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249화 (249/255)

< #249. 비밀을 알다 >

“형님 저 먼저 퇴근합니다.”

신해수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갱이 의문을 품었지만, 시간은 이미 퇴근시간을 넘겼기에 그를 잡지는 않았다.

“어 그래, 별 일 없냐?”

해수는 오갱의 가벼운 물음에 멈칫했다가, 돌아서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없습니다.”

추적이 쉽지 않은 2G 휴대폰을 퀵으로 보내어 꼬여내는 납치 방식, 이전에도 겪은 적이 있다. 레드문이었던가.

이 휴대폰에는 도청 기능과 GPS가 달려있을 것이다.

이 도청 기능에 이상이 생기거나,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곽반장과 가족들이 위험해진다. 일종의 제어장치로 보낸 것이다.

사무실을 나서기 직전, 해수는 주머니에서 네모나고 납작한 작은 패치같은 것을 꺼내어 신발 밑창에 깔고, 아지트 통화용 선불폰으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네 신형님, 여보세요? 여보세요?

정영수의 목소리가 작게 울렸다. 해수는 혼잣말을 하듯이 읊조렸다.

“천선생···.”

-천선생?!

경찰서를 나서니 과연 맞은편에 검은색 택시 한 대가 정차되어 있었다. 해수가 가까이 다가가자 뒷좌석에서 한 사내가 내려서 그를 태웠다.

옆에 한 명, 운전석에 한 명, 둘이다. 말수가 없는 것이나, 옆에만 있어도 잘 벼려진 칼날이 목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을 보면 이들도 회사원으로 추측된다.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해수 옆자리 회사원은 말없이 해수가 방금 천선생에게 받았던 2G 휴대폰을 빼앗고, 검은색 막대기를 하나 꺼내었다.

“곽반장님과 가족은 무사한지 당장 확인하고 싶다.”

치지직-

회사원은 해수의 말을 무시하며 검은색 막대기로 그의 몸 곳곳을 쓸었고, 이내 주머니에 넣은 해수의 선불폰과 휴대폰 모두 먹통이 되었다.

*  *  *

정영수는 아지트에서 홀로 헤드셋을 쓴 채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곽반장님과 가족은 무사한지 당장 확인하- 치지직-

영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헤드셋을 벗었다. 이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먹통이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신해수 전용 GPS기기를 추적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비상용 초소형 GPS기기를 모두 소지하고 있었다.

“휴.”

이것까지 망가지지는 않았다.

정영수는 키보드에 손을 얹은 채 머리를 굴리며 현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신해수가 도청당하고 있다.

어딘가로 가고 있다.

곽반장과 가족이 인질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천선생이 꾸민 것이다.

신해수가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영수는 바로 마우스를 움직여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누님, 형님, 신형님이 납치되었습니다. 위치는···.”

*  *  *

신해수는 두 손을 뒤로 하여 쇠사슬로 칭칭 묶이고, 머리에는 검은 천이 씌워진 채로 이동했다.

지금 같이 가는 둘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섣불리 움직였다가 곽반장의 가족이 위험해질까 하여 아무 말 없이 따랐다.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겁박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를 것이다.

신해수의 것이 아니라, 곽 반장 가족의 것으로.

철컥

차 문이 열렸다. 짠내음이 확 풍긴다. 바닷가 근처, 제주도로 가기 위해 배를 타는 것인가? 그렇다기에는 체감상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회사원이 여전히 한 마디 말도 없이 해수를 잡아 끌었다.

퀴퀴한 냄새, 안 그래도 밤인데다가 검은 천을 써서 어둡지만 더 어두워졌다. 불을 켜지 않은 실내로 들어온 듯하다.

저벅 저벅 저벅

계단을 한참 내려가 백 발자국쯤 걸었을 때,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우, 우웁?!”

곽반장이다. 제주도가 아니었다. 제주도로 갔다가 납치되어 이곳으로 왔든지, 그 전에 여기로 납치된 것이다.

스윽

검은 천이 벗겨지고,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곽반장과 그의 와이프, 딸 곽은정, 아들 곽성재까지 몸이 결박된 채 재갈까지 물고 있다.

딸과 아들의 얼굴은 파랗게 겁에 질려 있었다.

해수는 그들의 표정을 본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지금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들을 풀어주더라도, 이들은 평생 오늘 일을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갈 것이다.

시간을 돌린다고 한들 이미 납치된 지 한 시간이 넘었을 것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피해는 돌이킬 수 없다.

해수의 시선이 자연스레 곽반장 옆에 1인 소파에 앉아있는 새하얀 머리 중년인에게 갔다.

그는 오른손에 권총 한 자루를 들고 장난감처럼 휘적휘적 돌리고 있었다.

