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잡을 놈은 많다
신해수 일행은 지하실 중앙까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도달했다.
적들이 초반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예 마주치지 않았던 것이다.
해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다섯 명이 머리가 터진 채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내분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
‘마실장인가.’
이런 짓을 할 사람은 그자밖에 없다.
통제실에는 천선생과 회사원 한 명만이 남아있었다.
천선생은 신해수 일행을 보자마자 품에서 바로 총을 꺼내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탕!!
“죽어, 죽어!! 이 개자식아!”
엄폐물이 많기에 해수 일행은 바로 숨었고, 하루는 숨으면서 바로 작은 바늘 형태의 암기를 천선생에게 던졌다.
총은 있지만 천선생을 상대로 꺼낼 필요도 없다.
챙!
천선생의 하나뿐인 경호원이 다급히 나서 그것을 단검으로 튕겨냈지만, 천선생은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짙은 불안감이 온몸을 잠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탕!
“컥!”
그의 눈앞에서, 등에서부터 심장으로 구멍이 뚫린 회사원이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아무 감정없는 눈으로 천선생을 바라보았다.
천선생은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잠깐 보았다가 금세 시선을 거두고, 해수에게 다시 눈길을 돌렸다가 경악했다.
후웅-
그가 시선을 빼앗긴 그 찰나, 의자 하나가 천선생을 향해 날아왔다.
이미 코앞, 피하기엔 늦었다.
탕!
천선생이 다급히 의자를 쐈다가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두 팔을 올렸다.
콰광!
동시에 두툼한 발이 천선생의 배에 꽂혔다. 천선생은 볼썽사납게 뒤로 자빠진 채 신해수를 맞이했다.
천선생은 사색이 된 얼굴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눈앞의 그는 마치 지옥에서 온 사신처럼 보였다.
“손 치워.”
천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공손하게 손을 치웠고, 그 사이로 해수의 주먹이 날아왔다.
쾅 쾅 쾅!!
해수의 돌주먹이 천선생의 얼굴에 시원하게 꽂힌다. 몇 번 박히지 않았지만 이가 몽땅 부러지고 코가 뭉개지고 안구가 반쯤 튀어나왔다.
“꺼어어···.”
해수는 한 번 더 주먹을 내리찍으려다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멈추었다.
그가 죽는 것보다, 살아서 최대한 뽑아내는 것이 썩어버린 대한민국을 회복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비밀을 발설하는 입만 필요할 뿐, 다른 곳은 필요없다.
해수의 눈이 지독한 살기로 번뜩였다. 그가 리셋 전에 하루와 황장수에게 했던 짓이 떠오른다.
해수는 그의 손목을 잡아 빨래 짜듯이 비틀었다.
우드드득-!
“끄아아아악!! 아, 아파악!”
뼈가 뒤틀려 조각조각 부서지며 천선생에게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다. 팔꿈치도 반대로 돌리자 생살을 찢고 뼈가 툭 튀어나왔다.
양팔을 그렇게 만들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 천선생은,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은 채 부들부들 떨었다.
저벅 저벅
하루가 한 손에 카람빗을 들고 다가와 천선생의 발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그의 발목을 지그시 내려다보던 하루의 뇌리에 과거 끔찍했던 시절이 스쳤다.
이름도 없이 손짓 하나에 구르고 애원하던 어린 아이들.
그 악몽과도 같은 날들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 자가 바로 그 지옥을 만든 장본인이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지만, 어둠 깊은 곳에서부터 짙은 분노가 올라왔다.
슥 푹 푹-
하루는 그의 발목 뒤쪽 아킬레스건을 끊고, 오금을 두 번 찔렀다.
그곳에서 피가 물총처럼 픽 튀어나왔지만 천선생은 몸을 한 번 움찔 떨 뿐, 신음도 흘리지 않았다.
하루는 담담하게 반대쪽도 동일하게 만들고는 세 걸음 물러섰다.
