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 황장수 출근 >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오성주 의원 납치 사건은 신해수가 검거한 회사원 한 명의 단독범행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잡힌 회사원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유전자 정보도 지문 정보도 없었다.
서울 광수대와의 합동수사 이후.
강력반으로 돌아온 특수팀, 곽반장이 휴대폰을 들고 소리쳤다.
“그러니까 시팔! 어떤 새끼가 시켰냐고!!”
같이 수사했던 광수대 대장과 전화 중이다. 보기드문 곽반장의 패기에 신입의 눈을 반짝이고 있다.
‘역시, 누구 하나 빼놓을 분들이 없어, 카리스마 대박···!’
“그래 이 새끼야! 누가 겁먹을 줄 알아? 당장 전화하라 그래!”
곽반장이 전화를 끊고는 씩씩거리며 특수팀쪽을 바라보았다.
오갱이 수고한 곽반장의 어깨를 주무르며 물었다.
“뭐래요? 다시 수사하겠대? 우리한테 수사권 넘기겠대?”
“아니, 시킨 사람이 전화···”
곽반장이 아직 말을 다 끝내지도 않았을 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나 강진서 반장 곽수철이요···네? 추,충성!”
곽반장은 방금 전과는 달리 수화기 너머 사람에게 손으로 직접 경례까지 하고 허리를 연신 굽신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아··· 그렇습니까, 이해는 합니다만··· 저희 팀원들이 아쉬워서, 예, 예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예, 귀한 시간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옙 들어가십시오.”
180도 바꿘 곽반장의 태도에 신입의 반짝이던 눈빛이 가라앉았다.
곽반장은 전화를 끊고, 그제야 자신의 자세가 얼마나 쭈그러들었는지 확인하고는 헛기침을 하며 허리를 펴고 어깨를 들어올렸다.
해수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누구 전화입니까?”
“음··· 장관, 법무부.”
“······.”
갑작스런 거물의 등장에 특수팀 팀원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오갱이 쓴맛을 다시며 물었다.
“뭐랍니까, 뭐 때문에 높으신 양반들이 이번 사건을 접게 하는지 이유나 좀 들어봅시다.”
“글쎄, 헷갈리네. 생각보다 좀··· 솔직해. 어차피 보니까 천선생이 시킨 건 맞는 것 같은데, 제대로 연합 특수부 꾸렸을 때도 못 잡았는데 더 꽁꽁 숨어들어간 그를 잡을 수 있겠냐고.”
“미친, 어차피 못 잡을 거 잡지 말라 이거야? 이게 말이야 방귀야.”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지 몰라도 수사 종결의 근거는 꽤 많았다.
진범이 안 잡혔다고 수사를 지속하면 이 사건이 관심이 큰 만큼 나라 전체에 끼치는 불안도 커진다는 이유.
그리고 어찌됐건 납치를 당했던 피해자라는 타이틀이 오성주 의원 본인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기에, 본인도 원치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사건을 경찰에게 맡기지 않을 뿐, 비공식으로 천선생을 잡기 위한 수사를 진행한다는 말로 곽반장이 그들을 달랬다.
“비공식?”
“국정원 말하는 거겠지.”
진짜로 국정원이 이번 사건의 수사를 진행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마지막 이유로 인해 특수팀의 분노는 확실히 누그러트릴 수 있었다.
슬쩍 밖으로 나온 해수는 오성주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진실여부를 확인했다.
“···그러셨습니까?”
-국회의원은 말이야, 한참 높아보이지만 이게 모래성을 쌓아 올라온 것이나 마찬가지야, 국민의 눈밖에 나면 한순간에 저 밑바닥으로 무너지지.
“······.”
-내가 이번 일을 당한 게, 당할 만한 놈이어서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아, 모래성이 무너지기 전에··· 물길을 돌릴 수밖에.
씁쓸한 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해수는 수긍했다.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국회의원도 공인이니만큼 의혹도 사실로 변한다. 진위여부는 상관없다.
오성주 의원은 결국 의혹이 생겼고, 해명도 통하지 않으니 시선을 돌리기를 원한다고 했다.
“알겠습니다. 몸조리 잘 하십시오.”
-내가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지이이잉-
전화를 막 끊자마자 안쪽에 있는 대포폰으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정영수: 발신번호제한 휴대폰 번호 확인/ 위치 확인해서 보낼게요.
하지만 그건 경찰과 오성주 의원의 입장일 뿐이다.
비록 특수팀이나 광수대는 이번 사건에서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으나, 해수의 개인팀 아지트 팀은 조사를 지속하고 있었다.
* * *
효성 교도소.
오의원 납치 사건이 단독범행으로 판결이 나면서 모든 혐의를 뒤집어쓴 사내, 3198번이 솔로 화장실 변기를 빡빡 밀고 있다.
“구팔이, 청소 다 했어?”
그는 이곳에서 뒷번호 두 개를 붙여 구팔이라고 불렸다. 구팔이는 재빨리 허리를 펴고 일어나 대답했다.
