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 결혼식 진상 >
여자는 마치 선택을 피하고 싶은듯 오지연과 뒤에서 다가오는 문신돼지를 번갈아 보면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야, 와라, 저년도 뒤지는 꼴 보기 싫으면.”
여자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오지연의 시선이 문신돼지에게 고정되어 있다. 여자는 저 눈빛의 의미가 추측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으레 그러했듯이, 문신돼지를 보고 전의를 상실, 또는 두려움을 느끼고 몸이 얼어붙은 것이다.
자신의 위기로 남에게 피해를 줄 순 없다. 여자는 단념하며 한 걸음 물러나 현관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때.
턱
오지연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안으로 확 잡아당겼다.
“헙!”
그러고는 가녀린 손목에 비해 어찌 그리 힘이 쎈지, 여자를 끌고 거실 안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문신돼지가 현관문도 닫지 않고 들어가는 오지연을 보며 이죽거렸다.
“지랄을 한다, 지랄을.”
현관문에서 거실로 가는 길은 기역자로 꺾여있다. 거실 쪽에서 한 남자의 머리가 쏘옥 튀어나와, 문신돼지와 눈이 마주쳤다.
문신돼지는 피식 웃었다. 꼴에 남자 한 명 있다고 그거 믿고 현관문도 닫지 않고 들어간 것이 가소로웠다.
“뭐, 뭐 이 씨발아, 너도 뒤지고 싶어?”
문신돼지가 칼 끝으로 그를 가리키며 이죽거렸다. 그러나 상대는 희한하게도 무시무시한 몸집과 칼을 보고도 표정변화 하나 없었고, 오히려 손을 뻗어 안쪽으로 까딱거렸다.
“허허, 이 새끼 봐라, 나 들어가면 니네 집 피바다 되는 거야.”
상대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쏙 사라졌다.
건방지기 짝이 없다. 문신돼지는 오랜만에 몸 좀 풀겠다는 생각에 어깨를 돌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씨팔년놈들이 쌍으로 지랄을 하는구나, 일단 쳐맞고···.”
거들먹거리며 거실로 들어섰던 그가 멈칫했다.
안에는 강철같은 근육을 지닌 사내들이 네 명이나 둘러 서 있었다.
문신돼지는 순간 뇌정지가 와서 멀뚱멀뚱 서 있었다.
삐빅 철컥-
-문이 잠겼습니다.
어느새 우강철이 현관문을 닫고, 문고리까지 걸어서 탈출을 방지했다.
“하, 하하, 믿는 구석이 있었구만, 쌍년이.”
문신돼지는 잠깐 당황했지만 여전히 그의 살기는 그대로였다.
오지연에게 손목이 잡혀 들어온 여자도 근육질 사내들을 보았지만 안심이 되지는 않아 얼굴이 어두웠다.
문신돼지는 덩치와 문신만 위협적이지 않다. 건장한 대학생 세 명도 어린애처럼 갖고 놀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어서, 더 두려운 것이다.
문신돼지가 냉소를 흘리며 칼을 들어 신해수를 가리켰다. 해수를 이 무리의 대장으로 여긴 것이다.
“야, 내가 누군지 알아?”
얼떨결에 문신돼지에게 지목당한 해수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네가 누군데.”
“내가 용수동 빨간 도끼야, 빨간 도끼. 어디 헬스장에서 근육만 쳐 불리고 까부는데, 그러다 모가지 빵꾸 뚫린다. 뒤지기 싫으면 저년만 내놔.”
그래도 들어오자마자 바로 칼부림을 할 것만 같던 문신돼지의 기세가 확 줄긴 줄었다.
장담할 수 없는 싸움이니, 일반인이 쉽게 마주할 수 없는 칼로 겁을 주면서 협상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에게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하며 뇌리에 그를 향한 공포가 깊게 새겨진 여자가 덜덜 떨며 오지연의 뒤로 숨었다.
해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빨간 토끼?”
주변에 다른 팀원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조롱에 문신돼지가 인상을 찌푸리며 칼을 든 팔을 뒤로 확 젖혔다.
“이런 시팔새끼가! 뒤져!”
그것이 해수를 향해 휘둘러지기 직전.
터덕- 훙-!
문신돼지의 시야가 빙글 돌았다.
쿠우웅!!
그러고는 어마어마한 충격과 함께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고 시야가 갑자기 까맣게 변했다.
다시 회복되는 시야로, 맨 처음 얼굴을 빼꼼 내밀었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사내, 우강철이 악귀같은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감히 내 집에서 칼을 휘둘러?”
