니까.’

그레이 코인도 이 규칙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그런데 왜 그런 무기를 선택했어요? 산적이랑 어울리긴 하지만 별로…….”

“그냥 익숙해서.”

여자는 어느새 경계를 풀고 다가오려 했다. 이에 상엽이 그녀 앞에 해머를 세웠다.

“다가오지 마.”

“왜 그래요? 같은 화이트 유저끼리.”

“배낭이나 제대로 해 놓으라니까.”

상엽이 눈살을 찌푸리자 여자는 아랫입술을 내밀며 불만 섞인 눈빛을 했다.

“표정이 다양하네.”

“제 장점이죠.”

“그럼 아주 밝게 웃으면서 내 배낭 원래대로 해 주시죠.”

“아,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해요, 치사하게!”

“그럼 치사하다 생각하면서 내 배낭 원래대로 해 줄래?”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여자는 결국 던졌던 물건을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대 등을 보이진 않았다.

본능적인 경계였다.

“어, 잠깐만요.”

상엽의 옷을 챙기던 여자는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단검을 집어넣고 다른 무기를 꺼냈다.

‘화이트 보우라.’

활을 꺼낸 여자는 계곡 건너편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퉁!

시위를 놓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빛의 화살이 날아갔다.

화살은 우거진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늑대의 머리에 정확히 꽂혔다.

‘대단한데.’

상엽은 회색빛이 날아와 여자에게 흡수되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헤헤, 사냥 시작!”

여자는 활을 높이 들며 외쳤다. 상엽은 이쯤 하면 됐다고 생각하며 직접 배낭을 챙겼다.

“여기 오래 계셨어요?”

“몇 달 됐어.”

“어? 그럼 혹시 대형 멧돼지 보셨어요?”

여자의 말이 상엽의 관심을 끌었다.

“그 녀석은 왜?”

“의뢰 목표라서요.”

그레이 상점의 의뢰를 받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여자는 자신의 왼손을 펼쳐 보였다. 그러자 하얀빛으로 만들어진 화살표가 나타났다.

화살표는 정확히 대형 멧돼지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한 녀석이야. 조심해.”

상엽은 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대형 멧돼지를 반드시 자신이 잡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어? 그냥 가시게요?”

배낭을 메고 내려가려는 상엽을 보며 여자가 물었다.

“절대 정면에서 공격하지 마. 해 줄 말은 이거뿐이야.”

“고마워요. 그런데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아저씨?”

울컥한 상엽이 여자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여자는 실수를 깨닫고 얼른 호칭을 바꿨다.

“오, 오빠! 이름이 뭐예요? 전 연지예요, 송연지!”

워낙 밝게 웃으며 말하는 탓에 상엽도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정상엽.”

“만나서 반가웠어요. 기억할게요.”

“뭐 그러든지.”

상엽은 미련을 버리고 돌아섰다. 그렇게 한참을 멀어졌을 때, 멀리서 연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산적 오빠! 조심해서 가요!”

그 말에 상엽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냥 싸울까?”

상엽의 마음을 모르는지 연지는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 * *

상엽은 다시 레나를 만났다.

이번 역시 클럽의 대기실이었다.

“용케 또 살아왔네.”

“그러게. 안 죽어지네.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블랙 상점은 갔다 온 거야? 효과가 어때? 말해 줄 수 있어?”

호기심이 강한 레나는 어느새 상엽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상엽의 어깨를 간질였고 향수와 샴푸 향이 마음을 흔들었다.

“너, 이거 연습하지?”

“그래서 싫어?”

“아니, 좋아.”

“그럼 분위기 깨지 말고 가만있어. 그럼 내가 더 기분 좋게 해 줄 거니까.”

레나는 상엽의 어깨에 양손을 모으고 그 위에 턱을 괴며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

“지금은 아니야. 소장님 찾고 나면.”

“설마 아직도 그 사람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 질문에 상엽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정확히는 없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유골이라도 찾고 싶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걸 찾는다고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그래야 남은 사람들이 살아.”

상엽의 대답에 레나는 장난을 그만두고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좋아. 오늘은 무슨 일로 왔어? 신체 강화와 신체 개조는 내가 못해 주는데.”

“그거 때문에 온 게 아니야.”

“그럼?”

상엽은 준비했던 계획을 말했다.

“전투 기술을 사려고. 이제 슬슬 그게 필요할 거 같아서.”

상엽의 요청에 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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