“드디어 만났네, 신해수?”

해수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분노를 짓눌렀다.

지금 당장 쇠사슬을 끊고 천선생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지만, 주변에 포진한 회사원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해수가 움직이는 동시에 한 명만이라도 곽반장과 그의 가족들에게 가면 순식간에 처리될 것이다.

“전화 한 통이면 될 걸, 거친 방법을 사용하는군.”

시간을 최대한 오래 끌어야 한다.

하루와 황장수가 올 때까지, 그들이 마실장까지 데리고 온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텐데.

천선생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거친 방법? 거친 방법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대답과 동시에 흔들거리던 권총의 총구가 해수의 다리로 향했다.

탕 탕탕!

소음기도 끼지 않은 권총의 천둥같은 발사음이 지하실 내부에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크흑!”

“끄으웁!!”

재빨리 몸을 비틀었지만 연이어 날아오는 총알에 해수의 두 무릎이 박살났다.

해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으며 신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곽반장이 소리쳤고, 두 아이는 실신 직전이었다.

천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가 뒤로 접혀질 정도로 박장대소했다. 말끔하게 넘겨빗은 머리가 흐트러질 정도로, 그는 굉장히 만족스러워보였다.

“아파? 많이 아파? 그러게 왜 그렇게 나댔어, 신해수! 이 대한민국에 날 짓밟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네가 아무리 시간을 돌리는 재주를 지녔다고 해도.”

천선생의 마지막 말에 해수의 눈동자가 확 커졌다. 그 반응에 천선생은 더욱 큰 쾌감을 느끼며 몸서리를 쳤다.

그가 간절히 기대하던 순간이다.

“왜?! 놀랐어?? 경찰서 앞에 자살한 놈이 정말 자살같아? 오늘은 유독 사망 사고가 많지 않았나? 이제는 시간도 못 돌리겠지, 왜냐.”

입꼬리가 귀에 정말로 걸릴 것 같은 기괴한 얼굴이다.

“넌 이미 한 번 시간을 돌렸거든!”

천선생이 여유롭게 발을 옮기다가 멈추어서는 해수에게 얼굴을 확 가까이 들이댔다.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해수의 눈을 탐색한다.

“아직도 눈빛에 힘이 살아있네, 혹시 누구 기다리는 사람 있나?”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저벅 저벅 저벅-

몸을 삼킨 어둠을 떼어내며 느릿하게 몸을 드러내는 남자, 그를 본 순간 해수의 눈동자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이 떨렸다.

“미안하게 됐군, 신해수.”

지옥에서 울리는 듯한 묵직한 저음.

마실장이다.

천선생과 마실장이 다시 손을 잡았다.

경우의 수에는 있었지만 아주 희박하다고 생각했던, 최악 중에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해수는 자신이 생각을 잘못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에 천선생이 자신을 스카웃하려던 의도가 있었다. 마실장이 사라진 지금 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자신을 더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대립각을 제대로 세운 이후에도, 그 빈자리 때문에 행동의 제약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저 광기어린 눈빛은, 과거의 영광 되찾기, 능력있는 인재 등용, 그딴 거 다 필요없고 전부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이다.

질질 질질

마실장의 뒤로 회사원 두 명이 무언가를 질질 끌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여인, 한 명은 덩치 큰 남자다.

“하루···.”

그들은 피투성이가 된 하루와 황장수였다. 하루는 물론 황장수도 웬만한 팀장금 회사원들도 이길 수 있지만, 마실장에게 제압되었을 것이다.

해수는 얼굴 형상도 알아보기 힘든 하루와 황장수를 번갈아보며 속으로 미친 듯이 외쳤다.

‘리셋, 리셋, 리셋!!’

오늘 낮에 오토바이 사고로 죽을 위기를 겪었던 일반인을 살린 것이 미친 듯이 후회가 되었다.

이 모든 게 천선생이 꾸몄던 것이다.

리셋은 야속하게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하루야, 하루야! 황장수, 내 말 들려?!”

다리에 총을 맞아 하체를 쓸 수 없는 상태에서도 담담하던 신해수의 평정심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는, 천선생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이거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대들던 하룻강아지를 드디어 꺾었다.

칠성회를 결성하여 확고히 자리를 잡은 후, 그에게 위협이 되었던 이는 정말 오랜만이라 더더욱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

“이제야 좀 사람같네, 얼마나 좋아? 어? 안 그래도 얘네 찾으려했는데, 잘 찾아왔네.”

천선생은 자리를 이동해서 황장수의 무릎에 총구를 댔다.

“신해수, 잘 봐.”

“안 돼!!”

탕!

“끄으으!!”

