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 쪽새의 위기 >
쪽새는 휴대폰너머로 분노 가득한 목소리를 듣고는 한껏 입꼬리를 비틀었다.
“눼에?”
-너, 지금 내가 장난하는 거 같지.
“눼에 눼에 줴까세요.”
-···후회하지 말고, 약 내놔라, 약만 내놓으면 없던 일로 해준다.
“엡뗀 일로 해쥰댜~ 뿅”
-이 개새-
쪽새는 킥킥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도 다시 전화가 왔지만 무시하고 강진서로 향했다.
가는 길에 갑자기 휴대폰이 마구 울렸다.
지이잉
-[스피드 심부름 센터입니다]
쪽쪽님은 심부름 ‘먹튀’로 신고 접수되었습니다. 차후 법적인 조치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스피드 심부름 센터입니다]
···
문자가 한 번에 연달아 들어온다. 이 지역은 모두 다른 계정으로 같은 놈이 한다는 것이다.
쪽새의 계정은 활동이 정지되었고, 정산금도 묶였다. 그러나 법적 조치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배달을 시킨 고용주가 모습을 드러내고 신원까지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지이잉-
이번에는 심부름 센터 문자가 아니다. 모르는 휴대폰 번호다.
-[사진] 마지막으로 기회 준다. 오늘 밤 10시 전까지 물건 동진아파트 101동 1003호 우편함에 갖다놔라. 그러면 아무 일도 없다. 오늘이 넘어가면 내가 너 찾아간다.
쪽새의 얼굴이 희미하게 나온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다. 그러나 저렇게 시시티비까지 뒤질 껄 예상하고 모자에 안경에 마스크까지 둘러서 얼굴을 절대 확인할 수 없다.
쪽새는 킥킥거리며 휴대폰 키보드를 두들겼다.
-줴까세요.
“아 이거 재밌네.”
상대방이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이 문자에서 팍팍 티가 나니 쪽새는 즐거움에 얼굴이 싱글벙글이었다.
선천적으로 누군가를 약올리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쪽새였다.
그 사이 강진서에 도착했고, 해수가 마중을 나왔다.
“왔냐.”
“와··· 내가 경찰서를 잡혀들어가는 게 아니라 제 발로 들어가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이제 잡혀들어갈 일은 없어야지.”
쪽새는 해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강력반 안으로 들어가자 특수팀 팀원들이 쪽새를 반겼다.
“이야 쪽새, 할머니 분장한 거 본 지 엊그제같은데, 이제 해수 정보원으로 뛴다고? 개과천선했네.”
“정보원이라, 뭔가 멋있다.”
오갱은 쪽새를 알아보았고, 신입은 선망의 눈으로 해수를 보았다. 정보원인 쪽새가 아니라, 정보원까지 둔 해수가 멋있는 것이다.
쪽새는 지금 온 문자를 해수에게 보여주었다.
마지막에 쪽새가 보낸 문자를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쪽새야···”
은근한 목소리로 부르며 어깨에 팔을 툭 걸친다. 쪽새는 본능적으로 몸을 떨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우리가 수사를 하고 있잖아, 수사? 그럼 이렇게 쳐내지 말고 거래를 해야지? 전화해.”
“아하···”
해수의 말에 쪽새는 똥 씹은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위치추적을 위해 문자가 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받지 않아 문자를 보냈다.
-나: 천만 원
-니가 진짜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나: 받기 싫어?
-오백
-나: 천만 원
-칠백
-나: 콜, 장소랑 시간이랑 거래방법은 내가 정해
문자를 보며 오갱이 말했다.
“네가 갈 거지?”
“아뇨, 얘 보내야죠.”
쪽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갱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위험하지 않아?”
“괜찮습니다. 제 정보원은, 잘 뜁니다.”
쪽새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검지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약속 장소.
그들이 먼저 지정된 장소인 공원 휴지통에 돈을 놓고 가면, 쪽새가 돈을 확인하고 그곳에 약을 놓고 간다.
쪽새가 또 먹튀를 할 수도 있지만, 거래금액보다 약값이 다섯 배는 되기에 그들은 거부할 수 없었다.
해당 장소에는 특수팀 형사들은 물론 강력반 형사들도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었다.
