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 칠성회의 배신 >
신해수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사람들이 대부분 대피를 할 때쯤 호텔에 도착했다.
회사원들은 특유의 날카롭게 벼려낸 듯한 기운을 품고 있다. 기감에 민감한 해수는 그런 회사원들을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회사원들은 대피가 아니라 호텔 내부를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비상계단에서 해수와 마주쳤다.
그가 멈칫하더니 해수의 얼굴을 조금 더 살피고는 무전을 들었다.
“신해수 발-”
쾅 콰직!
해수는 무전기와 함께 그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고 벽에 밀쳤다. 무전기는 물론 그의 입 안에 이빨들도 부러지고, 뒤통수도 벽에 강하게 부딪혀 머리가죽이 찢기며 하얀 벽면에 빨간 피가 흩뿌려졌다.
해수는 이빨이 몽땅 부러지고 뒤통수에서 피를 질질 흘려도 신음 한 번 지르지 않는 회사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주먹을 들어올렸다.
퍽!
해수의 돌같은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회사원은 그대로 바닥에 스르르 쓰러져 내렸다.
해수는 그의 귀에 살색 테이프로 붙어있는 수신기를 떼어 자신의 귀에 붙이고 위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한편.
호텔 CCTV를 확인하여 불을 고의로 낸 황장수는 금세 경찰에게 붙잡혔다.
“왜 그곳에 불을 질렀지?”
“그게 그래야 했으니까, 아 이거 진짜··· 내가 그놈 말을 듣는 게 아닌데”
“···그놈? 공범이 있구나? 누구야? 누군지 말하면 너는 최대한 감형해줄게.”
황장수가 아차 싶어 자신의 입을 막았을 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신해수가 등장했다.
“그놈이 나입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 회사원 한 명도 오른손에 붙들고 데리고 왔다.
황장수를 취조하던 강력반 형사는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 신해수가 풍기는 분위기가 딱 형사이기에 함부로 막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해수가 그의 책상 앞에 테블릿을 놓으며 말을 이었다.
“강진서 특수팀 경위 신해수입니다. 노블레스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제 정보원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던 겁니다.”
“포,폭탄?”
사전에 알지 못했던 정보, 황장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가 이내 형사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맞아요! 내가 불상사를 막으려고 그 난리를 피운 겁니다! 그냥은 안 믿으니까 극단적인 방법을 쓴 거죠.”
“아···.”
해수는 테블릿으로 폭탄을 수거해서 가려던 회사원이 찍힌 영상, 그가 해수에게 붙잡히는 영상 등을 보여주었다.
“폭탄은 처리반에 넘겼습니다. 확인해보세요.”
형사는 할 말이 없어져 멋쩍게 입맛만 다셨다.
해수는 회사원을 형사들에게 넘기고 황장수는 데리고 나왔다.
황장수가 경찰서 입구에서 새삼스레 주변을 둘러보며 가슴을 쭉 폈다.
“야, 이거 뭐 깜빵에서 나온 느낌이다. 경찰서 나오는 느낌은 언제나 새롭···.”
퍽!
“꺄아악!”
그때, 경찰서 맞은편 4층 건물 옥상에서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그 앞은 대로변, 인도에 피가 넓게 퍼졌다.
해수는 고민할 것 없이 바로 그쪽으로 달려갔다. 황장수는 마지못해 그의 뒤를 따르며 투덜거렸다.
“지가 코난이야, 뭐야? 주변에 사건이 왜 이렇게 쉴 새 없이 터져? 어우 진짜.”
숨과 맥박, 눈꺼풀을 뒤집어 초점까지 확인해보니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섣불리 포기할 순 없다. 그는 바로 황장수에게 소리쳤다.
“119에 바로 전화해.”
아까 떨어졌을 때, 그리고 지금도 다시 위를 올려다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해수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남자의 몸을 뒤집어 가슴에 손을 얹고는 흉부압박을 하며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했다.
맞은편 경찰서 강력반 직통 전화다. 아까 들어갔을 때 번호를 외웠다.
“경찰서 건너편 4층 건물에서 투신 자살 의심 건 발생했습니다. 빨리, 최대한 많이 나와주세요.”
그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고 흉부압박을 이어갔다. 1분도 안 되어 형사들이 튀어나왔고, 그들 중 한 명과 교대하며 자연스레 황장수에게 말했다.
“넌 후문 막아, 아무도 못 나가게.”
