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첫 시작은 3년 전이었다.
애완견이 주인을 물어 죽인 사건은 뉴스의 작은 단신으로 보도되었다.
그 사건이 메인 뉴스를 장식한 것은 사흘 후였다.
안락사를 기다리던 애완견이 보호 시설의 직원들을 전부 죽여 버린 것이다.
출동한 경찰에 사살되기 전까지 13명이 희생되었고 총격 과정에서도 두 명이 사망했다.
‘악마견.’
처음에는 이렇게 불렸다.
‘평범한 개에 비해 수십 배의 신체 능력을 가졌다.’
CCTV와 사진이 공개됐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악마견은 가장 순하다고 알려진 골든 리트리버였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누구도 그 원인을 확실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그때, 호주에서 다시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애완견이 아니었다.
캥거루와 늑대가 인간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들고양이들까지 이에 합세했다.
잠잠하던 애완견들까지 변하면서 호주에서는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졌다.
동물과 인간의 전쟁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 전쟁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번졌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동물들을 이렇게 불렀다.
‘변종.’
변종이 되는 동물들은 특징이 있었다.
‘포유류.’
이것이 밝혀지면서 필연적인 혼란이 시작됐다.
애완동물 애호가와 반대편의 다툼이었다. 이 다툼은 꽤 격렬했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많은 애호가들도 자신이 가족처럼 아끼던 애완동물에게 살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몽골 수도 방어 병력 붕괴.’
늑대 숭배 사상을 비롯해 동물들에게 가장 우호적이었던 몽골은 변종에 가장 느리게 대응했다.
그 결과로 수도의 방어 병력이 동물들의 대대적인 공격에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충격을 받은 다른 나라들은 곧장 대응을 시작했다.
-애완동물 금지법
-식량 보호 특별법
-식용 가축 관리법
-도시 보호 특별법
-농어민 도시 이주 지원 정책
-식량 생산 특별법
그 외에도 수십 가지 법률들이 개정되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변종 인간.’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도 변종이 된다는 소문이었다. 이것은 엄청난 이슈가 되었고 각 정부들도 정밀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사실이 밝혀졌다.
‘변종 사냥꾼.’
우려와 달리 그들은 인간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은 변종을 처리하는 사냥꾼이었다. 다만 신체 능력은 인간의 평균을 한참 뛰어넘었다.
변종 사냥꾼은 집요하게 변종들을 사냥하러 다녔고,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겼다.
변종 출현 3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사냥꾼에 대해서는 무성한 소문과 추측이 난무할 뿐이었다.
대한민국 태백산 국립 공원.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 활동 1위는 언제나 등산과 낚시가 각축을 벌였다.
하지만 변종 출현 이후 등산과 낚시는 가장 기피하는 취미가 되었다.
그나마 올해부터는 세 개의 국립 공원과 한 개의 해상 국립 공원에 방어 병력을 배치했다.
예전만큼 넓은 지역은 아니지만 두 시간 코스의 등산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자 등산객들로 태백산 국립 공원은 활기가 넘쳤다.
시끌벅적한 입구와 식당가를 지나면 본격적인 등산 코스가 나타났고 꽤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평화는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에 한해서였다.
등산로는 안전지대가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다. 그런데 간혹 이를 벗어나는 시민들이 있었다.
“저기 조금만 가면 계곡 옆에 평평한 바위가 있단 말이야. 나만 아는 비밀 장소지. 3년 전만 해도 매일같이 오던 곳이니까 걱정 마.”
“위험하지 않을까요?”
“생각을 해 봐. 저기 등산로에만 딱 변종들이 못 오게 했겠어? 주변도 당연히 방어를 해 놨겠지.”
50대 중반 사내를 필두로 3명의 일행이 안전지대를 벗어났다.
그들은 본래의 목적대로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던 계곡으로 이동했다.
“저기 봐.”
50대 사내는 보물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계곡으로 뛰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불안한 표정을 하던 다른 두 명도 분위기에 휩쓸려 사내를 따랐다.
자리를 잡은 그들은 곧바로 배낭에 있던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금지 물품인 술이 제일 먼저 나왔고 다양한 음식에 버너와 고기까지 등장했다.
“삼겹살은 너무 비싸니까 닭고기로 만족하자고.”
그들은 금세 술판을 벌였다.
“산에서 술 먹는 게 얼마 만이냐?”
