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 진압 시작 >
그 뒤로 은밀히 접근하던 동규의 부하들은, 동규가 달라붙다가 해수의 격렬한 춤사위에 나가 떨어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혀, 형님!”
“수거, 수거해!”
몇 미터 뒤에서 대기하던 그들은 다급히 쓰러진 동규의 다리를 붙잡아 끌었다.
그렇게 구석으로 데려가서 동규의 따귀를 때리며 깨우려 했다.
“형님, 형님! 정신 차리십시오!”
“동규 형님! 이대로 저희 두고 가시면 어떡합니까?!”
동규는 쉽게 깨어나지 않았다. 그의 두 콧구멍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한 부하가 그것을 보고는 미간을 좁히며 비참한 결정을 내렸다.
“일단···후퇴한다.”
* * *
동규 패거리가 클럽을 벗어나는 그 시각, 하루는 자신에게 달라붙은 여자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었다.
“···아잉, 그러지 말고 나랑 한 번만 사진 좀 찍어요. 쁘이.”
여자는 벌써 술을 많이 마셨는지 발음도 꼬였다.
하루는 검지를 들어 스테이지 위에 반짝이는 볼을 가리켰다.
“저기, 외계인이다!”
“엉?”
여자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하루가 재빨리 1층으로 도망쳤다.
본래 사람들이 붐벼서 1층은 감시하기가 적당한 위치가 아니다. 게다가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키가 커서 시야확보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2층은 저 비틀거리는 여자가 자신을 찾고 있기 때문에 갈 수 없다.
하루는 하는 수 없이 1층에서 해수를 감시하기로 했다.
‘아까 스테이지에서 춤 추고 있었으니까···.’
하루는 삐걱대는 몸짓으로 자연스럽게 스테이지로 들어갔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찡그려졌다.
‘해수님이 위협적으로 팔다리를 흔드신 이유를 알겠다. 왜 이렇게 미는 것이냐···.’
하루 근처에는 어느새 여자들 세 명이 바짝 달라붙어 엉덩이를 들이밀고 있었다.
다른 남자들에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하루는 이것이 클럽의 일상이라고 생각하며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중이었다.
“대체 어딜 가신 거지?”
엉덩이에 이리저리 밀리며 스테이지를 돌아다녔지만, 해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물론 턱짱 회원들도 보이지 않는다.
하루는 간신히 스테이지에서 빠져나와 부스를 살폈다.
“화장실 갔나?”
하루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까 확인해보니 화장실을 가는 길목이 좁았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지나치다가 몸이 스칠 수 있다.
‘여우같은 여자들이 해수님의 흉근에 반해서 꼬리를 칠 수 있다···!’
하루는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바로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길목에는 해수가 아닌 문신을 잔뜩 한 다른 남녀가 진하게 키스를 갈기고 있었다.
하루는 사이사이를 지나 남자화장실 앞에 섰다. 그리고 비장하게 다짐했다.
‘나는 지금 남자다. 남자다. 남자니까 남자화장실 간다.’
그녀가 힘차게 남자화장실 문을 열고 한 발자국 내딛었다.
그런데, 안이 좀 시끄럽다.
“와씨 이게 웬 떡이냐.”
“그러니까, 얼굴 봐, 존예인데?”
“안 그래도 오늘 딱 허탕느낌이었는데, 선물이 떡 하니 여기 있네.”
“숨은 쉬나?”
대화가 무언가 이상하다. 하루는 가로막은 벽을 지나쳐 화장실 안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대변칸이 활짝 열려있고, 그곳에 낯익은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아까 하루에게 작업을 걸던 그 여자다. 치마까지 절반이 훌러덩 올라간 채 정신이 나갔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여자를 남자 네 명이 포위하듯이 두르고 음흉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머리를 길게 길러서 뒤로 묶은 장발의 남자가 거친 손길로 그녀의 다리를 쓸었다.
저벅 저벅
하루의 발소리에 그가 행동을 멈추고 슬쩍 뒤돌아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가녀린 몸을 보고는 얕잡아본 것이다.
“뭘 봐? 안 꺼져?”
하루는 그의 말을 무시하며 여자를 살펴보았다. 입에 살짝 거품이 묻어있다.
20분쯤 전까지만 해도 그저 취한 여자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녀의 상태를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한 걸음 다가오자, 다른 사내가 그녀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새끼가··· 아악!”
하루는 그의 손이 어깨에 닿기 전에 손가락 두 개를 낚아채어 확 꺾었다. 그 옆에 사내가 마주 덤벼든다.
그 사내가 앞으로 내딛는 발이 바닥에 닿기 전, 하루의 발이 그의 종아리를 툭 쳤다.
사내는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고, 하루는 팔을 꺾은 사내를 그에게 밀쳤다.
쿠당탕탕!
두 사내가 볼썽사납게 뒤엉켜 넘어졌다.
꽁지머리 사내가 인상을 팍 쓰며 일어나자마자 하루가 그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아!”
