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235화 (235/255)

< #235. 해수의 클럽 댄스 >

한가.

본명 한 문.

지하세계에서 검은 돈을 굴리는 사채업자로, 강진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부다.

그가 손을 털어 곤죽이 된 사과를 버리고, 옆에 있는 사내가 가져다 준 티슈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손해를 끼쳤으면 몇 배로 받아야 한다고?”

“열 배입니다.”

한문은 그의 대답에 흡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손해가 커, 그 경찰놈에게 열 배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그 경찰이, 개인 자산이 꽤, 아니 매우 많습니다.”

“···매우?”

한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오른팔, 이 사내는 매우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옆에서 돈을 굴리는 금액 최소단위가 공이 일곱 개이니.

한문은 그가 내민 테블릿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구미가 당긴다.

“음··· 이러면 이야기가 쉽지, 천천히 작업 들어가 봐.”

“예, 사장님.”

“아, 그 전에, 신고식은 치러야지? 동규 애들 연락해.”

“예, 알겠습니다.”

*  *  *

퇴근 후 금요일.

신해수는 턱짱 동호회 회원들과 만남을 가졌다.

“신형사님 오셨습니까!”

“아이고 회원님, 오랜만입니다.”

“회장님은 어째 승모근이 더 커진 거 같아.”

“아 그러게요. 자세가 아직 부족한 거죠.”

그들은 동네 놀이터에서 모여서는 만나자마자 간단하게 안부인사만 하고 턱걸이를 조졌다.

오늘 모인 인원은 해수 포함 열 명, 평소보다 회원들이 더 많이 모였다.

턱짱 창립 4주년 기념으로 회식을 하는 날이기에, 다른 동에 사는 회원들도 왔기 때문이다.

2시간에 걸쳐 간단한 운동이 끝난 후, 회원들은 땀 범벅이 된 상태로 윗옷은 어깨에 걸치고 회식 장소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몸이 우락부락한 사내 열 명이 그것도 모두 운동복을 입고 길거리를 거닐자, 마주 오던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뭐야··· 깡패들인가?”

“오 씨, 무서워···.”

한 중년 여인이 구석에서 그들을 지켜보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네, 경찰서죠? 여기 깡패들이 싸움 날 거 같아요. 방금 고기집에 들어갔는데, 아니 딱 봐도 깡패라니까?”

딸랑-

해수와 턱짱 회원들이 동네 고기맛집에 들어서자, 시끌벅적했던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뭐야, 도서관인 줄. 여기 원래 조용히 하는 덴가?”

“도서관 가본 적도 없으면서.”

회원들도 덩달아 작게 소리를 내며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손님들은 그들을 힐끔거리며 수군거렸다.

“뭐야, 오늘 여기서 조폭들 모임 하나?”

“와씨··· 나 현실조폭 처음 봐, 존나 쫄리게 생겼다.”

“개무섭네··· 오빠, 어디가?”

하나같이 근육질에 덩치도 크고, 무서운 인상은 덤에다가 선두에 있는 두목으로 보이는 남자는 몸 여기저기 흉터까지 있다.

옷으로 일부 가려져 있지만 그 사이로 삐죽 나온 흉터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손, 손목, 목, 얼굴.

손님들은 몸을 사리며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고, 혹여나 튀는 행동을 해서 불릴까 봐 가게를 빠져나가지도 못했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요즘 세상 살기 팍팍하다고 해도, 그래도 착한 사람들 많은 것 같습니다.”

“맞아요. 회장님, 항상 양보해주는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죠.”

턱짱 회장 구름이의 말에 다른 회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길 양보를 지속적으로 받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테이블 양보까지 받았다.

해수도 이제까지 살면서 배려나 양보를 많이 받았었기에 동조했다.

“원래 친절한 사람들이 많아, 나도 지하철 탈 때 자리 양보 많이 받는다. 인터넷 속에서나 이상한 사람이 많지.”

메뉴를 주문하고 서로 훈훈한 담화를 나누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있을 때였다.

경찰관 두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가, 회원들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왔다.

“동부서 임시아 경장입니다. 잠시··· 어?”

임경장은 일단 신고가 들어온 이상 신원 조회를 권유하려다가 해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신형사님?”

“어, 임경장, 여긴 웬일로···?”

해수는 그 자리에서 임경장에게 신고 내용을 들었다. 회원들은 몇 명은 억울해하고 대부분은 허허 웃으며 넘겼다.

“이것 참, 별일을 다 겪네.”

“재밌네 재밌어, 크크.”

“와, 누가 신고한 거야? 우리가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라고.”

“우리라고 하지 마요. 회원님, 회원님이 제일 무서워요.”

