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석 달 전.
상엽의 인생이 바뀐 그날이었다.
그는 버려진 창고의 선반 위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선반 아래에서는 두 명의 변종 사냥꾼이 사투를 벌였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전투를 보며 상엽은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손에 들린 하얀 칼 덕분이었다.
-살고 싶으면 그의 등이 보일 때, 거기서 뛰어내려. 그리고 칼을 아래로 내리기만 하면 돼.
변종 사냥꾼 중에 먼저 도착한 자가 이렇게 말했다.
상엽은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변종 늑대에게 동료들이 모두 죽고 상엽도 같은 처지에 놓였을 때, 그가 나타났다.
덕분에 상엽은 목숨을 건졌다.
-그를 죽이지 않으면 우리 둘 모두 죽는다. 난 그를 이길 수 없으니 네가 해야 된다.
백발이 어깨까지 내려온 노인은 그렇게 말했다.
살기 위해서 상엽은 그 말을 들어야 했다.
‘지금이야.’
노인이 말했던 순간이 왔다.
사내의 검이 노인의 배를 꿰뚫은 것이다. 노인은 이 순간을 말했다.
노인은 그 상태에서 상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짜내 바닥을 굴렀다.
상엽에게 사내의 등이 보였고, 그 너머로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상엽은 살기 위해 선반에서 뛰어내렸다. 칼은 모든 무게를 실어 아래를 향한 채였다.
결국 두 명의 몸이 동시에 꿰뚫렸다. 그렇게 변종 사냥꾼 두 명은 상엽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노인이 목숨을 던지면서 함께 죽는 걸 선택한 것이다.
그들의 시체는 각각 하얀색과 검은색의 빛으로 부서졌고 이는 상엽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상엽이 갓코인을 처음으로 얻게 된 순간이었다.
* * *
쾅!
상엽의 화이트 해머가 들개의 머리를 찍었다.
“717.”
들개의 몸이 회색으로 부셔지며 그가 가진 코인이 늘었다.
“이쪽 지역은 없나?”
상엽은 지도를 펼쳤다. 태백산의 지형을 자세히 표시한 지도였다.
소장이 실종된 지역을 중심에 두고 그는 사방을 여덟 개의 구역으로 나눴다. 그중 오늘로 한 구역의 수색을 끝낸 것이다.
늑대의 둥지도 있었고, 멧돼지의 넝쿨도 있었고, 이상한 포자의 숲도 있었지만 소장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근처에 있을 거야.’
사건이 일어난 지역을 중심으로 5킬로미터의 반경을 설정했다.
변종들도 각각의 영역이 있는 만큼 그 이상을 이동했을 거 같지는 않았다.
“다음 지역으로 가야 하나?”
상엽이 슬쩍 능선을 바라보는데, 늑대의 발톱에 긁힌 왼손 팔뚝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역시 3단계론 무리야.”
그는 자신의 왼손을 거칠게 훔쳤다.
“일단 한 번 내려갔다 오자.”
당장 이 상처만이 문제가 아니다. 사실 지금 그의 몸은 이미 멀쩡한 곳이 없을 만큼 많은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이제 멧돼지 영역인데.”
그는 딱 한 번 멧돼지 변종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전투에서 상엽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이제 사냥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한 마리를 겨우 상대하는 정도였다.
몇 마리를 만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들어가는 건 무모했다.
“블랙마켓을 가야겠어.”
그는 결정을 내리고 하얀색 오함마를 집어넣었다.
화이트 해머는 신기하게도 그의 의지에 따라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소장님, 조금만 더 기다려요. 제가 꼭 찾아낼게요.”
상엽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갔다.
그는 계곡에 던져 놓은 배낭에서 멀쩡한 청바지와 회색 티셔츠를 입고 고속버스에 올랐다.
도착한 곳은 서울 홍대였고 늦은 밤이라 북적대던 인파들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는 곳만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있었다.
‘오컬트.’
홍대의 유명한 클럽이었다.
각자 매력을 뽐낸 젊은이들의 사이를 뚫고 상엽은 당당하게 입구로 갔다.
그리고 명함을 내밀었다.
“레나를 만나러 왔어요.”
명함을 받은 문지기는 곧바로 인사를 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이랑은 많이 다르네.’
상엽이 이곳을 찾은 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그저 노인이 남긴 명함만 보고 여기까지 왔다.
-소장님을 찾아야 돼!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명함의 주인공은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어째서 두 가지 코인을 모두 가지고 있는 거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집요하게 그 이유를 물었다.
