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 마약 작업 >
박선후는 갑자기 날아오는 발길질에 뒤로 벌러덩 넘어져 한 바퀴 굴렀다.
“꺄아아악!”
와이프가 비명을 내지르자, 깜짝 놀란 아기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울었다.
문으로 검은 양복을 입은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 세 명이 껄렁거리며 구둣발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중에 턱수염을 산적같이 기르고 금목걸이를 한 사내가 앞으로 다가와 쪼그려 앉았다.
“어이쿠, 아가가 있었네, 아가 안녕?”
아가 얘기에 박선후는 번쩍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주변에 있는 후라이팬을 붙잡고 그들에게 겨누며 말했다.
“다, 당신들 뭡니까?!”
“아이고 무서워라, 그걸로 뭐, 치려고? 쳐봐.”
선후가 쉽사리 덤벼들지 못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일단 뒤지게 패주고 시작하고 싶은데, 니 죄를 니가 모르는 것 같아서 설명해줄게, 23일에 용선동 비너스 호텔에서 퀵 받은 거 있지.”
박선후는 배달뿐만 아니라 퀵배달도 뜨면 받는다. 상대적으로 단가도 비싸고, 가끔 네다섯 배가 넘는 꿀배달도 뜨기 때문이다.
“바, 받은 적 있습니다.”
“그래, 받았으면 배달을 해야지, 니가 꿀꺽하면 어떡하니? 그렇게 탐났어? 아이 씨발, 애새끼 존나 시끄럽네!”
“저는 정확히 배달을 해드렸··· 일단, 일단 나가서 얘기하시죠.”
대답하던 중 턱수염 사내가 선후의 아가를 향해 살기어린 시선을 보냈고, 선후는 다급히 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오빠아···.”
“괜찮아, 괜찮아, 여기 있어.”
턱수염 사내는 나가기 직전에 반쯤 돌아서서 선후 와이프를 보고 말했다.
“아줌마, 신고하면 당신 남편 죽어, 알아서 잘 생각해.”
쿵. 철컥-
선후가 사내들을 데리고 문 밖으로 나갔고, 문이 닫히자마자 턱수염 사내가 선후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따귀를 때렸다.
쩌억 쩌억! 쩌억!
“이 새끼가 어딜 건방지게 나가라 마라야, 야, 이거 끌고 와.”
“예 대리님”
그들은 선후를 아래층 주차장에 자신들이 타고 온 차에 태웠다.
선후는 다급하게 기억을 되짚었다.
23일에 받은 퀵이 문제라고 했다. 호텔 주차장에서 꽃다발 바구니를 받았고, 분명 그것을 약속된 장소에 배달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선후는 입술이 다 터진 채 피를 흘리며 대답했다.
“저, 정말입니다. 정말 배달 제대로 했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다들 그렇게 얘기하지, 언제까지 거짓말 할 수 있나 보자.”
다시 구타가 이어지려 할 때, 턱수염 사내가 부하들을 멈추게 했다.
“그만, 어이, 박선후씨.”
“···예.”
턱수염 사내는 칼을 꺼내어 선후의 볼에 갖다 대고는 위협적으로 말했다.
“네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상관없고, 어쨌든 배달 사고가 났으니까 책임을 져야지, 안 그래?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책임져야하는데요···.”
“3천.”
“···네?”
“니가 잃어버린 게 3천만원 짜리야, 내가 천사같은 마음으로 이자는 안 받을게, 다음주까지 준비해놔.”
“그, 그렇게 큰 돈은···!”
쩌억!
선후는 다시 턱수염 사내에게 따귀를 몇 대 더 맞았다. 턱수염이 선후의 턱을 검지와 엄지로 쥐고는 음흉하게 이죽거렸다.
“마누라 참하게 생겼더만, 니 마누라만 밤새 돌려도 일주일 안에 갚을걸? 어때, 넘길려?”
“절대 안됩니다! 제 와이프 건드리면···”
“건드리면 뭐, 뭐 이 새끼야, 이게 덜 쳐맞았네.”
턱수염이 뒤로 몸을 물렸고, 부하 둘이 선후를 다시 구타하기 시작했다.
“니 와이프는 건드리면 안 되고, 우리 돈은 건드려도 되고? 이거 존나 이기적인 새끼네.”
쿠당탕-
그렇게 흠씬 두들겨 맞은 박선후는 시멘트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턱수염이 구둣발로 그의 머리를 밟으며 말했다.
“일주일이야, 일주일 뒤에 찾아온다.”
“끄···.”
“아, 너 우리 이름 알아? 우리가 어디 사는지 알아?”
선후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니네 집, 니 번호, 니 와이프, 니 애새끼, 다 알아.”
턱수염이 선후의 머리에서 발을 떼었다.
“신고하려면 해, 재밌겠네.”
차 문이 닫히고, 그들이 떠났다. 폭풍같은 30분이었다.
홀로 남은 선후는 마치 악몽을 꾸었던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여기저기 쑤시는 통증과, 입 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쇠맛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 * *
박선후는 일도 전부 포기하고 그날 퀵배달을 한 사람, 받은 사람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퀵배달도 호텔 주차장에서 직접 받았고 현금으로 돈을 주었기에 신상정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cctv 좀 볼 수 없을까요? 누군지 꼭 알아서 그래요.”
