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237화 (237/255)

< #237. 약 배달의 진화 >

우드득

신해수가 올백머리의 목을 움켜쥐고 천천히 들어올렸다. 사내의 발 끝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그 엄청난 광경에도 그곳에 있는 여자들은 작은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 이미 눈이 풀려있는 상태다.

“크,크,켁, 이,이거 놓지···”

다른 사내가 마이크를 들어 해수에게 휘둘렀다.

팡! 삐이이이-

그러나 마이크는 목적을 잃고 저 뒤로 날아가 벽에 쳐박혔다. 마이크가 있던 자리에는 하루의 발 끝이 뻗어 있었다.

하루는 해수와 눈이 마주치자 작게 입을 열었다.

“사람은 안 건드렸습니다.”

“좋군.”

해수는 목을 부러트릴 듯이 잡고 있는 올백머리 사내를 테이블에 내던지며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했다.

*

한편.

그들의 경호원 역할을 자처하는 호구 친구들이 있다. 모두 보통의 몸 이상으로 운동을 했던 친구들이다.

“어,어 알겠어··· 에이 씨팔! 야 나가자!”

그들은 옆방에서 놀다가 올백머리의 전화를 받고 바로 튀어나갔다.

그러나.

“이것들은 뭐야?”

그들 못지 않은, 아니 그들보다 훨씬 더 크고 우람한 근육을 지닌 자들이 문을 막고 있었다.

게다가 숫자도 더 많다. 이쪽은 다섯, 저쪽은 아홉이다.

하지만 그들의 대장격인 사내는 물러서지 않았다. 안에는 돈줄이 있다.

“길 터, 좋은 말로 할 때.”

턱짱의 회장 구름이 가운데에 우뚝 서서 다른 회원들과 팔짱을 교차로 끼며 대답했다.

“여긴 아무도 못 들어가고, 못 나간다.”

“하, 얘들아, 밀어!!”

“밀어!!!”

운동 사내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턱짱 회원들을 밀었고, 회원들은 서로 팔짱을 낀 채 굳건히 버텼다.

인생의 절반을 악력과 운동에 힘을 쏟는 턱짱 회원들을 일개 나태한 운동맨들이 이길리 만무하다.

“이런 시팔새끼들이!!”

뚫리기는커녕 흔들리지도 않자, 대장격 사내가 욕을 내뱉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훙-

그러나, 가만히 맞을 것 같던 예상과는 달리,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주먹을 피한 장본인, 회장 구름이 팔짱을 풀고는 손목 관절을 돌렸다.

“이것들이··· 쌈짱 접고 착하게 살려는데 계속 자극을 하네···”

그 모습에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임원들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전국구 짱님의 봉인이 풀린다!”

“오옷!! 드,드디어 알을 깨고 나오시는 건가!”

그때, 뒤에서 피가 묻은 묵직한 손이 구름의 어깨에 툭 올라오더니, 가공할 힘으로 짓눌렀다.

“어윽”

구름은 속수무책으로 자세를 낮추며 옆으로 비켜섰고, 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봉인 풀지 말고, 비켜.”

구름은 금세 쭈그리며 물러났고, 다른 임원들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해수의 오른손에는 올백머리가 들려 있었다. 그는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있었다.

해수는 그 상태로 턱짱 회원들과 맞서고 있는 운동맨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니네도 같이 가야지, 맞고 갈래, 그냥 갈래?”

눈치 하나로 살아온 운동맨 대장이다. 그는 이미 게임이 끝났음을 깨닫고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길을 텄다.

*

중추신경억제제 GHB, 일명 물뽕.

미량을 술에 타면 금세 만취한 것처럼 기분이 좋고 몽롱해진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소량만으로도 극도의 흥분 상태가 되어 손만 살짝 스쳐도 전기가 통한듯이 찌릿거리며 힘이 풀린다.

단기 기억이 사라지는 블랙아웃은 덤이다.

다량 투입될 경우에는 사망할 수도 있다.

자신이 즐기기 위한 마약보다는, 남을 정신을 잃게 만들기 위해 많이 쓰여서 ‘레이디 킬러’라는 이명까지 있다.

바로 이 자들이 소지하고 여자들에게 타서 먹인 것이 물뽕이다.

이들은 중소기업 사장 아들, 대기업 임원 아들 등등 꽤 재력이 빵빵한 자들이었다.

“···그냥 사먹는 건 재미 없잖아요. 일반인이 좋지.”

“그래, 그렇게 마인드가 쓰레기니까 쓰레기짓을 했겠지.”

“어허, 형사 아저씨 말 조심해요. 우리 아빠 오면 혼나.”

그때, 조사를 받는 사내의 어깨 위로 두터운 손이 올라왔다. 손의 주인공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니네 아빠 오기 전까지만 나한테 혼나볼까?”

