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254화 (254/255)

< #외전 3화. 하루살이와 각대장, 만나다. >

신분당에 위치한 게임회사 삼엔 본사.

사장실에서는 큰 소리가 삐져나왔다.

“아니 왜?!”

삼엔사 사장은 맞은편 임원을 두 눈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었다. 임원은 그의 눈을 피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대성이 왜? 뭐 주워먹을 게 있다고 게임에 뛰어들어? 전무님은 이해가 되나요?”

전무는 애써 피하던 시선을 천천히 들어 마주하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지금 복역 중인 대성 총수 안회장이··· 엑시트 모바일을 즐겨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딴 개소리를 전무나 돼서 믿는다고? 그거 그냥 우리꺼 뺏으려고 이빨 까는 거잖아, 하··· 무슨 방법 없나?”

전무는 다시 시선을 내렸다가 한층 더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본래 인수예정금액보다 1.5배를 배팅했습니다. 그걸 넘어서기에는 출혈이 너무 큽니다. 포기···해야합니다.”

사장은 똥 씹은 표정으로 창문 너머를 보며 중얼거렸다.

“젠장···.”

*  *  *

[대성그룹, ‘엑시트 모바일’ 인수]

[대성그룹의 새 계열사 대성 소프트 출격, 대성, 자금력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어 최고의 재미를 선사하겠다.]

안서은이 밀어붙였고 수감되어 있던 안회장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개발팀은 이전에는 없던 자금 지원으로 엑시트 모바일 업그레이드에 들어갔다.

“팀장님, 인터페이스 얘기 살짝 꺼내니까 50억이 툭 떨어지던데요?”

“허허··· 삼엔한테 흡수된다고 했을 때는 이제 나도 떠날 때가 됐나 했는데, 이게 뭔 일이냐?”

“육신을 갈아넣었던 엑시트··· 이제 영혼도 갈아넣을 때라는 거죠.”

“이 정도 지원에 환경이면··· 갈아넣어야지, 야근 365일 가즈아!”

“가즈아!!”

신규 게임 런칭이 아닌 이미 나온 지 3년이 넘은 게임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러기에 엑시트 모바일 개발자들은 대성의 아낌없는 지원에 감탄하며 더욱 열정을 불태웠다.

PC버전을 강화하여 독자적으로 구동이 되게 만들었고, 끊김 없는 휴대폰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추가했다.

그 외에도 추가콘텐츠를 연구하라며 개발비가 든든하게 지원이 되니 개발자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그래픽까지 전면 업그레이드 되어 좋아진 엑시트의 그래픽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PC방을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게임 엑시트의 이용자는 점점 늘어갔다.

*  *  *

강진경찰서 강력반 사무실.

“형님, 내일 휴가라며, 무슨 일 있어?”

오갱의 물음에 곽반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일 있지 그럼, 아주 큰 일이. 아무튼 니네는 형 없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일 열심히 해.”

큰 일이 있다고 하니 걱정이 되어야하는데 곽반장의 표정은 기쁨과 설렘, 기대가 가득해보였다.

신해수는 그를 바라보다가 돌연 물었다.

“형수님과 좋은 곳이라도 놀러 가십니까?”

형수라는 단어에 곽반장이 화들짝 놀라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 어, 뭐, 뭘 알려고 해 이놈아! 중년 남자의 은밀한 사생활을 캐려고 하지 마! 나 먼저 간다! 다들 수고!”

“살펴가십시오.”

고개를 절도 있게 숙인 해수를 뒤로 하고 곽반장은 도망치듯이 퇴근했다.

다음날 아침.

곽반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용 옷을 입고 신발장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에 주방에 있는 와이프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음지었다.

“나, 나 다녀올게.”

“응, 여보 잘 다녀와요~”

곽반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티나지 않게 살짝 숨을 고르고 신발을 신었다.

그때, 뒤에서 와이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쿠당탕

곽반장은 화들짝 놀라 발이 엇갈리며 옆으로 넘어졌다.

와이프가 다급히 그를 부축했다.

“괜찮아?”

“어, 어 왜, 왜 불렀어?”

와이프의 한 손에는 출근 가방이 들려있었다.

“이거 놓고 갔길래.”

“아, 깜빡했네, 고마워.”

곽반장은 와이프의 손에 들려있는 출근 가방을 받아 들었다. 그의 손 끝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그, 그럼 다녀올게.”