해수의 행동에 이미 대리만족을 했던 터라, 진했던 원한에 비해 깔끔한 복수지만 마음은 가뿐하다.
“흐으으, 흐으으···.”
천선생의 엉덩이 아래부터 바닥이 짙게 물들었다.
한때 대한민국을 가지고 놀던 천선생이 처참한 몰골로 신음을 흘리며 소변을 지리고 있다.
해수는 그의 걸레짝같은 팔과 다리를 그곳에 있는 청테이프로 칭칭 감아 묶고, 번쩍 들어올려 어깨에 걸쳤다.
“나가자.”
하루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답했다.
“마실장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해수는 아까 쓰러져 있던 회사원 다섯 명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찾을 필요 없어, 그자는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하실은 밀폐된 공간, 불을 지르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동하려던 그때.
터덕- 우드득!
“아악!!”
마치 해수의 생각을 읽은듯이, 어둠 속에서 마실장이 유령처럼 튀어나와 황장수의 두 팔을 뒤로 꺾었다.
제압을 위한 꺾기가 아니라 아예 팔을 부러트렸다.
회사원들 상대로도 크게 활약했던 황장수가, 단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완전하게 제압당한 것이다.
하루는 해수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곧바로 총을 꺼내어 마실장에게 쏘았다.
그러나 마실장이 한 발 빨랐다. 하루의 사격도 빨랐지만, 마실장은 하루가 품에 손을 집어넣을 때부터 예측하고 황장수의 목을 잡고 들어올려 방패막이로 세웠다.
타탕!
“커헉!”
한 발은 어깨를 스쳤지만, 나머지 한 발이 가슴에 박혔다. 해수와 하루의 눈동자가 동시에 확 커졌다.
그러나 그럴 틈도 없이 마실장이 장수를 앞으로 내밀며 벽으로 밀어붙이고, 하루의 총을 단숨에 빼앗았다.
하루가 강하게 쥐고 저항한 터라 그 짧은 순간에 그녀의 손목이 부러지고 손아귀가 찢어졌다.
마실장은 바로 해수를 찾으며 총구를 들어올렸다.
터턱-
그 사이 해수가 그에게 달라붙어 총구를 손으로 잡았다.
신해수와 마실장이 서로 하나의 총을 잡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해수는 총구, 마실장은 손잡이.
총을 잡은 그들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우그극-
이윽고 총구가 휘어졌고, 마실장은 바로 총을 놓으며 해수에게 주먹을 뻗었다.
턱!
해수는 그의 주먹을 한 손으로 잡아내며 소리쳤다.
“데리고 나가!”
하루가 피를 흘리고 있는 황장수와 해수를 번갈아보며 주춤했다.
황장수도 물론 지인이지만, 하루의 입장에서 신해수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다.
해수는 그런 하루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쳐다보지도 않고 마실장과 시선을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날 믿어라.”
하루는 1초간 고민하다가 고개를 깊이 끄덕이고는 황장수의 두 팔을 잡아 끌면서 그곳에서 사라졌다.
질질질-
마실장은 그들을 순순히 보내주었다. 어차피 목표는 천성생과 신해수다.
신해수를 잡으면 하루도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
마실장은 어느새 자신의 주먹을 잡은 해수의 손을 아래로 내려 꺾으며 입을 열었다.
“주제를 뛰어넘는 용기를 객기라고 부르지.”
뿌드드득-
그러나, 해수가 이글거리는 눈빛을 하고 다시 손을 올리며 말했다.
“기다렸다. 이 순간을.”
해수는 진심으로 기뻐보였다.
그 눈빛에 마실장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예상 밖의 반응이다.
해수가 비릿하게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네 손으로 직접 죽였다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애비 따라 지옥으로··· 가라!”
눈썹을 꿈틀거린 마실장은 소리치며 손을 살짝 당겼다가 강하게 밀쳤다.
강한 힘을 써서 동작이 크면 빈틈도 커진다.