딸꾹

해수와 얼굴을 가까이서 마주친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을 했다.

그제야 다시 정신을 차렸다. 여긴 지금까지 놀이터처럼 드나들던 경찰서와는 다르다는 것을.

죽기 직전까지 민간인을 팬 형사가 버젓이 돌아다니며 협박을 한다는 것을.

오갱과 신입은 보급책 조사를 위해 올백머리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갔다.

해수도 어느정도 조사가 끝나가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나갔다 옵니다. 막내야.”

“옙 선배님!!”

오랜만에 막내라 불린 우강철은 더욱 크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여기저기서 전화를 정신없이 받던 곽반장이 소리쳤다.

“어디가는데?!”

“클럽 갑니다.”

*

클럽이든 나이트든 약 사건이 터지면, 열에 아홉은 해당 지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유통책이다.

“아이쿠 신형사님! 금방 다시 오셨네요?!”

다시 클럽으로 찾아가자 부점장이 마중나와서 해수를 반겼다.

찔리는 게 있든 없든, 일단 자신의 가게에서 일이 터졌으니 최대한 저자세로 나오는 것이다.

해수는 부점장이 안내하는 사무실에 가서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여기 점장이 누구지? 영식이냐?”

“아 예, 맞습니다. 그런데 점장님이 하필 이번에 필리핀으로 휴가를 가셔서··· 전화 드려서 빨리 내려오라고 하겠습니다.”

“필리핀으로 휴가를? 뭐하러, 약 사러?”

부점장이 다급히 손사레를 쳤다.

“어 어우 아니요. 그럴리가요. 그냥 푹~ 쉬시러···”

해수가 아무 말 없이 바라보자 그가 쭈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카지노 하러, 요즘 도박에 빠지셔서··· 저도 미치겠습니다.”

“곧 점장 올라가겠네.”

“에이 아닙니다.”

해수는 그가 내민 여러 종류의 음료 중에 실론티라는 캔 음료를 들어 한 잔 들이켰다.

“물뽕 누가 돌렸어.”

해수의 물음에 올 게 왔다는 듯이 부점장이 자세를 고쳐잡고, 비장한 눈빛으로 해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제가 제 이름을 걸고 맹세코, 저희 가게는 아닙니다.”

“니 이름따위 건다고 내가 믿어?”

“아 형사님··· 이게 예전에 5년 전만 해도 걸리면 무조건 가게였는데, 이제는 절대 안 합니다. 약이랑 엮여서 가게 닫거나 영업정지 당하면 훨씬 손해거든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안 할 거에요. 그런데 지금처럼 알아서 구해오면 그걸 막을 방법이 없어서 우리도 억울합니다. 정말···”

해수는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약반에게 자문을 좀 구하고 올 걸 그랬다.

부점장이 눈물까지 억지로 짜내려고 한다. 그 흉측한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실론티를 내려놓았다.

“이런 말 들으려고 온 건 아니고.”

“아··· 지나가다 들은 말이 있는데, 요즘 강진시 약 바닥을 한가라는 곳에서 장악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해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듣는 말이다.

“한가?”

“거기 사장 이름이 한씨인지, 아니면 그냥 조직명만 한가인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그 바닥 주름잡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어깨들 사이로.”

“너는 어깨 아닌 것처럼 말한다.”

“에이, 형사님 왜 그러십니까? 저 손 뗐습니다. 사업가입니다 사업가.”

뻔뻔한 그의 태도에 해수가 커다란 주먹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래, 사업만 해라, 딴 거 하면 나한테 죽어.”

“···넵.”

“그래서, 한가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

[텔레토램]

마약거래에 가장 자주 이용되는 SNS다.

방이 폭파되면 포렌식으로도 내용을 복구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그곳에 대화방 카테고리로 들어가니 수많은 방이 나열되었다.

[먹거리 팝니다]

[좋은 거 사실 분]

[재밌는 거 즐기실 분]

[정직신용행복]

[아이스크림 팝니다.]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의심될만 한 제목들을 보니, 부점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목이 이상하다? 이건 둘 중에 하나입니다. 여자 아니면 약.’

해수는 그 중에 [먹거리 팝니다] 라는 제목의 방에 들어가서 말을 걸었다.

-뇌물해수: 물뽕 구합니다.

-iliiliilii: 몇 개

-뇌물해수: 만나서 거래 되나요?

[방장이 방을 나갔습니다. 10초 후에 방이 폭파됩니다.]

‘조금만 의심스럽다 싶으면 바로 나가서 방 터트리는 거에요. 최대한 의심스럽지 않게 다가가야 해요. 걔네가 아쉽게 돈 많이 쓰면 좋고’

-뇌물해수: 물뽕 구합니다.