툭-
새까만 트레이닝복에 후드까지 눌러쓴 사내가 휴지통에 무언가를 버리고 간다. 형사들은 그를 잡지는 않고 두 명이 미행했다.
곧이어 쪽새에게 문자가 왔다.
-확인해
-나: 오키도키
쪽새는 휴지통 안에 있는 검은 봉지를 확인했다. 정말로 현금이 들어있다. 오만원 짜리 백 개 묶음.
이번 임무가 무사히 끝나면 이 돈은 쪽새에게 수고비를 준다고 했다.
쪽새는 약 대신 밀가루를 담은 봉지를 휴지통에 넣고 싱글벙글 웃으며 가벼운 걸음으로 그곳을 나섰다.
“돈 벌기 쉽네 쉬워.”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놈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쪽새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형사들끼리도 수군거렸다.
“뭐야, 약 안 찾아가?”
“약을 찾아가든지, 정보원을 잡든지 해야하는데 둘다 아니라고?”
“이새끼들 눈치 챈 거같은데···”
쪽새가 허탈한 표정으로 해수에게 다가오려는 순간, 해수가 몸을 돌려 그와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기며 문자를 보냈다.
-무서운사장: 아는척 하지 말고 복귀해. 집으로.
-무서운사장: 아니 내 집으로. 리드빌딩.
쪽새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발길을 돌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미행이 붙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리드빌딩으로 복귀했지만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형사들은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며 해산했다.
그리고 쪽새가 밤이 되어 다시 자신의 집으로 가는 길, 골목길에서 덩치 큰 사내가 앞길을 가로막았다.
쪽새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올라간다.
“드디어 나타나셨네.”
뒤돌아서자, 그곳에도 덩치 사내가 있었다. 사내가 쪽새를 보며 손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이리와봐라, 아가야.”
“줴까!”
겁을 먹고 순순히 잡힐 줄 알았던 사내들의 예상과는 달리, 쪽새는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이 새끼가!”
덩치가 쪽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쪽새는 몸을 확 숙이며 점프하여 덩치의 겨드랑이 사이로 통과했다.
그 뒤에 또 다른 사내 두 명이 더 있었다.
“저거 잡아!”
“쥐새끼같은 놈이!!”
훙 훙-!
쪽새는 미꾸라지처럼 그들의 손아귀에서 손쉽게 탈출하며 휴대폰 전원버튼을 세 번 빠르게 눌렀다.
비상버튼, 112와 함께 비상연락망으로 지정된 해수에게 위치 정보가 간다.
쪽새는 뒤에서 헉헉거리며 따라오는 덩치들을 보며 킥킥거렸다.
“니네가 나 잡으려면 그 비계부터-”
퍽!
쪽새는 순간 눈 앞이 핑 돌며 쓰러졌다.
끄드득-
“크윽”
누군가가 구둣발로 목을 밟는 것이 느껴진다. 목뼈가 부러질 것만 같다. 곧 시야가 회복되었고, 한 사내가 싸늘한 시선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약 어딨어.”
고저없는 건조한 목소리, 동태같은 감정없는 눈알, 쪽새는 그의 눈을 보고 깨달았다. 이 자는 사람 목숨을 파리만도 여기지 않는 자, 살인이 쉬운 자다.
짧은 머리에 눈 밑에는 길게 가로로 그어진 흉터가 더욱 살벌하게 보였다.
쪽새는 갑자기 몰아치는 죽음의 공포에 얼어붙어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품에서 칼을 꺼내며 되물었다.
“약 어딨어.”
마치 컴퓨터로 복사 붙여넣기를 한 듯이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목소리톤과 음절.
그때, 쪽새의 눈에 뒤쪽에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쪽새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으, 그,그거, 여기···”
쪽새는 빈 손을 꺼내어 중지를 추켜올렸다.
“줴까세요.”
순간 사내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 동시에 발이 날아와 그에게 꽂혔다.
쾅!!
그는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족히 4미터는 날아간 듯했다.
해수의 등장이다.
“괜찮냐.”
해수는 바로 쪽새에게 손을 뻗어 일으켜 세우고, 자신의 뒤로 보냈다. 그곳은 이미 다른 덩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때, 흉터 사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옷을 탁탁 털었다. 해수도 예상한 눈빛이다.