“응, 조심히 다녀와.”

곽반장은 현관문을 열고 나와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여 문까지 닫히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제야 오늘의 현실을 깨닫고 입가에 미소가 스멀스멀 번진다.

“우후 우후 후!”

지상주차장, 그의 차로 가는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그리고, 베란다에서 그의 신나는 걸음을 와이프가 지그시 지켜보고 있었다.

*  *  *

출근길에 오른 곽반장이 도착한 곳은 동네에서 최고로 치는 최신식 PC방이었다.

오늘은 바로 엑시트 대규모 업데이트가 있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는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치고, 헤드셋을 끼고 엑시트 모바일을 PC버전으로 온전히 즐겼다.

아침이라서 시끄러운 학생들도 없고, 이 PC방은 PC마다 칸막이가 두꺼워서 타인의 게임 소리가 잘 침투하지 않았다.

“흐흐흐!”

재밌다. 행복하다. 비즈니스석을 타고 어디 휴양지로 가서 휴양하는 것보다 더 좋다.

그렇게 한창 즐기던 중, 어디선가 스멀스멀 냄새가 흘러와 코끝을 자극했다.

“PC방에서 먹거리는 빼놓을 수 없지!”

내친 김에 곽반장은 곧바로 주문을 넣었다.

핫바와 은박지 사각통에 나오는 끓인 라면.

“라면은 역시 삼영라면이지.”

삼영라면 순한맛을 시키고 기다리는 중, 삼영라면 매니아인 곽반장의 코를 자극하는 라면 냄새가 풍겼다.

“여기···.”

삼영라면이 확실하다. 그리하여 영접하려고 일어났을 때, 바로 건너편 자리에서 희고 가느다란 손이 올라와 직원에게서 라면을 받았다.

“감사.”

손의 주인이 직원에게 짧은 인사를 할 때 무언가 낯익은 목소리라고 생각했지만, 곽반장은 금세 생각을 지웠다.

“맛 좀 아는 처자군.”

곧이어 곽반장의 핫바와 라면이 도착하고 그는 헤드셋을 끼고 캐릭터가 자동사냥을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라면을 먹었다.

햇반도 시켜서 국물에 말아먹고, 국물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두 마신 뒤에 탄산 사이다까지 한 캔 쭉 들이켰다.

“크흐으! 여기가 천국이지!”

몸에 안 좋은 것 종합선물세트지만, 자고로 몸에 안 좋은 만큼 맛있고, 몸에 좋은 만큼 맛이 없는 법이다.

그렇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사이다를 원샷하고 있던 때였다.

-끄으악

소름돋는 단말마, 캐릭터가 죽는 소리다. 분명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체력이 최대였는데? 주변에 적은 없었는데? 설마···

회색으로 변한 화면 위에는 하루살이라는 닉네임을 지닌 캐릭터가 오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끄으아악!!”

곽반장은 캐릭터와 동일한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저 아저씨 봐, 이상해.”

“야야 조용, 쳐다보지 마, 우리아빠가 피시방이랑 오락실에서는 어른들한테 까부는 거 아니랬어.”

“어? 근데 오락실이 뭐야?”

“나도 몰라, 피시방이랑 비슷한 거래.”

주변에 학교를 땡땡이치고 온 초등학생들이 곽반장을 보며 수군거렸으나, 곽반장은 신경도 쓰지 않고 절망했다.

그러나, 오늘은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스윽

곽반장은 부활버튼을 누르고 비장하게 불타는 눈으로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딱 기다려라, 내가 예전의 내가 아니야!”

이번에는 허투루 말한 게 아닌지, 인벤토리 창에 각대장 캐릭터의 아이템들이 전과는 달리 번쩍번쩍였다.

부끄럽지만 다이아수저로 추정되는 제자가 많은 도움을 준 것이다.

곽반장은 자신했다.

예전에 하루살이 만났을 때보다 최소 두 배는 더 강해졌다.

그는 눈에 불을 켜고 하루살이를 찾아다녔다.

“여깄다··· 한 판 붙자!!”

챙 챙챙 챙!

-꽥!

그러나 금세 다시 화면이 회색으로 변했다. 곽반장이 또 패배한 것이다.

그러나, 곽반장의 눈빛은 여전히 초롱초롱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하루살이 캐릭터의 옆구리에 흘러내리고 있는 피에 가 있었다.