“젠장, 쉴 틈이 없구만.”
다른 형사들에게도 말하여 건물을 차단하고 수색을 진행했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수색을 마친 후, 지금 막 응급차에 태워 가는 남자의 시신을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미 리셋을 한 번 썼기에 저 남자를 다시 살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후, 해수는 나중에 해당 서에 연락을 해서 자살 사건에 대해 알아보았다.
부검도 했으나 타살의혹은 없었다고 한다.
4층 건물은 독서실과 고시원이 붙어있는데, 고시원에 혼자 오랫동안 살았던 만년고시생이었다고 한다.
“···뭐 발견된 유서는 없지만, 알다시피 이런 사건 계속 매달릴 순 없잖아요. 자살로 종결 시켰죠.”
“예, 수고하십시오.”
해수는 전화를 끊고 한동안 창문밖 어둠이 짙게 깔린 밤하늘을 가만히 응시했다.
* * *
주최자는 다르지만 파티장소의 책임자는 하진그룹.
그곳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소식은 비밀이었지만 암암리에 그곳에 참석한 칠성회 회원 모두가 알게 되었다.
당연히 아직 범인을 모르는 사람들은 비난과 책임의 화살을 하진그룹 회장 하주학에게 겨누었다.
하주학도 아는 바가 없으니 그저 회피하며 신해수와 긴밀히 접촉했다. 그는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절실한 심정이었다.
고가도로 다리 밑, 인적이 없는 곳에 두 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해수는 차에 내려 옆에 있는 차의 뒷좌석에 탔다.
하주학은 신해수의 실물을 처음 보았다. 구멍가게를 대한민국 5대 기업으로 일으키며 세상사 산전수전은 다 겪은 하주학이지만, 신해수가 들어와 옆에 앉자 절로 주먹이 쥐어지며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저도 모르게 긴장을 한 것이다.
하주학은 확신했다. 이 자는 대타가 아닌 천선생이 그렇게 떠들어대던 신해수가 분명하다고.
“처음 뵙겠습니다. 회장님.”
목소리에서도 은은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하주학은 오래 대화를 하면 자신이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킬까 하여, 바로 본론을 꺼내었다.
“폭탄, 누가 설치했지?”
그러나 신해수는 질문을 질문으로 답했다.
“그곳에서 누구와 만나기로 했었습니까?”
하주학은 입을 꾹 다물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온 사실은 칠성회가 아닌 외부인은 절대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이다.
굳게 다문 입술을 보고 신해수는 그가 대답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먼저 말했다.
“천선생.”
“···!”
하주학이 눈을 크게 뜨고 해수를 보았다.
“천선생입니다.”
“···내가 시간낭비를 했군.”
정색한 하주학은 바로 해수를 내쫓고 그곳을 벗어났다.
미간을 좁힌 그는 홀로 확신했다.
파티장소 제공자인 자신도 천선생을 보지 못했다. 또한 천선생은 절대 파티 참석자 모두를 죽일 리가 없다. 그가 이뤄놓은 살아있는 업적이니.
업적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그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날 CCTV 기록 다 뒤져서 천선생 찾아.”
그러나, 찝찝할수록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어설픈 의심의 싹은 진작에 뿌리뽑는 것이 천선생에게도, 그에게도 좋을 것이다.
* * *
며칠 후, 보고를 듣던 하주학은 얼굴을 굳혔다.
알아보니 멀리서 찍혔지만 천선생으로 추정되는 자가 스카이라운지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간 것이 찍혔다.
1층이나 엘리베이터, 로비에 찍히지 않은 것을 보니 비서실장과 함께 헬기를 타고 왔다가 나간 것으로 추측되었다.
비서실장은 걸어서 나갔는데 헬기가 없어진 것을 보면 천선생이 분명했다.
물론 천선생이 몰래 왔다고 그가 폭탄을 설치한 범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이들보다는 가능성이 높다.
하주학의 눈이 분노로 번뜩였다.
경찰 측에 알아보니 폭탄을 수거해서 몰래 가지고 가다가 해수에게 잡힌 자도 회사원으로 확인되었다.
갑작스런 불로 계획이 무산되었으니 폭탄을 제거하려던 게 분명했다.
모든 것이 명확했다.
하주학은 다시 해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다렸습니다.
“왜, 천선생이 왜 우리를 몰살하려 했지?”
