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분노조절잘해 >
정남수의 아빠 정의찬은 고개를 조아리며 전화를 받았다.
“김선태 이사님이 제게 직접 전화를··· 네? 예? 가,갑자기요? 제가 무슨 잘못을···.”
남수 아빠가 황당한 얼굴로 말을 잇다가,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는지 귀에서 휴대폰을 떼었다.
그의 경악어린 시선 끝에는 황장수의 비서, 신해수가 있었다.
“다, 당신 뭘 어떻게···!”
황장수는 영문을 몰라하는 황지구의 머리를 슥 쓰다듬으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른 학부모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대단하신 분들이더라고요. 자식새끼들은 개차반으로 키워놓고.”
“뭐,뭐야?”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장수가 권태로운 표정으로 해수를 쳐다보고는 턱짓했다.
그 아랫사람 대하는 태도에 해수의 눈빛에서 순간 살기가 흘러나왔지만, 장수는 헛기침을 하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신해수는 야무지게 챙겨온 테블릿을 꺼내며 누군지 맞춰보라는 중년인과 눈을 마주했다.
“선웅 아버지, 강진지검 3부 부장검사님.”
“그래! 내가 말 한 마디면···.”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가 말을 잇는 중에 전화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는 사이, 해수는 다음 중년인을 보며 말을 이었다.
“건석 아버지, 수항재철 자재과장님.”
지이이잉 지이이잉
“용준 아버지, 구의원 준비중이시군요.”
“그,그건 어떻게···?”
띠리리링 띠리리링
해수는 할 일을 끝냈다는 듯이 테블릿을 옆구리에 끼고 한 발 물러섰다.
정남수의 아빠는 얼이 빠져 있고, 다른 학생의 아빠들은 전화를 받기 급급하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놀람과 당황, 절망이 가득했다.
전화는 금방 끊겼고, 황장수가 말을 이었다.
“자, 이제 뭐가 더 중요해졌습니까? 사고 치는 사랑하는 자식? 아니면 내 밥벌이?”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자, 같이 온 정남수의 엄마가 소리쳤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이에요? 저기요, 교감선생님? 지금 저거 왜 방치하고 있어요? 남편들 직장으로 협박하고 있잖아요?! 불합리하잖아요?!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이러면 안 되잖아요?”
“아, 음, 그게··· 저는···.”
아까 지구의 아버질 매장하네 마네할 때는 언제고,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교감선생의 반응이 미적지근하자 그녀가 자신의 남편을 붙잡으며 말했다.
“당신도 뭐라고 좀 해봐! 이러다 우리 애가 전학가게 냅둘 거야?”
그러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남편이 그녀의 손을 날카롭게 뿌리쳤다.
“이것 좀 놔! 지금 뭐가 중요한 지도 모르고! 정신나간 여편네가 진짜!”
하나 둘, 아빠들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가장 먼저 돌아선 것은 정남수의 아빠였다. 그가 시선도 맞추지 못하고 황장수에게 다가와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저, 그, 지구 삼촌, 내가, 아니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를 필두로 다른 남자들도 다가와 머리를 조아렸다. 학생들은 처음 보는 아빠의 빌빌 기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입을 쩍 벌렸다.
정남수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황지구 이 개새끼야!! 이렇게 더럽게 나온다 이거야? 니가 잘못-”
그 순간, 정남수의 아빠가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짜악!
“닥쳐 이 자식아!! 아빠가 네가 하는 짓거리 모르는 줄 알아?! 어떻게 내 피에서 너같은 망나니 새끼가 나온 건지···.”
“아, 아빠···.”
남수 아빠는 남수의 멱살을 쥐고 얼굴을 가까이 했다. 그는 진심이었다.
“네가 니 형 반만 닮았어도··· 너, 너 때문에, 내가 이룬 모든 게 무너지게 생겼어! 넌, 오늘부터 내 자식 아니야, 알아들어?”
“당신 지금 뭐하는 짓이야!!”
아들을 향한 도를 넘는 협박에 남수 엄마가 나섰다. 다른 학부모들도 딱히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쌍소리에 이어 이혼까지도 심심찮게 들렸다.
개판이 된 학폭위는 당연하게도 황지구 부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많은 대기업이 무너지는 가운데, 아직 건실한 대성과 송양의 힘을 빌린 황장수의 권력은 일개 고등학교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구의 고등학교에서 이번 사건을 절대 묵과할 수 없었고, 따돌림, 집단폭행 기록이 가해자의 학생기록부에 똑똑히 남겨졌다.
폭행에 가담한 학생들은 전부 전학이나 퇴학을 당했고, 그 후로 치러진 재판은 이전에 예상했던 결과와 달리 실형이 내려졌다.
