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 납치되셨습니다. >
박진상은 말도 제대로 꺼내기 전에 차이자 어이가 없어 멍하니 그 묘령의 여성을 바라보았다.
“야, 내, 내가 뭔 말을 할 줄 알고?”
묘령의 여성, 하루는 진상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뒤에 다른 사내들도 둘러보고는 가느다란 검지를 들어 귀를 톡톡 두드렸다.
“다 들려, 니네 그 더러운 말.”
그녀의 말에 진상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아 그래? 그러면 뺄 필요 없겠네, 좋은 말로 할 때 같이 가자, 우리가 알다시피 너같은 년 소리없이 데려가는 건 일도 아니거든?”
전직 형사 앞에서 대놓고 범죄를 예고한다. 하루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 특히 남자들의 시선이 많은데, 나서서 도와주고 싶지만 박진상 패거리가 만만치 않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하루는 남자화장실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진상을 보고는 턱짓을 했다. 그러고는 팔짱을 끼고 도도하게 걸음을 옮겼다.
박진상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이죽거렸다.
“이쁘장한 얼굴만큼 머리가 잘 돌아가는 여자네.”
하루가 그들을 이끌고 간 곳은 3층 폐백실 옆 탈의실이었다.
아직 식도 시작하기 전이기에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방이 막힌 공간으로 데리고 오자 진상이 흥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뭐야 뭐야 여기는? 여기서 바로? 이거 생각보다 화끈한 여자네?”
하루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기가 바로, 네 무덤.”
“어 그래그래, 지가 직접 궁지로 끌고와서 짖어대는 쥐는 처음 보네. 이리 와, 오빠들이랑 재밌게 놀아보자.”
가소롭다는 듯 대답한 그가 두 손을 펼치며 다가오자, 하루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박진상은 귀엽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다시 손을 들었다.
“그래, 그렇게 튕기는 맛이 있어야···.”
콰광!
그때, 잠가놓았던 탈의실 문이 강제로 열리며 문 앞에 있던 사내가 문에 부딪혀 나가떨어졌다.
그 커다란 소리에 진상은 물론이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 전부 시선이 집중되었다.
활짝 열린 문 앞에는 문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덩치에 살벌한 인상의 남자가 서 있었다.
해수는 그들을 둘러보다가 하루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얘네, 뭐야.”
“이 덩어리가 저를 강제로 하룻밤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전에는 오지연님의 결혼식을 망친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기다렸다는 듯이 진상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 톤으로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쳤다.
그것까지 들은 줄 몰랐던 박진상의 눈동자가 확 커졌다.
그러나 상대는 한 명, 아무리 잘 단련된 근육질이라고 해도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도 모두 근육질에 유도유단자다.
“넌 또 뭐냐, 야, 저 새끼 먼저 밟아.”
“어이, 이리 와, 여기서 무릎 꿇고 손···아아악!!”
으름장을 놓은 한 사내가 해수에게 손을 뻗어 휘적거린 순간, 해수는 그의 손을 잡아 손목을 안쪽으로 꺾으며 문을 다시 닫았다.
우드득
기괴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사내는 그대로 주저앉아 비명을 내질렀다.
그 행동을 필두로 다른 사내들이 해수에게 달려들며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뻗었다.
해수는 자신이 잡고 있던 사내의 팔을 위로 들어 어깨와 팔꿈치를 확 비틀어버리고는 옆으로 치우고, 날아오는 주먹을 상체를 틀어 손쉽게 피하고 따귀를 갈겼다.
퍼억!
단순한 따귀인데, 사내가 그대로 옆으로 날아가 사물함에 머리를 부딪혔다가 스르르 내려앉았다.
발을 뻗는 다른 사내에게는 마주 발을 뻗었다.
뻐억!
해수의 발등에 물컹한 무언가가 톡 터지는 촉감이 느껴졌다.
“끄으어어!!”
사내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박진상이 욕을 내뱉으며 해수에게 달려들려던 그때, 짧은 치마때문에 나서지 않았던 하루가 그의 오금을 발로 차고.
“억!”
한쪽 무릎을 꿇었을 때, 반바퀴 돌며 뒤차기로 그의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뻐억!
진상은 골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옆으로 엎어졌다.
쭉 뻗은 해수의 손에 마지막 남은 사내가 잡혔다. 해수는 사내를 높이 들어올렸다가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앙! 빠직!
동시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소리와 함께 시뻘건 물이 그 사내에게서부터 흘러나왔다.
