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 능력 발각 >
척
승준 아빠는 라면과 공기밥, 배추김치가 놓인 탁상을 방 한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밥 먹어라.”
타닥 타다닥
승준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승준 아빠는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앙상한 손목, 시커먼 다크서클, 무엇보다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그것처럼 퀭하고 감정이 메마른 눈이다.
엄마가 자신 때문에 그 밤에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이후, 자신이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공간 외에는 무서워서 나가지 않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최소한의 영양만 섭취하며 살아가는 승준이었다.
승준 아빠는 일어나 아들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탁!
그러나 승준은 사납게 아빠의 손을 뿌리쳤다. 결국 승준 아빠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 이러다 죽어! 너도 니 엄마 따라서 죽고 싶어?”
키보드를 두들기던 승준의 손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그가 돌아서서 아빠를 노려본다. 그 눈빛은 방금 전과는 달리 섬뜩할 만큼 살기가 어려 있었다.
쾅!
승준은 일어나 발로 탁상을 차버렸다. 라면이 담긴 냄비, 밥이 담긴 사기그릇, 김치가 담긴 반찬그릇이 모두 엎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 이 자식이 진짜!”
아빠는 승준을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가 그와 눈을 마주하고는 멈추어 섰다.
“하···.”
아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리고, 행주로 바닥에 나뒹구는 음식물을 치웠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오만원 권 몇 장을 꺼내어 바닥에 놓고, 집을 나섰다.
철컥
승준은 아빠가 나간 현관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두었다.
딸칵
그는 바로 게임창을 내리고, 한 사내의 별스타그램을 살펴보았다. 모니터 한 쪽에는 텍스트가 빼곡하다.
승준이 게임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까득 까드득
그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사진을 살펴보았다.
사내가 늘씬한 여자를 옆에 끼고 가슴을 적나라하게 주무르는 사진, 서로 깊게 키스를 하는 사진, 좋은 차 타고 찍은 사진들이 눈동자에 비쳐진다.
[오늘도 알흠다운 레이디와 한 잔 걸치고]
-pps: 그 차 대리가 운전할 수 있냐?
-sukan: 대리를 왜 불러 병신아, 대한민국에서
-pps: 이새끼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또 죽이려고?
-sukan:존나 개미새끼들 뒤지던 말던, 어차피 시궁창 인생살이 내가 조기졸업하게 도와준 거지, 아마 고마워하고 있을걸?
-pps: 김안석 진짜 개또라이새낔ㅋㅋㅋ
스윽
승준은 불법사이트에서 은밀히 구매한 접이식 칼을 챙기고,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가 그렇게 원했던 아들의 첫 외출길은, 살기가 찐득하게 묻어 있었다.
집은 이미 알고 있다. 생활패턴도.
달빛도 가려진 깊은 밤.
어둠이 짙게 가라앉았지만, 그놈에게는 가장 활발한 활동 시간이다.
* * *
둥 둥 퉁 퉁-
묵직한 소리가 클럽 밖까지 울려 퍼지며 내장을 흔들었다.
흥을 안에 놓고 오지 않은 남녀가 클럽 입구에서 몸을 흔들고 있다.
척
“민증.”
“······.”
“민증 없으면 집에 가라, 형 귀찮게 하지 말고, 자 다음!”
승준이 눈을 찌푸렸다.
클럽은 처음이기에 이렇게 입구에서부터 막힐 줄 몰랐다.
어둡고, 조명이 눈을 혼란스럽게 하고, 많은 사람들이 근거리에서 부비는 클럽 안이라면 들키지 않고 놈의 배를 구멍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차질이 생겼다.
승준은 순순히 물러나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주차장에서 자신을 가로막는 사람은 없었다.
주차장은 넓지 않기에 그놈의 차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놈의 차 옆에 주차된 차 트렁크 뒤에서 숨죽이고 놈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꺄하하, 아잉 간지러워.”
“아 닥치고 일로 와, 빼지 말고, 썅.”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부터 시끌시끌하다. 문이 열리고 주차장으로 두 남녀가 비틀비틀거리며 나온다.
앞으로 걸음은 걷고 있는데 고개는 앞을 보고 있지 않다. 서로를 보며 격정적으로 입을 탐닉하고 있었다.
쩝쩝거리는 소리가 적막한 주차장에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왔다.’
10미터, 5미터, 3미터, 여자가 먼저 타고, 그놈이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 타려고 한다. 명백한 술 냄새가 풀풀 풍기는 상태로, 또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핸들을 잡으려는 것이다.
저벅
승준이 품에서 칼을 꺼내며 놈에게 나서려는 그때.
턱-
묵직한 무언가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마치 바위에 낀 것 같은 그 압도적인 힘에 당황하며 돌아섰다.
그곳에는 험악한 인상에 근육질 사내가 서 있었다. 언제 이렇게 가까이 왔는지 모른다.
지금 이 타이밍에 나타난 것을 보면 뻔하다. 놈의 경호원이다.
“이익!”
승준이 그를 향해 칼을 휘두르려다가 멈추고, 어깨를 털며 발로 그를 찼다.
터덕
그러나 어이없을만치 쉽게 승준의 발이 치워지고, 칼을 든 손목이 그에게 잡혔다.
그가 상체를 조금 숙이며 번뜩이는 눈으로 승준을 바라보았다.
“지금 하려는 짓, 멈춰.”
“너부터 죽여줄게.”
뿌득- 챙그랑
신해수는 승준의 손목을 살짝 비틀어 칼을 놓치게 하여 전의를 상실시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도와줄게, 내가.”
해수의 말에 승준의 눈동자에 혼란이 담겼다.
경호원이 하기엔 퍽 이상한 말이다.
부아아앙!