해수는 그의 행동을 예상하고 타이밍에 맞춰 힘을 뺐다가 그의 두 손이 다시 가드를 올리기 전에 안으로 파고들어가 옆구리에 주먹을 짧게 끊어 쳤다.
쾅!
해머로 콘크리트 바닥을 두들긴 것만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실장은 신음 한 번 지르지 않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주먹을 휘둘렀다.
훙 훙-!
서슬퍼런 풍압이 머리 위를 스친다. 한 대만 맞아도 바로 뇌진탕이 올 것이다.
해수는 차분하게 몸을 비틀었다.
마실장의 최대강점은 저 강철같은 근육을 가지고 있음에도 균형이 맞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민첩한 것이다.
처음 한 대를 제외하고는 피하기 바쁘다.
턱-
해수가 반격할 틈을 보는 사이, 마실장이 그의 옷자락을 잡아채 당겼다.
후웅- 쿠당탕!
그대로 옆으로 휘둘러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곳으로 던져졌다.
해수가 그곳을 구르는 사이, 마실장이 곧바로 테이블을 밟으며 달려와 주먹을 내리찍었다.
쾅 쾅 콰직!!
해수는 다급히 가드를 들어올렸다. 팔뚝 근육이 파열되고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해수가 누워있던 테이블이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쿵 쿵!
그가 연이어서 주먹을 내리꽂았고, 해수는 재빨리 몸을 굴렸다.
돌바닥에 주먹 모양의 자국이 패였다.
마실장의 주먹에도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었지만 그는 아무런 통증도 없어보였다.
해수는 의자를 그에게 던지며 일어나 거리를 벌렸다.
저벅 저벅 저벅
“아까 그 기세는 어디 갔지?”
마실장이 이죽거리며 다가왔다.
해수는 그의 행동에서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는 지금까지 항상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싸움을 해왔다. 그래서 작은 수 하나하나에도 절대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그에게는 무언가 조급함이 느껴졌다.
과한 힘이 실린 주먹, 몰아붙이는 쉴 세 없는 공격, 도발. 그답지 않다.
지원이 올까봐 시간적인 조급함이 아니다.
그보다 더 원초적인 것.
저벅-
걸어오는 자세가 한쪽으로 아주 미세하게 치우쳐져 있다. 티는 내지 않지만 첫 공격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지금 꿀꺽 삼키는 것은 침이 아니라 피일 것이다.
해수의 눈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타다닥-
해수는 욱신거리는 팔과 등허리의 통증을 무시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마실장이 마주 달려들며 두 손을 펼쳐 양쪽으로 크게 휘둘렀다.
해수는 그에게 닿기 직전, 오른쪽으로 가려다가 발목에 힘을 주며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들어갔다.
찌릿
그의 반응이 아주 미세하게 늦었다. 그리고 그 미세한 차이는 해수가 빈틈으로 들어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후웅-
마실장의 손이 해수의 귀를 스치며 반쯤 뜯겨져 나갔고, 해수의 주먹은 마실장의 턱에 정통으로 박혔다.
콰앙!!
둘이 마주 달려오는 에너지가 합산된 타격이다.
해수는 자신의 오른팔이 부러지는 것을 느꼈고, 마실장은 살짝 공중에 붕 떠올랐다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쿠우웅-
순간 장내가 적막해졌다. 해수는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배 위에 앉아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가차없이 내리꽂았다.
쾅!
그 순간, 기절한 줄 알았던 마실장이 고개를 살짝 틀어 주먹을 피했다. 그러고는 바로 두 손을 뻗어 해수의 목을 조였다.
악력이 상상할 수 없이 강하여 목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끅, 끄으으!”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의식이 흐릿해진다. 해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두 손가락으로 그의 눈알을 지그시 눌렀다.
“크흐으!!”
투둑-
이윽고 둘 중 한 쪽이 부서지는 느낌과 함께 손에 힘이 살짝 풀렸다.
