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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너무 강함-246화 (246/255)

< #246. 신해수, 그놈 짓이다 >

털썩

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 뜬 채 그 자리에 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목에 둥글게 둘러진 선에서 피가 한 번 더 울컥 뿜어져 나온 순간에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황장수는 실력자 영을 단번에 쓰러트린 작은 체구의 괴한을 바라보았다.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눌러쓴 후드 사이로 날렵한 콧대와 얇은 입술이 낯익다.

‘···하루!’

하루는 황장수와 눈을 마주칠 틈도 없이 바로 다음 타깃에게 튀어나갔다.

슥 스걱 치이이익-

회사원들 사이를 하루가 낮은 자세로 휩쓸고 지나간다. 회사원들은 발목과 옆구리, 목 등 치명적인 위치에 피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회사원들은 하루의 등장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훈련받을 때만 해도 세상으로 나가면 능히 일당백을 이룰 수 있다고, 자신들을 상대할 사람은 없다고 배워왔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런데 그런 지금까지의 굳건한 믿음을 산산조각내는 존재가 눈 앞에 나타났다.

잊고 있던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너는”

슥-

하루가 비상문에서 막 나온 회사원의 경동맥을 칼로 날카롭게 잘라냈다.

그 신적인 몸놀림을 보며 황장수는 입에 피를 머금은 채 꿀럭꿀럭 흘리면서도 미소 지었다.

“지, 지금까지 봐준 거였어.”

*  *  *

같은 시각, 신해수는 스카이 라운지에 펼쳐진 끔찍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새하얀 대리석 바닥과 대조되는 새빨간 피가 빈틈 없이 바닥을 물들이고 있다.

값비싼 정장이나 드레스를 입은 부유층들 이외에, 호텔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도 피를 흘리며 싸늘한 바닥에 누워 있었다.

죽지 않고 도망친 사람들을 쫓는 회사원들, 꿈틀거리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다시금 목에 칼을 쑤셔 넣는 회사원들이 보인다.

턱, 우드득-

한 회사원이 해수를 발견하고 덤벼들다가 목을 붙잡혔다.

해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추지 않으며 그의 목을 한 손으로 비틀어 신경을 끊었다.

털썩

줄 끊어진 연처럼 회사원은 그 자리에 쓰러져 내렸다.

다음 회사원을 향해 발을 옮기려던 그때, 하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장수님이 연회장에서 천선생을 보았습니다. 그가 나타나고 학살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시간은.”

-약 15분 전입니다.

해수는 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리셋하면 해당 장소에서 이곳까지 오는 시간은 약 30분, 빠듯한 시간이기에 고민이 된다.

하지만 천선생을 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다.

해수는 일단 시간을 계속 체크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선생은 연회장에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층이기에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데, 본 적이 없다.

그가 비상계단을 이용했을까? 확률은 미미하다.

드드드드드-

해수가 눈을 부릅떴다.

깨진 와인잔과 와인인지 피인지 구분할 수 없는 빨간 액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그것들이 미세하게 파동을 일으킨다.

해수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고민은 짧았다.

그는 곧바로 옥상으로 뛰어올라갔다.

쾅-!

옥상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자 헬기에 막 타고 있는 새하얀 머리가 보였다.

해수는 그가 천선생임을 확신했다. 실제로는 처음 본다.

“천선생!!”

천선생은 헬기에 올라타고는 그 우렁찬 외침에 뒤돌아섰다.

헬기 프로펠러 바람에 옷자락과 머리가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는 한 사내가 보인다.

“신해수?”

그도 신해수를 한 번에 알아보았다. 천선생은 해수가 이곳에 나타날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해수는 이미 헬기가 점프를 해도 닿지 않을 위치까지 올라간 것을 보고는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그가 돌연 소화기를 한 손에 들더니, 투포환 선수처럼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뭐야, 저놈 지금 뭘 하려는 거지?”

후웅-!

그것은 이내 해수의 쭈욱 뻗은 손아귀를 벗어났고.

콰장창!!

마치 대포알처럼 날아와 헬기의 창문을 깨고 안으로 들어왔다. 실장급 회사원이 두 팔을 엑스자로 교차시켜 그것을 막았지만, 뼈에 금이 간 듯했다.