-원래 코인은 화이트 코인과 블랙 코인 중의 하나만 가질 수 있어. 그런데 넌 어떻게 두 가지 코인을 모두 가진 거지?
따지듯이 물었지만 상엽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화이트 코인과 블랙 코인.
이것은 갓코인이 가진 가장 큰 제한이자 경쟁 구도였다.
-반대쪽 코인을 가진 자를 제거하면 보유 코인의 절반을 흡수할 수 있어.
이미 사용한 코인은 빼앗을 수 없지만 보유하고 있는 코인의 절반을 빼앗을 수 있었다.
-같은 코인끼리는 제거해도 이익이 없어.
결국 자연스럽게 같은 코인끼리는 동료가 되어 상대 코인을 뺏는 방식이 됐다.
그런데 상엽은 두 가지 코인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넌 죽을 거야. 남들보다 두 배는 위험할 테니까.
적이 많다는 뜻.
‘변종의 진실을 알게 됐지.’
변종과 변종 사냥꾼은 모두 갓코인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오시죠.”
잠시 옛 생각을 하던 상엽은 다시 입구로 나온 문지기의 안내를 받아 클럽의 뒷문으로 들어갔다.
도착한 곳은 누군가의 개인 대기실이었다.
DJ레나.
DJ이면서도 클럽의 주인이기도 했다. 대기실로 꾸며져 있지만 실제로는 사무실이기도 했다.
“어서 와.”
레나는 화장대 앞에서 속눈썹을 붙이느라 거울 속의 자신에 집중하고 있었다.
“1분만 기다려.”
상엽은 대기실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안내를 했던 사내가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눈을 깜빡이며 정성스럽게 붙인 속눈썹을 확인한 레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상엽의 맞은편에 앉았다.
레나는 붉게 염색한 단발머리에 165cm 정도의 신장을 가진 20대 중반의 외모.
눈빛이 매섭지만 선명한 이목구비의 뛰어난 미인이었고, 표정이 뚜렷해서 직설적이고 솔직한 인상이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지만 풍만한 가슴에 허리의 굴곡도 선명해서 상당히 자극적인 매력의 소유자였다.
“용케 살아 돌아왔네. 죽을 줄 알았더니.”
“칭찬 고마워.”
“비밀을 말해 주면 좀 더 친절하게 해 줄게.”
레나가 말하는 비밀은 두 가지 코인을 전부 획득한 방법이었다.
“싫어.”
상엽은 이를 말해 줄 생각이 없었다.
단박에 거절당한 레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상엽의 앞에서 등을 세운 채로 허리만 숙였다.
은은한 향수 냄새가 상엽을 덮쳤고 필요 이상으로 드러난 셔츠 안쪽의 가슴이 시선을 끌었다.
“정말 말 안 해 줄 거야?”
“응.”
“시선이나 올리고 그렇게 말하지?”
레나의 얼굴이 좀 더 앞으로 움직였다. 그녀의 얼굴은 입술이 거의 닿을 듯 접근했다가 볼을 지나 상엽의 귀 옆에 머물렀다.
“정말이야?”
“훌륭한 유혹이지만 싫어. 진심으로 위험했어.”
“쳇.”
레나는 결국 포기하고 물러섰다.
“좀 더 있어도 되는데.”
“변태.”
“유도해 놓고 그런 말을 하는 건 반칙 같은데.”
“인정해. 미안.”
정겨운 인사를 나눈 그들은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블랙 상점 정보를 사러 왔어.”
“흥미롭네. 드디어 양쪽 상점을 모두 이용하는 거야? 나도 결과가 궁금해.”
“비밀인 거 알지?”
“걱정 마. 이용자의 정보는 절대 유출하지 않으니까.”
“알았어.”
상엽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레나가 그 손을 잡았다.
순간 그들의 주변으로 물방울 같은 원형 보호막이 생성되었다.
‘그레이 상점.’
상점은 장소가 아니었다.
‘사람이 상점이라니.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레나 그 자체가 상점이었다.
화이트와 블랙.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그레이.
갓코인은 두 진영과 하나의 중립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해당 코인을 보유한 사람만 갈 수 있는 상점이 있었고 그 중간이 그레이 상점이었다.
그레이 코인과 그레이 상점.
이는 양쪽 진영 모두가 이용할 수 있었다.
“블랙 상점의 위치는 100코인이야.”
이는 처음 화이트 상점의 위치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레이 상점의 특징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었다.
-정보를 판다.
-의뢰를 판다.
-치료를 할 수 있다.
단, 치료에는 절대 규칙 하나가 있었다.
