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나한테 도망칠 일 있나봐 >
검사 하주경.
그녀는 요즘같은 세상에 보기 드문 열과 정의감이 넘치는 검사였다.
집안 여유와 상관없이 공부를 잘해서 대성장학재단에서 지원하는 장학금을 받았고, 자연스레 대성과 연을 맺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현직 검사로, 올곧은 성격으로 내부비리를 고발 후, 오래전에 지방으로 발령나서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따님께서 도맡아 집어넣었습니다. 징역 12년을 받아내셨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수사관의 보고에 수심이 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김청원 의원···”
오래전에 더러운 판에서 쫓겨난 그지만, 딸이 자신의 길을 이어받아 중앙지검에서 날뛰고 있으니 항상 최근 정보에 민감했다.
그가 중앙지검에 있을 때에도 김청원 관련 사건을 맡은 적이 있다. 끝은 좋지 않았다.
그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
-···몸 조심해야 돼, 집에 일찍 들어가고, 술자리 가지 말고.
하주경은 아빠의 전화를 받으며 차에서 내려 공동현관문으로 향했다.
“에이, 걱정 마, 아무 일 없어, 대한민국 검사를 감히 누가 건드려?”
그녀는 공동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곧이어 사내 둘이 다가와 같이 기다렸다.
띵- 1층입니다.
“아빠 건강이나 잘 챙겨요.”
-어, 알았어, 매일 걷기운동하고 있지, 우리 딸 사랑해~ 뽀뽀 쪽
“어 나도요.”
하주경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 사내 둘도 같이 탔다.
-그게 뭐야, 딸도 해야지, 딸 변했어.
“아 증말···”
하주경은 주변 눈치를 보고는 얼굴 붉히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휴대폰에 가까이 대었다.
“쪽, 됐지 끊어요.”
-아하핳-
전화를 끊고 나서 부끄러운 타임이 끝나니 현재 상황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두 사내가 엘리베이터 양쪽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거울로 비친 얼굴을 대충 보았는데 무섭게 생겼다.
한 사내는 후드, 한 사내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다.
슥
하주경은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나갈 수 있도록 문 앞에 바짝 붙으며 문에 어스름하게 비추는 사내 둘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지이이이-
엘리베이터가 올라간다. 그런데, 사내들이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하주경의 집은 11층, 앞집은 이사를 가서 아무도 없다. 즉, 같은 층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밤 8시에 방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현듯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김의원, 위험한 사람이야.
식은땀이 나는 것만 같다. 손가락이 떨린다.
“어, 휴대폰 어디 있지.”
발연기를 하며 가방에 손을 넣어 항상 가지고 다니는 호신용 스프레이를 손에 쥐었다. 그 차가운 기운이 조금은 마음을 가라앉혀주었다.
하주경의 눈동자는 각기 다른 구석에 서 있는 사내들에게 초집중되어 있었다.
모자를 쓴 사내가 조금 더 깊이 눌러쓰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손을 들었다. 손의 방향은 층이 아닌 하주경.
그녀는 곧바로 돌아서며 스프레이를 꺼내어 뿌렸다.
칙-
그러나, 괴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정확히 스프레이를 감싸서 원천차단했다. 노즐 위치를 엄지로 강하게 누르고 있어 소량밖에 발사가 되지 않았다.
매운내가 엘리베이터 내에 살짝 퍼졌다.
타닥-
괴한은 스프레이를 거칠게 빼앗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그녀의 손목을 꺾으며 다른 손으로 뒤통수를 밀어 엘리베이터 문에 쳐박았다.
탁-
“흡!”
하주경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보호하며, 손이 엘리베이터 문에 닿는 동시에 발을 뒤로 뻗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괴한이 배를 정통으로 맞고 뒤로 밀려났다. 그녀는 문을 딛고 있는 손을 쭉 펴고는 몸을 돌리며 돌려차기로 괴한의 턱을 후려쳤다.
뻑!
정확히 턱을 후려친 그녀의 발차기에 괴한은 엘리베이터 벽에 등을 댄 채 비틀거렸다.