-lliliiliilii: 몇 개

-뇌물해수: 한 개에 얼마?

한 개면 종류에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5그람을 말한다. 3~4회 분이다.

-lliliiliilii: 10

물뽕은 여타 코카인이나 필로폰같은 마약과는 달리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뇌물해수: 백 개, 괜찮으면 더 사고.

-lliliiliilii: 잠시만요 고객님.

‘돈은 계좌로 받고, 뭐 대포통장이겠죠, 물건 받을 때는 던지기, 요즘은 산타는 안 쓰는 것 같아요.’

-lliliiliilii: 지역이 어디시죠?

-lliliiliilii: 코스모스 아파트 오셨나요?

-lliliiliilii: 코스모스 아파트 103동1301호 우편함에서 찾아가세요.

해당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전혀 무관한 사람이었다.

시시티비로 확인해보니 배달을 한 사람도 평범한 퀵서비스였다.

‘던지기도 전문이 아니라 뭣도 모르는 퀵이나 심부름꾼을 이용해요. 중딩 고딩들이 용돈 벌려고 약 배달하는 격이죠, 그러다 걸리면 뒤집어씌우고.’

해수는 그 대목에서 억울한 배달부 박선후가 떠올랐다. 그를 작업한 놈들 윗선도 혹시 한가 아닐까 싶은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경찰들은 허탕 치는 걸로 끝내지 않고, 실적 채우려고 그런 놈들도 그냥 모르는 죄로 잡아넣죠, 그놈들도 경찰도 나쁜 새끼들이에요 아주, 그, 음, 혀,형사님 빼고, 아무튼 이게 제가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구체적인 수사 방향은 나왔다. 발로 뛰는 일만 남았다.

심부름꾼, 퀵 등 던지기를 하는 사람을 하나하나 잡아서 어디서 물건을 받았는 지 묻는 수밖에 없다.

해수가 수사방향을 제시하자 곽반장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음··· 수사비가 많이는 안 나올 텐데···”

“제가 충당하겠습니다.”

“엉?”

곽반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해수가 말을 이었다.

“나중에 잡아서 회수하면 되죠.”

“그러다 못 잡으면···”

“잡습니다.”

해수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굳건했다. 곽반장이 마주 주먹을 쥐어보였다.

“···그래, 좋아! 무조건 잡아야지!”

그 뒤로, 해수는 물뽕을 닥치는대로 사들였다.

배달하는 장소는 다양했고 은밀했다.

공중화장실 변기칸, 지하철 물건보관함, 아파트 우편함 등등.

배달하는 이들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텔레토램에서 정확한 장소를 알려주지 않고, 심부름꾼이 심부름을 끝내면 그 후에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처 장소만 알려주었을 때 비슷한 시간에 그곳으로 오는 배달 오토바이를 모두 미행해서 잡는 수고를 들였다.

“이거 누구한테 받았어요?”

“아, 가면 있던데···”

심부름꾼이 물건을 가져오는 방식도 동일했다.

“이렇게 배달하면 이상한 물건일 가능성이 큰데, 모르고 했나요?”

“진짜 몰랐는데요.”

“진짜 몰랐어요?”

해수의 안광은 진실을 토해내게 한다.

배달부는 눈동자를 떨다가 시선을 피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돈이 되니까··· 보통 퀵의 1.5배에서 2배거든요. 진상고객도 없고”

배달부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심부름 전용 어플을 받아 약 배달로 의심되는 일들을 찾았다.

심부름을 하려면 어플에서 가입하고 휴대폰 본인인증과 계좌인증까지 마쳐야 했다.

심부름꾼을 이용하면 물건을 가지고 먹고 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배달부들을 통해 약 배달 물건을 가지러 갈 때 자주 놓는 곳은 매우 다양했다.

그곳에 물건을 놓는 자들도 한 다리 건넌 심부름꾼? 그렇지 않을 것이다. 결국 약팔이도 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 다리를 많이 걸칠수록 불필요한 지출이 많이 나오고, 돈에 미친 그들은 손해를 극도로 싫어한다.

유통책의 식구들이 배달장소에 물건 갖다놓을 것이다.

해수는 아지트로 가서 쪽새를 찾았다.

“너 심부름 좀 해라.”

“···네?”

쪽새는 바로 심부름 어플에 가입하여 약배달로 추정되는 것들을 지켜보다가 일시적으로 받았다.

마지막 물건을 챙긴 쪽새가 해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형사님, 다 받긴 했는데, 이거 어떻게 해요?”

-뭘 어떡해, 다 가져와.

“아하.”

잠시 후, 쪽새에게 발신번호표시제한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예, 그쪽, 죽고 싶으신가봐요? 물건 어디로 빼돌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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