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 퍼포먼스 >
창문너머에서 산들바람이 기분좋게 불어온다. 청량한 바깥 공기가 폐부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오성주 의원의 머리에 씌워져 있는 검은 천이 벗겨졌다.
“오랜만입니다. 의원님.”
오성주 앞에는 새하얀 머리칼을 지닌 중년인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천선생···.”
천선생 주변에는 날카로운 칼날같은 기세를 품은 사내 네 명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성인남성 열댓 명 정도는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 괴물들.
탈출은 꿈도 꿀 수 없다.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신해수가 있는 강진서 강력반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도 하고, 따님까지 그곳에 보내고, 이거 너무 공권력 남용 아닌가요?”
“공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의 방해를 막고 무로 돌린 것 뿐이오.”
천선생이 가만히 오성주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놈을 막기 위해 나도 힘을 쓴다. 어떻게 보면 나와 생각이 같군요. 우리 의원님, 회에 가입하시고 기대 많이 했었는데.”
“그런 곳인 줄 알았으면 가입하지 않았을 거요.”
그런 곳이라는 말에 천선생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허나 그는 금세 평온한 얼굴로 돌아와 말을 이었다.
“그런 곳, 그렇지 않은 곳은 모두 사람이 정한 기준이죠. 누구의 기준이 옳은지는 역사가 판단해줄 겁니다.”
오성주는 그 뒤에 이어질 말을 추측하며 미간을 좁혔다. 천선생은 힘이 곧 법이고 진리라는 말을 줄곧 해왔고, 칠성회 역시 그의 생각에 세뇌되어있다.
조르르르-
한 치파오 의상을 입은 늘씬한 미녀가 다가와 오성주와 천선생 사이에 있는 작은 유리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채워주었다.
천선생은 찻잔을 들며 오성주에게도 눈짓으로 차를 권했다.
“뭘 원하시오.”
오성주의 말에 천선생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원하는 거 없습니다. 의원님은, 아무것도 하실 게 없어요.”
“다 늙어빠진 의원한테 뜯어먹을 것도 없을 텐데.”
천선생이 조소를 머금었다.
“알아요.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
그의 입꼬리가 위험하게 비틀렸다.
스읍
천선생은 차를 한모금 음미하고는 찻잔을 내려놓고, 오성주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피식 웃은 그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삼선 의원님이, 서울 한복판에서 납치된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거에요.”
“······.”
“감히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날뛰는 몇몇 불순한 인간들에게 드리는 경고장이죠.”
천선생의 말에 오성주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천선생이 불길하게 웃음을 섞으며 말을 이었다.
“웬만하면 살려드리고 싶지만. 경고장이 더 효과가 좋으려면, 아무래도 죽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적당한 곳에서, 적당한 때에.”
* * *
-오의원, 오늘 오후2시30분경 센트럴파밀리에 호텔 지하1층 주차장에서 납치.
대낮에 유동인구도 많고 cctv도 많은 장소에서 무려 삼선 의원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은 굉장한 문제였다.
이상을 눈치챈 수행비서가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은 분명 비밀리에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누가 알렸는지 기자들이 갑작스레 너나할 것 없이 오의원 납치 관련 기사를 배포한 것이다. 당연하지만, 국회의원 납치라는 영화같은 일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넘치도록 충분했다.
너튜브에서도 해당 사건 관련 속보가 몇 시간 만에 100만 뷰를 달성할 정도였다.
* * *
강진서 강력반 사무실.
“야, 세상에 이젠 하다하다 대낮에 국회의원을 납치하고, 말세다 말세.”
국회의원이라는 말에 한 여형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니까요. 이 의원 경찰 어쩌구 관련해서 많이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안타까운 거지, 오랜만에 경찰 돕는 참 의원 나왔다 좋아했었는데.”
“팀장님은 아직 납치인데 꼭 사망 취급하시네요?”
동료 형사의 말에 팀장이 자조섞인 표정을 지었다.
“너도 알잖아, 납치 건은 생존률이···.”
드르륵-
그때, 여형사가 의자를 뒤로 확 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는 귀여운 얼굴에 싹싹한 행동, 털털한 성격과 더불어 무엇보다 일을 열심히 하여 같은 팀 형사들에게 예쁨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어 왜, 우리 막내 무슨 일 있어?”
“그, 그 국회의원 이름이 뭡니까?”
“아, 납치? 오···성주? 어어! 미연아!”
