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3화 (3/300)

# 3

상점에는 등급이 있었다.

최하급,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

이렇게 다섯 종류가 기본이다.

-최상급 상점을 통과하시면 신의 상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신의 상점 역시 5급부터 1급까지 다섯 단계였다.

결국 총 10단계의 상점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최하급 상점을 1단계 상점으로 부르기도 했다.

1단계 최하급 블랙 상점의 메뉴는 단 두 개였다.

-무기

-신체

이는 화이트 상점도 마찬가지였다. 상엽은 여기서 화이트 해머를 샀고, 신체 강화를 진행했다.

그가 일곱 가지 무기 중에 해머를 선택한 건 단순한 이유였다.

‘익숙하니까.’

이제는 석 달 동안 사용하면서 분신과 같은 무기가 되었다.

* * *

블랙 상점과의 첫 만남이었다.

-정신과 전문의 도지연

30대 초반의 미녀 의사였다.

옅은 화장이 하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했고 얇은 금테 안경이 지적인 이미지를 더했다.

길게 뻗은 얇은 눈썹 아래로 깊고 매혹적인 눈을 가졌고 하얀 가운 아래로 드러난 각선미는 모델을 연상케 했다.

‘화이트 상점은 장의사, 블랙 상점은 의사라.’

상엽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안 될 이유도 없었다.

“김서연 씨, 다음 환자는 30분 뒤에 진료할게요.”

도지연은 상엽을 보자 인사에 앞서 인터폰을 눌러 시간을 확보했다.

“어서 와요.”

역시 블랙 상점도 화이트 상점처럼 친절했다.

“반가워요.”

상엽도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도지연은 대뜸 손을 내밀었다.

“확인부터 하고 싶은데 괜찮겠죠?”

도도한 인상과 어울리는 차가운 말투였다. 조금 전의 따뜻한 인사와는 상반된 느낌이었다.

상엽은 거부하지 않고 손을 잡았다.

막이 형성되고 익숙한 상점의 형태가 보였다.

주변이 우주처럼 검게 물든다는 것만 달랐지 다른 부분은 그레이 상점과 비슷했다.

-신체

-무기

나타난 단어 역시 같았다.

“617그레이 코인이군요. 블랙 코인으로 교환할까요?”

“600코인만 해 주세요.”

“그레이 코인은 위험해요. 알고 있죠?”

그레이 코인은 양쪽 다 변환이 가능한 것 외에 또 하나의 특징이 있었다.

‘제거할 경우 전부를 획득하게 된다.’

블랙이나 화이트 코인과 달리 가진 전부를 빼앗기게 된다.

“600코인만 할게요.”

“알았어요.”

“그리고 신체 개조 3단계까지 부탁해요.”

화이트 상점은 신체 강화.

블랙 상점은 신체 개조로 불렸다.

강화 방식은 똑같이 1단계 100코인이었고 10단계까지 강화가 가능하다.

10단계 강화가 끝나면 다음 등급 상점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고민이 없네요.”

상엽은 뒤늦게 실수를 깨달았다.

도지연의 입장에서 보면 상엽은 초보였다.

블랙 상점을 처음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선택이 너무 빨랐다.

‘내가 양쪽 코인을 모두 모으는 걸 알면, 더 이상 같은 편으로 인식하지 않을 거야.’

상엽은 서둘러 이에 대한 답변을 했다.

“그레이 상점에서 정보를 샀어요.”

“쓸데없이 코인을 낭비했군요.”

도지연은 안타까운 표정을 했다.

“이제 진행해 주세요.”

“알았어요.”

개조가 진행됐다. 상엽의 몸에서 검은빛이 빠져나가더니 도지연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순간 격렬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큭!”

“조금만 참아요.”

엄청난 고통이었다. 화이트 상점의 강화에서는 겪어 보지 못한 현상이었다.

“고통은 아름다운 신호예요. 경고와 변화를 상징하죠. 참으려 하지 말고 즐기세요.”

도지연은 아름다운 그림 앞에 선 표정이었다.

‘변태.’

상엽은 이런 생각을 했다. 다행히 통증으로 인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곧 끝나요. 아쉽게도.”

상엽은 고통과는 또 다른 이유로 소름이 돋았다.

* * *

신체 개조가 끝나고 이에 대한 설명까지 충분히 들은 상엽은 마지막 인사를 했다.

“갈게요. 고맙습니다.”

“그래요. 얼른 100코인을 모아 오세요. 무기를 사야 할 테니까.”