해수가 다급히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옆으로 굴러 켁켁거리는 동안, 두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마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 저벅 저벅 타다다닥!
그가 한쪽 눈만 뜬 채 악귀처럼 기괴한 얼굴로 해수에게 덤벼들었다.
비틀거리지만 그의 몸집과 형태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신해수!!!”
한쪽 눈밖에 보이지 않는 그의 손은 해수의 머리카락을 아슬아슬하게 스쳤고.
타닥-
해수의 손은 그의 멱살을 정확히 잡아 등으로 그의 배를 받치며 완벽한 업어치기 자세를 취했다.
후우웅-
거구가 공중에서 빙글 돈다. 해수는 그 찰나에 마실장이 몸에서 힘을 뺀다는 것을 느꼈다.
콰광쾅!!!
먼지가 옅게 피어올랐다. 수 초 내에 그것들이 흩어지고, 해수는 시야를 가리는 땀을 닦아내고 나서야 볼 수 있었다.
마실장의 가슴을 관통한 부러진 테이블 다리를.
“커, 커허···.”
마실장은 새까만 천장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눈을 껌뻑껌뻑이고 있었다.
해수는 그에게 다가가 건조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의 독기와 광기가 빠진 눈동자가 해수에게 향한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너···.”
그가 몇 마디 더 입을 벙긋거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몇 초 있다가 눈을 완전히 감았다.
“···젠장.”
눈을 감은 그의 표정은 왠지 편안해보여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수님!”
타다다닥-
그때, 몇 분 지나지 않았지만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수가 몸을 돌리자 하루가 다람쥐처럼 달려와 포옥 안겼다.
“후···.”
익숙하면서도 기분 좋은 냄새가 가까이서 느껴지자 절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렇게 3초나 지났을까? 하루가 화들짝 놀라 어깨를 떨며 떨어졌다.
“죄,죄송합니다.”
해수는 반쯤 감긴 눈으로 그녀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냐.”
해수가 비틀거렸고, 하루는 다시 재빨리 그에게 붙어 부축했다.
* * *
[대한민국을 조종하던 거대한 비선실세 ‘천선생’ 검거]
[일성,KD,성공일보,청와대까지 연류된 ‘천선생’ 대한민국 발칵 뒤집히다.]
-말세다 말세
-저걸 드디어 잡네, 그 괴한들 수장이라는 거지?
-개무섭다 진짜,
-잡으면 뭐하냐, 제2의 천선생, 제3의 천선생 분명 또 나온다.
-넌 대한민국이 그렇게 됐으면 좋겠냐? 그냥 그대로 뒤져라, 거기가 니 지옥
천선생의 검거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슈는 오래가지 못해 탑 엔터테인먼트 단체 마약 및 성접대 사건으로 덮였다.
신해수는 천선생에 대한 이슈가 그렇게 묻히는 것을 보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직 잡을 놈 많아서 좋네.”
* * *
“···짠! 아니 돌격아! 내가 노는 사이에 큰일 했다며? 그래서 이 형님이 우리 돌격이 주려고 이거 사왔지!”
자신과 가족이 저승까지 갔다 왔는 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곽반장은 밝은 얼굴로 병실 문을 열고 오메기떡과 감귤 초콜릿을 신해수에게 들이댔다.
오갱이 그의 어깨를 툭툭 밀며 구박했다.
“지금 애가 이 모양인데 아주 살판났네 살판났어?”
“아이 나도 걱정 많았어, 그래서 비행기도 땡겨서 도착하자마자 바로 여기로 왔다니까?”
해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가 건네주는 선물을 받았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곽반장님.”
“어? 내가? 어, 어 그래 뭐, 나도 노느라 힘들긴 했지.”
생각지도 못한 공치사에 곽반장은 얼떨떨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신해수 경위, 아니 경감님, 꼭··· 얼른 쾌차하셔야 합니다.”