그 순간, 놈의 차가 배기음을 시끄럽게 토해내며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승준은 미간을 확 찌푸리며 차 뒤꽁무니를 보았다가 다시 해수와 눈을 마주했다.
“당신이 뭔···!”
승준이 말을 이으려던 그때, 돌연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파도처럼 덮쳐왔다.
-아, 아악! 아파!
꿈인지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장면에서는 승준이 튀어나가 놈의 배에 칼을 박아넣었다.
그러나 놈이 그 찰나에 몸을 비틀어, 칼은 갈비뼈에 막혀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재차 공격하려 했지만, 몸무게가 40키로밖에 되지 않은 성장기 소년의 힘은 술에 취했어도 성인남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놈은 승준을 차에 밀쳐 칼을 떨어트리게 하고, 그것을 주워들었다.
-너, 너 이 십새끼! 너 그년 아들이지? 내가,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 법도 내가 무죄라는데 왜 지랄이야 이 개새끼야!!
승준은 놈을 죽일듯이 노려보았고, 놈은 그 눈빛에 담긴 살기를 보고는 결단한 듯이 칼을 다잡았다.
-뒤져! 뒤져! 너도 니 엄마한테 꺼져!
승준은 팔을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배와 목에 열 방이 넘게 칼에 찔려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내렸다.
뇌로 팔다리가 움직이라고 계속해서 명령을 내렸지만, 움직여지지 않았다.
시야가 흐릿해져가는 가운데, 그보다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웁!
-닥쳐 이 씨발년아! 이거, 이거 니가 들어, 니가 죽인 거야.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니가 나 지키려고 죽였다고 해.
저 새끼는 마지막까지 쓰레기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데? 허업! 허억, 허억···?”
승준은 눈알이 빠질 듯이 커다랗게 뜬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손을 들어 볼을 꼬집고, 때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꿈이나 망상 따위가 아니다. 마치 신이 돕는 것처럼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절망적인 미래를 보여준 듯하다.
금속이 배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칼이 품은 서늘한 한기가, 피가 빠져나오면서 느껴지는 그 뜨거움과 묘한 쾌락이, 뇌리에 박힌 듯이 또렷하다.
“어?”
승준은 고개를 돌려 해수를 보았다. 방금 보았던 장면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
딱 그 타이밍에 자신을 잡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사람.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승준은 그가 매우 신비롭게 보였다.
“···아저씨는, 누구?”
해수는 승준에게서 빼앗은 칼을 접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는, 건조한 눈으로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방금 말했듯이, 널 도와줄 사람이다.”
해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주차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승준이 자연스레 그의 시선을 따라갔고, 주차장 입구에서 음주 단속 중인 경찰에게 붙잡혀 차에서 내린 놈의 모습이 보였다.
승준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 * *
“아저씨는 뭐에요? 천사에요? 능력자? 히어로인가?”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쫑알대던 승준이 입을 비죽 내밀었다.
승준의 끝없는 절망에서 현실도피를 도와주는 것은 게임과 웹툰, 소설 등이었다.
학교는 다니지 않지만 어린 나이인 만큼 초자연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유연했다.
“분명 내가 미래를 본 건데, 그 미래에 아저씨는 없었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나타나서 내 미래를 바꿨어요. 그럼 내가 능력자가 아니라 아저씨가 능력자인 거죠.”
별로 똘똘해보이지 않는데 쓸데없이 예리하다.
해수는 표정관리를 하며 조용히 지갑을 꺼내어 경찰공무원증을 보여주었다.
“아저씨는 능력자도 히어로도 아니지만 경찰이다. 네 옆집에 살고, 네 아빠가 잘 보살펴달라고 해서 따라와본 것뿐이야.”
아빠라는 말에 들떠있던 승준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그의 눈빛에는 착잡함과 원망, 미안함 따위의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이제, 아저씨랑 대화 좀 깊게 나눠볼까?”
승준은 허공을 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해수를 보며 크게 끄덕였다.
“···네.”
승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해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자신 때문에 엄마가 사고가 났고, 절망에 빠져 살다가, 살기 위해 복수를 다짐했다.
그와중에 아빠를 원망하고 모질게 대한 것은 상처입은 정신에 튀어나온 부수적인 불행이었다.
아빠가 주말에만 오지 않았더라면, 아빠가 자신의 생일 때만이라도 왔더라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며 원망의 지분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자책의 끝으로 가는 파멸을 막을 일종의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그것을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을 주지도 못하고 그저 인생에 치여 살던 아빠는 눈치채지 못했다. 하여 자책하는 아들을 보듬어주지 못했고, 둘은 어긋났던 것이다.
“그놈 이름이 뭐라고.”
아빠와 엄마 이야기를 하며 끝없는 바닥으로 빠지는 승준을 보며 해수가 이야기의 궤를 틀었다.
“김,안,석··· 국회의원 김청원 아들이에요.”
승준은 김안석의 최근 6개월간 행적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절반은 추측이 들어가 있지만, 근거가 명확하여 신빙성이 있었다.
해수는 김안석에 대해 모두 듣고는 5분간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겼다.
그 행동을 승준은 부정의 의미로 해석했다.
우물쭈물하던 소년이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어요. 세상은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경찰 혼자서 어떻게 국회의원 아들을 건드려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저씨는 그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이나 많이 구해주세요.”
해수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드라마가 아닌 건 알면서 능력은 철썩같이 믿네.”
승준은 손으로 자신의 목을 쓸며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여기 훅 들어오는 칼, 그 감촉은 진짜였거든요.”
해수는 씁쓸한 미소를 짓는 승준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세상은 드라마보다 더하지, 나쁜 놈들도, 히어로들도.”
승준의 눈이 찰나 반짝였다. 죽은 생선같은 눈알에 얼핏 희망이 티끌만큼 생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