“옙, 이제 물만 뿌리면 됩니다.”
“그래, 빨리 하고 나와라, 빵 먹자.”
“넵!”
물을 뿌리고 나오니 팥빵 두 개가 방 한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방원이 그에게 빵 하나를 내민다.
구팔은 방원의 손에 들린 팥빵을 가만히 바라보며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졌다.
“뭔 생각해? 맞고 싶어?”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우적 우적
방 안에 두 재소자가 빵을 먹는 소리만이 작게 울렸다.
방장 마실장은 자리에 없었다. 이름만 들어도, 그가 쓰던 물품만 봐도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그는 교도관이 자주 데리고 나간다.
무슨 일 때문에 불려나가는지 감히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구팔은 멍하니 빵을 씹다가 그 옆에 있는 방원을 보았다. 그도 같은 회사 출신이다. 현역 시절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선배였지만, 어째서인지 이곳에서는 다른 사람인 듯 보였다.
마치, 보통사람같다.
“선배님.”
“응? 어? 뭐?!”
그의 번호는 2477, 이곳에서는 칠칠이라 불린다.
칠칠이는 선배님이라는 호칭에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다가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막았다.
“바깥 얘기는 꺼내지 말자, 방장님도 그렇잖아.”
“그러니까··· 왜 방장님도, 선배님도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는 겁니까?”
구팔이는 이곳에 와서 끔찍한 고문을 겪을 줄 알았다. 더군다나 마실장은 회사에서 버려진 사람 아닌가. 그러나 고문은커녕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아무런 터치가 없었다.
밖에서 항상 목숨을 걸고 일을 해야하던 때와는 달리, 너무나 평온하여 불안할 지경이었다.
칠칠이는 진중한 눈으로 구팔이를 노려보다 가까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나도 몰라.”
칠칠이의 텅 빈 눈동자는 아이의 그것처럼 천진난만했다. 정말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구팔이는 방장이 들어오면 직접 물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저녁 시간때에 방장 마실장이 들어왔다.
“방장님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꽈!!”
마실장은 평소와 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의 인사를 받지도 않고 들어왔다. 그러다가 구팔이와 살짝 눈이 마주쳤다.
“할 말 있나?”
작게 물었지만 구팔이의 가슴에는 천둥처럼 크게 울려 퍼졌다. 조금 전의 다짐은 온데간데 없이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구팔이는 마실장이 자신을 지나쳐 가고 나서야 아랫입술을 깨물며 물어볼 타이밍을 놓쳤다는 생각에 아쉬워했다.
생명은 잠들고 고요가 가득한 새벽이 왔다.
구팔이는 소변이 마려워 소리없이 일어났다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작은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 마실장을 발견했다.
‘안 잔 건가?’
“달이 밝아서.”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마실장은 마치 구팔이의 마음을 읽은듯이 대답했다. 구팔은 놀란 마음에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일어났다.
“네, 넵.”
그는 화장실을 갔다가 나와서, 아직도 그대로 있는 마실장을 보았다. 지금이라면 왠지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여쭐 게 있습니다.”
“물어보지 마.”
“옙, 죄송합니다.”
구팔은 0.1초만에 바로 대답하고 뒤돌아섰다. 그가 묻지 말라면 마는 거다. 앞으로도 물을 일은 없다. 의문은 이미 뒤돌아서는 때에 깔끔하게 지워졌다.
그가 자리로 돌아갈 때, 마실장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팔아.”
“옙, 방장님.”
“너에게 감옥은 어디냐?”
“······!”
구팔은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이곳 생활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평온하다.
살아오면서 많은 일반인을 접하지는 않았지만, 교도소 생활이 고되고 사람들이 끔찍히도 들어가기 싫어한다는 것쯤은 안다.
그런 곳이 이렇게 편하다고 느낀다면, 자신이 본래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 건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구팔은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1분 가까이 가만히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마실장님.”
그의 결의에 찬 목소리와 범상치 않은 호칭에 마실장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는 비장한 눈으로 마실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 *
아지트.
쿵-
“···내가? 왜?”
황장수는 덤벨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해수를 노려보았다.
“천선생을 잡을 때까지만.”
“그 늙은이가 언제 잡힐지 모르잖아? 평생 안 잡히면 평생 하라고?”
“대우가 나쁘지 않을 거다.”
황장수는 휙 돌아서며 다시 덤벨을 들었다.
“됐다. 이 나이에 곱게 자란 공주님 비위나 맞추라고? 난 못한다. 요즘 경호원들 전직 특수부대다 국정원이다 많드만? 걔네 쓰라 그래. 하루씨도 있잖아.”
해수는 고개를 저었다.
하루는 안서은의 경호원 경력직으로 다시 경호원이 되기 적합하긴했지만, 현재 아지트팀 수사과정에서 잠입과 위장, 은신을 맡고 있다. 게다가 현재 회사원들의 정보는 모르더라도 습성까진 자세히 알고 있는 그녀는 뺄 수 없는 수사관이었다.