조용히 따라온 신입은 해수의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게 곽반장과 오갱, 신입이 떠난 뒤, 5분도 되지 않아 영원한 막내 우강철과 그의 와이프 오지연이 들어왔다.
“선배니이임!!!”
우강철은 이미 징그럽게 문을 열 때부터 눈물을 뿌리며 달려왔다. 해수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곰을 보며 한 손을 뻗어 얼굴을 잡아 말렸다.
우강철은 해수의 손에 막혀 두 팔을 버둥거렸다. 해수는 그 상태로 오지연과 눈을 마주하고 눈인사를 했다.
오지연은 우강철의 뒷모습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힘들다. 그만 달라붙어.”
“아, 아 예! 선배님, 어쩌다가 이 옥체에···!”
“옥체는 니 옆사람이겠지, 축하한다. 축하합니다.”
방금 전에 오갱에게 들었다. 우강철의 와이프가 임신을 한 것이다.
우강철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예에해··· 가,감사합니다. 태명은··· 우해수···.”
“하지마.”
“그럼 우신해···!”
“하지 마.”
“흑.”
울보 곰이 나가고, 그제야 좀 조용해지나 싶었는데 누군가가 작은 창문너머로 빼꼼거리는 것이 보였다.
긴 머리칼, 작고 하얀 얼굴, 환자복.
한 사람밖에 없다.
“들어와.”
스르르륵-
그제야 문이 조심스레 열리며 한 여인이 병실로 발을 들였다.
그녀의 손목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사박 사박 사박
천 슬리퍼를 신은 그녀의 발소리는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은밀했다.
해수의 침대 멀찍한 곳에 엉덩이를 걸터앉는 그녀의 표정이 매우 시무룩하다.
“왜.”
해수의 물음에 하루는 한참을 가만히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뒤돌아서 병실 문을 한 번 보고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뭐가.”
“황···장수 아저씨··· 저 때문에.”
해수는 한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에 툭 올리며 말했다.
“하루야, 네 잘못 아니야.”
하루는 고개를 미세하게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마실장을 보고 흥분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쏘지만 않았더라면···.”
툭-
병원 이불 위로 맑은 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집주인님··· 해수님은 저에게 축복인데, 기적인데, 저는··· 해수님에게 저주인 것 같습니다. 계속 다치게 하고, 목숨 위험하게 하고, 친구분마저도···.”
해수는 그녀가 어디까지 얘기하나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녀가 깁스한 팔로 눈물을 닦다가 이상한 감촉을 느끼고 반대쪽 팔로 눈물을 닦고는 다시 말했다.
“저··· 이제 그만 해수님에게서 떨어지겠습니다. 이제 돈도 많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디, 만수무강하십시오.”
돌연 큰절까지 올리고는 그녀가 돌아섰다. 가녀린 어깨가 떨리는 것이 육안으로 보인다.
턱-
그리고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해수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어 당겼다.
“헛.”
하루는 그의 손에 이끌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붙었다.
해수는 그녀의 곧은 속눈썹을 내려다보며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가지 마.”
하루는 순간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목끝에 칼날이 들어오고 독사에게 물렸어도 이 정도로 떨린 적은 없었다.
해수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진중한 눈빛으로 마주했다.
“운동실, 스튜디오로 개조시켜줄게.”
하루의 눈동자가 떨리는 것이 고스란히 보인다. 하루는 해수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운동실···.”
하루가 살짝 볼을 붉히며 수줍어하는 모습에, 해수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 * *
또각-
같은 시각.
해수가 입원해 있는 VIP룸을 들어가려던 호피무늬 하이힐이 멈칫했다.
또각, 또각-
하이힐이 느릿하게 뒷걸음질을 친다. 그때.
“엥?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한대요? 찐따같이?”
“어맛!”
안서은은 갑자기 훅 들어오는 사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스텝이 꼬였다.
턱-
그러자 그 사내, 황장수가 한 손을 뻗어 가볍게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고는 내려다보며 물었다.
“내 얼굴이 그렇게 놀랄 정돈가.”