신해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말 안 듣는 덩치 큰 개는 모두 보신탕 끓여 먹고, 세대 교체 하려고.
“네 말을 어떻게 믿고.”
-믿고 말고는 당신 자유입니다.
전화가 끊겼다.
하회장은 곧바로 칠성회를 온라인 긴급회의에 소환했다.
자신을 향한 비난의 여론을, 화살이 날아들 과녁을 한 시라도 빨리 바꿔야 한다.
칠성회 회원들은 하회장의 호출을 기다렸다는 듯이 금세 들어왔다.
무슨 말을 하나 보자는 듯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 하주학이 입을 열었다.
“폭탄을 설치한 사람은, 천선생이었소.”
-천선생?
-말도 안 돼, 왜 천선생이?
-증거는 찾고 그런 말 하는 거겠지?
-뒷감당 가능하겠나 하회장.
첫 반응은 싸늘했다.
하지만 하회장은 천선생이 찍힌 CCTV 화면과 폭탄을 수거하다 잡히는 회사원의 영상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여 신뢰도를 높였다.
결국 회원들은 천선생이 자신들을 몰살시키려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천선생이 왜···
-오성주 의원 납치해서 죽이려고 할 때부터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어.
-천선생은, 그럼 우릴 싹 다 치우고 제대로 독재정권 잡으려고 했던 건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인정 후에는 분노가 뒤따랐다. 자연스레 발언권이 가장 강해진 하회장이 흥분한 이들을 진정시키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요. 그러면 그 악마같은 천선생이 어떻게 나올 지 몰라요. 먼저 우리가 움직여야 합니다. 당하기 전에.”
-···먼저?
-그런데 어디서 찾고? 경찰도 못 찾잖아요.
-바본가? 이번에 비서실장과 같이 온 거 보니까, 누구와 함께 있는지는 뻔하잖아?
-뭐? 바보?!
탕 탕-
하회장은 가볍게 책상을 두드려 집중시키고는 말을 이었다.
“KD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어차피 천선생에게는 이제 물리력밖에 없어요. 그의 권력은 모두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니 자기 힘이 약해질 것이 두려워 이번 일을 계획한 거겠지요. 비서실장도 머리가 있다면 천선생을 내놓을 겁니다. 우선 천선생과 친위대부터 떨어트리고, 그 다음에 법과 정의로 심판하는 겁니다.”
-풉, 흐흐··· 법과 정의라
-좋네요. 법이 가장 좋죠.
모두가 동의했다.
이들에게 법은, 그저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무기일 뿐이었다.
그렇게 칠성회가 처음으로 천선생이 없는 상태에서 단단하게 단합되었고, 청와대 비서실장 정승한에게 천선생을 내놓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나는 정말 모르오!”
비서실장 정승한은 전화를 끊고는 바로 앞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는 천선생을 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오? 폭탄이라니? 몰살이라니? 왜 이런 짓을, 나한테 말도 없이?! 꽁꽁 숨어서 살다보니 정신이 어떻게 된 거요?!”
후루룹-
정승한이 윽박을 질렀지만 천선생의 행동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 모습이 정승한은 더욱 열불이 나서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어쩔 수 없소, 이제 여기서 나가주시오.”
정승한이 검지로 문 밖을 가리켰다. 그러자 천선생이 차를 찻잔에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승한에게 손을 뻗어 그의 넥타이를 매만져주며 말했다.
“넥타이가 낡았네요.”
“···뭐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정승한이 눈을 찌푸렸다.
낡았을 리가 없다. 바로 어제 와이프가 신상품으로 공수해 온 명품 넥타이다.
천선생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낡으면 바꿔야지, 넥타이도, 사람도.”
살짝 마주친 천선생의 눈동자에 살기가 얼핏 보인 듯했다. 그 말뜻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뒤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천선생은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사색이 된 정승환이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천선-”
푹-
귀신같이 나타난 영이 한 손으로 정승한의 입을 막고 칼로 목을 길게 그었다.
치이이익-
“꺼,꺼걱.”
경동맥에서 뿜어져나온 피가 허공에 비산하며 천선생의 차에도 몇 방울 들어갔다.
천선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를 들어 정승한의 피가 섞인 차를 음미했다.
“흐음, 영아, 이제 우리도 매너를 차리지 말아야겠어.”
영은 목이 반쯤 벌어진 채 부들거리는 정승한을 바닥에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예, 선생님,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