천선생은 뒤로 물렸던 몸을 다시 앞으로 하고 깨진 유리조각을 손으로 털며 말했다.

“과격한 친구네.”

피식 웃은 그가 품을 뒤적거리다가 무언가를 꺼내었다. 직사각형으로 된 정체불명의 스위치다.

그는 한 손으로는 그 스위치의 빨간 버튼 위에 엄지를 올리고, 다른 한 손은 깨진 창문너머로 신해수를 내려다보다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오늘 일석 이조네. 잘 가라, 신해수.”

천선생이 빨간 버튼을 누르자.

쾅! 콰과과광!!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신해수가 있는 옥상 바닥이 흔들렸다.

쿠구구구궁-

치솟는 아드레날린에 온 세상이 느리게 움직였다.

해수는 자신이 디딘 바닥이 무너지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이 갈라지며 그 아래층 스카이라운지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이 다시 보였다. 그 중에 이 끔찍한 학살극에 휘말린, 죄 없는 직원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해수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그 중 한 명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리셋.’

신해수의 세상이 빙글 돌았다.

*  *  *

쾅-!

“꿸!”

해수가 한 손으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치자 옆에 있는 하루가 화들짝 놀라 이상한 소리를 냈다.

해수는 아직 흉흉한 기운이 감도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지트 안이다.

무너지는 건물 아래로 떨어지던 그 중력의 후유증 아직 느껴지는 듯하다.

그는 하루에게 설명할 틈도 없이 바로 무전을 들었다.

“황장수, 멈춰.”

-엉?

이제 막 아치형 문을 지나가기 직전이었던 황장수는 해수의 말에 조건반사로 일단 멈춘 것이 커다란 화면에 비춰졌다.

“지금 당장, 아무것도 묻지 말고 거기에 불 질러서 사람들 다 내보내.”

-···나 이러라고 여기 보냈냐?

“나도 지금 출발한다. 같이 불 지르러.”

-···개새끼가.

*  *  *

황장수가 모든 전자기기를 박살내는 아치형 문 앞에 우뚝 멈추어 서 있다.

그 옆에 미소를 머금고 있던 미모의 여직원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고객님,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황장수가 방금 해수에게 했던 욕을 들은 것이다. 작지만 가까이 있던 여직원에게는 똑똑히 들렸다.

그러나 장수는 그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일단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수의 뇌에는 이상하게도 해수가 시킨 일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오로지 어떻게 불을 질러야 할까에 대한 고민 뿐이다.

“아!”

황장수가 돌연 배를 움켜쥐며 신음을 내었다.

뒤에 있던 안회장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 왜 그러는가?”

“또, 똥, 급똥을 좀, 잠시만! 회장님은 여기 그대로 계세요! ”

“···뭐?”

안회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내 한심하단 표정으로 변했다.

황장수가 방금 전에 휴대폰을 낼 때 대변을 한 번 언급했었던 것이 우연치 않게 빌드업이 되었다.

안회장은 엉덩이를 손으로 막고 다급히 걸음을 옮기는 황장수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황장수는 일단 남자 화장실 대변칸에 있는 휴지통에 휴지 두루마리를 통째로 넣고, 라이타로 불을 질렀다.

하지만 하나로는 부족하다. 이런 고급 신식 호텔은 스프링쿨러로 손쉽게 제압될 수 있다.

“다, 일단 다 질러보자.”

각 대변칸에 들어가 모든 휴지통에 불을 지르고 나왔다.

그러고는 화장실 입구에 있는 소화기를 챙겨 미리 봐둔 비상벨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소화기로 그것을 강하게 찍었다.

콰직-! 띠리리리링!!!

비상벨이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힘차게 울렸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할 뿐, 대피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비상벨은 점검시에도 울리고, 가끔 잘못 울릴 때도 있어서 그것 하나만으로는 이 고급 연회에 온 자들을 움직일 수 없었다.

가볍게 판단하고 도망치기에는 너무 귀한 자리였다.

황장수는 소화기 안전장치를 풀고 손잡이를 당기려다가 주춤했다. 뒤늦게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뒤에 화장실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이 보인다. 이미 늦었다. 뒷수습은 신해수가 알아서 해줄 것이다.

“에라이 모르겠다!!”

쏴아아아!

“자, 잠시만요!”