명백하게, 지금 아지트 팀에서 가장 잉여인력은 황장수였다.
해수는 안서은에게 미리 받은 계약서 한 장을 그의 자리 옆에 두었다.
“한 번 검토나 해봐.”
황장수는 해수가 나가고 나서야 힐끔 계약서를 보았다. 그리고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 * *
며칠 뒤, 대성 E&M 대표이사 사무실.
대성가드 유니폼을 멀끔하게 차려입은 황장수가 안서은 앞에 우뚝 서 있다.
“여기서 뵈니까 더 반갑네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장수 가드님, 이엔엠 대표이사 안서은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장수는 눈앞에 내밀어진 새하얀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손을 맞잡았다.
“그, 대표님, 여쭤볼 게 있는데.”
“예, 편하게 말씀하세요.”
장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이거, 평생 해도 됩니까?”
해수에게 황장수의 거부가 심하다고 들었던 만큼, 그의 질문에 안서은의 큰 눈이 조금 더 커졌다가, 이내 부드럽게 휘었다.
* * *
김 가드의 고정석이었던 안서은 이사의 경호원 자리에 세 자리가 추가된 것은 대성 가드에 커다란 경쟁 폭풍을 일으켰다.
안서은, 그녀에 대한 대성 가드 경호원들의 생각은 이러했다.
재벌 3세답지 않게 오만하지 않고, 재벌 3세답게 기품 있으면서 웬만한 비주얼 연예인은 엑스트라로 만들어버리는 미모는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존재.
게다가 최근 갱신된 연봉도 평균의 두 배를 훌쩍 넘기는 자리이니 탐내지 않는 자가 없었다.
하지만 연봉이 높은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가장 기여도가 높은 것은 위험도다.
그녀가 천선생의 친위대로 불리는 회사원들의 타깃이기 때문이지만, 경고를 들었음에도 아직 회사원들을 직접 상대해본 적이 없는 가드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그저 높은 연봉과 최상의 조건을 지닌 의뢰인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최고의 자리 중에 하나를 일면식도 없던 산적같은 사내가 떡하니 차지하니 대성 가드 소속 경호원들은 그를 보며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사실을 안서은도 모르지 않았고, 그녀가 직접 조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황장수가 이를 제지했다.
“아니요. 내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낙하산인데 여사장님이, 아, 미안합니다. 말버릇이 더러워서··· 그 대표님이 카바 쳐주면 앞에서 말만 안 할 뿐, 그 불만은 계속 이 가슴에 남아요.”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대표님은 걱정 붙들어매시고 마음 편히 자기 자리에서 돈만 열심히 버세요. 내가 깔끔하게 해결할라니까, 내가 또 그런 사람 다루는 건 선수입니다.”
“네··· 그렇군요. 하하.”
안서은이 어색하게 웃자, 황장수는 그녀에게 목례를 하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서은은 그가 나간 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언가 신선하다. 무서운 인상, 강철같은 근육, 불곰같은 덩치, 뿜어져 나오는 기운같은 것들은 신해수와 판박이인데 말투나 생각은 또 전혀 다르다.
꼭 다른 버전의 신해수를 보는 듯하여 서은은 신선한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녀가 멍하니 굳어있자, 서은의 옆에 서 있던 강비서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아무리 신형사님 추천이라도, 저는 저 사람 별로 마음에 안 듭니다. 걸음걸이도 뭔가 불량스럽고, 말끝마다 내가, 내가, 하는 것도 예의없고, 나중에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서은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저는 아무렇지 않아요. 절 위해서 하던 일 멈추고 오신 귀한 분이에요.”
“그렇게 귀해보이지 않던데··· 알겠습니다. 대표님이 그러시다면야···.”
* * *
황장수의 근무 시간은 하루 12시간이었다. 그는 주간에 일을 하는데, 퇴근시간인 8시가 되어서 유니폼을 갈아입기 위해 대성 가드에 들렀다.
오늘따라 스케줄이 다들 비슷하게 끝났는지, 가드들이 탈의실에 몰렸다.
그중에는 같이 안서은의 가드를 맡고 있는 가드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팀장은 이번에 안서은의 가드로 내정되어 있다가, 황장수 덕에 자리를 빼앗긴 가드다.
그가 장수 옆에서 옷을 갈아입다가 혼잣말 하듯이 중얼거렸다.
“흉터가 많네, 칼밥 먹고 살았나 봐?”
장수는 옷을 갈아입다 말고 멈칫하다가, 뒤돌아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아 대답했다.
“뭐, 대충.”
장수의 성의없는 대답에 이팀장이 미간을 좁히며 사물함 문을 거칠게 닫았다.
쿵.
“어딜 신입나부랭이가 팀장한테 반말을 찌끄려?”
동시에 탈의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러나 장수는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바지를 벗고, 화려한 드로즈를 선보이며 말했다.
“니가 먼저 반말 찌끄렸잖아, 아 그리고.”
장수는 유니폼이 아닌 자신이 입고 왔던 트레이닝 바지를 손에 든 채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해, 이 형이 다 받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