상엽은 무기를 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도지연은 설명을 계속했다.

“무기가 없으면 위험해요. 하얀 벌레들이 언제 당신을 노릴지도 모르니까요.”

“하얀 벌레라면…….”

“화이트 코인을 가진 벌레들 말이에요.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죠.”

그 말을 들은 상엽은 한 가지를 결심했다.

‘절대 들키지 말아야지.’

“그레이 상점의 의뢰를 병행하면 훨씬 빨리 코인을 모을 수 있을 거예요.”

의뢰에 관한 이야기는 화이트 상점에서도 들었다. 하지만 상엽은 태백산을 떠날 수가 없었다.

소장의 가족과 약속했기 때문이다.

“명심할게요.”

“대답을 참 듣기 좋게 하네요. 그래요, 꼭 다시 와요. 기다릴게요.”

도지연은 안경을 벗어 테이블에 놓더니 상엽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대뜸 상엽의 목에 팔을 감았다.

“이건 새로운 식구에 대한 선물이에요.”

부드럽고 도톰한 피부가 상엽의 입에 닿았다.

그녀는 상엽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긴 시간 동안 입을 맞췄다.

“행운을 빌어요.”

상엽은 그 말에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첫 키스를 이렇게…….”

“피할 수 있는데 안 그랬잖아요. 잔뜩 기대한 눈빛도 분명히 봤어요.”

“정확하네요. 민망해서 그랬어요.”

상엽은 그냥 인정했다.

“그래도 첫 키스를 제가 훔쳤다니 한 가지 혜택은 줄게요.”

그녀는 상엽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언제든 연락해요. 개인 상담도 가능해요.”

“저한테만 주는 혜택은 아닌 거 같은데요.”

“맞아요. 하지만 혜택이 없진 않아요.”

“뭔데요?”

도지연은 웃으며 대답했다.

“진료비는 안 받을게요.”

그 말에 상엽은 밝게 웃었다.

서울 시외버스 터미널.

상엽은 30분 남짓 남은 버스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체 개조.’

그는 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신체 능력 상승은 화이트 상점의 절반 수준인 거 같은데.’

힘과 순발력은 신체 강화의 절반이었지만 다른 능력들이 있었다.

가장 큰 특징은 유연성이었다.

‘한 번 보긴 했지만 이 정도라니.’

그는 자신의 팔꿈치를 보고 있었다. 팔꿈치 아래의 팔이 거의 60도까지 바깥쪽으로 꺾여 있었다.

무릎 역시 마찬가지였고 목은 180도까지 돌아갔다. 그냥 서서 뒤를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래서 개조라고 하는구나.’

그는 도지연에게 신체 개조를 극한까지 활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공격은 채찍처럼, 모든 움직임은 튕겨 내듯이.’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한창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응?”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있었다.

일곱 살의 꼬마였다.

꼬마는 기괴하게 꺾인 신체를 보더니 눈물을 글썽였다.

“형이 요가를 많이 해서 그래.”

“으앙!”

결국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상엽은 얼른 신체를 정상으로 돌려놓았다.

아이의 엄마가 따가운 눈총을 보냈지만 상엽은 살짝 웃어 주는 걸로 당당하게 맞섰다.

그런데 그 웃음에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듯 멀어졌다.

“쳇.”

상엽은 대기실 한쪽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면도라도 해야 하나? 이발도 해야 할 것 같고.”

산에서 석 달을 지냈으니 도시 사람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다른 이들을 보았다.

‘내가 보는 세상도 달라졌어.’

타투칸의 헌터 아이.

타투칸은 신의 이름이었고 헌터 아이는 신이 가졌던 능력 중의 하나였다.

헌터 아이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든 코인을 수치로 표시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코인을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일반인은 그 수치가 1에서 5 사이로 많지 않았다.

다만 블랙과 화이트의 비율은 명확히 구분되었다.

‘블랙이 6명이면 화이트는 3명. 1명은 없어.’

코인이 없는 자들의 비율은 10퍼센트 정도였다.

이로 인해서 갓코인을 다르게 부르기도 했다.

‘엔젤 코인과 데빌 코인.’

모든 인간은 생활에 따라 갓코인을 가지게 된다. 본인이 모를 뿐이었다.

다만 그 수치의 증가가 미미했다. 실제로 상엽이 일반인 중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본 것은 54화이트 코인이었다.

그는 20년 동안 주말마다 의료 봉사를 한 의사였다.

“응?”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상엽은 불쾌한 소음을 들었다.