해수는 피인 줄 알고 흠칫 놀랐다가, 그 점도나 색이 자주 봐왔던 피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안심하며 살펴보았다.
“킁킁, 페인트?”
해수와 하루가 눈이 마주쳤고,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른 사내들의 품을 뒤적거렸다.
그들의 품에는 500ml 플라스틱 생수병을 하나씩 품고 있었다. 그 안에는 빨간 페인트가 담겨 있었다.
결혼식을 망치겠다는 사람들이 품에 빨간 페인트를 들고 온 것이다.
싸늘한 얼굴의 하루가 구두를 신은 발로 박진상의 목을 지그시 밟으며 페인트가 든 생수병을 들어보였다. 그녀도 페인트가 뭔지, 지금 이들의 속셈이 뭔지 대강 짐작한 것이다.
“이걸로 뭐하려고 했어.”
올려다보면 속바지가 보일 정도로 아찔한 구도지만, 진상은 그것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목을 짓누르는 고통이 강했다.
“커,컥, 죄,죄송, 이,이것 좀···.”
해수가 하루의 가느다란 발목을 잡아 살짝 들어서 치웠다. 하루는 해수의 커다란 손에 발목이 잡히자 목가죽을 잡힌 고양이마냥 얼음이 되어 가만히 있었다.
해수는 진상의 짧은 머리칼을 엄지와 검지로 쪽집개처럼 쥐고 뒤로 천천히 젖혔다.
진상은 목을 누르는 압박에서 벗어나 말을 할 수는 있었지만, 머리가죽이 뜯겨져 나갈 것 같은 고통에 정신이 없었다.
해수가 그의 머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M자 탈모가 있네.”
진상은 해수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하지 못하고 그저 겁먹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묻는 말에 거짓말하면 머리카락 백 개씩 뜯는 거야.”
“···네?”
뿌드득-
“아아악!!”
되묻자마자 해수가 머리카락을 한움쿰 뜯어버렸다. 뿌리까지 뽑혀나온 머리 끝에 머리가죽과 피가 살짝 묻어있다.
“이건 맛보기, 저거 뭐하려고 가져왔어.”
“저, 저건 우리가 일하다가 중간에 와서··· 아악!!”
해수가 또 다시 한움쿰 머리카락을 뜯었다. 탈의실 안에는 꽤 오랫동안 섬뜩한 비명이 들려왔다.
* * *
박진상 패거리는 빨간 페인트를 신부가 입장할 때 뿌리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도 않는 돌머리들이었다.
해수는 당장에 그들을 우강철에게 넘기지 않고, 황장수를 불러 탈의실을 지키게 하였다.
그의 처신에 하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신랑신부에게 알리지 않습니까?”
박진상의 속셈을 캐내느라 시간을 허비한 탓에, 벌써 시작한 결혼식.
결혼식장 맨 뒤에 선 해수는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작게 입을 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한국 속담이 뭔지 알아?”
“속담? 뭡니까?”
하루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한국어학원을 다닐 때 속담을 자주 공부했던 하루였다.
학원 외에는 속담을 거의 쓰지 않기에 속담 얘기만 나오면 학원에서의 추억이 떠올라 괜히 신나는 하루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아···?”
뜻은 알지만, 상황에 바로 적용하지 못한 하루가 고개를 갸웃했다.
해수는 조용히 설명을 덧붙였다.
너튜브 등에도 떠도는 가짜 뉴스를 예시로 들었다. 그저 조회수만 얻기 위한 수많은 거짓말들을, 절반은 뭔가 구린 게 있으니 그랬을 거라며 옹호하는 인간의 더러운 심리.
아무 근거없는 카더라 찌라시를 합리적인 의심으로 치부하는 게 해수는 너무 싫었다.
곧 상황을 이해한 하루 또한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렇듯, 진상짓을 하는 하객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앞에서는 진상들을 욕하겠지만, 뒤에서는 당하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게 욕한다. ‘그럴만 한 짓을 했겠지.’ 하며.
해수는 좋은 날, 우강철 오지연 부부가 그런 구설수에 오르지 않게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진상 패밀리의 존재를 지웠다.
결혼식이 끝난 후, 해수는 우강철에게 박진상 패거리의 존재를 은밀하게 알렸고, 하객들이 모두 나가고 나서 그들을 끌고 직접 경찰서로 향했다.
격분한 오지연을 통해서 박진상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박진상? 그 또라이가? 와 진짜 미친 새끼 아니야!!”
