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231화 (231/255)

< #231. 안서은 예능 출연 >

황장수의 광역 도발에 그들을 바라보던 가드들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금세 여섯 명의 가드가 황장수를 둘러싼 형태가 되었다.

정예 경호원으로 유명한 대성가드이니만큼, 다들 몸이 좋아서 황장수의 우락부락한 몸이 큰 위협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가드들을 등에 업은 이팀장은 더욱 기세등등하게 턱을 들고 그를 노려보았다.

“어이, 칼밥 먹은 양반, 지금 당신이 하는 짓을 뭐라고 하는 지 알아?”

“뭔데?”

“객. 기.”

이팀장은 장수에게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10센티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하고는 입을 열었다.

“당신이 구르던 싸구려 세상이랑 여기는 격이 달라, 악과 깡으로 해결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야. 한 번은 봐줄 테니까, 까불지 마.”

황장수는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실수했다는 듯이 입을 가렸다. 미처 가리지 못한 입꼬리와 눈에 조롱섞인 웃음이 담겨있다.

“풉, 아아 미안, 나도 모르게 고딩 때가 생각나서. 야 니네 학원영화같은데서 일진 역할하면 잘하겠다?”

“뭐?”

장수의 2차 도발에 몇 몇 젊은 가드들이 앞으로 나섰지만, 이팀장이 그들을 말렸다.

“야, 가만히 있어, 이딴 싸구려 도발에 넘어가면 니네가 그것밖에 안 되는 거야.”

이팀장은 가드들을 진정시키고는 장수를 하찮은 미물처럼 내려다보며 말했다.

“뭔 빽으로 대표님 옆에 꽂혔는지 몰라도, 알아서 물러나라. 기간은 일주일. 그 뒤에는 나도 내가 얼마나 무섭게 변할지 몰라, 알겠어?”

이 정도 도발에도 욕 한마디 없이 경고를 내뱉는 이팀장의 행동에 장수는 ‘이것 봐라?’ 라는 심정으로 그를 보았다.

“무섭네, 무서워, 어휴 무서운 동네야.”

장수는 두 손으로 팔뚝을 비비며 뒤돌아서 그 자리에서 나왔다.

이팀장은 장수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새끼, 운 좋네, 한 번이라도 먼저 손을 휘둘렀으면··· 재밌었을 텐데.”

물론, 누가 운이 좋은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  *

신해수의 집.

“마셔라.”

“아나 또 이거야, 물리겠다 물려.”

황장수는 신해수가 내민 단지 바나나우유를 밀어냈다. 해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것을 집으며 물었다.

“안 마실 거야?”

대답하면 바로 뺏을 것 같은 해수의 표정에 장수는 그의 손을 탁 치고 우유를 집었다.

툭하면 이 우유를 줘서 질리기는 해도, 맛있는 건 사실이다.

해수는 장수가 바나나우유 뚜껑을 뜯어 한 잔 들이키는 것을 보고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고 싶지 않다는 황장수를 억지로 떠밀어 안서은 경호원으로 붙이긴 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해수는 이렇게 틈날 때마다 먹을 것을 조공하고 있었다.

“할 만하냐, 텃새 같은 건 없고.”

“왜, 있으면 니가 어떻게 하게.”

해수는 고개를 돌려 운동방을 힐끗 보았다.

턱걸이 기구에 말랐지만 근육이 섬세하게 잡힌 몸의 주인공이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한 명만 보내면 끝나.”

하루는 짧은 기간에 대성가드를 접수하고, 팬들까지 만들었다. 그녀를 보내어 황장수가 사촌오빠라고만 소개해도 모든 논란이 종식될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손을 휘휘 저었다.

“됐어 임마, 뭐 큰일이라고 퇴사한 사람을 다시 보내, 쓸데없이. 신경쓰지 마라, 형 그렇게 무능한 사람 아니다.”

“그래서 문제지.”

“···뭔 말이냐?”

해수는 바나나 우유를 끝까지 들이키고는 한 손으로 플라스틱통을 확 으스러트렸다.

“평화적으로 해결해, 누구 하나 죽이지 말고.”

“에이 뭘 죽여 죽이기는, 내가 뭐 깡패냐?”

황장수는 괜히 뜨끔하여 목소리가 커졌다가, 해수와 눈을 마주하곤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  *  *

다음날, 황장수는 어김없이 대성가드로 출근하여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유니폼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진청색 수트에 흰색 셔츠다. 그러나 재질이 방검용으로 휘두르는 칼날에는 잘 잘리지 않게 특수소재로 질기게 되어있고, 셔츠 가장 위쪽 단추에는 초소형 카메라가 달려 있다.

매일 아침마다 장비 점검소에서 점검을 하고 현장으로 출근하는 시스템이다.

황장수 덕분에 갑작스레 현장 근무에서 쫓겨나 현재 일이 없는 이팀장이 일찍부터 나와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황장수를 발견하고는 다가와 옆에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6일 남았다.”