임경장은 해수에게 자초지종을 듣고는 바로 철수를 결정했다.

“오늘 좋으신 날인데 괜히 기분이 나빠지셨을까 봐 걱정입니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임경장이 회원들에게 깔끔하게 인사를 하고 떠나갔고, 해수와 회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번 일에 대하여 토론을 했다.

사실, 대다수는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저 이런 일 몇 번 있었습니다. 저번 회식 때도···.”

“우리 이럴 게 아니라, 해결책을 내놔야 할 거 같은데.”

“흠···.”

덩치가 산만 한 사내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렇게 생각해낸 게 바로 단체티.

조폭이 아니라 선량한 시민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의견은 만장일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턱걸이 동호회 모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회장 구름은 그 자리에서 바로 휴대폰으로 단체티를 골랐다. 최근 인터넷에서 눈여겨 보았던 깔끔한 디자인이었다.

“회원님들, 이거 어때요. 앞면에 ‘턱짱!’ 뒷면에 ‘턱걸이 동호회’ 이렇게 깔끔하게 궁서체로.”

“오, 역시 회장님, 좋은데요?”

“저도 좋습니다.”

“좋은데.”

해수도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체티 건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그럼 색깔은··· 검은색?”

“오오 노노, 안 되죠, 안 그래도 무섭게 보이지 말라고 사는 건데, 노란색 합시다.”

“좋네! 병아리처럼 귀엽고, 저도 귀여운 거 좋아합니다.”

“허허, 이거 우리 회원님들 다들 귀요미 되겠어?! 삐약삐약.”

“아하하하, 삐약삐약!”

단체티는 근육을 최대한 감추기 위해 오버핏 티셔츠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모두 고기집 앞에서 둥글게 서서 잡담을 나누었다.

운동 동호회답게 담배를 태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음 일정은 클럽이었다. 이왕 회식으로 만난 거, 제대로 유흥까지 즐기기로 한 것이다.

“신형사님, 혹시 클럽 가보셨습니까?”

턱짱 임원 중 까불거리는 사내가 묻자, 회장 구름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대신 대답했다.

“신형사님 당연히 가셨지, 기럭지 좋으시고, 어, 광배근도 선명하시고, 얼굴도 막, 어, 강하시고···.”

마지막 말에 괜히 찔려 해수의 눈치를 살핀다. 해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갔었다. 수사할 때.”

해수는 돌연 옛 기억이 떠올랐다. 근육몬 우강철과 함께 위장수사하러 들어가서 뻔질나게 돈을 쓰던 그 달콤한 기억을.

“에이, 뭐야, 그러면 수사할 때 말고는 한 번도 안 가신 겁니까?”

구름이 다시 대신 대답했다.

그의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

“신형사님은 원래 이런 문란한 사생활은 즐기지 않으신다! 우리같은 것들이나 가지! 신형사님은 바른생활 사나이로 새벽 다섯 시에 기상하여···!”

“그만, 그만 하고 이동하자, 응?”

해수는 과한 충성심을 보이는 구름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렸다.

“자, 좋아 좋아! 클럽아 기다려라! 우리 턱짱이 나가신다!!”

“가즈아!”

분위기는 몹시 화기애애했다.

턱짱 회원들 중 절반 이상이 클럽을 경험해보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옆에서 들은 것만으로 미녀들과 부비부비를 할 꿈에 부풀어 한껏 들떠서는 가벼운 걸음으로 클럽으로 향했다.

*  *  *

한편, 해수가 오늘 클럽에 간다는 소식을 미리 들어 알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녀, 하루는 집에서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 못하다가 쪽새를 찾아갔다.

“···남자로 꾸며달라고요?”

“어, 남자.”

클럽은, 하루가 기억하기에 매우매우 피곤한 곳이다. 여자에게 남자들이 수시로 달라붙어 그들을 쳐내는게 일이다.

그래서 하루가 떠올린 묘안은, 남자로 변장하면 별일없이 해수를 감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쪽새가 하루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고개를 미세하게 내저었다.

“흠··· 누님이 성격 빼고는 워낙 여자여자하셔서, 힘들 것 같은데···.”

우드득 우드득

하루가 돌연 손목관절과 목관절을 꺾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 모습에 쪽새가 식은땀을 흘리며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갑자기 몸을 왜 풀··· 하,한 번 해봅시다! 제가 또 위장의 천재 아닙니까!”

잠시 후.

쪽새 앞에서 하루는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오버핏 세미정장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 그리고 배와 가슴의 커다란 간격을 줄이기 위해 복부 보호대를 두 겹이나 감쌌다.

“흠··· 이래도 뭔가 잘생긴 여자같은데··· 뭐, 남자라고 우기면 되죠, 한 번 가봅시다!”