서은은 주춤주춤 일어나 머리를 다듬고는 어깨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황장수를 힐끔 보았다.
“거울, 안 보시나봐요.”
“보는데? 기분나쁜 일 있을 때, 스트레스 쌓일 때 거울 보면 싹 풀려서.”
“아···.”
황장수는 안서은의 반응에 재미없다는 듯이 어깨를 한 번 털고는 VIP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자 서은이 다급하게 그의 손목을 낚아채어 막았다.
“아, 아니, 지금 안 갈래요.”
장수는 훅 들어온 서은의 부드러운 손 감촉에 살짝 놀라며 손잡이에서 손을 떼었다.
“아, 뭐, 그래요. 근데, 나 이제 경호원 잘리는 건가요?”
장수가 자신의 가슴부위를 가리켰다. 천운이 따라 장기가 다치지 않고 깔끔하게 관통하여 몇 달만 몸을 아끼면 금세 회복이 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한동안은 경호 임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서은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럴 리가요. 우리 대성가드는 인재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리고, 황장수씨는 인재 중에 인재죠.”
“오호···?”
안서은은 며칠 전에 자신의 아버지 안회장이 황장수에 관한 칭찬을 늘어놓았던 것을 떠올렸다.
신해수는 몰랐지만 리셋 당시 그 대상이 되는 사람 외에도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인근에 있는 상태로 리셋이 된다면, 희박한 확률로 이전 기억을 떠올린다.
안회장이 그 희귀 케이스였고, 장수가 자신을 목숨을 걸고 지켜주던 그때가 도저히 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반쯤 사실로 여기는 중이었다.
다만 이미 천선생까지 검거된 마당에, 굳이 말 꺼낼 이유가 없어 조용히 있을 뿐이다.
누군가에 대해 칭찬이 매우 박한 안회장이기에 안서은은 이를 특별히 여겼다.
그때, 황장수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아 혹시, 나 이거 나으면 또 그 회장님 경호해야 하는 건가요?”
안서은은 그의 표정이 재미있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안대표님, 나 회장 말고 안대표님 경호하게 해줘요. 예?”
“왜요? 회장님 경호가 페이는 훨씬 좋을 텐데.”
“에이 그깟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고, 늙다리 아저씨보다는 미녀 대표가 훨씬 낫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장수의 말에 서은이 큰 눈을 깜빡였다.
“···제가 미녀에요?”
“에? 아···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거 아니죠?”
서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진짜 몰라서 그러는데.”
“그 얼굴로 뻔뻔하시네.”
장수의 능글맞은 대답에 서은은 살풋 웃었다.
* * *
어두컴컴한 밀실.
새하얀 머리에 새하얀 옷을 입은 중년인이 창문 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그 얼굴에는 혈기가 서려있고, 눈빛은 진중하다.
그가 돌연 혀를 끌끌 찼다.
“건방진 놈들, 싹 다 쓸어버려야겠어, 마실장, 준비시켜.”
그가 붕대를 칭칭 감은 손으로 의자를 조작하여 몸을 돌렸다.
그 앞에는 분홍색 깔끔한 옷을 입고 있는 사내들이 서 있었다.
“처음 보는 회사원들인데, 몇 기인가?”
분홍색 옷을 입은 사내들이 서로 눈을 마주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이고 또 이러시네. 고동탁 환자분, 약 드실 시간이에요.”
탁!
그러자 천선생이 그의 손을 사납게 쳐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어딜! 벌레같은 놈이 그 금지된 이름을 입에 담아? 나 천선생이야 천선생!”
“예예 천선생님, 이만 하시고··· 화장실부터 가시죠, 또 지리셨네.”
휠체어에 앉은 천선생은 바지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던 천선생, 그는 모든 것을 잃고 팔다리마저 잃은 현실을 정신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붕괴했다.
다리는 물론 하체가 마비되어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팔은 간신히 밥숟가락만 뜰 정도였다.