문신돼지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버둥거리며 우강철을 공격하려고 했다.
턱 우드득
그러자 우강철이 그의 손목을 낚아채어 확 꺾었다.
“아아악!!”
“아직 안 끝났어, 이자식아.”
문신돼지는 힘은 어디에서도 꿀린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마치 자신이 어린애가 된 것만 같은 멍청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이 눈앞의 근육돼지가 하는 대로 몸이 휘둘러질 뿐이었다.
으드득-
“아으악!!”
우강철이 그를 돌려서 두 손목을 겹쳤고, 신입이 눈치껏 다가와 케이블타이로 손목을 묶었다.
곽반장을 힐끔 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강철은 무릎으로 문신돼지의 목을 강하게 압박하며 물었다.
“용수동 빨간 토끼, 널 특수폭행 및 살인미수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변명할 기회가 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여자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릴 때, 오지연이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으며 말했다.
“이분들 다 강력반 형사님들이에요. 이제 안심하셔도 돼요.”
곽반장이 지갑을 꺼내어 경찰공무원증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제야 여자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아, 아아···.”
뒤늦게 안도감이 찾아들었다.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멍하니 눈만 깜박거리던 여자는 평생 운을 오늘 다 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해수가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고, 근무 중인 경찰관들이 와서 문신돼지를 현행범으로 연행해갔다.
칼까지 직접 휘두른 것을 형사들이 단체로 보았으니 그는 조사 중에도 절대로 풀려날 수 없을 것이다.
“강수대 형사님들은 퇴근하시고도 일을 하시네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서로···.”
“아아 예, 물론이죠, 우리 다 같이 바로 서로 가겠습니다.”
경찰의 조심스런 요청에 팀원들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서 작성을 위해서 피해자와 관련자들이 서로 출석을 해야만 했다.
오늘 집들이는 이로써 파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우강철이 오지연에게 속삭였고, 지연은 다급히 안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그 사이 우강철은 입구에서 두 손을 뻗어 사람들을 막으며 말했다.
“잠시만, 잠시, 오늘은 사실 목적이 있는 초대였습니다. 목적은 이뤄야겠습니다.”
“뭐지? 목적?”
“어어 그려? 말해봐.”
우강철이 오지연에게 두꺼운 봉투를 받아 특수팀들 앞에서 넓게 펼쳤다.
“짠, 저희, 드디어 결혼합니다. 이건 청첩장입니다.”
분홍 꽃이 그려져 있고, 그 중심에 남녀가 손을 맞잡고 있는 그림.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화사한 청첩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휘유우!!”
“엇, 근데 그러면 우대리님이 신과장님보다 먼저 가시는 겁니까?”
눈치 빠르고 사회생활 만렙인 신입이 이때는 왜 그랬을까? 그의 말에 신해수는 물론 하루도 움찔했고, 집 안에 정적이 흘렀다.
“축하한다. 축하해요. 제수씨.”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신해수였다. 그의 말에 다시금 분위기가 풀어졌고, 우강철이 청첩장을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신입의 말을 못들은체하고 있었다.
오지연이 그 중 한 장을 옆집 여자에게 주었다.
“첫인사부터 시끄러웠네요. 부담없이 생각해주세요.”
여자는 청첩장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과는 달리 행복한 예비부부를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오지연은 그녀를 말없이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 * *
“주기적인 폭력에 성폭행, 왜 신고를 안 하셨습니까?”
“···무서워서요.”
문신돼지와 여자는 사실혼 관계가 아닌, 동거하는 사이였다.
그것도 여자의 말에 따르면 몇 년 전에 사귀었다가 깨졌는데, 그 뒤로 계속 쫓아와서, 결국 반강제로 동거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무자비한 폭력, 그의 손에 걸려 피해를 입는 이웃들, 친구들을 보며 여자는 그에게 평생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했다고 한다.
신고하면 복수당할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지옥에서 살았던 것이다.
조서 작성 후, 경찰서를 나서는 길, 신해수는 우강철을 따로 불러서 명함을 주었다.
“이건··· 구세주 사장?”
“이 명함을 그 여자분에게 드려, 새 출발 하실 수 있게 도와드릴 거라고.”
“제가 말입니까?”
“내가 하는 것보다 이웃이 하는 게 낫지.”
“역시 선배님, 어쩜 그리 생각도 깊으신지··· 알겠습니다!”
