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눈 떠 >
1시간 전.
강진서 강력반 특수팀은 서울에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중 출입 시 cctv가 적은 곳을 선별했다. 그래도 23군데나 되었다.
신해수는 아지트 팀까지 동원하여 건물들을 샅샅이 뒤졌다.
타다다닥
신해수가 백화점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그의 이어폰으로 다른 형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층 꽝
-2층도 꽝입니다.
해수도 귀에 있는 이어폰을 눌러 발신 모드로 전환했다.
“신과장이랑 병아리는 4층으로 올라가고···.”
해수는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비틀거렸다. 그는 허우적대다가 손으로 벽을 짚으며 멈추어 섰다.
뒤따르던 신입이 눈을 크게 뜨고는 다급히 달려와 부축했다.
신해수가 지금처럼 약한 모습은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신입이기에, 몸이 반응하여 부축은 했지만 놀란 가슴은 쉬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괜찮으십니··· 헙!”
신입은 해수와 눈을 마주치고는 기겁하며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아주 잠깐이지만 해수의 눈동자에는 지독한 살기가 어려 있었던 것이다.
해수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는 금세 평소의 무심한 눈으로 돌아와 신입의 등을 툭툭 쳤다.
“괜찮아, 먼저 올라가.”
신입이 그 짧은 순간 여러가지로 충격을 받아 주춤거리자, 해수가 나지막하게 재촉했다.
“빨리”
“네,넵!”
신입이 반사적으로 튀어나가고, 충분히 멀어진 뒤 해수는 대포폰을 꺼내어 들었다.
“원격 조종기, 해킹 가능해?”
-예? 드론같은 거 말씀이십니까? 어려운데···
“어려워도 해, 장소는 상영구 감지로 223번길, 미건축 드림즈빌딩.”
-아, 장소가 특정되면 그나마 수월하죠, 어떤 타입의 조종기입니까?
해수는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대답했다.
“크레인.”
* * *
해수는 개인 정보원을 통해 의심장소를 특정했다고 보고하고, 팀원들과 함께 해당 장소로 향했다.
천 선생이 이것까지 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하필 그 근처에 공개 노래 대회같은 것이 열려서 인파가 몰려있었다.
게다가 특수팀이 그곳에 도착할 즈음에는, 크레인에 오성주 의원이 매달려 있는 것이 발견되어 여러 생중계 방송에 노출되었고,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집중되었다.
오미연은 차로 가는 도중에도 생중계 방송을 보며 반쯤 혼이 빠져 있었다.
“안 되겠다! 여기서 내려서 뛰자!”
“예!”
오갱과 해수, 우강철과 신입이 재빨리 차에서 뛰어내리고, 오미연도 덩달아 내려 뒤쫓다가 앞에 소방차가 구경하느라고 불법정차를 하고 있는 차량들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소방차가 들어가서 안전매트를 설치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오미연은 소방차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과 차들에게 애원하듯이 소리쳤다.
“차 좀 빼주세요! 제발!!”
“당신 뭔데! 당신이 대통령이야? 여기 뭐 도로 전세 냈어?”
그러나 오히려 오미연에게 버럭 소리를 지를 뿐, 사람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눈치를 보던 사람들도 다시 제자리를 지켰다.
그때, 무전으로 해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방차에 가서 전해, 금전적 책임 신해수가 다 책임질 테니까 싹 밀어버리라고.
“···네??”
희한한 명령에 오미연은 잠시 얼이 빠져 멈춰섰다. 그러나 지금은 정신을 똑바로 차릴 때다. 뒤가 어떻게 되든, 일단 살릴 사람부터 살려야 한다.
그녀는 다급히 소방차로 가서 경찰공무원증까지 내밀면서 해수의 말을 전했고, 이를 들은 소방대원도 입술을 깨물며 사이렌을 울리고는 앞으로 전진했다.
“으어어! 내 차, 내 차!!”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이 미친 소방차야!! 이 차가 얼마짜린데!!”
오미연은 난리를 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크레인이 설치되어 있는 건물로 뛰어갔다. 해수를 포함한 특수팀은 이미 안으로 진입한 상태였다.