-치료는 완전 치료만 가능하다. 부분 치료는 불가능하며 코인이 부족하면 어떤 치료도 할 수 없다.
치료의 효과는 확실했다. 질병은 물론 영구 장애가 된 신체까지 되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가격이 걸림돌이었다.
“살게.”
상엽이 결정을 내리자 회색빛이 그의 몸에서 빠져나와 레나에게 넘어갔다.
이를 본 레나는 공중에서 손을 움직였고 곧 명함 하나가 나타났다.
“자, 필요한 건 이게 전부야? 공격 기술 하나 정도는 필요할 텐데.”
그 말에 상엽은 눈앞에 펼쳐진 네 가지의 단어를 보았다.
홀로그램처럼 떠오른 단어는 상점의 메뉴였다.
-기술
-의뢰
-잡화
-치료
정보는 특별한 메뉴 없이 레나를 통해 살 수 있었다.
처음 그레이 상점에 왔을 때, 상엽은 한 가지 기술을 샀다.
타투칸의 헌터 아이.
오랜 고민 끝에 구입한 기술이었다. 그것도 가진 돈의 반을 투자해서 4단계까지 강화했다.
갓코인 상점의 모든 기술과 강화에는 일정한 방식이 있었다.
-모든 스킬은 10단계까지 강화가 기본이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2배의 코인이 필요하다.
상엽이 구입한 헌터 아이의 경우 1단계가 200코인이었고 2단계를 위해서는 추가로 400코인이 필요했다.
3단계는 800코인, 4단계 1600코인을 합치면 총 3천 코인이었다.
-타투칸의 헌터 아이: 사냥꾼의 눈.
1단계-시야에 보이는 생물의 코인이 색으로 표시된다.
2단계-시야에 보이는 생물의 코인이 수치로 표시된다.
3단계-반경 100미터 안에 100블랙 코인이나 100화이트 코인 이상이 접근하면 방향을 알게 된다.
4단계-반경 500미터 안에 100블랙 코인이나 100화이트 코인 이상이 접근하면 수치로 표시된다. 100미터 거리의 사물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된다.
감지가 가능한 코인은 블랙이나 화이트 코인이다. 그레이 코인은 감지가 되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좀 더 효율적으로 썼을 텐데.’
아쉬움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때는 어떻게든 상대를 먼저 발견해서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보유한 코인이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도 알지 못할 때였기도 하다.
두 명의 사냥꾼을 동시에 죽이고 얻은 코인이 4700이었지만 상엽은 하루 만에 모두 소모했다.
-헌터 아이 4단계 3천 코인
-화이트 상점 정보 100코인
-화이트 상점 신체 강화 4단계 1500코인
-화이트 해머 100코인
갓코인을 처음 사용한 날의 목록이었다. 그때는 코인의 가치를 알지 못했다.
석 달 동안 모은 코인이 700코인임을 감안했을 때, 그가 소모한 코인은 정말 상당한 양이었다.
“됐어. 일단 신체 능력부터 올려야겠어.”
상엽은 사고 싶은 기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참기로 했다.
“갈게.”
상엽은 미련을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 잘해. 전에 보니까 멋있더라. 예쁘기도 하고.”
“미성년자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리고 너 왜 자꾸 반말해? 처음에는 다시 못 볼 거 같아서 봐줬는데 이제 예의라는 걸 좀 생각해 보는 게 어때?”
레나의 지적을 들은 상엽은 최대한 밝게 웃으며 천천히 대답했다.
“네, 알았어요. 누! 나!”
마지막 호칭에 레나는 왠지 소름이 끼쳤다.
산발에 수염이 가득한 사내가 누나라고 하는 게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됐어, 그냥 하던 대로 해.”
“다들 그러더라고. 그럼 안녕.”
상엽은 손을 흔들며 레나의 대기실을 떠났다.
* * *
명함에 적힌 주소에 도착한 상엽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화이트 상점은 장의사였는데.”
엔젤 코인이라고도 불리는 화이트 코인이었다. 그런데 화이트 상점은 남수사라는 이름의 장의사였다.
‘남수사 아저씨는 잘 있겠지?’
그레이 상점과 화이트 상점은 명확히 달랐다. 그중에서 가장 다른 점은 방문자를 대하는 태도였다.
-같은 가족이니 편하게 대하시지요.
그레이 상점은 특별히 한쪽의 편을 들지 않는다. 하지만 화이트 상점은 달랐다. 모두 같은 편이니 당연히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블랙 상점도 마찬가지려나?’
그는 다시 한번 블랙 상점의 간판을 보았다
-정신과 전문의 도지연
상엽은 문을 열고 정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