해수의 부탁대로 우강철은 이웃집 여자에게 구세주 사장의 직통 번호가 있는 명함을 주었다.
“그분, 이전에 벌인 죄들도 모조리 엮여서 최소 10년형 이상은 나올 텐데요. 그래도 불안하실까 봐 드려요. 여기 연락하시면 새출발하실 수 있게 도와드릴 겁니다.”
“아··· 이렇게까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강철은 해수의 단골멘트를 날리고는 뿌듯해하며 뒤돌아섰다.
해수에게 미리 언질을 받은 구세주 사장은, 재판 이후에 여자의 주민등록번호와 휴대폰 번호, 이름, 주소까지 추적이 되지 않게 싹 다 바꾸도록 돕는 것은 물론, 새 보금자리까지 알아봐주었다.
* * *
“우아아암.”
하루는 전에 먹지 못했던 매운볶음면+치즈+참치마요 삼각김밥을 완성시켰다.
젓가락으로 돌돌 말아서 공처럼 보일 정도로 뚱뚱하게 만들고는, 입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벌리고 넣으려는 순간.
“멈춰.”
턱-
방에서 나온 해수에게 손목이 잡혔다.
“아, 으,어!”
바로 코앞에서 먹지 못한 하루는 그것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치아를 딱딱거렸다.
하지만 해수는 굳건하게 그녀의 손목을 잡은 채 말했다.
“그거 먹을 때가 아니야, 오늘이다. 우강철 결혼.”
홀린듯이 치아를 딱딱거리던 하루의 입이 멈추었다. 그녀는 물러나서 휴대폰을 보고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아!”
하루는 우강철과 오지연의 결혼식을 목놓아 기다렸다.
생전 처음 가보는 결혼식이다. 마치 자신이 결혼을 하는 것마냥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녀는 준비해둔 옷을 입었다.
몸에 적당히 붙는 파스텔톤 분홍 원피스에 플랫슈즈, 그리고 코트를 걸쳤다.
해수도 검은색 깔끔한 수트에 코트를 입고, 하루와 함께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 * *
결혼식장은 2층 크리스탈 홀이었다.
입구에서 우강철이 터질듯한 턱시도를 입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손님들과 바쁘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예 안녕하세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 쩩키! 왔어? 다른 놈들은?”
맞은편의 신부 대기실에는 천상의 옷처럼 하얗고 밝게 빛나는 드레스를 입은 오지연이 대기하고 있었다.
항공과 출신에 현직 스튜어디스이다보니 그녀의 친구들 또한 외모가 출중한 여성들이 식장에 많이 보였다.
신랑 친구들이 눈이 휘둥그레져, 여기저기 살피다가 입을 떡 벌릴 정도였다.
꽃향기가 짙으면 벌레들도 꼬이는 법이다.
웨딩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넓은 계단에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다섯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앞에 있는 근육질에 짧은 머리를 한 사내가 인상을 팍팍 쓰며 계단을 오르자, 그들과 마주친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양옆으로 갈라져 길을 텄다.
이를 본 근육질 사내는 작은 우월감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중얼거렸다.
“오지연, 시팔, 날 그렇게 개망신주고 지는 시집 잘 간다고? 오늘 한 번 제대로 결혼식 망쳐주마.”
그는 오지연과 같은 대학교 선배로, 사회체육과이자 유도동아리 회장 박진상이었다.
그의 양옆에 있는 사내들 또한 그처럼 몸이 좋고 인상이 사나웠다.
그 중 한 명이 아랫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그런데 스튜어디스면 이쁜 친구들도 많은 거 아닌가?”
“그러니까 우리가 가는 거 아니야, 이참에 승무원하고 좀 즐겨보자.”
“벌써 군침이 싹 도네··· 어?”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거의 다 올라갈 때쯤, 그들은 계단 끄트머리에 한 여성이 우뚝 서서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흑진주를 갈아넣은 것처럼 새까만 생머리, 신비롭게 반짝이는 눈동자, 유려하게 휘어진 속눈썹, 살짝 잡힌 허리라인이 돋보이는 코트, 그 아래 새하얀 종아리까지.
마치 만들어진 것처럼 완벽한 남자들의 이상형 등장에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복수를 다짐하고 온 박진상과 그의 친구들은 목적을 잃고 일제히 정지하여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먼저 정신을 차린 박진상이 손으로 자신의 짧은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기고는 그녀를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쟤 오늘밤 나랑 보낸다.”
그가 근거없는 자신감을 내뿜으며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