기이이익-
그때, 그 시끄럽고 난장판인 인파 속에서 모든 소리를 꿰뚫고 크레인이 움직이는 소리가 오미연의 귓가를 사로잡았다.
옆으로만 움직여서 낭떠러지에 내밀어졌던 오성주 의원, 그를 매단 크레인 끄트머리가 점점 위로 들어올려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고리형 크레인 끝부분 각도가 바뀌고 있다.
“어어어어!”
“이거 떠, 떨어지는 거 아니야?!”
그제서야 오성주 의원이 있는 곳 아래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바퀴벌레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아래에 드러난 것은 싸늘한 돌바닥이었다.
드드드득-
각도가 거의 다 꺾인 순간, 고리 중간 쯤에 매달려 있던 오성주 의원이 아래쪽으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우어어억!”
“허업!”
“꺄아아아악!!”
오미연의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퍼지던 그때.
덜컹-
크레인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추었다. 오성주 의원은 아슬아슬하게 크레인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었다.
* * *
같은 시각, 빌딩 계단을 뛰어오르는 신해수의 왼쪽 귓가로 정영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킹 성공, 전파 끊었습니다.
덜컹, 쾅, 쾅!!
해수는 잠긴 옥상 문을 강제로 열어젖히며 말했다.
“고생했어.”
해수는 바로 크레인으로 향했고, 간발의 차이로 뒤늦게 올라온 팀원들은 옥상을 뒤지며 범인이 있는지 확인했다.
크레인 안에는 사람이 타고 있지 않았다. 어떤 기계장치만이 크레인과 연결되어 있었을 뿐이다. 해수는 그것을 거칠게 뽑아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스슥- 스슥-
날씨도 궂은 날씨라서 바람에 오성주 의원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고, 밧줄 끄트머리는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어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직접 크레인을 움직여야 하는데, 이곳에는 아무도 크레인을 작동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해수가 크레인에 올라타 이것저것 확인했지만 섣불리 건드릴 수는 없었다.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오성주 의원이 떨어질 수 있다.
휘이-
“어어어!”
지금도 바람에 크레인이 휘청였다.
아래 안전매트가 설치될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다.
그는 정영수에게 크레인의 기종을 알려주고 사용법을 요청했다.
“찾았어?”
-···찾았습니다. 아 이게 좀 복잡하네요. 처음 보는 사용법이라서···
“정확하게, 정확하게···.”
해수는 그에게 빨리 알려달라고 보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천천히 하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일단 오른쪽에 길다란···
그때.
“야! 나와!”
해수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그곳에는 두 손으로 허리춤을 붙잡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 곽반장이 서 있었다.
분명 본부에 있어야 할 곽반장이 어째서인지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반장님?!”
해수가 홀린 듯이 운전석에서 나왔다.
“작동법을···.”
해수는 말을 하다말고 입을 다물었다. 크레인에 올라타는 곽반장의 행동은 크레인 운전수 20년 경력직마냥 거침이 없었고, 눈빛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철컥, 드드드득, 기이이이익-
곽반장은 익숙하게 크레인을 조종하여 위로 올렸던 각도를 다시 내리고, 옆으로 돌렸다.
밧줄이 도로 미끄러져 고리 안에 고정됐다.
“다, 다행이다!!”
“구했어!”
아래에서 상황을 보는 사람들의 아찔한 마음이 들려왔다.
이내 크레인 끄트머리가 옥상 안쪽으로 들어왔을 때, 해수는 바로 밧줄을 끊고 오성주 의원을 끌어내렸다.
그 모습도 모두 실시간으로 중계되었고, 오의원이 옥상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구, 구했다. 구했어!”
“와아아아!!”
“우와아아아아!!”
“아아아악!!”
마치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것 같은 함성이다. 아래는 이미 열광의 도가니였다.
해수가 오의원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등산용 밧줄을 풀자 그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해수와 오갱이 의원을 부축하고, 해수는 그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면서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하, 후··· 괘, 괜찮지 않네··· 자네에게 두 번이나 구함을 받는구만···.”