그마저도 치아가 몽땅 나가 틀니를 끼고 있지만 제대로 씹지도 못해서 죽만 먹었다.
“가암히! 누가 내 엉덩이를 까느냐!! 이것 놔라!”
천하를 호령하던 천선생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정신병원 내에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 * *
“하, 내가 이걸 왜 들고 있는 거지.”
김쪽새는 불만어린 표정으로 투덜거리며 카메라를 들었다.
옆에는 열정적으로 영상을 찍는 정영수가 보였다.
그 앞에는 하루가 보기만 해도 소변을 지릴 것 같은 흉측한 오크 가면을 쓰고, 그와는 상반되는 날씬하고 건강한 몸매를 여실히 드러내는 스포츠브라와 레깅스를 입고 카메라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루살이입니다. 오늘은 스튜디오 정식 오픈 기념 게스트를 모셔왔습니다. 전국최대 턱걸이 동아리 턱짱의 회원, 턱신짱입니다.”
카메라가 살짝 옆으로 돌자 강철같은 근육질에 문신보다 수백 배는 무서워보이는 수많은 흉터가 온몸에 가득한 남자가 마법소녀처럼 사뿐하게 등장했다.
그는 그 흉기같은 몸과 어울리지 않게 엘프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가 징그럽게 허벅지를 모으고 조신하게 두 손을 들어 브이짜를 흔들며 하이톤으로 말했다.
“터리터리턱! 안녕하세요! 턱걸이를 즐기는 턱신짱이에오! 내가다이겨 구독자 여러분들 하트뿅뿅!”
그가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가락을 간신히 교차시켜 손가락 하트를 난사했다.
그것을 정통으로 맞은 정영수가 참지 못하고 카메라를 내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자, 잠시 읍, 우윽!”
턱신짱, 해수는 그 모습에 갑자기 180도 돌변하여 본래의 자세와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만 더 끊으면 너를 반으로 찢어버리겠다.”
“죄, 죄송합니다!!”
그 협박마저도 좋은지 하루가 엘프 가면을 쓴 해수를 보며 히죽거리고 있다.
해수는 그녀가 미소짓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미소가 퍽 잘 어울린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저 얼굴에서 미소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해수의 시선을 느낀 하루가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했다.
해수가 나지막히 물었다.
“하루, 그렇게 좋나?”
하루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볼을 붉히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해수와 눈을 마주하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시, 시발··· 존나··· 좋습니다!”
하루의 보기드문 격한 표현에, 해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소리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 * *
대한민국을 오염시켰던 수장 천선생과 그를 떠받치던 기둥들이 잡혔지만, 세상에 나쁜 놈들은 여전히 많다.
그들의 존재는 신해수의 끝없는 원동력이었다.
띠리리리-
심각한 얼굴로 내선전화를 받은 곽반장이 돌연 고개를 홱 돌리며 특수팀을 향해 소리쳤다.
“야 살인사건 터졌다! 다들 출동 준비해!!”
대기하던 해수는 오갱과 눈을 마주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차키는 이미 우강철이 챙겼다.
해수가 강력반 사무실로 발을 옮기며 크게 외쳤다.
“지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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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너무 강함] 완결 후기
타 플랫폼에도 전달이 되기 위해서 본문에 후기를 첨부합니다.
정말 힘들었던 때에 그나마 숨통을 트이게 해주었던 작품이기에 애정이 깊습니다.
물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딸려서 비록 연독은 처참했지만 ㅜㅜ
글을 쓰는 동안 기사나 유튜브, 현직 경찰 인터뷰도 하면서 꽤 즐겁게 썼습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일 것 같네요.
아, 그리고 올해 안으로 웹툰이 나올 것 같습니다! 정말 기대됩니다!
출격 전에 공지로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외전은, 그때쯤에 보여드릴 것 같습니다. 이 부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럼 이만, 작가의 말을 줄이겠습니다.
그동안 '경찰이 너무 강함'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재미있는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