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 마약 대부 검거 >
비서실장은 한문의 명령에 따라 금고에서 돈과 장부를 챙겼다.
금고 안쪽에 작은 목함이 있다. 그것도 비서가 챙기려 하자 한문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것만 가지고 나가.”
“예 알겠습니다.”
비서가 물러난 후, 한문은 목함을 조심스레 꺼내어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권총 한 자루와 총알이 들어 있었다.
그는 권총을 장전하고는 안주머니에 넣고 그곳을 나섰다.
비서와 함께 차를 타고, 차고에서 나와 옆으로 막 꺾을 때였다.
“음?”
“뭐야.”
바로 차가 나가지 않아 앞을 보니 다른 차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
빵 빵!
비서가 클락션을 울려도 비키지 않는다. 오히려 쌍라이트를 켜서 눈부시게 했다.
“뭐, 뭐지?”
한시가 급한 상황, 또라이는 일단 피하는 게 좋다. 비서가 기어를 후진으로 돌리고 뒤로 빠지려고 할 때였다.
끼이익-
뒤에도 회색 봉고차가 나타나서 길을 가로막았다. 한문은 그제야 불길함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 개새끼들이.”
한문이 품에 손을 넣어 챙겨온 총의 묵직하고 싸늘한 감각을 느끼는 순간.
콰장창!!
옆에 창문이 깨지며 두터운 손이 확 들어왔다.
척 쾅 쾅 쾅!!
그 우악스러운 손은 한문의 멱살을 잡아 창문틀에 강하게 몇 번 부딪히게 하여 기절시켰다. 그러고는 밖으로 끌어당겨 그의 오른손에 쥐고 있는 총을 빼앗았다.
“한문, 당신을 살인교사 및 특수폭행교사, 마약유통 혐의 등등으로 체포한다.”
해수가 축 늘어진 한문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하는 동안, 차에서 내린 특수팀원들이 가까이 다가와 한문의 차를 둘러쌌다.
바짝 굳어있던 비서는 전의를 상실하여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들고 순순히 내렸다.
오갱이 한문의 차 트렁크에 있는 캐리어를 열어보고는 감탄했다.
“그 사람 말이 맞았네. 본가라고 하더니 별장에 있었구만, 이 양반.”
오갱은 캐리어 안에 있는 현금다발과 장부들을 한 손으로 뒤적거리며 무전을 들었다.
“여기 특하나, 타깃 확보, 본가 인원 해산해.”
-이런··· 알겠습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수고들 했어.
-오늘도 특하나가 한 건 했네, 축하해.
다른 강력팀들의 나른한 목소리가 무전너머로 울려 퍼졌다. 약간의 아쉬움과, 그 이상의 만족감.
비록 직접검거는 하지 못했지만 허탕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좀먹는 놈을 성공적으로 잡았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다 같이 잡았지 뭐, 얼른 퇴근하자고.”
* * *
[지하세계 마약대부 한모씨 검거]
마약유통은 물론 살인청부, 폭행 및 협박까지 서슴치 않았던 극악무도한 한모씨의 범죄의 덜미가 잡혔다.
이에 경찰 측은···
┗roanes: 어떻게 잡아도 잡아도 끝없이 튀어나오냐?
┗책방속돌쇠: 나 여기 계속 살아도 되는 걸까? 무섭다···
┗책방속돌쇠: 이민 갈 파티 [1/99999]
┗식빵이: 딴 나라는 더하다. [길거리 총 난사, 사망자 42명 (링크)]
┗책방속돌쇠: 이민 취소. 대한민국 만세!
┗구름: 신형사님 사랑합니다!(턱일동)
┗개같이짖는닭: 나쁜놈1을 잡으면 보통놈1이 나쁜놈2로 변한다. 나쁜놈불변의법칙
┗해리포터: 개소리에 법칙 넣지마, 잡을수록 줄어드는 거 맞거든, 열심히 잡는 사람 힘 빠지는 헛소리 하지 마라 뒤진다.
┗개같이짖는닭: 게시판 발끈이 불변의 법칙. 견찰이신가봄?
┗마지막: 위에 님은 제발 경찰없는 외딴 섬에 가서 사시길
한문과 그 일당,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는 조폭들의 수는 서른 명 남짓이었다.
허나 적은 수지만 장사의 영역은 훨씬 넓었다.
한문 자신이 본사고, 대한민국 방방곡곡마다 하청업체 식으로 나눠서 영역을 확장시켰던 것이다.