* * *
황장수와 이별을 하는 날, 황지구는 아쉬움에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황장수도 같은 황씨에다가 지구가 자신을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따르는 것이 보여 정이 들어버렸다.
“이제 못 보겠죠?”
“어, 나 바쁘거든. 여기 살지도 않아.”
하지만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지구는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용기내어 눈을 마주했다.
“네, 감사합니다.”
“야 나름 큰일 했는데 감사인사가 많이 심심하다? 금일봉이라도 좀 주든지.”
“아···!”
고개를 갸웃하던 지구가 금일봉의 뜻을 떠올리고 지구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됐어 임마, 나 돈 많아.”
“아, 네, 그···, 저한테, 기···.”
지구가 웅얼거리자 장수가 귀를 가져다 대었다.
“뭐라는 거야, 안 들려, 크게 좀 말해.”
“···삼촌은 저한테 기적이에요. 기적,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장수는 예상외의 말에 머쓱해져 뒤로 물러났다가, 코를 한 번 찡긋거리고는 지구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래, 삼촌 간다. 나중에 보자.”
장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금세 멀어졌지만, 지구는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바라보았다.
* * *
“나 이제 이거 안 해.”
복귀한 황장수가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렸다. 신해수는 예의 그 건조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그냥 싫어, 파견 건 있으면 다른 놈 보내, 나는 주먹 쓰는 게 어울리지 이런 건 뭔가··· 아, 싫다.”
“그런 것 치곤 비서를 아주 자연스럽게 잘 부리던데.”
“···어?”
해수는 아지트 구석에 있는 글러브를 끼고, 보호장비를 그에게 던졌다.
“오랜만에 스파링 좀 하자.”
“아, 그게 친구야, 내가 또 연기할 때는 메소드 연기를 하잖냐, 나도 모르게, 치,친구야?”
그날, 황장수는 몇 달 전에 수술했던 흉터가 터졌다.
* * *
점심시간.
우강철은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밥을 먹고는 빈 식판을 내려다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오갱이 급식대를 가리켰다.
“우대리? 고민하지 말고 더 퍼와,”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우대리는 그답지 않게 뜸을 들이다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저, 신혼집 다시 구했습니다.”
“뭐?”
“오오?!”
“축하한다.”
곽반장과 오갱, 해수와 신입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에 우대리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그래서, 집들이 초대를 하고 싶습니다.”
신혼집 장만이 순탄치 않았던 만큼, 집들이를 초대하는 우대리의 표정도 감회가 새로워보였다.
곽반장을 포함한 특수팀 팀원들은 당연히 초대에 응했고, 우대리는 다같이 있는 상황에서 해수에게 말했다.
“하루씨도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이쁘··· 지,지연이가 꼭 초대하라고.”
“좋아할 거다.”
모두가 화기애애한 가운데, 하루의 이름이 언급되자 신입이 몸을 살짝 떨었다.
* * *
집들이 당일.
우대리의 예비신부 오지연은 장을 보고 들어왔다. 엘리베이터가 막 닫히려고 한다.
“어엇!”
턱 -
거의 다 닫혀서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손가락 굵기 차이로 문이 멈추더니, 다시 열렸다.
안에는 젊은 여자 한 명이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젊은 여자는 오지연의 인사에 말없이 눈인사를 하고는 가만히 서 있었다.
지연은 층을 누르려다가 자신이 사는 4층이 눌러져 있어서 다시 여자를 보았다.
“어머, 4층 사시나봐요? 반가워요. 저 이번에 401호로 이사왔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아아, 네···.”
여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조금 음울한 느낌이다.
지연은 서서 곁눈질로 그녀를 살펴보았다. 형사 남자친구를 두다보니 자연스레 일반인보다는 조금 범죄에 관심이 있는 지연이었다.
여자의 몸 여기저기 멍이 보인다. 옷으로 가렸지만 소매 끄트머리, 목, 손등, 발목 부근에 멍이 들어있다.
오래된 것으로 추측되는 갈색 멍도 있다.
오지연의 별명은 오지라퍼연이다.
“가정폭력? 데이트폭행?”
오지연의 질문에 여자가 날카로운 눈으로 째려보았다.
“관심 끄시죠.”
“어떻게 관심을 꺼요. 이웃이 곤경에 처해있는데, 아, 혹시 그쪽도 CPR로 살려내면 갈비뼈 부러졌다고 신고할 부류?”
여자는 오지연을 이상한 사람 보듯이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4층에 도착했고, 여자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때, 오지연이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말을 이었다.
“난 그래도 상관없어요. 나 손해 안 보려고 이기적으로 살면 세상이 너무 팍팍해지잖아.”
여자의 걸음이 멈추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녀의 감정이 느껴지는 듯하다.