-꺄윽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하루살이가 그 자리에 그대로 포개어져 쓰러졌다.

바로 각대장의 비장의 일격, 출혈독이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하루살이를 죽인 것이다!

보스나 몬스터와 사냥 중에 체력이 부족할 때 뒤치기를 한 것도 아니고, 다수로 공격한 것도 아니다.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비록 먼저 죽었지만 하루살이를 죽인 것이다.

그 희열은 경감으로 승진할 때보다 더 기쁘고 짜릿했다.

곽반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두 손을 뻗어올렸다.

“와아아아!!”

“아악!”

거의 동시에 건너편에 앉아있던 여자도 벌떡 일어나 소름끼치는 비명을 내질렀다.

둘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마주쳤다. 낯익은, 아니 매우 익숙한 얼굴이다.

“···어?”

“···하루?”

곽반장은 하루가 벌떡 일어난 타이밍, 그 절규에 찬 비명을 보자 문득 예전에 현피하기로 했을 때 하루 마주쳤던 것이 떠올랐다. 이어서 그의 숙적 아이디가 오버랩된다.

해수가 아빠미소를 지으며 하루가 너튜브 시작했다고 보여주던 장면이 스쳐지나간다. 그곳에서 하루의 별명은···

‘하루살이.’

아주 짧은 시간 상념에 빠져있던 곽반장이 다시금 하루와 눈을 마주했다. 그녀도 자신과 비슷한 혼란스러운 눈빛이다.

“네가···.”

“대장님이···.”

이윽고, 두 사람의 눈빛은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하루살이?!”

“각대장?!”

그리고 찾아오는 지독한 적막, 몇 초의 정적이 흐른 후 하루는 조용히 테이블 위에 놓인 아직 따지 않은 사이다캔을 거꾸로 들었다.

*  *  *

잠시 분노에 정신이 잡아먹혔던 하루지만 PC방 살인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곽반장은 하루가 하루살이라는 충격이 믿기지 않아 그녀가 있는 자리로 넘어가 모니터까지 확인했다.

진짜 아이디가 하루살이다. 외형까지 똑같다. 부정할 수 없다. 저 캐릭터는 방금 전까지 자신과 혈투를 하던 그 캐릭터다.

“하루, 하루가··· 하루살이라니.”

“각대장, 각대장, 곽대장··· 왜 몰랐지.”

둘의 마음은 복잡했다.

같은 게임, 깊게 즐기는 게임에 가까운 사람이 같이 하니 반가우면서도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곽반장이 하루에게 툭 던지듯이 물었다.

“그런데 이번 패치 좀 이상하지 않냐?”

“아,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건 저나 각대장같은 기존 고랩유저는 죽이는 패치지 말입니다.”

“맞아 맞아, 역시 나랑 생각이 같았구만? 아 그래서 새 던전은 돌아봤고?”

“어제 길드원들이랑 돌았는데···.”

침묵은 잠시뿐, 둘은 엑시트 모바일이라는 매우 끈끈한 매개체가 있다.

그들은 어느새 봇물 터지듯이 게임 얘기로 한참을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렇게 얼마 뒤에 다시 자리로 돌아가 게임을 하다가 퇴근시간이 되어 헤어지고, 그날 밤이 되었다.

딸깍, 치이이-

곽반장은 굳은 얼굴로 집에서 혼자 캔맥주를 마셨다. 씻고 나온 와이프가 곽반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웬일이야, 집에서 술 한 모금도 안 대던 양반이, 무슨 고민 있어?”

“···있었는데, 이제 끝났어.”

곽반장은 다 마신 맥주캔을 터프하게 찌그러트리고는 결단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화장실로 가서 게임에 접속하여 하루에게 우편을 보냈다.

[하루살이에게]

-하루살이, 오늘 우연치 않게 열렸던 판도라의 상자는 열지 않았던 것으로 하겠다.

뒤통수 조심해라. (너의 라이벌이)

곽반장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하루살이가 같은 편이라면 같이 사냥도 다니고 만나면 게임 이야기로 아까처럼 즐겁게 떠들 수 있겠지만, 게임에 긴장감과 재미가 떨어진다. 더 크게는 게임의 의미를 잃는다.

그에게 하루살이는 생각보다 더 큰 존재였다.

띠링-

하루살이에게서 금세 답장이 왔다.

[답신: 하루살이]

-ㅗ

“훗.”

곽반장은 그제야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우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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