장부가 있어서 각 해당하는 청에 알려주기만 하고 잡아들이는 건 알아서 하도록 맡겼더니, 전국 각지에서만 120개 업체가 나왔다.
그렇게 마약 건이 일단락되고.
해수는 김지안과 함께 다시 박선후 부부가 사는 집을 찾아갔다.
“···그래서 잘 해결되었습니다. 앞으로 그놈들을 볼 일은 없으실 겁니다. 이런 일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희박하고, 제가 알려드린 대로 대처하면 이런 일에 휘말리실 일도 없을 겁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선배님.”
이번 일로 많이 놀랐을 테고, 불안에 떨까 봐 최대한 걱정을 덜어주고자 직접 찾아와서 상세하게 알려준 것이다.
해수와 지안의 말에 박선후가 고개를 떨군 채 어깨를 떨었다.
선후의 와이프가 물기 가득하여 초롱초롱한 눈으로 해수에게 다가가다가 멈칫하고, 지안을 안았다.
“고마워요. 진짜, 정말, 엄청 고마워요.”
“제가 뭐 한 일이 있다고··· 다행이에요. 언니.”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르고, 간신히 감정을 추스린 선후가 두 손으로 해수의 손을 소중하게 잡았다.
“형사님, 신해수 형사님! 정말,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형사님이 죽으라면 진짜 죽는 시늉이라도!!”
“오빠, 무슨 그런 말을···”
감사를 표하며 감정이 격해져 헛소리까지 하자 와이프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말렸다.
지안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가렸고, 해수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안이 왜 반했었는지 이해될 만큼, 좋은 사람이다.
“그럴 일 있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해수의 비주얼과 진중한 말투 때문에 농담으로 받아쳤음에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정말로 죽으라고 할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해수는 살짝 당황하며 품에서 명함을 꺼내어 건넸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주십시오.”
선후는 해수의 명함을 소중하게 받으며 다시금 허리를 깊이 숙였다.
“···네, 감사합니다!”
* * *
장성 교도소 접견실.
신해수와 서 프로가 소파테이블을 두고 마주앉아 있다.
“···천선생은 그 일 이후, 소수만 데려가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무리지어 있지는 않고?”
“절대 한 명이라도 함께하지 말라는 지령이 있었습니다.”
조직이 무너진 만큼, 두 명 이상이 붙어있으면 다른 생각을 할까 봐 그런 듯하다.
어차피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 무리지어 지내면서 따로따로 있다고 해도 되겠지만, 한평생을 천선생의 친위대로 살아왔던 회사원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천선생이 지령을 내리는 방식입니다.”
회사원들의 인프라망이 따로 있었다. 비상상황이 터지고 난 뒤에 만들어진 극 비공개 사이트였다.
그곳에서 지령을 내린다고 한다.
“전에 오의원 납치 건도 그곳에서 지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1:1 대화로.”
그 말에 해수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마실장도 알고 있나?”
“음, 실장님이 들어가고 난 뒤에 열린 거라, 잘 모르겠습니다.”
해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이었다.
“너는 왜 한문의 옆에 있었지? 파견직도 아니면서.”
“저는···.”
서프로는 잠시 공상에 접어들었다.
낙후된 여관방, 곰팡이 피는 천장을 바라보며 정신적으로 천천히 말라죽어가던 그때가 떠오른다.
“살고 싶었습니다.”
매우 심플한 대답이지만 말투와 눈빛에서 진심이 진하게 묻어난다. 지금까지 봐왔던 누구보다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한 회사원이다.
해수는 서 프로를 마실장이 있는 효성교도소가 아닌 다른 교도소로 입소하도록 힘을 썼다.
마실장은 이 사이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 * *
해수는 아지트로 와서 정영수에게 해당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누가 천선생인지, 누가 천선생과 함께 있는지, 천선생은 어디 있는지 등등을 보기 위해서.
서프로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곳에서 직접 나눠준 휴대폰이 있어야했다.
“이거 보안이 꽤 철저하네요.”
“그래서, 못 들어가?”
“아뇨, 5분.”
4분째 되었을 때, 영수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뚫었다!”
회사원 사이트는 매우 간단했다.
출석란, 자유게시판, 이렇게 두 가지 게시판밖에 없었다.
[오늘 점심입니다.]
[오늘 저녁입니다.]