후드를 눌러 쓴 괴한이 옆에서 그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본다. 그가 그제야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그 눈빛과 행동을 보고 공범임을 확신한 주경이 이어서 발차기를 날렸다.
터덕 턱-
괴한은 그녀의 다리를 한 팔로 막고, 발목을 잡고 자신쪽으로 당기며 바닥을 지지하는 그녀의 발을 툭 쳤다. 그녀의 몸이 뒤로 엎어진다.
“흐읍!”
그녀는 목을 최대한 앞으로 숙이며 뇌진탕으로부터 뒤통수를 보호했다.
쿵-
등이 바닥에 찍히며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머리도 직접적으로 닿지는 않았지만 강하게 흔들려서 정신이 없었다.
한쪽 발목은 여전히 후드 괴한에게 붙잡혀 있어 굴욕적인 자세를 하고 있다.
그때 녹슨 칼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태권도 얍얍 좀 했나본데,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아.”
띵- 11층입니다.
안내 음성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11층 센서등이 켜지며 그림자가 엘리베이터 안쪽으로 드리워졌다.
괴한은 다른 손으로 하주경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가 서늘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늘씬한 여자가 무심한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괴한은 그녀의 눈빛을 무시하고 하주경의 팔을 잡아 뒤로 꺾으려고 했다.
앞에 여자는 하주경을 완벽하게 제압한 후에 처리하면 그만이다. 운이 없는 목격자니.
그때, 문득 괴한의 머릿속에 사전조사 내용 하나가 떠올랐다.
‘잠깐, 11층에 다른 사람은 살지 않는-’
퍽!
곧바로 얼굴을 향해 뾰족한 무릎이 날아왔다. 괴한은 다급히 손을 들어 얼굴을 보호했다.
우득
그대로 뒤로 물러나며 한 바퀴 굴렀다가 재빨리 일어났다. 손가락을 피아노 치듯이 움직이며 상태를 체크했다. 움직일 때마다 찌릿찌릿하고 그마저도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뼈가 부서진 듯하다.
제대로 막지도 못하여 코도 찡한 통증이 오래 갔다.
그는 뒤로 바짝 붙으며 재빨리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어 휘둘렀다.
새로 나타난 여자, 하루는 상체를 뒤로 물리며 발로 그의 무릎을 사선으로 찼다. 그 강하지도 않은 한 방이 너무나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위치를 차서 괴한의 중심이 무너졌다.
비틀거리는 사이 하루가 살짝 드러난 그의 옆구리에 주먹을 짧게 끊어 쳤다.
그가 하루의 어깨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팔꿈치를 내려 막았다.
푹!
“읍”
주먹이 맨 몸에 꽂히는 소리가 무언가 이상하다. 그녀의 주먹이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도착하여 제대로 막지 못했다.
칼에 찔린듯한 찌릿한 통증이 인다.
괴한은 칼을 아무렇게나 휘둘러 연격을 방지하고는 바로 중심을 잡자마자 칼을 그녀의 목을 향해 뻗었다.
쉭 쉭-
하루는 마치 권투 선수가 주먹을 피하듯이 눈을 똑바로 뜬 채 고개만 살짝살짝 기울이며 칼 끝을 피했다.
네 번째 칼날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다가오며 마주 손을 뻗었다.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머리칼을 스치며 빗나간다.
그러나 쭉 편 그녀의 수도는 괴한의 겨드랑이를 정확히 찍었다.
핏
“끅”
공격할 때 마주 공격하여 방어를 할 수 없는 기술, 힘이 상대적으로 딸리는 여성에게 가장 효과적인 반격 기술이다.
팔에 감각이 저하되었다.
타닥- 으득
그 찰나에 하루가 괴한의 손가락을 꺾어 칼을 놓치게 했다.
턱-
칼이 떨어지며 지면에 닿기 직전, 그녀가 칼을 낚아채며 괴한의 종아리를 찍었다.