술잔을 기울이는 순간부터 그들에겐 계곡이 안방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의 수다는 점차 시끄러워졌지만 짧은 행복 뒤에 불행이 다가오고 있었다.
술판을 벌인 지 20분이 지났을 때, 술잔을 들던 사내 한 명이 귀신을 본 것처럼 그대로 굳어 버렸다.
“느, 늑대…….”
회색 늑대 하나가 계곡 건너편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변종이 아닐 수도 있어. 침착해.”
처음 일행을 끌고 온 사내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희망은 늑대의 움직임 한 번으로 깨졌다.
20미터 밖에 있던 늑대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계곡을 넘어 그들 앞에 섰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공포에 질려 몸을 떨 뿐이었다.
늑대는 세 명의 사내를 훑어보더니 이빨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곳을 선택했던 50대 사내를 향해 뛰었다.
그때였다.
촤앗!
규칙적인 소리를 내던 계곡물이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솟구쳤다.
그리고 물보라의 파편 안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팬티 한 장만 달랑 걸친 사내였다. 그리고 한 손에는 공사 현장에서나 볼 법한 하얀색의 5파운드 해머, 즉 오함마를 들고 있었다.
양손으로 오함마를 치켜든 사내는 곧장 늑대를 향해 떨어졌다.
늑대는 이에 반응하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한발 늦게 떨어진 사내는 바닥을 차며 다시 늑대를 향했다.
쾅!
결국 오함마가 늑대의 머리에 떨어졌다.
사방으로 피와 뇌수가 터져 나가는 순간, 늑대의 몸이 회색빛으로 부서졌다.
그리고 그 빛은 사내에게 흡수되었다.
“에이씨, 오랜만에 목욕했는데.”
사내는 늑대의 피와 뇌수를 털어 내며 투덜거렸다.
“아저씨들.”
그의 부름에 멍해 있던 등산객들이 정신을 차렸다.
“벼, 변종 사냥꾼.”
그들은 괴물을 보듯 오함마 사내를 보았다. 하지만 이런 시선에 익숙한지 사내는 떨고 있는 등산객을 향해 물었다.
“라면 있어요?”
“네?”
“목숨값이라 생각하세요.”
사내는 손을 내밀었다. 이에 등산객들은 얼른 배낭을 풀었다.
다행히 컵라면 3개와 라면 3개가 있었다.
“우동 라면은 없죠?”
“그건…….”
“할 수 없죠. 그럼 김치는요?”
“그게…….”
닭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김치는 이미 다 소진된 상태였다. 남은 건 작은 조각과 붉은 양념뿐이었다.
“됐어요. 이제 가세요.”
사내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에이, 다시 씻어야겠어.”
그때, 50대 등산객이 멀어지는 사내를 불렀다.
“저기 안전 지역까지만 함께 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변종을 만난 그들은 돌아가는 길도 두려워졌다.
“싫어요. 그냥 가세요.”
“저기, 이거라도 드릴 테니까…….”
등산객은 포기하지 않고 배낭을 열어 남은 물건들을 건넸다.
그의 손에는 소주 두 병과 캔 맥주가 있었다.
“아저씨.”
“네?”
“저 미성년자라서 술 안 마셔요.”
그 말에 등산객들의 표정이 변했다.
“그 표정은 뭐죠? 못 믿겠다는 건가요? 민증 깔까요? 저 19살 맞거든요.”
등산객들은 눈앞에 있는 사내를 그제야 자세히 보았다.
180cm 정도의 신장에 노동으로 만들어진 잔 근육들이 가득한 몸매였다. 피부는 하얀 편이지만 수십 개의 긁히고 찢어진 상처들이 흉터로 남아 있었다.
반면 얼굴은 정반대의 느낌이었다.
약간 처진 눈이 순박한 느낌을 주었고, 나이에 비해 빨리 자라는 수염이 턱과 인중을 가득 덮었다.
본래 산발이던 머리는 그나마 물에 젖으면서 가지런히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19살은 좀…….”
결국 등산객 한 명이 속마음을 말하고 말았다.
“제가 발육이 남달라서 수염이 좀 많은데 면도만 하면 중학생이라 그래도 믿거든요.”
아무리 변명을 해 봐야 등산객들은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아, 이 아저씨들. 괜히 살려 줬네. 이렇게 어린 소년한테 상처를 주시네.”