“가자!”

“아자!!”

에라 모르겠다싶은 쪽새의 응원 아래, 하루는 남장을 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며 당당하게 아지트를 나섰다.

*  *  *

한편, 해수와 턱짱 회원들은 입구에서부터 막혔다.

-코드블루, 코드블루, 입구로, 입구로, 인원은 열 명

해수 일행들이 줄을 서고 있는 것을 보고는, 가드들이 무전을 하여 다급히 모였고, 그 중 팀장이 다가와 경계하며 물었다.

“어느 동네에서 오셨습니까?”

“음? 그런 것도 말해야 하나?”

구름이 천진난만하게 답하자 팀장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쪽 세계에서는 동네, 즉 소속을 안 밝히는 것은 명백한 전쟁을 의미하는 것.

팀장이 다급히 뒤로 물러서며 무전을 했다.

곧이어 부점장이 다른 가드들을 잔뜩 이끌고 나왔다.

“니네 어디서··· 엇, 시,신형사님 아니십니까?”

부점장이 해수를 알아보았다. 해수는 한참 전에 다잉나이트에서 팔을 부러트렸던 자임을 깨닫고 손을 들어 반가움을 표했다.

“살아있었네, 살쪘네, 살기 좋은가보다.”

“아,아하하하! 다 형사님 덕분입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해수는 다가가 그에게 은밀하게 말했다.

“놀러, 수사 아니야, 진짜 놀러.”

부점장은 곧바로 뒤돌아서며 외쳤다.

“뭐하냐?! 형님들 얼른 프리패스로 모셔라!”

그들은 마치 S급 여자들처럼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입장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보며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해수 덕분에 큰 오해가 쌓일 뻔한 경찰과의 만남도, 이번 클럽 건도 오히려 잘 풀린 덕분에 턱짱 회원들은 엄지를 추켜올렸다.

“아 진짜 신형사님 최고!”

“신형사님 없으면 우리 어쩔 뻔했냐 진짜.”

클럽에 입장한 해수는 수사 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라서인지, 무언가 기운이 남달랐다.

평정심 유지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해수가 묘한 흥분에 잠겼다.

옆에 턱짱 회원들이 신들린 듯이 춤을 춘다. 해수도 덩달아 어깨가 저절로 으쓱으쓱해지기 시작했다.

“음, 음, 우후”

한편, 자신만만하게 클럽에 남자로 위장하여 들어간 하루는, 2층에서 해수를 맘 편하게 감시하려고 자리를 잡았다.

그때.

또각 또각 또각

“혼자?”

붉은 립스틱을 짙게 바른 여자가 접근했다.

하루가 힐끔 보고는 손을 휘휘 젓자, 그녀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희한한 기분이 나게 하는 진한 향수가 풍긴다.

“호오··· 날 보고 이렇게 튕기는 남자는 처음 보는데? 오빠, 근데 되게 곱게 생겼다. 아이돌같애, 어머, 혹시 진짜 아이돌?”

모자까지 깊게 눌러썼으니 그렇게 오해할 만도 하다.

하루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같은 시각, 클럽에서 해수 일행을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자들이 있다.

한문에게서 명령을 받은 동규와 그의 부하 세 명이다.

그들은 오늘 난감한 상황이었다.

경찰 하나 밟아서 기를 팍 죽여놓는 게 목적인데, 우락부락한 덩치들이 모여다니니 틈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딱 보기에도 만만해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어 하루종일 따라다니며 기회를 엿보았다. 한사장은 성격이 급해서 오늘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클럽에 가서 덩치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동규는 생각했다.

‘클럽에서 어깨 부딪히고 시비가 자연스레 붙어서 밟으면 되겠어···흐흐’

지금 스테이지에서 보기에도 민망한 춤을 추고 있다. 금방 사실을 깨닫고 들어갈 것이다. 그 전에 시비를 걸어야 한다.

“내가 먼저 들어간다.”

동규가 해수에게 어깨 부딪히러 가는 그때, 해수는 처음으로 클럽에서 춤을 추는데 묘한 해방감을 느끼고, 더욱 격렬하게 몸을 흔들었다.

“후! 하! 후! 하!”

춤을 전혀 모르는 해수는 그저 두 손발을 쭉쭉 펴며 마구 흔들었다.

퍽!

그러다가 무언가가 팔뚝에 걸린 느낌이 들어서 뒤돌아섰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해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격렬하게 몸을 흔들었다.

***

한문의 사무실.

“동규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그 건방진 경찰 기 좀 죽여놨나?”

“그게, 시도도 못했답니다.”

“···뭐?”

한문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