괴한은 뒤로 물러나며 발을 빼려고 했으나, 그녀가 먼저 옆으로 돌아가 괴한의 오금을 칼로 찍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에 힘이 풀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거의 동시에 옆구리와 팔꿈치를 찍고, 마지막으로 목을 찌르기 직전, 칼날이 멈추었다.
핏, 치이익-
칼에 찔린 부분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그 거침없고 빠른 손놀림, 제압하는 순서, 무심한 눈빛을 마주한 괴한은 그녀가 그와 같은 곳에서 훈련받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실력은 아득히 위다. 방심했다는 변명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설마.’
문득 훈련을 받을 때 자주 거론되었던 존재가 떠올랐다.
여성의 몸으로 일찍부터 천재적인 실력을 보여 차기 교관으로 주목되었었는데, 돌연 탈출했다는.
그녀가 괴한을 건조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너, 운 좋은 거야.”
만약 이 사람 말고도 제압해야 할 상대가 있다면 오금과 옆구리가 아닌, 목부터 땃으리라.
하주경은 어느새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와 덜덜 떨며 그들을 지켜보았다. 한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있고, 화면에는 112가 찍혀 있다.
하주경에게는 하루나 괴한들이나 똑같이 경계대상이다.
하루는 그것을 보고는 괴한의 목에서 칼을 치우며 그녀에게 말했다.
“신해수님이 보냈습니다.”
신해수, 들었던 이름이다. 대성에서 부를 때 자신을 지목했다고 했던 경찰이다.
일개 경찰이, 대성을 움직여 검사를 나서게 하는 것도 모자라 전직이 의심스러울 정도의 실력을 지닌 여성을 보낸다.
‘그 사람, 대체 뭐야···’
*
김청원 의원의 사무실.
김청원은 햄버거를 한움큼 베어먹고는, 입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홍비서, 좀 늦네?”
“죄송합니다. 연락해보겠습니다.”
김청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아냐 됐어, 그런 일 할 때 전화하는 거 아니야, 만에 하나 그 쓰레기들이 실패하면 배후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꼴 아니야, 머리를 좀 써 머리를.”
“네, 죄송합니다.”
김청원은 햄버거 안에 토마토를 빼서 바닥에 버리며 말을 이었다.
“그 부자 쪽은”
“그쪽에 여직원이 없어서 한 명 집어넣기로 했습니다. 이번주 안에 진행하겠습니다.”
홍비서의 말에 김청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스가 묻은 손을 신경질적으로 털었다.
홍비서가 잽싸게 그에게 손수건을 가져다 주었다.
“홍비서, 왜 이래 알만한 사람이, 예를 든 거 아니야 예를, 아니 꼭 같은 회사 직원이어야만 성추행이 돼? 밖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를 스치겠어? 대충 몸 파는 년 하나 구해서 쓰면 되잖아.”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김청원은 손수건도 바닥에 던지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홍비서가 재빨리 그것을 줍고 토마토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쓰레기들은 왜 이렇게 느려? 밀꽃으로 가자.”
“예, 차 준비시키겠습니다.”
건물 1층 로비에서 나오자 검은색 세단이 대기하고 있었다.
김청원과 홍비서가 모습을 드러내자 운전기사가 뒷문을 열어주었다.
김청원은 당연한 듯이 뒷자리에 타고, 운전기사가 문을 닫아주었다. 홍비서는 앞자리에 탔다.
그런데, 뒷좌석 김청원 옆에 다른 누군가가 이미 타고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에 김청원은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차가 좁아보일 정도로 큰 키에 흉기같은 몸, 목에 칼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날카로운 눈빛.
김청원은 그를 처음 만났지만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수차례 거론되었고, 사진과 영상도 많이 보았다.
“···신해수?”
신해수가 마실장과 비견되는 실력을 지녔다는 소문은 기정사실화된 상태.
김청원은 그가 무슨 이유로 찾아왔든지간에 들을 생각도 없이 바로 내리려고 했다.
철컥 철컥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수동으로 잠금장치를 풀려고 할 때 옆에 어깨에 묵직한 무언가가 툭 얹혀졌다.
“나한테 도망칠 짓을 했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