“죄송합니다~ 보려면 경찰 데리고 오세요.”
“아···제발···.”
선후는 결국 배달을 시킨 사람도, 받은 사람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오토바이 블랙박스도 확인했지만, 받은 사람이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 후.
검은 양복을 입은 저승사자같은 사내들이 다시 찾아왔다.
박선후가 사는 빌라 앞 주차장.
“돈 준비했어?”
선후는 사람을 찾느라 시간을 빼앗겨서 며칠 못 뛰었지만, 이번에 일한 돈에 열심히 모아둔 돈을 포함하여 1천만 원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턱수염이 히죽 웃으며 확인하다가 돌연 인상이 무섭게 변했다.
“나머지는?”
“제가, 금방···.”
퍽퍽 퍽!
선후의 멀끔한 얼굴은 다시 피멍으로 가득해졌다. 아물던 상처도 다시 터져서 피가 흘러내렸다.
턱수염이 선후의 옆에 쭈그려 앉아 중얼거렸다.
“내가 진짜 천사라서 문제야, 내가, 애새끼도 있고 불쌍해서 내가 구제해주는 거야, 너는 진짜···.”
턱수염의 말에 선후가 마음속으로 희망을 갖는 그때, 그가 말을 이었다.
“배달 뛰어, 우리가 지정해준 장소에, 지정한 물건 갖다 놓는 거야, 한 건에 50씩 까줄게, 어때? 진짜 천사 아니냐?”
선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딱 봐도 수상한 것을 배달하는 것이다. 불법이다. 범법이다. 선후가 뜸을 들이자 그가 일어나 빌라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면 뭐 니 와이프가 나가요걸 하는 거지.”
선후는 다급히 그의 뒤를 따라가 팔을 붙잡았다.
그가 멈춘 채로 선후가 잡은 팔을 내려다보았고, 선후는 겁을 먹고 그 손을 놓으며 말했다.
“하,하겠습니다.”
* * *
박선후가 배달하는 장소는 특이했다.
공중화장실 마지막칸 수조 안, 아파트 계단 손잡이 통 안, 공원 쓰레기통.
하나같이 이해가 되지 않는 수상한 곳이었다.
턱수염 사내가 그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그 옆에는 다부진 체형에 산적같은 인상의 중년인이 있었다.
“쟤야? 이번에 넘길 놈이?”
“네, 증거야 널리고 널리지 않았습니까?”
“딱 보니까 호구 하나 잡았네, 쓰레기같은 새끼들.”
“아이, 우리도 살아야죠. 그래야 형님한테 감사인사도 드리고, 그러죠.”
짜악-
산적 중년인은 무표정으로 턱수염 사내의 따귀를 때렸다. 턱수염 사내가 확 인상을 찌푸렸다가 이내 표정을 풀었다.
“형님이라고 부르지 마 이 새끼야, 어딜 양아치 새끼가···.”
“죄송합니다.”
“알았어, 꺼져.”
* * *
선후는 그렇게 턱수염 사내가 시키는 배달 다섯 개를 마치고, 나머지는 일반 배달을 열심히 돌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헬멧을 벗는 그때, 낯선 사내 두 명이 다가왔다.
산적같은 인상의 중년인이다.
“박선후씨?”
“예? 누구세요?”
산적은 경찰공무원증을 그에게 보이며 말했다.
“당신을 마약유통 혐의로 체포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명할 기회가 있습니다.”
“네? 아, 아니, 잠깐만요.”
선후는 당황스러웠지만 찔리는 것이 있었기에 강하게 반항하지 못했다.
결국 선후가 형사 차에 타는 그때, 그 모습을 발견한 한 사람이 있었다.
“뭐야, 지안이 짝사랑남?”
동네를 한 바퀴 달리고 있던 쪽새였다. 그는 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어, 지안아, 내가 방금 그 짝남을 봤는데···.”
* * *
한 시간 뒤.
박선후의 빌라 입구, 가로등 아래에 그의 와이프가 갓난아기를 아기띠로 업고 흔들흔들거리며 차가워진 손을 비비고 있다.
오늘따라 남편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두 여자가 그녀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저기···.”
“···네? 누,누구세요?”
선후 와이프는 전에 조폭들 사건 이후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겁부터 덜컥 났다. 그것은 여자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니, 혹시 저 기억하세요?”
지안의 말에 선후 와이프가 경계하며 그녀의 교복에 달린 명찰을 보았다.
그러고는 그 이름을 몇 번 되뇌이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너는?”
학교가 붙어있지만, 지안이 중학생 때 그녀는 고등학생이기에 거의 볼 일이 없었다.
그러나 지안이 선후 주변을 맴돌았기에 자주 마주쳤고, 선후 와이프가 몇 번 말을 걸기도 했었다.
“그··· 제가 아까 봤는데···.”
지안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선후가 경찰에게 붙잡혀 갔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곧바로 경찰서로 가겠다는 그녀를 지안이 지인 중에 경찰이 있어서 알아보고 있다며 말렸다.