오미연은 다리가 풀려 비틀거리다가 다른 형사가 붙잡아줬다. 그녀도 지금서야 납치 사실을 접한 것이다.
강력반 형사들은 오미연의 아빠가 오성주 의원이라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
그녀는 머리를 털고는 재빨리 기사를 확인했다. 기사에 국회의원의 본명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수행비서의 이름은 성만 기록되어 있는데, 그녀가 알고 있는 성과 동일하다.
도무지 믿기 어려운 상황에 그녀는 일단 휴대폰을 든 채 사무실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막내야 괜찮아? 어디가?”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다. 손이 덜덜 떨린다. 그녀도 익히 알고 있다. 납치당했을 때 생존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한지.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에 금새 물방울이 맺혔다. 하지만 1분이 채 지나기 전,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찾아야 돼, 구해야 돼, 어떻게든···!”
그때, 저 멀리 경찰서 정문으로 들어오는 특수팀 형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고민없이 바로 그들에게 달려갔다.
“쟤 2팀 막내 아냐?”
“이쪽으로 오는데?”
“어어어!”
그녀는 전속력으로 달려오더니 신해수에게 안기다시피 매달렸다. 해수의 옷자락을 두 손으로 붙잡고는 붉어진 눈시울로 올려다보며 간절함을 담아 말했다.
“아,아빠가, 아빠가 납치 당했어요.”
팀원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의 아빠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해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 * *
강력반 사무실에 앉은 형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곽반장이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말했다.
“···광수대가 수사 중인 사건을 가져올 수는 없고, 협조요청이나 도둑수사를 해야한다는 건데···.”
하지만 당장이라도 수사에 끼어들고 싶다. 납치는 초동수사가 가장 중요한 만큼, 초반에 광수대가 수사한 정보가 절실히 필요하다.
신입이 오미연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다가 말을 내뱉었다.
“그, 그냥 서장님께 말씀드리면 안 됩니까?”
오갱이 고개를 저었다.
“서장님 허락이 문제가 아니야, 광수대 협조 받으려면 청장님이 직접 개입해야 돼. 근데 현 청장은···.”
쿨하고 지원도 빵빵했던 청장이 떠나가고, 그 다음의 쓰레기같은 청장은 로비 건으로 사직한 후. 정말 답답할 정도로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고지식한 청장이 자리를 잡았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해수는 오성주 의원과의 만남과 그의 도움을 떠올리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지이이
“신해수입니다.”
해수는 진동이 한 번의 울림을 다 채우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빨리도 받네, 신형사, 바쁜가?
전화하려고 했던 대상, 조감찬 의원의 전화였다. 해수가 대답하려는데, 수화기 너머로 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바빠도 웬만하면 미루고 이것부터 맡아요. 내 권력 악용하는 거니까 무조건 들어야 해, 지금부터 오성주 의원 찾아줘요. 나머지는 다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쪽 청장한테는 이미 얘기 다 해놨어요.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해수는 이를 악물고 벌떡 일어났다.
“네, 알겠습니다!”
* * *
오미연은 자신의 팀에 오성주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히고, 특수팀에 합류했다.
특수팀은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 광수대에 합동수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오의원을 태운 차량은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사각지대 구역에서부터 사라졌고, 사각지대 구역에서 버려진 오의원의 차량을 발견했다.
차를 바꿔 태운 것이다. 버려진 차량 근처에는 cctv나 블랙박스 등 무언가 힌트를 얻을만 한 것도 없었다.
오성주 의원의 휴대폰은 지하주차장 출입구에 버려져 있었다.
유일하게 지하주차장에서 범인들의 얼굴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이 하나 있었다.
영상을 보던 해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의원이 수행비서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장소를 특정할 수 없는 곳에서 검은 수트를 입은 남자 둘이 튀어나와 그들의 뒤를 따라간다.
수행비서가 오의원을 태우고, 뒷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걸어가는 그 사이, 운전석 손잡이를 막 잡았을 때 남자 한 명이 그를 덮쳤다.
타닥 퍽-
팔을 꺾고 손바닥으로 턱을 후려치는 그 일련의 과정이 신속하고 정확하다.
그 깔끔하고 위협적인 실력, 무심한 얼굴, 해수는 그들이 회사원임을 확신했다.
‘천선생.’
천선생의 짓이라면 추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이런 일을 수없이 해왔던 자들이니.
범인을 천선생이라고 생각하자 기사가 왜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빨리 퍼졌는지, 사건이 왜 이렇게 경찰이 의도하지 않게 커졌는지도 전부 이해가 되었다.