발차기를 하는 당시, 그 짧은 순간에 몸을 틀며 옆구리를 팔꿈치로 보호한 것이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해수는 목 관절 풀며 사내를 보았다.
사내도 몸을 풀며 칼을 눈높이까지 들고 해수를 노려보았다.
“···!”
그가 해수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수는 그의 얼굴을 모른다.
“너, 나 알아?”
눈밑 흉터 사내는 대답 대신 칼을 휙 던지고는 바로 돌아서서 미련없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해수는 팔뚝으로 그 칼을 쳐내고는 재빨리 그의 뒤를 쫓았다.
“어딜 튀어 이 새끼야!”
퍼억!
골목길에서 오갱이 튀어나와 그에게 몸통박치기를 먹였다. 그는 트리플악셀을 하듯이 옆으로 한 바퀴 돌아 몸통박치기를 흘리고는 그대로 앞으로 다시 달렸다.
졸지에 목표를 잃은 오갱은 그대로 넘어졌고, 그의 엄청난 반사신경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멈춰!”
이번에는 신입이 튀어나와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는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신입은 그의 의지를 읽고 마주 달려가며 진압봉을 휘둘렀다.
타닥 탁-
사내는 신입의 진압봉이 다 휘둘러지기 전에 옆에 벽을 밟고 뛰어올라 두 번째로 헛손질을 한 신입의 어깨를 밟고 가뿐히 날아올랐다.
졸지에 도움닫기로 사용된 신입은 앞으로 고꾸라진 채 자신의 어깨를 움켜쥐고 멍하니 있었다.
골목길을 지나 시장으로 들어섰을 때 마지막으로 근육몬 우강철이 튀어나왔다.
“우아아악!!”
그는 옆에 쌓여있는 빈 나무 상자를 다 쓰러트리면서 사내를 덮쳤다.
그 면적이 워낙 넓어 사내는 그것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발로 차서 깨부쉈다.
콰직!
그 사이 우강철이 사내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고, 사내는 마주 손을 뻗어 우강철의 손가락 두 개를 잡아 꺾으며 오금을 발로 차 한쪽 무릎을 꿇렸다.
“커헉!”
그러고는 등을 차 넘어트리며 그 추진력으로 다시 달렸다. 아니, 달리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턱
누군가의 두터운 손이 그의 뒷덜미를 잡았다. 우악스러운 악력이 느껴진다. 확인도 하지 않고 재킷을 벗으려는 순간, 몸이 뒤로 빨려들어가는 듯이 붕 떠올랐다.
동시에 커다란 손이 얼굴을 덮는다.
콰장창!!
나무 상자들에 그의 얼굴이 쳐박혔다.
“끄으···”
흉터 사내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해수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그의 팔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풀었다.
그의 반응을 보고 해수는 손을 떼고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 회사원이구나.”
해수가 사내를 일으키고,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울 때 그가 입을 열었다.
“신해수님.”
흉터 사내는 형사들이 보는 앞에서 돌연 무릎을 꿇었다.
해수는 그의 돌발행동에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지금까지 본 회사원 중에 처음 보는 타입이다.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이름을 말하여 회사원임을 인정하는 모습도, 세상 잘났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무릎을 꿇는 것도.
“살려주십시오.”
목소리에서,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처음 접하는 생존형 회사원.
해수는 속으로 놀랐지만 마음을 감추며 쪼그려앉아 그와 눈높이를 마주했다.
“네가 할 수 있는 게 뭔데.”
회사원은 해수의 눈동자를 차분하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
한가의 별장.
한문은 달빛이 환한 창문 밖을 바라보며 와인을 한 잔 하다가 미간을 좁히며 돌아섰다.
“서프로는 아직인가?”
“예, 연락해보겠습니다.”
“아냐, 됐어.”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마침 한문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문은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양반은 못 되네, 어, 서프로, 끝났어?”
-아뇨,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네, 본가에 계십니까?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문은 미간을 좁힌 채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대답했다.
“어, 본가지, 알았다.”
-금방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한문은 전화를 끊고 비서실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새끼 이상한데? 이렇게 말 많은 놈이 아닌데, 먼저 날 찾아오는 놈도 아니고···”
“서프로 어디 있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한문은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 눈치 빠른 놈이야, 양실장, 금고 따.”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