그녀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간단했다.
오지라퍼연은 편견없이 남들을 바라보는 만큼, 남들에게 항상 친절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예쁜 여자의 친절은 수많은 남자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박진상은 그 중 한 명이었고, 몇 번이나 고백을 했고, 차일 때마다 이름처럼 깽판을 치며 진상짓을 했다고 한다.
진상이 모두 자초한 짓이지만, 그는 자신의 평판이 개망나니가 된 것이 받아주지 않은 오지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박진상 패거리의 목적이 위해가 아닌 결혼식 망치기라는 것인 데다가 초범이기에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오히려 하루와 해수를 폭행죄로 고소하는 뻔뻔함까지 보였으나, 정당방위로 인정되었다.
* * *
“음 흠흠, 음 흠.”
늦은 밤, 박진상은 콧노래를 부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로등도 고장났고 인적도 드문 골목길이지만, 항상 주먹은 갑으로만 살아온 진상은 자신이 위협이면 위협이지 무서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타다닥-
그때, 검은 인영이 튀어나와 진상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진상은 반사적으로 괴한의 멱살을 잡아 업어치려고 했으나, 괴한이 그의 다리가 나오는 것과 허리를 비트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여 속절없이 뒤로 밀렸다.
진상의 눈동자가 떨렸다. 유도를 빠삭하게 알고 있는 상대다.
괴한이 진상을 벽까지 밀어붙이고 웬만한 성인남성 허벅지같은 두꺼운 팔뚝으로 그의 목을 압박하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박진상.”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
괴한이 깊게 눌러쓴 후드를 벗었다. 우강철이었다.
진상은 오지연의 별스타그램에서 우강철의 사진을 자주 보았기에 그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너는···!”
“네가 강한 줄 알지.”
우강철은 그를 압박하던 팔뚝을 풀고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마음껏 덤벼봐.”
“이 새끼가···.”
자존심이 긁힌 진상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바로 달려들어 손을 뻗었다.
우강철은 그의 팔 한 쪽을 낚아채며 동시에 멱살을 잡고 반대편으로 업어쳤다.
쿠웅!
그러고는 무릎으로 흉부를 누르고, 손으로 얼굴을 눌렀다.
“박진상, 이 나라 법이 네 편이라고 생각하지? 기다려라, 날, 우리를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쾅!
우강철의 주먹이 진상의 얼굴 바로 옆 땅바닥을 찍었다.
그 풍압을 고스란히 느낀 진상은 눈을 찔끔 감고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박진상은 우강철의 말뜻을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다.
“박진상씨, 당신을 횡령 및 성추행, 성폭행, 특수폭행 등의 혐의로 체포합니다.”
“뭐, 뭐···?”
무법자처럼 살았던 박진상, 운 좋게 경찰의 손에 걸린 적이 없어서 그의 행동은 점점 대담해졌고, 수많은 범죄를 낳았다.
그리고 해수의 아지트 팀에 의해 그가 대학교 시절 유도동아리 회장으로 있을 때 횡령 건부터 해서 여학우 성추행, 성폭행, 성폭행 미수, 폭행, 특수폭행 등 수많은 혐의가 밝혀졌다.
최소 10년형은 확정이었다.
박진상의 눈동자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 * *
“의원님, 들어가십시오.”
“살펴가십시오. 의원님, 언제나 사랑합니다!”
“허허, 수고들 하셨어요. 들어들 가요.”
오성주 의원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수행비서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는 기업가 출신으로 재산이 많은데도 경호원 없이 단출하게 다닌다.
덕분에 수행비서가 운전기사 역할까지 해야 하지만, 그만큼 보너스 월급을 많이 챙겨주기에 불만은 없었다.
“머리 조심하시고.”
수행비서가 뒷문을 열어주었고, 오성주 의원이 뒷자리에 탔다.
문이 닫히고, 수행비서가 운전석 문을 열고 탔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옷은 똑같지만 뒤통수가 수행비서와는 조금 다르다. 백미러로 보니 눈을 마주쳤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오성주 의원은 미간을 좁히며 경계했다.
“자넨, 누군가?”
덜컥-
그때, 의원 반대편 뒷좌석 문이 열리며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탔다.
그 역시 처음 보는 얼굴, 오성주 의원은 문이 닫히기 전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수행비서를 발견했다.
옆에 탄 사내가 건조한 눈으로 오성주 의원을 보며 고저없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의원님은 지금 납치되셨습니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