혀를 찬 지연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도움 필요하면 말해요. 집도 가깝고, 내 남편 힘 쎄요. 언제든 도와줄게요.”
여자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가, 말없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삐빅- 철컥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돼지우리같은 거실을 바라보며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건방지게···.’
그녀의 시선 끝에는 거실 소파에 비스듬이 누워있는 사내가 있었다.
반바지 하나만 입고 있어서 그의 비대한 몸에 그려져 있는 무시무시한 문신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힘 쎄다고 해봤자, 결국 저거랑 마주치면 꼬리 말고 못 본체 하느라 바쁘겠지.’
여자는 이전에 자신을 도와주겠다고 했던 옆집 남자들을 떠올렸다. 혈기왕성한 대학생 세 명 같이 살고 있었고, 멍을 보고는 도와주겠다고 난리를 쳤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이사를 갔다. 그날 여자는 죽다 살아났다.
“야, 뭘 그렇게 보고 있어? 나 죽이고 싶냐?”
“네? 아,아니, 그게 아니라···.”
“닥치고 셋팅이나 해.”
“네···.”
여자는 고개를 조아리며 소파테이블에 술상을 차렸다.
퍼억!
“꺄윽!”
조용히 술상만 차리는데도 묵직한 손바닥이 날아와 여자의 머리통을 때렸다.
여자는 힘없이 무릎을 꿇었고, 사내는 그녀의 옆구리를 발로 밀어 넘어트렸다.
“TV가 안 보이잖아, 쌍년아, 하여튼 꼭 쳐맞을 짓을 해요. 꺼져!”
여자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무릎으로 기어 그 자리를 벗어났다.
* * *
우대리의 신혼집.
특수대 팀원들과 하루가 한 자리에 모였다. 긴 좌식 식탁 위에는 요리가 푸짐하게 올라가 있었다.
곽반장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이야, 이게 다 제수씨가 직접 한 거야? 요리 엄청 잘 하네, 우리 근육몬이 호강하겠어?”
“아하하, 이거랑 이거 빼고는 전부 배달음식입니다. 반장님.”
올곧은 경찰답게 곧바로 사실을 고하는 우대리, 오지연이 생긋 웃으며 그의 옆구리를 강하게 찔렀지만 뜻은 전달되지 않았다.
“아얏, 왜, 아 화장실 가고 싶어? 마음껏 가, 여기 우리 집이잖아, 우리 집!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우대리에게 오지연이 얼굴을 가까이하고 복화술로 속삭였다.
“그걸 왜 굳이 니 입으로 말하지? 이따 보자 이 곰탱아, 내가 곰탕을 끓여줄 테니, 호호호. 드세요. 드세요. 제가 차린 건 몇 개 없지만.”
우 대리가 입을 다물고 눈을 굴렸다.
곤경에 처한 그의 모습을 보며 신해수가 도와준답시고 잡채를 한 움큼 들어보였다.
“저는 이게 가장 맛있습니다. 제수씨.”
오지연이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러셨구나, 제가 상호명 알려드릴게요.”
해수는 우대리와 눈을 마주치고는 뒤늦게 깨달았다. 아까 우대리가 배달음식을 알려줄 때 잡채도 가리켰다는 것을, 치명적인 실수다.
하루가 해수를 돕기 위해 갈비 하나를 들어보이며 다급하게 말했다.
“저는 이게 가장 맛있습니다!”
“아하, 역시 두분 잘 맞으시네요. 같은 곳에서 시켰어요.”
하루는 아까 우대리가 알려줄 때 엑시트 모바일 게임에서 푸시 우편을 받고 있었다.
잠시간의 불편한 정적, 오갱이 허허 웃으며 말을 이으려는 순간.
쿵쿵쿵! 쿵쿵! 딩동 딩동-
다급한 두드림과 초인종 소리에 우대리와 오지연이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인터폰으로 문을 두드린 장본인을 확인한 지연이 우대리를 붙잡고 본인이 현관문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낮에 만났던 옆집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의 코는 뭉개져 코피가 철철 흐르고 있고, 눈 주변은 피멍이 들었고 눈은 실핏줄이 다 터져 빨갛다.
그녀가 흔들리는 눈으로 오지연을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입술도 터져서 피가 찐득하게 떨어진다.
“나, 도와줄 수 있어요?”
쾅!
맞은편 문이 거칠게 열리며 사각팬티만 입은 비대한 덩치의 문신 사내가 맨발로 걸어나왔다. 그의 오른손에는 부엌칼이 들려 있었다.
“야이 씨발년아! 어딜 튀어?! 너 오늘 내가 회 쳐준다니까?!”
세상 무서울 거 하나 없이 살던 사내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고,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똑똑히 들렸다.
스윽
만찬을 즐기던 특수팀 팀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