‘긁는 소리인데.’

날카로운 뭔가가 벽을 긁는 소리였다.

‘모든 감각이 상승한다더니.’

원래는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였다.

‘신체 개조의 힘이구나.’

힘의 증가가 절반인 만큼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다.

제일 먼저 청각, 후각, 시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도지연의 말로는 야간에도 훨씬 잘 보일 것이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집중하면 털이 곤두서는 걸 느낄 정도로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저긴데.’

상엽은 여행용 가방을 들고 있는 40대 중년 여자를 보았다.

중년 여자는 버스를 기다리며 초조한 표정으로 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하이더.’

숨기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국가의 정책을 거부하고 애완동물을 숨기는 사람을 이렇게 불렀다.

이는 도심 방어선 안에 내재된 폭탄과 같은 존재였고, 실제로 하이더들 때문에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중년 여성은 불안한 듯 연신 주변을 살폈다.

그때, 누군가 그녀에게 접근했다.

회색 정장에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내였다. 사내는 여성에게 뭔가 말을 걸더니 흰색 봉투를 넘겨받았다.

사내는 그 자리에서 봉투의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중년 여성이 내려놓은 여행 가방을 잡았다.

‘하이더 브로커구나.’

뒤늦게 애완동물을 처리하려는 사람들을 문제가 생기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들이었다.

애완동물 금지법의 처벌이 워낙 강력했기에 신고를 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방을 넘긴 중년 여성은 이제 끝났다는 듯이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쾅!

가방이 폭발하듯이 굉음을 내며 터져 나갔다. 그리고 찢어진 가방의 파편 사이에서 뭔가가 나타났다.

회색 눈빛의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바닥에 내려서더니 곧바로 날카로운 위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체리!”

놀란 중년 여성이 고양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고양이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주인이었던 여자를 향해 뛰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중년 여성의 목에 붉은 줄이 그어졌다.

모든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 침묵은 여성의 목에서 뿜어진 피로 인해 깨졌다.

“아악!”

주변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에 자극을 받은 고양이의 앞발에서 칼날 같은 발톱이 튀어나왔다.

“후우-! 좀 쉬나 했더니…….”

변종 고양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반인의 눈에는 잔상만 겨우 보일 정도의 속도였다.

한 사내의 얼굴에 붉은색 사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얼굴이 두부처럼 잘려 버렸다.

“악!”

고양이는 비명을 지른 여자로 목표를 바꿨다.

여자는 숨을 쉬지도 못하고 죽음을 기다렸다. 그렇게 고양이가 여자의 얼굴에 긴 발톱을 그으려 할 때였다.

여자의 얼굴 앞으로 하얀 잔상이 떨어졌다.

쿵!

직육면체의 사각 해머가 고양이를 그대로 짓누르며 바닥을 때렸다.

쾅!

굉음과 함께 파편이 튀며 직경 1미터의 구덩이가 형성되었다.

“망할 변종 새끼.”

변종 고양이의 사체가 빛으로 흩어지며 상엽에게 흡수되었다.

‘13그레이 코인.’

막 생성된 최하급 변종들이 가지는 코인은 10그레이 코인이다. 그리고 보통 사람을 하나 죽일 때마다 1씩 늘어난다.

상엽이 아직 상대하지 못하고 있는 변종 멧돼지의 경우, 기본이 20코인이었다.

“괜찮아요?”

상엽은 쓰러진 여성을 보며 물었다. 바닥을 때리는 충격으로 인해 근처에 있던 여성의 다리에 많은 상처가 남았다.

여성은 두려운 눈으로 상엽을 보았다.

변종 사냥꾼을 보는 일반인들은 대부분 이런 시선을 했다.

“고, 고마워요.”

그래도 여자는 용기를 내며 인사를 했다.

“구급차 부르세요. 예쁜 다리에 흉터 남으면 안 되잖아요.”

상엽은 최대한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여성은 그 말에 다리를 움츠리며 몸을 떨었다.

“사, 살려 주세요.”

“방금 살려 줬잖아요.”

“그, 그럼 이제 보내 주세요.”

“구급차 타고 가시라고요. 안 잡아요.”

기분이 나빠진 상엽은 그냥 돌아섰다. 그러다 아쉬움이 남아서 다시 물었다.

“제 인상이 그렇게 나빠요?”

여자는 뭔가 말을 하려다 그만뒀다.

“쳇, 표정으로 말하지 말아요.”

상엽은 화이트 해머를 집어넣고 버스가 들어오는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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