지안과 하루는 그녀를 데리고 들어가서 자초지종을 들었고, 해수는 선후를 데리고 간 경찰서를 찾아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상문서 마약과, 딱 보아도 형사 아니면 조폭으로 보이는 사내가 다가오자 형사가 경계하며 물었다.
“강진서 특수팀 신해수 경위입니다. 박선후씨 여기 있습니까?”
해수는 일부러 신원을 밝혔다. 경찰계에 가장 빡센 강진서에 있다는 것, 그것도 특수팀 소속이라는 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꽤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경위라는 계급은 대단하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위치다.
그의 물음에 마약과 막내 형사가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아 예, 박선후씨라··· 그, 유치장에 있는 것 같은데요.”
“잠깐 봐도 되겠습니까.”
“그게···.”
그때, 한 산적같은 중년인이 세수를 했는지 수염에서 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들어왔다.
“안 되지, 최형사, 넌 그게 문제야. 안 되는 건 딱 잘라 거절해야지.”
해수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산적과 해수의 날카로운 시선이 마주쳤다.
“담당 형사이십니까? 신해수입니다.”
산적은 해수가 내민 손을 무시하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약쟁이 지인이라고? 이거 좀 냄새가 나네, 아 기분 나쁘게 듣진 마요. 이게 직업이잖아.”
“···예, 아무튼, 조사 잘 해주셔서 억울한 일 없게 만들어주십시오.”
“약쟁이가 억울할 게 뭐 있어, 뭐 몰랐던 거면 이참에 깔끔하게 연 끊어요. 내가 인생 선배로써 해주는 말이야.”
“···가보겠습니다.”
해수는 그의 탐욕어린 눈동자를 자신의 눈에 담고, 마약반을 나섰다.
덜컥-
문이 닫히자, 산적은 문 쪽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 서렸다.
“시발 뭔 특수팀에 줄이 있는 놈을 쥐새끼로 풀었어, 이 개새끼들 진짜···.”
* * *
경찰은 해당 지부로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먼저 수사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개인행동이다. 의혹이 있으면 파헤치는 것은 검사의 일이다.
그래서 해수는 일단은 특수팀이 맡은 사건에 집중하며 아지트 팀에게 박선후 사건의 수사를 시켰다.
며칠 후.
면회도 금지라서 얼굴도 통화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는 선후 와이프에게도 어둠의 손길이 접근했다.
“아줌마, 아줌마 남편 어딨어. 빚이 2천 있는데 안 갚고 잠수를 탔어, 어떻게 된 거야?”
“당신들이지, 당신이 우리 오빠 마약 배달 시켰지?!”
“뭔 개소리야? 난 돈 갚으라고만 했지, 돈 빨리 갚으려고 마약배달에까지 손을 댔나보네. 어이구, 그러면 우리 돈은 어떡해?”
선후 와이프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우리 오빠 데리고 와, 우리 오빠 데리고 오라고!”
“개소리 그만 하시고.”
턱수염 사내는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뒤로 확 젖혔다.
“니가 갚아야지, 나와.”
“꺄악!! 이거 안 놔?!”
턱수염은 그녀를 계단 밖으로 질질 끌고 나왔다. 집 안에는 아기가 엄마의 비명에 날카로운 울음을 터트렸다.
“아가리 안 닥쳐? 이 년도 일단 쳐맞아야 말귀를 알아듣겠구나.”
턱수염이 손을 번쩍 들어 그녀의 따귀를 때리려고 할 때.
퍽!
캔사이다가 날아와 그의 뒤통수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그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계단 아래쪽에는 검은 마스크에 검은 모자를 쓰고, 딱 붙는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툭 튀어나온 골반, 딱 보니 여자였다.
턱수염은 선후 와이프의 머리채를 놓고 몸을 완전히 틀었다.
“뭐냐, 넌?”
사이다녀는 선후 와이프를 보며 입을 열었다.
“들어가서, 문 잠가요.”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다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아기가 숨넘어갈 듯이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넌 뭐하는 년이냐고?!!”
턱수염의 일갈과 함께 그의 옆에 있던 덩치 사내 한 명이 거들먹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어이, 일로 와.”
그렇게 세 계단 쯤 내려왔을 때.
타다닥-
사이다녀가 돌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폭발적으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덩치가 반사적으로 그녀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그녀가 몸을 틀어 피하며 벽을 두 번이나 밟고 거의 몸이 복도 천장에 닿을 듯이 떠올랐다.
퍽!
그녀가 무릎으로 덩치의 관자놀이를 찍었고, 덩치의 몸이 마취총을 맞은 듯이 옆으로 픽 고꾸라졌다.
콱!
그의 머리통이 계단 난간에 부딪히기 직전, 그녀가 손에 든 무언가로 덩치의 얼굴을 찍었다.
“커헉!”
덩치의 양쪽 볼에는, 이제 막 편의점에서 받은 듯한 나무젓가락이 관통해 있었다.
촤악!
사이다녀는 미련없이 나무젓가락을 뽑고는 박선후의 집 현관문 앞에 서 있는 턱수염 사내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