“그, 그게 아니라 등산로까지만…….”
“됐어요! 오지 말라는 곳까지 왔으면 돌아갈 용기 정도는 있겠네요.”
사내는 결국 돌아섰다. 그러자 50대 등산객은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짜증을 섞어 말했다.
“쳇, 어른이 말하면 들어 주는 척이라도 할 것이지.”
그 말이 사내를 다시 불렀다.
오함마 사내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50대 등산객 앞에 섰다.
“아저씨, 자식 있어요?”
“이, 있지. 너보다 나이 많은 아들만 둘이나 있어.”
그는 끝까지 어른임을 내세웠다. 이에 오함마 사내가 웃으며 물었다.
“애들이 말을 참 안 듣죠?”
“뭐?”
“애들한테 말 안 듣는다고 뭐라 그러지 마세요.”
그러면서 사내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빠 닮아서 그런 거니까.”
사내는 그 말을 남기고 계곡으로 뛰어들었다.
“해 지면 변종들이 더 득실거려요. 그리고 절 만난 건 잊으세요. 혹시나 기억하시면 따로 절 만나게 되실 거니까.”
등산객들은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옮겼다.
다시 목욕을 끝낸 사내는 바위에 벗어 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었다.
누더기라고 해도 될 만큼 찢어진 곳이 많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걸쳤다.
그는 청바지를 입은 뒤에 뒷주머니에 있는 낡은 지갑을 꺼냈다.
“아씨, 19살 맞는데.”
지갑에서 주민 등록증을 꺼낸 그는 다시 불만을 털어놨다.
-정상엽
그의 이름 아래에 주민 등록 번호가 있었고 분명히 19살이었다.
“면도라도 해야 되나?”
그는 흐르는 물에 얼굴을 비추며 수염을 만졌다.
“남자답고 좋네.”
산적처럼 자란 수염에 만족한 상엽은 마지막으로 얼굴을 한 번 더 씻었다.
그리고 계곡 주변에 숨겨 둔 큰 가방을 열었다.
이곳은 그가 식사를 하거나 목욕을 하는 근거지였다.
“이게 얼마 만에 먹어 보는 라면이냐?”
그는 계곡물을 냄비에 담아 버너 위에 올렸다. 그런데 버너를 만지던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가, 가스가 없어.”
버너에 불이 켜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버너의 부탄가스를 빼서 흔들어 보았지만 공허한 울림만 느껴졌다.
“벌써 갔겠지?”
그는 등산객이 떠난 자리를 보았다. 아쉽게도 그들은 물건을 모두 챙겨서 떠났다.
“망했어.”
어쩔 수 없이 그는 끓이지 않은 라면을 생으로 먹기 시작했다.
“음, 나쁘지 않아. 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
긍정적으로 사고를 바꾼 상엽은 라면 3개를 모두 씹어 먹고는 바닥에 누웠다.
“벌써 석 달이나 됐네.”
잠시의 여유를 즐기던 그는 과거를 회상했다.
“소장님, 이제 살아서 만나기는 힘들겠지?”
사고가 일어난 건, 3개월 전이었다.
국립 공원 보수 사업에 철거반이 투입되었고 상엽은 많은 인부 중의 한 명이었다.
상엽이 속했던 철거반은 7명의 소수로 구성되었다.
소장의 수완이 좋아서 이번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그게 문제였다.
보수가 높은 이유가 바로, 이 위험한 국립 공원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사고가 있었다.
동료였던 인부가 모두 죽었고, 소장은 실종이 되었다.
‘아버지 같은 분이셨는데.’
그가 태백산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였다.
소장의 가족들은 장례식도 치르지 않고 있었다. 다른 인부들과 달리 소장은 사망이 아니라 실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유골이라도 찾아야 돼. 사모님이랑 약속했잖아.’
17살 고아를 선뜻 받아 주는 집은 없었다.
그런데 소장과 부인은 그를 집으로 받아들였고 성인과 똑같은 일자리를 주었다.
‘이렇게라도 갚아야지.’
상엽은 눈을 감았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회색 숫자가 떠올랐다.
‘516.’
숫자를 확인한 상엽은 눈을 떴다.
“아직 멀었네.”
사고가 일어나던 그날.
상엽의 인생은 달라졌다.
‘갓코인.’
상엽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상대는 갓코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신의 능력을 살 수 있는 코인.”
노을 진 하늘이 상엽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