[산책을 다녀왔습니다.](1)
[층간소음으로 이웃이 찾아왔습니다. 죽여야 할까요?](3)
[자연스럽게 사회에 적응하는 법 11편]
[훈련은 쉬지 않습니다.(사진)]
[발소리를 죽이기 위해 24시간 고양이를 추적해보았습니다.(동영상)]
[간단요리법]
게시판을 보는 해수와 영수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한참을 말없이 게시판을 살피던 영수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훔, 그 무시무시한 회사원들도 다 사람이긴 하네.”
“······.”
그들이 과거에 어떤 일을 벌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천선생을 잡아도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해수의 눈이 깊어졌다.
그들이 앞으로 더 끔찍한 일을 맡기 전에 회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되었다.
하지만, 일반회원간에는 1:1대화가 금지되어있다.
오로지 그곳의 사이트장, 천선생만이 가능했다.
“잘 살펴봐, 뭐 나오면 즉각 알려주고.”
“예 형님, 좀 쉬세요.”
* * *
아지트가 있는 허름한 건물 4층에 있는 원룸은 황장수의 임시 거처다. 그런데 장수가 안서은의이 경호원이 되면서 잘 쓰지 않게 되었고, 해수만 가끔 그곳에 들러 잤다.
오늘도 시간이 늦어서 그곳에서 잘 생각으로 올라갔다.
“음.”
그런데, 옆집의 쓰레기가 문 앞에 가득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복도에 악취가 풀풀 난다.
“어라, 여기 살아요?”
그때 반대편 옆집에서 나오는 이웃아줌마와 마주쳤다.
해수는 코를 막고 손을 휘휘 저으며 황장수의 집을 가리켰다.
“전 여기 삽니다.”
“아··· 그, 여기 앞집 주인양반 번호 알아요? 여기 때문에 아주 그냥 못 살것어.”
해수는 뜨끔하며 작게 입을 열었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해수는 도망치듯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주로써 해야 할 의무 중 하나는 민원 처리다. 해수는 옆집에 쓰레기 더미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날 새벽, 해수는 운동을 가기 위해 나오다가 들어오는 중년 아저씨와 마주쳤다.
그가 쓰레기가 가득 쌓인 집을 보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그것을 발로 대충 밀고 문고리를 잡았다. 해수는 바로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기 사십니까?”
덩치도 얼굴도 위협적인 사내가 어둑어둑한 새벽에 대뜸 다가와 말을 거니, 중년인은 흠칫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예···.”
“이 쓰레기들 좀 치워주시죠, 냄새가 심하다고 힘들어하는 주민들이 많습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중년인은 들어가려다 말고 바로 쓰레기더미를 들고 옮겼다. 해수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같이 치웠다.
중년인은 행색을 보니 지금서 퇴근하는 듯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아, 그···.”
가려던 해수를 중년인이 붙잡았다.
“내가··· 자주 못 와요. 일주일에 한 번 들를까말까··· 우리 아들놈 좀 잘 부탁해요. 혼자 있는데··· 그냥 가끔··· 살아있나 확인만 좀.”
아까 쓰레기를 옮기면서 아들이 열여섯 살, 중학교 3학년이라는 말을 들었다.
중3인데 학교도 안 가고, 집에만 있어서 쓰레기가 쌓여간다. 정상은 아니다.
해수가 살짝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저랑 얘기 좀 하실까요?”
중년인은 문고리를 잡았다가, 해수를 한 번 보고는 문고리를 다시 놓고 발끝을 틀었다.
그의 가정은 돈은 없지만 화목했다. 아빠는 일하러 가서 기숙사에서 생활하여 주말부부였다.
‘베스트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생일이잖아, 생일인데 그 정도도 못 해줘?’
‘알았어, 엄마가 사다줄게.’
아들에게, 일을 하고 피곤한 얼굴로 퇴근한 엄마와의 대화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중앙선을 넘어온 음주운전 차량과 충돌,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3일 만에 사망했다.
알아보니 엄마는 사고 직전에 아빠와 스피커폰으로 통화중이었다는 게 블랙박스에서 밝혀졌다.
그것을 빌미로 전방주시태만, 방어운전미숙이라는 꼬투리가 잡히며 상대가 집행유예를 받았다.
“근데 참···.”
중년인은 담배를 한모금 깊게 빨아들이고는, 긴 한숨과 함께 연기를 내쉬며 새벽하늘을 공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환호성을 내지르더라고요. 집행유예 받았을 때, 무슨 결승골을 넣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