그가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는 순간, 하루의 무릎이 그의 관자놀이를 찍었다.
퍽! 쿠웅!
꽁지머리 사내는 그대로 마취총을 맞은 것처럼 옆으로 픽 쓰러졌다.
“······!”
“저년 뭐야!”
순식간에 세 명이 당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싸운 것도 아니고, 무슨 애들 다루듯이 툭툭 탁 하니까 픽픽 쓰러졌다.
쓰러진 사내들은 실력의 격차를 느끼며 반격은 생각지도 못했다. 마지막 남은 멸치남은 아예 처음부터 뒤에 서서 덤비지도 않았다.
하루는 그들이 틈을 노려 공격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듯이, 보지도 않고 쪼그려앉아 여자의 상태를 살폈다.
뺨 한 쪽이 상당히 빨갛다. 손바닥 자국이 있고 귀에서 끈적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검지와 엄지로 눈꺼풀을 들어올려 휴대폰 라이트로 동공반사를 살피고는 중얼거렸다.
“약 먹였네.”
“우, 우리가 안 먹였어! 화장실 왔는데 이 여자가 여기 뻗어 있었다고”
자기 친구와 같이 엎어져 있던 사내가 다급히 변명했다.
하루는 담담하게 휴대폰을 들어 119에 신고를 하고, 일어나 뒤돌아서 변명을 했던 사내의 따귀를 갈겼다.
짜악!
사내는 한 대 맞고도 반격은커녕 잘못한 표정으로 뺨을 손으로 짚고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니 친구?”
“죄, 죄송합니다.”
그때, 옆에 조용히 있던 멸치남이 한 손을 조심스레 올렸다. 하루가 쳐다보고 턱짓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그, 그 여자가 방에서 나오는 건 봤어요···.”
그 말은, 화장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 아니라, 비틀비틀거리니 따라 들어왔다는 뜻이다.
하루의 눈이 반짝였다.
“어디.”
“어딘지는 잘··· 10번대 방이었는데.”
그때 마침 119가 도착했고, 하루는 여자를 구급대원들에게 넘겼다.
약물이 의심되지만 아직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 해수가 여기 있으니, 그의 실적으로 만들어주고 싶다는 사명이 생겼다.
“앞장 서.”
“네?”
하루가 손을 천천히 들자, 멸치남이 두 손으로 다급히 가드하며 대답했다.
“아, 알겠어요!”
멸치남이 하루와 함께 걸어가다가 힐끔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남자 아니시죠?”
멸치남은 나름대로 추리를 했다. 일단 아무리 낮게 말을 해도 감출 수 없는 예쁜 목소리에 첫 번째 의심이 들었고, 얼핏 보이는 하관은 턱선부터 입술, 가녀리고 오뚝한 콧대, 새하얀 피부까지 여자가 확실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목젖만 보였어도 확실한데, 꼼꼼히 가려놔서 볼 수가 없었다.
하루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등을 밀었다.
그가 얼마 가지 않아 멈추었다.
“여기인 것 같습니다.”
“확실해?”
그가 작은 창문으로 살짝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도 그 창문에 얼굴을 들이밀고 안을 확인했다. 담배연기 가득하다. 부티나 보이는 사내들 세 명과 여자 두 명이 있는데, 여자들은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스윽
하루는 복도에 서서 그 자리에서 바로 모자를 벗고, 머리끈을 풀고는 머리를 털었다.
샤라랑-
멸치남은 눈 앞에서 여신이 강림하는 모습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허업!”
하루는 그가 보든말든 상관없이 재킷을 벗어 그에게 던지고, 상의를 가슴까지 확 올려 배에 두른 복대를 풀어서 던졌다.
멸치남은 황송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받으면서 침까지 흘렸다.
하루는 재킷만 다시 그에게서 낚아채어 입고는 말했다.
“그건 너 가져.”
“가, 감사합니다!”
하루가 드디어 문고리를 돌렸다.
해수에게 떠먹여주려면 일단 이들이 마약류를 소지하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여기서 저들이 자연스럽게 약을 푸는 것까지 확인해야만 한다.
‘나는 연기의 신이다. 나는 연기의 신이다.’
끼익
“뭐야 시팔, 어?”
“오, 오···?”
즐거운 시간을 방해받은 사내들은 인상을 확 찌푸리며 욕을 내뱉다가, 하루의 미모를 보고는 금세 태도가 돌변했다.
하루는 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잘.못.찾.아.왔.네, 죄.송.합.니.다.”
하루가 꾸벅 허리를 숙이고는 뒤돌아섰다.
“뭐지, 저 로봇같은 말투는?”
“얼굴 봐, 매력 쩌는데?”
다시 가는 척하려고 문고리를 잡고 가만히 있자, 한 사내가 다급히 달려와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채었다.
“에이 어딜 가,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어도 나갈 땐 마음대로 못 나가지, 한 잔 하고 가.”