장수는 바로 몸을 돌려 그를 보며 셔츠 단추를 잠갔다.

“아 빨리 그 시간이 좀 지났으면 좋겠네, 얼마나 무섭게 변할지 기대가 된다. 어?”

“그래. 실컷 여유부려라, 부릴 수 있을 때.”

이팀장은 다시 돌아서서 체력단련실로 들어갔고, 장수는 건물 꼭대기층에 있는 안서은 대표이사 사무실로 향했다.

언제나 깔끔하고 빈틈없는 모습의 안서은이 그를 맞이했다.

“오셨어요?”

“일찍도 출근하시네, 이거 더 일찍 와야하나.”

서은은 황장수를 보며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럴 리가요. 정해진 시간에 오시면 돼요. 안 그러면 악덕사장이죠. 갈까요?”

“예, 모시겠습니다~”

오늘은 대성E&M 소속 배우를 응원하기 위해, 버라이어티 예능 촬영장에 밥차와 커피차를 쏘고 잠시 들르는 일정이 있었다.

배우의 이름은 김강헌. 새하얀 피부에 우수에 젖은듯한 아련한 눈동자, 갸름한 턱선, 미소년같은 얼굴에 그렇지 못한 짐승같은 근육질 몸으로 요즘 한창 주가가 오르는 대형 신인 배우였다.

제작진이나 배우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촬영장에 서은이 들른다는 정보는 전달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경호원 둘에 수행비서인 강비서까지 건장한 남자 세 명을 대동하고 촬영장에 들르자, 스텝들은 물론 연예인들의 시선까지도 그녀에게 향했다.

선한 인상이지만 걷는 자세,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작은 몸짓에서 기품이 묻어나고, 딱 보아도 초고가의 옷을 입고 세 명의 수행원까지 대동하고 있으니,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겼다.

“···뭐지? 누구지?”

“아 어디서 본 배우인데, 와 실물여신이네.”

“어떤 배우인데?”

“어···그게···.”

“신인인가? 취미삼아 배우하는 그런 재벌3세?”

그녀에 대한 정체로 촬영장이 술렁거리고 있을 때, 한 스텝이 다가왔다.

“저기, 혹시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 그냥 잘하고 있나 해서요.”

스텝은 순간 눈이 빠질 듯이 커졌다.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 범상치 않은 수행원, 대답까지 합해서 그녀가 이 프로그램을 하는 방송국 국장의 비선실세 정도로 해석한 것이다.

스텝이 후다닥 피디에게 가서 이 상황을 전할 때, 마침 쉬는 시간을 받은 소속 배우 김강헌이 서은을 알아보고 후다닥 달려왔다.

“대, 대표님,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강헌은 서은 앞에서 몸을 낮춘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이성적인 감정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저 존경을 넘어 경외의 눈빛이 담겨 있었다.

“강헌씨 보러 왔죠, 응원차.”

그녀가 부드럽게 웃으며 돌아서자 때마침 커피차와 밥차가 들어섰다.

이를 본 강헌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제가 뭐라고, 대표님이 직접··· 감사합니다!”

설핏 웃은 서은은 강헌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며 작게 속삭였다.

“강헌씨, 너무 쉽게 고개 숙이지 마세요. 우리 배우시잖아요. 감사는 하되, 과하지 않게.”

“아, 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강헌은 회사의 기대주였다.

지금은 50에 가까워졌지만 아직도 원조 꽃미남으로 불리는 배우의 뒤를 이을만한 페이스, 그보다 더 균형잡힌 근육과 운동신경, 가장 중요한 올곧은 인성과 겸손함, 그를 뒷받침해주는 적당한 센스.

서은은 김강헌이 지금은 비록 신인이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아 이렇게 직접 찾아오는 투자를 하는 것이다.

스텝은 그들을 보고 그제야 자신이 오해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앗, 아무래도 김강헌 배우님 회사 관계자인가보네요. 피디님 죄송합니···”

“응, 비켜봐.”

밀려난 스텝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피디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촬영을 하느라 신경쓰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서은을 본 피디가, 홀린듯이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멍한 눈동자에 서은의 가드 한 명이 그를 막아세웠다.

“무슨 일이십니까.”

“에, 아···.”

“정훈씨, 괜찮아요. 피디님이시죠?”

서은의 실시간 가드는 총 네 명이다. 그 중 둘은 밀착 경호, 둘은 간접 경호로 100미터 내에서 주변 상황을 수시로 파악하고 있다.

황장수와 정훈씨라고 불린 가드가 밀착 경호다.

서은의 말에 정훈이 뒤로 물러서자 피디가 가드의 눈치를 살짝 보며 경계했다.

“네··· 그, 강헌이 소속사 실장님이세요?”

서은이 바로 대답하려 했지만, 실장이라는 말에 강비서가 발끈하여 먼저 나섰다.

“실장님이 아니라 대성E&M 안서은 대표이사님이십니다.”