거의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져 있던 황장수는 끔찍한 통증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선생은 마치 놀이를 하듯이 어깨춤을 추며 황장수의 나머지 한쪽 무릎, 그리고 두 어깨에 총을 쐈다.

장수는 이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저 들릴 듯 말듯한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미아애, 미아해···”

곽반장이 주저앉은 채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해수는 두 눈이 붉게 충혈된 상태로 그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다음은 하루였다.

하루의 무릎에 천선생이 총구를 대며 말했다.

“그러게 넌 왜 도망을 쳐서, 안 도망갔으면 지금 마실장 자리에 네가 있을 거 아니야? 여기서 이런 개죽음 당하는 거 말고, 응? 이제 다 부질없는 말이지.”

축 늘어진 채 바닥을 보던 하루의 고개가 아주 천천히 들어올려졌다. 그녀의 눈빛은 눈 앞에 천선생이 아닌, 그의 어깨 너머 신해수에게 향했다.

신해수와 하루의 눈빛이 마주했다.

하루가 몸을 덜덜 떨며 입을 벙긋거렸다.

-미. 안. 해.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천선생의 손속은 자비가 없었다.

탕! 탕!

털썩-

하루의 두 무릎이 박살나고 어깻죽지가 절반쯤 날아가 팔이 덜렁덜렁거렸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여전히 해수를 바라보았다.

으즈즉-

해수는 혀를 깨물며 분노를 곱씹었다. 그의 입가에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천선생은 곽반장의 가족들을 보았다가 해수에게 휙 몸을 돌려 다가왔다.

“늙고 어리다고 봐주면 형평성이 안 맞지?”

천선생은 탄창을 갈아끼우고는 무자비하게 곽반장과 가족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은 정신을 붕괴시킨다.

해수의 눈에서 모든 혈관이 터져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단 한순간의 방심이 참혹한 재앙을 불러왔다.

천선생은 조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이걸론 부족하지, 내가 너 때문에 잃은 걸 생각하면.”

천선생은 싸늘한 눈빛으로 해수를 바라보며 그의 어깨에 총구를 대었다. 그러고는 검지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때.

우드드드득-!! 철컹 철컹-

해수의 손목을 옥죄던 쇠사슬이 끊어지며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타앙!

천선생이 다급히 방아쇠를 당겼지만, 해수가 이미 어깨를 틀어 그것을 피하고 천선생의 손목을 잡아 꺾어 총을 빼앗았다.

우드득!

“아아악!”

그러고는 그를 방패막이 삼아 앞에 두고 어깨너머로 가장 먼저 마실장을 찾았다.

“···?!”

마실장이 없다. 아니, 그가 어느새 소파 뒤로 몸을 숨기고 있다. 마치 해수가 천선생의 총을 빼앗을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 사이 다른 회사원들이 칼을 빼들며 해수에게 달려들었다.

탕 타당!

한 명은 머리, 한 명은 어깨, 한 명은 가슴.

나머지 회사원들이 각기 뒤로 물러서거나 시체를 잡아 방패막이로 쓰며 해수에게 덤벼들 자세를 취했다.

“야, 야야!! 잠깐 잠깐, 신해수? 나랑 거래하자, 거래, 내가 너 살려줄게···!”

바둥거리는 천선생을 껴안은 채로, 해수는 처참하게 죽은 사람들을 보았다.

하루와 황장수는 아직 숨이 붙어있지만 무슨 짓을 해도 곧 끊어질 것이다.

오히려 더 잔인하다. 소리는 내지 못하지만 누구보다 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테니.

해수의 시선이 곽반장과 그의 와이프, 아들, 딸, 황장수, 마지막에 하루에게 이르렀다. 그녀의 눈빛이 천천히 깜빡이다가 이내 아예 감겼다.

“···신해수? 신해수, 잠깐···!”

해수는 한쪽 팔뚝을 천선생의 목에 두르고, 강하게 힘을 주었다.

우드득-

소름돋는 소리와 함께 천선생의 몸이 축 쳐졌다. 최고의 방패막이가 사라졌으니 회사원들이 뜸들일 이유가 없어졌다. 그들이 해수에게 일제히 덤벼들었다.

천선생이 곽반장과 가족들에게 쏜 것을 제외하고도 해수가 회사원들에게 세 발.

꽉 차 있던 탄창의 총알은 단 한 발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죽고 나서 사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0.1프로의 희망에 모든 것을 건다.’

해수는 덤벼드는 회사원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대었다.

탕!

*  *  *

“···가족 여행권 당첨됐다고! 앗사, 돈 벌었다으아!”

아득히 멀어져가는 정신 너머로, 곽반장의 흥분어린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