올백머리에 얼굴에는 개기름같은 것이 번들번들거리는 사내였다. 깔끔해보이지만 눈빛에 광기와 음욕이 가득하다.
“그.럴.까?”
하루가 자리에 앉아 살펴본 결과, 남자들은 그냥 술에 취한 느낌이다. 약은 하지 않았다.
“꺄응, 까항···.”
여자들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남자들이 마음껏 주무르는대로 휘둘리고만 있다.
오히려 남자들의 손길이 닿으면 몸을 부르르 떨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여자들에게만 약을 탄 것이다.
하루가 남자들이 마시는 술잔을 그대로 가져가 마시자, 옆에서 계속 치근덕대는 올백머리 사내가 돌연 술을 권했다.
“이쁜아, 이거 한 잔 쭉 들이켜봐, 기분이 좋아질 거야.”
하루는 곁눈질로 보았다. 그의 친구가 안주머니에서 긴 병을 꺼내어 그곳에 정체불명의 액을 떨어트리는 것을.
하루는 잔을 받고는 그것을 든 채로 벌떡 일어섰다.
“나. 화.장.실.”
그러자 올백머리가 달려와서 다시 하루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허, 어딜 가, 여기 있잖아 화장실.”
고급 룸이기에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하루는 손목을 비틀어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아무래도 약간의 실력행사를 하고 나가서 해수를 불러야겠다라고 생각할 때.
끼익-
문이 활짝 열렸다.
“어엇! 누나 여기 있었네? 여기서 뭐했어! 애들 다 기다리는데, 빨리 와, 빨리!”
멸치남이다. 계속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넌 뭐···?”
올백머리가 어벙벙한 표정을 짓는 사이, 멸치남이 하루의 손목을 붙잡고 후딱 데리고 나왔다.
복도를 따라 열 걸음 쯤 가다가, 하루는 손목을 돌리면서 역으로 그의 손목을 잡아 확 꺾었다.
“아악!”
멸치남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하루가 고압적인 자세로 물었다.
“뭐하냐.”
“그, 그게, 곤경에 처하신 것 같아서···!”
하루는 그의 손을 풀어주고는, 엉덩이를 발로 찼다.
“가라.”
억울한 얼굴의 멸치남은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쭈뼛쭈뼛 하루를 돌아보며 걸음을 옮겼다.
하루는 바로 해수에게 전화하려다가 멈추었다. 저 구석에서 가드들에게 둘러싸여 뭐라 말을 듣고 있는 해수와 턱짱 회원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다들 시무룩한 표정이다.
하루가 다가가자 가드들은 물론 턱짱 회원들도 놀란 토끼 눈을 했다.
해수가 물었다.
“네가 여기 왜 있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 잔에 약이 타져 있습니다.”
하루가 귓속말로 빠르게 해수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럼 토끼기 전에 잡아야겠네.”
“네.”
해수는 턱짱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니네 따라와, 할 일이 있다.”
“예! 형사님!”
움찔한 가드들은 떠나는 해수 일행을 잡지는 못하고 멀리서 외쳤다.
“그, 스테이지에서 춤 추시면 안 돼요! 민원 또 들어와요!”
“스테이지 안 갑니다.”
해수는 굳은 얼굴로 대답하며 하루의 뒤를 따랐다.
“여깁니다.”
창문 안을 보니 아직 그들이 그대로 있다. 뭘 어떻게 했는지 여자가 두 명이 늘었다.
해수가 턱짱 회원들에게 말했다.
“니네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문만 막아. 누구도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알았어?”
“알겠습니다!”
해수는 하루와 눈이 마주치자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넌 나서지 마, 네가 나서면 폭력이고 내가 나서면 진압이야.”
“옙.”
하루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문고리를 돌렸다.
“뭐야?”
“넌 아까 그··· 뭐 남친 데려왔어? 뭐하려고, 우리가 뭐했다고?”
하루는 가지고 있던 잔을 들어 흔들며 대답했다.
“약을 줬지.”
그들의 표정이 삽시간이 굳는다. 그러나 올백머리가 다시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이죽거렸다.
“지랄하네.”
그가 하루를 노려보며 휴대폰을 꺼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야, 애새끼들 다 방으로 오라고 해, 처리할 년놈 있다고.”
해수가 피식 냉소를 흘리며 그들 앞에 서서 통보했다.
“지금부터 소지하고 있는 약은 전부 테이블 위에 꺼내놓는다. 실시.”
“이거 미친 새끼 아니야? 근육 좀 키웠다고 뵈는 게 없어?!”
올백머리가 술병으로 해수의 머리를 내리쳤고, 해수는 그대로 맞아주었다. 오히려 앞으로 들이댔기에 하루도 그 미묘한 차이를 확인하고 미리 막지 않은 것이다.
파장창!
술병이 깨지고 해수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옆에서 전해지는 하루의 살기가 따갑다.
해수는 한 손으로 피를 닦으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진압 시작.”
묵직한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해수의 손이 올백머리 사내의 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