오의원은 적지 않은 나이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겪은 탓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발음도 어눌했지만 그래도 특유의 품위는 잃지 않았다.
“아빠!!”
연이어 뒤늦게 도착한 오미연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뛰어와 오성주 의원을 안았다.
“어어, 아이구 우리 딸···.”
“아빠아···.”
감동적인 부녀상봉이 이루어지던 때, 광수대 망에서 무전이 들렸다.
-맞은편 골드리페 빌딩에서 수상한 범자 확인! 도주 중! 2조 쫓는 중!
-몇 명이야? 몇 층이야?!
-한 명! 17층입니다!
영수는 원격으로 크레인을 조종한 사람이 100미터 근방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광수대가 발견한 사람이 그 조종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한 명만 있다면, 회사원이다.
해수는 눈을 크게 뜨며 무전기를 들어올렸다.
“여기 강진특하나! 가까이 붙으면 위험합니다. 거리 두고 실탄 챙겼으면 총으로, 안 챙겼으면 건으로 다리 쏘십시오. 붙지 마십시오!”
-한 명이라니까 무슨 개소리야! 범인 죽으면 니가 책임질 꺼야? 저 새끼 말 무시하고 무조건 잡아!
해수가 미간을 확 찌푸리며 무전을 집어넣고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곽반장이 무전에 대고 광수대 대장에게 뭐라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다섯 층 쯤 내려갔을 때, 유리창 없이 뻥 뚫린 전면에서 놀라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콰장창!
“꺄아악!”
맞은편 빌딩 옆 유리창이 깨지며 한 사내가 튀어나왔다.
최소 10층 높이, 사내는 공중에서 수영을 하듯이 손을 허우적대다가 이윽고 반대편 건물 한 층 아래에 당도하여 창문에 한 번 부딪히더니, 뒤로 튕겨나갈 줄 알았는데 떨어지면서 창문틀을 잡았다.
“엇, 저게 뭐야!”
“사람이 매달려 있어!”
“또?!”
사내는 금세 올라가 창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사내가 튀어나온 깨진 창문 쪽에는 형사들이 닭 쫓던 개처럼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안으로 한 형사가 벽에 기대어 앉은 채 목에 피를 흘리는 것이 보인다.
-여, 여기 2조! 상현이형, 상현이 형이 당했어요! 범인은 반대편 건물로 날아갔습니다!
-상현이가? 범인은 날아가? 그건 또 뭔 소리야!
-구급차, 구급차 불러주세요!
한 형사의 간절한 목소리가 구원을 요청하는 그때, 해수는 막 1층에 도착했다.
마침 옆건물로 우르르 형사들이 몰려들어갔다.
건물과 건물 사이가 10미터 가까이 되어 보이는데도 망설임없이 뛰는 대담함, 바로 창문틀을 잡고 올라서는 민첩성.
저놈은 탈출을 위해서라면 또 똑같은 행동을 할 놈이다. 해수는 범인이 들어간 해당 건물이 아닌 그 다음 건물로 들어갔다.
콰장창!
또 하나의 유리창이 깨지며 사내가 튀어나와 옆 건물로 날아갔다.
드르륵-!
사내는 자신이 딱 도착해야 할 창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안에는 특급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신해수가 떡 하니 서 있었기 때문이다.
“와라.”
사내는 공중에서 몸을 틀 수도 없기에, 바로 주머니에서 단검을 꺼내며 해수에게 그대로 달려들었다.
사악-
칼끝이 해수의 뺨을 미세하게 긁고 지나간다. 그 사이 해수의 팔뚝은 사내의 상체를 후려치고 있었다.
후우웅-!
저 멀리서 전속력으로 뛰어오는 운동에너지로 바위에 부딪힌 꼴.
사내는 그대로 해수의 팔뚝을 축 삼아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았다가 바닥에 엎어졌다.
거의 동시에 해수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내리꽂혔다.
콰앙!!
코뼈와 앞니가 모두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고, 턱뼈가 부서진 사내는 그대로 대짜로 뻗었다.
해수는 다시 주먹을 들어올린 채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눈 떠, 안 뜨면 뜰 때까지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