“아, 대, 대표님?”

“네, 하하···.”

서은은 멋쩍게 웃음지으며 강비서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강비서는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고개를 숙이며 뒤로 반걸음 물러섰다.

서은은 핸드백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어 피디에게 주었고, 피디는 금색으로 번쩍이는 그녀의 명함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쉽게 입맛을 다시던 피디가 명함과 서은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두 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펴서 네모 모양을 만들어 그 안에 서은을 담았다.

그 엉뚱한 행동에 서은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앗 죄송합니다. 초면에, 너무 아름다우셔서, 혹시 배우같은 건 안 하세요?”

“아···.”

“안 하시겠지, 대표님이신데, 그런데 이게··· 참 진짜, 신의 계시인지, 제가 하는 프로그램이 또 하나 있는 거 아시죠? ‘보스의 사생활’이라고.”

보스의 사생활, 연예인과 소속사의 대표 혹은 임원급 인물이 같이 스튜디오에 나와서 미리 찍은 하루 동안의 일과를 관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현재 방송사 통합 탑 5안에 들어가는 예능 프로다.

그곳에 나오고 싶어서, 피디의 눈에 띄기 위해 지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들도 적지 않았다.

피디의 말에 김강헌도 말은 하지 못했지만 눈을 반짝였다.

“예, 잘 알고 있죠.”

“알고 계시다면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강헌이랑 한 번 출연해주시죠, 출연료는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TV 출연 얘기에 시무룩하게 물러나 있던 강비서가 다시 나섰다.

“저희 대표님은 TV에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

서은이 살짝 미간을 좁히며 강비서를 바라보았다. 강비서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단짝이었던 김가드가 예전에 감금 사건 이후에 나가고 나서, 안서은에게 집착 비슷한 과한 충성심과 나대기가 생긴 강비서였다.

“제의 감사드립니다. 출연할게요. 강헌씨 스케줄에 맞춰서.”

이왕 배우를 밀어주기로 결정한 만큼 안서은은 화끈하게 수락했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출연료를 구체적으로 듣지도 않고 즉각 대답하자 피디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윗사람 허락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정할 수 있는 결정권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 시원함에 피디가 환하게 웃으며 서은의 손을 두 손으로 덥썩 잡았다.

“와, 정말 시원시원하시네! 빠른 답변 고마워요. 서운하지 않게 해드릴게요!”

피디의 뒤에서 김강헌이 서은에게 연신 엄지를 추켜올리고 두 손을 번쩍 들어 큰 하트까지 만들었다.

그 모습을 황장수는 가만히 지켜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에에, 에에? 사내 자식이 저게 뭔 짓이야, 어으 눈꼴 시려.’

*  *  *

‘보스의 사생활’ 스튜디오 촬영 당일.

요즘 핫한 김강헌에 대한 관심도 컸지만, 뉴페이스이자 대성E&M의 대표 안서은을 향한 관심이 스튜디오 내에서도 폭발했다.

“따로 연예인 준비는 해본 적이 없으신 건가요?”

“이건 사적인 질문인데, 결혼은 하셨나요?”

“남자친구는 있으세요?”

“아니 이 사람아, 이건 대본에 없는 거잖아~”

촬영 내내 남자 진행자들과 게스트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분위기가 그렇게 몰리자 연출진들도 안서은에게 카메라를 서포트했다. 사실 누가 봐도, 시청률에 온갖 화제를 몰고 올 외모이긴 했다.

미소를 머금은 메인 MC가 능수능란하게 다른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자자 다들 진정하시고, 안대표님 당황하신 거 안 보여요?”

“저는 괜찮습니다. 재밌네요.”

“그래요? 그러면 딱 하나만, 저기 작가가 들고 있는 질문 하나만 하고 정말 끝낼게요. 안서은 대표님 그러면 미혼이시고 남자친구도 없다고 대답해주셨는데, 지금 심장 떨리고 있을 이 옆에 마스씨를 포함한 뭇 남성들을 위해, 이상형을 알려주시겠어요?”

“아, 이상형이요.”

서은이 한 템포 쉬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 별거 아닌 손짓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어느 곳에서는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 이상형은··· 키가 좀 크고.”

“아, 키··· 역시···.”

“근육질에다가, 헬스장 트레이너처럼.”

“근육질, 점점 멀어지죠, 우리 오징어들.”

“무뚝뚝하지만 속에 정이 있고, 남들을 잘 도와주면서···.”

“츤데레인가요? 나에게는 나쁘지만 남들에게는 친절한 남자?!”

“인상은 좀 무서웠으면 좋겠어요.”

“어, 이건 또 특이하네요. 되게 구체적이네요? 원하는 직업같은 건 있나요? 의사? 검사? 연예인?”

서은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직업은··· 국민을 지켜주는 경찰이, 좋아요.”

*

툭-

운동실, 하루의 손에 들려있던 쉐이크가 차가운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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