황장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소화기를 뿌려대며 돌진해, 검문 게이트와 여직원을 뚫고 연회장 중앙에까지 뿌렸다.

분사된 소화분말에 가려, 안회장은 미처 그를 보지 못했다.

칙, 치이이이익-!

때마침 스프링쿨러도 터지며 멋들어진 고가의 옷을 적셔 혼란을 가중시켰다.

“꺄아악!”

“뭐야, 무슨 일이야?”

“불 난 거 같은데? 냄새가 나!”

매캐한 연기 냄새까지 맡은 사람들은 그제야 심각함을 깨닫고 비상계단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 난 싫어, 힐 신어서 다리 아프단 말이야.”

이 와중에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도 있다.

안회장은 당황하며 고민하다가 황장수를 찾아 화장실로 더듬더듬 걸음을 옮겼다.

덥썩!

그때, 두터운 손이 안회장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스프링쿨러의 물줄기에 뿌연 소화기 분말이 살짝 걷히며 안회장은 자신의 손목을 잡은 장본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황장수다.

“아니, 회장님 대피 안 하시고 여기서 뭐합니까?”

“자네가 변을 보다가 변을 당한 줄 알았지.”

“라임 맞추시는 거 보니 아직 여유가 있으시네, 얼른 나갑시다!”

황장수는 약간의 감동을 애써 누르며 안회장을 데리고 비상계단을 내려갔다.

*  *  *

한편, 연회장 안쪽 대기실.

청와대 비서실장 정승한과 천선생이 그곳에 앉아 있다. 천선생의 미간이 살짝 좁혀져 있다.

정승한이 킁킁거리다 탄내를 맡고는 천선생에게 말했다.

“하필 갑자기 불이라니··· 운이 안 좋네요. 우리도 대피하죠.”

천선생은 정승한을 노려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오늘 일어날 학살극과 폭탄을 터트리는 건 이 사람도 모른다.

그런데 갑작스레 이런 일이 생겼다. 천선생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천선생이 팔짱을 낀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정승한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 참, 나 먼저 갑니다!”

정승한이 참다 못해 도망치자, 천선생의 최측근 회사원 영도 선생을 챙겼다.

“선생님, 가시죠.”

천선생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불이라면 피해야 하는 게 맞다. 그렇게 한 걸음 옮겼던 그는 돌연 멈추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신해수!”

그가 고개를 돌려 영을 보며 소리쳤다.

“지금 온 애들 싹 풀어서 이 건물 안에 신해수가 있나 찾아봐, cctv도 뒤지고, 이 짓거리 한 놈이 누군지도 당장 찾아!”

“예, 알겠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이지만, 영은 바로 무전으로 팀장급 회사원들에게 천선생의 명을 전달했다.

천선생은 검지를 편 채 가만히 있다가 몸을 휙 돌리며 옥상으로 올라가는 개별 계단을 가리켰다.

“가자, 여길 바로 뜬다.”

“예, 선생님.”

신해수가 이 일을 저질렀든, 우연의 일치이든 만약 그가 있다면 마주치는 것은 좋지 않다.

천선생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또 다시 멈추었다.

문득 이곳에 설치한 폭탄이 떠오른 것이다.

신해수가 뭘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폭탄의 존재도 알고 있다면 해체하려 할 것이다.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호텔의 주인, 하진그룹에서 폭탄을 발견하더라도 좋지 않다.

폭탄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이들을 싹 죽이려 했던 계획이 들키면 자신에게 큰 위협이 된다.

“폭탄도 바로 수거해.”

“예.”

영이 막 무전을 치고 천선생과 함께 헬기에 올라탔다.

헬기가 이륙하자 천선생은 미간을 좁힌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큰 계획이었던만큼 허무하게 무산된 것이, 실패를 모르던 천선생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때마침 한 회사원의 무전이 울렸다.

-신해수 발- 치직 쾅 콰직!

무전이 끊겼다.

확신이 든다. 회사원이 말조차 끝마치지 못한 짧은 순간에 무전을 박살낼 수 있는 사람은 신해수밖에 없다. 그에게 제압당한 것이다.

천선생은 무전기를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 기묘한 광채가 서렸다.

“신해수··· 그놈 짓이다. 그놈이··· 시간을 돌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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