그는 오성주 의원이 납치된 것을 전국민이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납치는 시간과의 싸움, 광수대는 흔적을 찾게 두고, 특수팀은 범인이 특정되니만큼 어디로 데리고 갔을지 추정하고 찾는다.
“오형사, 전화 따로 안 왔지.”
“네···.”
“전화라도 와야 수사방향을 제대로 잡을 텐데, 이건 뭐···.”
납치는 보통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흥정을 하기 위해 한다. 그것은 열에 아홉은 돈이지만, 오성주 의원같은 거물일 경우에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해수는 천선생의 얼굴을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다.
“전화는 오지 않을 겁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오갱의 물음에 해수는 자신의 추측을 가감없이 특수팀에게 전했다. 같이 천선생과 회사원들을 조사해보기도 했고, 몇 년동안 함께 손발을 맞춘 만큼 이들을 믿는 것이다.
특수팀은 머리를 맞대고 천선생이 오성주 의원을 어디에 감금했을지 그 장소와 납치 동기, 목적을 고민했다.
오갱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하··· 도대체 모르겠네, 그 돈 많은 선생이 돈 달라고 그런 일을 벌인 건 아닐 테고, 나는 도무지 그 높으신 새끼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저도··· 어디로 데려갔을지도 감이 안 잡히네요.”
“오형사, 뭐 짐작가는 거 없어?”
오미연은 미간을 좁힌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모르겠어요. 저는 그 천선생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 못해서···.”
스윽
“아잇, 깜짝이야!”
그녀의 말에 해수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화들짝 놀란 오갱을 뒤로 하고 임시본부에서 나가며 안쪽 깊숙한 곳에서 대포폰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지금 바로 전달 좀 부탁합니다.”
-아 예예, 당연히 그래야죠, 잠시만···
수화기너머로 바쁘게 뛰어가는 발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그러고는 익숙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지하 저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동굴 목소리, 마실장이다.
해수는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마실장은 천선생의 최측근답게 오성주 의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답변은.
-못 찾는다.
“···뭐?”
-지금도 천선생과 회사원들을 찾으려 했지만 못 찾지 않았나?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천선생이 마음먹고 숨기려 한다면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어.
“······.”
해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맨 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는데, 마실장이 단호하게 말하니 정말 그럴 것만 같아 절망이 찾아왔다.
해수는 실망하며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데?”
-무언가 얻어낼 게 없는 오성주를 납치했다면 목적은 뻔하지, 퍼포먼스
“퍼포먼스?”
-다른 회원에게 경고하려는 거야. 납치하자마자 기사를 뿌린 거 보면 이 납치의 끝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려 하겠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봐, 그러면 시체라도 건질 수 있을 거다.
충격적이지만 일리있는 말이다.
‘퍼포먼스, 납치의 끝.’
* * *
그날 밤, 서울 도심 한복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길거리 인근에 높은 빌딩이 지어지고 있다.
빌딩 끄트머리에 설치되어 있는 크레인이 움직인다.
기이이이이익-
“저,저게 뭐야?”
“저거 사람 아니야?”
“미친··· 야 찍어 찍어!”
“신고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움직이는데?”
사람들은 크레인 고리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는 영상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재갈이 물려있는 오성주였다.
“비켜요! 비켜주세요!!”
빵빵 빠아아아앙!!
“아 시팔! 나도 비키고 싶다고!”
누군가가 119와 112에 신고를 했고, 긴급 출동을 했지만 수많은 인파와 차량이 밀려 안으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여기 미쳤어요! 그 오상주? 오성주? 그 국회의원이 매달려 있어! 시청자들 보여?”
사람들이 금세 몰려들었고, 기자와 너튜버들도 생방송을 진행하느라 바빴다.
“제발, 제발 좀 비켜주세요 다들!!”
빵 빵!
뒤늦게 달려온 오미연이 울면서 사람들에게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특수팀은 차량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 갔다가 차에서 내리고 현장 빌딩으로 달려 들어갔다.
기이이익-
대충 보기에 크레인 조종석에는 사람이 없어보였다. 그런데 움직인다.
크레인 끝부분이 들어올려지고, 고리가 점점 위로 올라갔다.
“어어어!”
각도가 점점 기울어지고, 고리에 걸려있는 오성주 의원을 지탱하는 밧줄이 고리에서 스르르 내려간다.
“꺄아아악!”
미연의 비명이 도심 한가운데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